Peaceful bullpen life RAW novel - Chapter 3
※ 3화. 어림도 없지
2이닝 3삼진 퍼펙트. 그날 내 등판의 기록이었다.
왜지.
내가 던져놓고도 의아하다.
성훈 호크스의 1번 타자이자 KBO의 1번 타자.
그리고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가장 친한 주변 인물 중 하나인 우석이는 경기가 끝난 후, 나를 잠깐 불러세워서까지 물어보았다. 너 뭐 했냐고.
다급함마저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노력 인마, 노력.
그 한마디 쿨하게 남겨주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날, 인터넷의 성훈 호크스와 원하 챌린저스의 경기 기사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연타석 홈런을 쳐낸 우석이, 그리고 호투한 우리 팀 막내 선발 준혁이의 이야기, 준혁이의 호투를 ‘롸’끈하게 날려버린 불펜진의 이야기.
…그리고 짤막하게 모처럼 2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내려갔다는 내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이건 그냥 이 시합에 대한 종합적인 기사였고, 따로 나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제목이 아마, ‘김한울, 올 시즌 첫 퍼펙트’였나?
등판하면 고작 1이닝, 많아 봐야 2이닝만 던지고 내려가는 주제에 아직까지 게임 퍼펙트가 없었다니.
뭐 그래도 댓글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워낙 팀 팬층 사이에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는 있으니까.
“한울아.”
“예.”
“너 뭐 했어?”
“예?”
아니, 코치님, 그렇게 앞뒤 다 떼고 얘기하시면…….
“아니,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어떤 게요?”
“너 저번 등판.”
“아…….”
호크스전 이야기겠지.
“뭐, 저라고 그런 날 없겠습니까.”
“아니… 그렇기야 한데…….”
흐음…….
“메카닉이나 뭐 왜, 다른 거 바꾼 게 뭔가 싶어서. 너 왜 릴리스 포인트 당기네 마네 했었잖아.”
쓸데없이 기억력 좋은 양반 같으니라고.
“그냥… 뭐 어떻게 건드린 건 없고 의식적으로 릴리스 포인트만 앞으로 가져가야지, 이 정도였어요.”
“그래?”
“네네.”
“아니… 그래. 구속 빨라진 거 의식하지 말고. 그냥 지금 거 이어가.”
“예?”
“왜.”
“아, 아닙니다.”
“그래.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고. 고생해라.”
“…네.”
멀어져가는 코치님의 너른 등짝을 보고도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뭐? 구속이 올라?
당장 규학이에게 뛰어갔다.
“야! 규학아!”
“네?”
“나 구속 올랐냐?!”
“예?”
멱살을 잡을 듯이 들이대는 내 모습에 놀랐는지 커다란 눈을 몇 번 껌뻑이고선 정신을 차리고 규학이가 대답한다.
“네… 뭐. 저번 경기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네. 전 그래서 뭐 하셨나 궁금했었는데.”
“얼마나.”
“네?”
“몇 km 올랐냐고.”
“아마… 평균 2km 정도 올랐었죠?”
“…….”
평균 2km. 평균적인 한국의 프로 야구 리그의 투수들 직구 구속이 140km대임을 생각하면 그리 큰 수치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0.001초에 안타와 아웃이 왔다 갔다 하는 걸 감안하면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하물며 그보다 한없이 낮은, 올 시즌 평균 구속 125.7km의 나에게는.
“야.”
“네.”
“…나 저번 경기 최고 구속이 몇이었어.”
“아마… 133km였죠?”
“어느 공?”
“무슨 공이요?”
“누구한테 던진 몇 구째냐고!”
“…왜 화를 내요.”
“미안. 지금 좀 급해.”
“그… 최우석한테 삼진 잡았던 3구째요.”
“땡큐.”
“아, 형!”
난 규학이를 버리고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쾅!
하는 소리가 나도록 변기 칸의 문을 닫은 뒤, 변기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최고 구속은 135km였다. 그보다 2km 느린 133km가 뭐 대단하냐고?
135km는 나 스무 살 때 이야기다. 가장 몸 상태 좋을 때의 이야기. 닳고 닳은 지금, 올 시즌 최고 구속이 131km임을 감안하면…….
“…스탯?”
문득 스탯이 떠올랐다.
띠링―!
그러자 자연스레 시야 한편에 나의 스탯이 떠올랐다.
[선수 능력치]제구 ― 최상
구위 ― 최하
체력 ― 하
직구 ― 27
커브 ― 31
슬라 ― 19
스플 ― 23
체인 ― 29
싱커 ― 25
특성 ― 해탈
“…….”
등판 이전과 비교하여 직구 2, 슬라이더 1, 싱커의 스탯이 1 올랐다. 이거, 진짜였냐.
“…하, 아핳, 아하하핳하!!”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다가, 어떻게 이런 기회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런 게 내 곁에 있어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이게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상,
“…해볼 만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자신감 가득한 미소로 씨익 웃은 나는 화장실의 문을 열고 나서다 좀 전의 투수 코치님과 마주쳤다.
“…미친놈.”
“예예! 저 미친놈입니다! 야구에 미친 놈이요!”
누가 뭐라 하든, 난 기분이 정말 많이 좋았다.
* * *
3일을 쉬었다.
감독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다. 3연투했으니 3일 동안은 절대 올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3일 동안 난 절대 놀지 않았다. 평소에도 게을리하지 않던 훈련을 더욱 열심히 했고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평소라면 지루하고, 또 귀찮았을 모든 것이 즐거웠다. 왜? 당연하지, 야구가 느는 게 수치상으로 보이니까.
“한울아, 준비해라.”
“네!”
점수 차는 7 대 2로 응, 지고 있어.
언제나와 같은 상황, 같은 이유지만 마음가짐은 다르다. 앞으로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일까.
글러브를 쥐는 손과 불펜으로 향하는 걸음걸이에 힘이 가득했다.
“형, 오늘은 살살 던져요.”
“아부해도 뭐 안 나온다니까.”
건영이의 쓸데없는 소리를 넘기며 불펜 피칭이 시작되었다.
이전처럼, 맨 처음처럼 또 퀘스트가 뜨지 않을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또 내 스탯이 오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퀘스트는 불펜 피칭을 마무리하고 내가 마운드에 오를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매 상황상황마다 이런다면 너무 밸붕이지, 밸런스 붕괴. 양심을 갖자. 지금 이것만 해도 난 엄청난 행운을 가진 거야.
오늘은 원정 경기다. 내가 마운드에 오르고 있음에도 환호는 들리지 않는다. 그냥 무관심이 정답이겠지.
그래, 나는 이런 선수다. 팀 사정에 빠삭한 골수팬들이나 인정해주는 그런 쩌리 투수.
인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공도 느낌 탓인지, 평소보다 뻗는 것 같았다.
타자가 들어오고, 이번엔 팀의 주전 포수가 아닌 백업 포수 주호가 사인을 냈다. 고개를 끄덕인 뒤 던지는 커브는,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유격수 앞으로 천천히 굴러갔다. 유땅으로 1아웃,
“응?”
이 되지 않고. 1루수가 놓쳤다. 비록 바운드로 날아온 공이긴 했지만 잡기 어려운 숏 바운드도 아니고, 큰 바운드였는데.
“미, 미안.”
“아냐, 아냐. 그럴 수 있지.”
애초에 기성이한테 수비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수비는 확실히 리그 평균보다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공격 하나만큼은 확실한 친구니까. 괜찮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곤 다시 플레이트에 서 주호의 사인을 확인했다. 몸쪽으로 떨어지는 싱커. 내야 땅볼로 더블 플레이를 유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좋지. 한 번에 카운트 두 개 올라가고.
고개를 끄덕인 뒤 공을 던졌다. 완벽한 곳, 완벽한 각도로 떨어진 공은 원하던 대로 타자의 땅볼을 유도해 냈다.
다만 그 코스가 안 좋았을 뿐.
유격수와 3루수 사이 절묘한 곳을 굴러간 공은 내야수가 아닌 좌익수가 잡아 내야로 전달했고, 주자는 1루와 2루가 되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타임이요!”
“타임!”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지, 주호가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올라왔다.
“왜.”
“선배님, 다음 타자 홍석진 선배예요.”
이건 안 좋은데.
리그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상수 타이거즈, 그 타자들 중 최고의 선구안을 가지고 있는 3번 타자 홍석진.
컨택이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고 파워나 주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선구안 하나만큼은 리그 최고 타자인 박해진조차 한 수 접어주는 타자다.
나와는 상성이 아주 안 좋고.
“…그리고 그다음 박해진이구요.”
그다음은 더 안 좋은, 리그 최고 타자 박해진.
“어쩔 수 없어. 그나마 괜찮은 직구 위주로 가자.”
“네.”
무사 1, 2루. 나와 안 좋은 상성을 가진 다음 타자.
아마 높은 확률로 출루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사 만루, 도망칠 곳이라고는 덕아웃뿐인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리그 최고의 강타자.
“…염병.”
너무 나댔나.
순간 욕이 나왔지만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서 뭔 짓을 해도, 상황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상황은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바꿔야 한다. 내가 암만 리그 쩌리 투수라고 해도 이쯤 짬이 되면 그 정도는 안다.
심판이 플레이를 외치고 와인드업이 아닌 스트레치 상태에서 주호의 사인을 보았다. 미리 맞춘 대로 직구. 몸쪽으로.
딱―
“파울!”
또 직구.
딱―
“파울!”
한 번 더.
딱―
“파울!”
하나 더.
딱―
“파울!”
초구부터 직구 네 개를 던졌지만 모두 파울이 났다. 카운트는 0-2.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야 할 카운트지만, 오히려 내가 쫓기는 느낌이 난다. 불편하다.
좌타자의 몸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슬라이더 사인이 나왔다. 몸쪽 낮은 존으로 향하는 것까지는 정확했지만,
“볼.”
쉽게 골라냈다. 그럼 이번엔 직구.
딱―
“파울!”
또 파울. 역시 컨택 자체는 그렇게 좋지 못하다. 몇 년 동안 쉽게 내 공 때려오다 구위 조금 바뀌었다고 파울만 나는 거 보면.
“볼.”
높은 볼로 직구를 던져도 쉽게 골라낸다. 카운트 2-2. 바깥쪽으로 빠지는 싱커도 던져보았다.
“볼!”
또 볼. 카운트 3-2. 0-2라는 절대적인 카운트에서,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마 중계 카메라가 내 얼굴을 비추고 있다면, 금방이라도 상욕을 할 만한 투수가 있겠지.
뭘 던지지. 어떡하지.
바깥쪽 직구.
딱―
“파울!”
한 번 더.
딱―
“파울!”
이쯤 되면 몸에 맞춰서 그냥 내보내 버리고 싶다. 저런 타자는 진짜, 투수 열 받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야구 조까치 하네!
투수로서 타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홍석진은 지금 나에게서 뺏어내고 있었다.
어떡하지. 뭘 던지지. 뭘 던져도 파울이 나올 것 같고, 아니면 골라낼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오른손의 약지와 소지만 펴고 왼쪽 어깨에 가져다 댔다. 던질 구종을 내가 선택하겠다는 이야기.
오늘 한 번도 던지지 않았고, 지금 내 스탯 중에서 가장 높은 커브를 던지자.
어디에?
존 중앙 낮게 걸치게.
여기면 비껴 맞아 1루수 땅볼이 나올 거야. 발이 그리 빠른 타자는 아니니 쉽게 병살 나올 거고, 2사 3루에서 박해진을 상대하자. 걸러도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주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립을 고쳐 쥐고, 최대한 공의 스핀을 주기 위해 있는 힘껏 던졌다.
평소보다 아주 쬐끔 더 예리한 포물선을 그린 커브는 정확하게 존 중앙 낮은 곳에 떨어졌다.
홍석진의 배트도 나오는 게 보였다. 아니, 나오다가 멈췄다.
“베이스 온 볼!”
하…….
이걸 안 잡아준다고?
주호한테는 미안하지만, 주호야. 프레이밍 연습 좀 해라. 어떻게 그걸 볼로 잡을 수가 있냐.
털레털레 진루하는 주자들, 그리고 장비를 빼고 1루로 나가는 홍석진. 그리고 들어오는 리그 최고의 타자, 박해진.
홈런 대마왕, 리그 폭격기, 홈런 머신 뭐 등등.
여러 가지 극악무도한 이미지와 성적과는 다르게 비교적 단출한 폼으로 내 투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집중하자.
띠링―!
여기서, 퀘스트가 발동했다.
[위기탈출 넘버 원!]– 무사만루의 위기를 1실점 이내로 마무리하세요. (0/1)
– 보상 ― 포심 +3
갑자기?
좌타석, 커다란 글씨로 텍스트가 보였다. 아아, 이런 느낌이구만. 기분은 거지 같았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돼, 막으면 돼. 자그마한 고개의 끄덕임이 연속됐다.
주호의 사인이 나왔다. 만루다. 굳이 도루 막네 마네 하며 셋포지션으로 갈 필요는 없지.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으기 위해, 양손을 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와인드업을 취한다.
손이 얼굴 앞으로 내려옴과 동시에 왼 무릎이 올라온다. 엉덩이가 힘차게 포수 쪽으로 전진하고, 끌어모은 모든 힘이 손끝에 집중된다.
일단 직구로 카운트부터 잡자, 하고 전력을 다해 던진 공은,
따악―!!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시원하게 담장을 넘어가는 135km짜리 인생 직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