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ful bullpen life RAW novel - Chapter 91
※ 91화. 예비명단
따악―
“초구부터 나가는데요, 이 타구가아아!! 우중간에 떨어지면서, 이 경기를 끝냅니다! 김기범의 끝내기 안타!”
“이한주 감독의 믿음을 이렇게 보답하나요!”
끝내기 안타.
경기의 클라이막스를 있는 힘껏 올려치는, 그렇게 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한껏 후려치는 경기의 종료.
이전 삼진 세 개와 어설픈 카운트에서 때려버린 병살타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전의 스윙.
밀어쳤다기보단 밀려쳤다는 감이 강한 타구였지만, 뭐 어때. 이겼는데.
생각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구장, 차에서 내리지 않고 어제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확인했다.
“여어, 끝내기 맨.”
“매앤.”
기분이 꽤나 좋아보인다. 만나자마자 반갑다고 팔꿈치를 맡대오는 기범이와 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도 선발이더라?
명진이 계속 안 왔으면 좋겠다.
양아치네?
내가 좀 양아치지.
뭐 대충 이런 흐름. 실실거리며 친구를 보내고, 불펜으로 향했다.
뻣!
“아니, 가만히 있어라.”
뻣!
“움직이지 말라니까 그러네?”
뻥―
“손 묶을까?”
“아, 아닙니다!”
뻥!
“그치. 그래야지. 어제 한울이 슬라이더, 왜 볼로 받았는가 생각해봐라.”
뜬금없이 내 이름이 나오길래 이건 무엇인가, 싶어서 확인하니 주호가 한창 캐칭에 열심이다.
“코치님, 제가 던질까요?”
“아, 왔나. 됐다, 니 어깨 상한다.”
감동. 압도적 감동.
사소한 곳에서 감동을 느끼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어깨를 앞으로 쭈욱 땡긴다든지, 그물에 밴드를 묶어놓고 튜빙질을 한다든지.
온 몸이 흐물흐물해질 때 쯤, 주호의 트레이닝도 끝이 났다. 쪼그려 앉아있던 허벅지가 저린듯 일어나 툭툭 터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
“아, 선배님.”
“엉.”
그물을 보던 자세를 뒤집어, 불펜 내부를 향하도록 만들어 튜빙을 할 때. 주호의 질문이 시작됐다.
“그…어제 있잖아요.”
“어제 언제. 나 던질 때?”
“네. 고개 한 번도 안 저으셔서….”
“아, 그거.”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거든.
“혹시 저도 리드 좀 좋아진 겁니까.”
“으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 눈알이 반짝반짝 빛난다. 깨뜨리기가 너무 미안하다.
“그냥 테스트 같은 거지.”
에둘러서 표현하자.
“테스트요?”
“우리 주호 리드, 얼마나 좋아졌나…싶은 테스트.”
“오, 어땠습니까.”
음…….
순간,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팩트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주호가 기분나빠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할까.
“쏘쏘.”
“다행이네요.”
에라이.
“리드 보고 코치님이 뭐라고는 안 하시디?”
“몇몇 군데 말씀은 해주셨습니다.”
사실 어제의 과정은 내 퀘스트를 위한 여정이 끼어있었다.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를 따지기엔 부적합하다.
“좋게 생각해. 볼배합에 정답이 어딨어. 반대를 노릴 것 같아서 역의 역을 던지는 게 무서워서 역의 역의 역을 던질 수도 있는 거지.”
“예?”
“아무렇게나 던져도, 잘 될 수도 있다고. 니 리드가 안 통해도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지.”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기초 훈련을 끝낸 주호를 보내고도 계속 밴딩을 이었다.
* * *
[단독] 프리미어12 예비 명단 60명 발표8월 20일, 2019시즌 종료 후 프리미어 12 대회에 나설 대표팀 예비 엔트리 명단이 발표됐다.
투수는 이현진(동성), 박동일(상수), 황혁준(원하) 등 기존 대표팀 에이스들 이외에도 김한울(원하), 이송인(성운), 임재혁(KP) 등의 초행 선수들도 포함됐다.
타선에선 박해진(상수), 강성현(원하), 최우석(성운), 신헌철(상수), 조태풍(한성)을 비롯해 문규학(원하), 곽명규(성운) 등이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 수 있는 1차 문턱을 통과했다.
예비 엔트리는 투수 28명, 포수 5명, 내야수 15명, 외야수 12명 등 총 60명이다.
2019 프리미어 12 최종 엔트리 28명의 명단은 오는 10월 2일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dkss***
└? 김한울이 들어간다고?
추천 2743 비추천 634
―dnjs****
└원하 뭐 이리 많아 ㅋㅋㅋㅋ
추천 2436 비추천 742
―rlawl****
└선수들 모두 힘내십쇼
추천 2341 비추천 103
* * *
시즌 후 맞이 할 프리미어 12. 올시즌 장마 때 웬만하면 경기는 순연시키지 않고 강행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가대표.
한국사람이라면 가슴을 뛰게 하는 그 네 글자. 특정되는 몇 명이야 매년 가슴께에 태극기를 다니까 익숙하겠지만,
“오오….”
처음으로 그런 무대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글쎄. 누구나가 놀라워하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직 정식 엔트리의 두 배에 달하는 예비 엔트리였지만, 내 이름이 저기 껴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어, 551 국대 맨.”
“예쑤, 암 국대 매앤.”
그러나 현실은, 엔트리를 본 이들이 가지는 불만의 꽤 큰 지분이 나에게 쏠리고 있었다.
투고타저의 기저가 흐르는 2019 KBO 시즌, 지금 내 성적은 대충 31이닝 동안 5.51의 평균자책점.
시즌 초반의 삽질이 워낙에 거했는지, 좀처럼 평균자책점이 평균의 모습으로 회귀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의문을 가진다.
투고타저에서 5.51짜리가 국대를 간다고?
그에 나를 변호하는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후 20과 2/3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은 고작 1.30밖에 되지 않는다! 충분하다!
“느낌이 어떠냐.”
“신선한데.”
“가고 싶냐?”
나에 대한 여론이 썩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국대를 가고 싶느냐, 라고 묻는다면,
“가고 싶지. 당연히.”
당연히 가고 싶다.
단순히 태극기 한 번 휘날려봤다, 내가 해외구장에서 공 좀 던져봤다, 그딴 경험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닌,
“형은 갔을 때 기분이 어떻든.”
“어…뭔가 울컥하는 게 있긴 있더라.”
“울컥한다고?”
“와. 진짜 내가 이런 곳에 왔구나. 진짜 어깨가 무겁구나.”
좋은 의미의 부담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갈 수 있으면 가. 니가 실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시즌 초 꼬라지로 가면 내가 먼저 욕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아니지.”
성적은 평균으로 돌아오지 못 했지만, 실력은 평균으로 회귀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직구 최고구속 147km.
127km짜리 던지고 빌빌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때문에 도핑 테스트는 진짜 오지게 많이 거쳤다. 감독관 앞에서 바지 내리는 짓 좀 그만하고 싶다.
“혹시나 싶어서 얘기하는데.”
“엉?”
“그거 되게 나중 얘기니까. 지금부터 들떠가지고 막, 어? 와! 국대! 와! 이 지랄은 하지 말고.”
“나를 뭘로 보고….”
“아니냐?”
“…….”
어떻게 알았지.
“일단 오늘 시즌부터 신경 써.”
“아…어제 상수 이겼지.”
“그치.”
2게임차.
현재 리그 3위에 랭크되어있는 성운과는 꽤나 격차를 벌리고 있다. 무려 4게임 반 차이.
따라서 아랫쪽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텐데, 문제는 윗쪽. 상수와의 격차가 도저히 좁혀지지가 않는다.
우리가 이기면 쟤네도 이기고, 우리가 지면 쟤네는 지거나 이기거나.
그런 언밸런스 속에서 악착같이 격차를 유지하고만 있다. 아싸리 멀게 느껴지면 포기하면 편한데,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보이니까…진짜 사람 미칠 것 같았다.
“오늘 좀 잘 던져봐. 이겨야지.”
“…이겨야지.”
마침 이번 주중 3연전의 상대는 바로 상수 타이거즈. 같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상대 구단은 먼저 전세를 냈다.
오늘 선발이 예고되어있는 규진이형은 뿌득, 하고 손에 쥔 공을 눌렀다.
따악-!
따악-!!
연습 배팅 중인 박해진을 무심히 쳐다봤다. 치라고 던져주는 연습배팅이기는 하지만, 치는 족족 잠실 관중석 상단에 공들이 꽂힌다.
국대고 나발이고, 그 이전에 한국시리즈가 있다. 그리고 또 그 이전에 정규시즌이 있다.
플레이!
내 마음은 규진이형의 마음과 같았다.
뻥!
“스타잌-!”
153km.
뻐엉-!
“스타이잌!!”
152km.
“스타아앜!”
155km.
직구 세 개를 연달아 던지며 첫타자를 잡아내는 모습도,
뻥!
“스타잌!”
122km.
띡!
“숏! 숏, 숏!!”
“어케, 어케에엑!!”
공 두 개로 2번타자를 내야 플라이 처리하는 것도,
뻥!
“스타잌!”
151km.
뻥!
“스타이잌!!”
152km.
뻥!
“스위잉, 아웃!”
136km.
3번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해내는 것까지 모두 완벽했다.
키는 나보다 20cm 가량 작은 형인데도, 3루 베이스 근처를 지나 덕아웃으로 걸어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형, 키 컸어?”
“뒤질래?”
사람이 커보였다.
양팀 2선발의 치열한 싸움. 현재 양팀의 상황을 잠시 떼어놓고 보고 있자면 꽤나 보는 맛이 있었다.
투고타저? 아니,
“스타아앜!”
그냥 투수들이 개쩐다.
5회까지, 양팀 투수 모두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5회말이 종료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고작 1시간 정도.
클리닝 타임, 평균보다 약간 길어진 휴식 시간에 규진이형은 머리에 수건을 덮어쓰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투수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 아무도 다가서지 않는다. 외롭게 혼자 있는 규진이형이 안쓰러워서 옆에 다가가 살포시 앉았다.
“형.”
“…왜.”
고작 5이닝이지만 퍼펙트게임을 진행 중인 투수. 대기록이 이어질 땐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
괜찮아, 고작 그런 걸로 무너질 사람은 아니니까.
“잘하네.”
“잘해야지.”
이런 경험이 아무래도 적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규진이형답게, 별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아, 명진이 보고 싶네.”
공격 대신 수비와 주루를 가진 기범이. 수비 대신 공격을 가진 헌희.
한쪽 스탯을 크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양쪽을 모두 높게 가진 명진이를 따라가지는 못 한다.
오늘 선발 유격수로 나선 건 기범이. 변수보다는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라인업.
딱히 유격수 쪽으로 타구 자체가 가지 않았다. 결과론적이지만 차라리 헌희가 선발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점수 좀 났으면 좋겠는데.”
“잘 할 거야. 형이 9이닝 퍼펙트하면, 그 동안에 한 점은 내겠지.”
“지랄하네.”
피식, 하고 웃는 모양새를 보니 내쪽의 마음이 더 풀어진다.
“야.”
“왜요.”
“8회에 올라갈 준비 해라. 아마 7이닝이 마지막일 것 같거든. 빠르면 그 전에 내려올 수도 있고.”
5회까지 기록한 투구수는 71개. 조금 더 무리를 하자면 8회까지도 가능은 할 투구수.
하지만 이번 경기는 단순한 한 경기가 아니다. 이번 3연전은 그래, 포스트시즌. 그것도 한국시리즈와 접근방식을 같이 해야한다.
이겨야지, 가 아니다. 지면 안 된다, 이쪽에 가깝다.
“퍼펙트게임 해보겠다는 포부는 어디갔소.”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다고.”
“고등학교 때.”
“…10년도 더 지난 헛소릴 아직까지도 쏟네.”
“내 잊을 것 같아? 엘리트 때 8회 첫 안타 맞으니까 나한테 지랄했던 거, 어?”
“미친새끼.”
끌끌끌, 하고 웃는 모양새를 보니 긴장은 완전히 풀어졌나보다.
“2이닝 동안 어떻게 던지게?”
“존나 쎄게. 그럼 뒤는 알아서 하겠지.”
“…콜.”
그를 위한 선제조건. 우리가 먼저 점수를 낼 것.
따악-!
“돌아! 투, 투!!”
6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성훈이형은 전제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2루로 뛰었다.
저 멀리, 이를 악물고 2루로 뛰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나이쓰 배애애앳!!!”
절로 마음의 습도가 100%를 뚫게 된다. 덕아웃 난간을 붙잡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다음 타자로 나선 기범이.
노아웃에 주자를 2루에 둔 상황에서 어쭙짢게 돌아오느니, 한 베이스라도 진출시키자. 그게 우리 덕아웃의 작전이었다.
띡!
“파울!”
배트 끝에 맞은 타구가 1루 라인 바깥쪽으로 벗어났다. 무섭게 달려드는 상수의 내야진을 보니 지금 기범이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왼발을 타석 바깥으로 빼놓고 3루 주루코치님과 시선과 사인을 교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루코치님의 몸동작을 한국어로 번역해보자면,
띡!
“쓰…1루!”
“퍼스뜨으!!”
그냥 계속 대라.
2구째는 아주 멋진 번트였다. 3루수 하해진이 잡아 3루를 흘끗 쳐다보지만 성훈이형은 이미 3루를 밟았다.
“작전수행 잘 하십니다아!”
“내가 맥아더여!”
“김기범! 김기범! 김기범!”
어찌보면 단순한 안타 하나보다도 더욱 값진 번트 하나가 성공했다. 당연히 무수한 악수 요청은 기본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대타, 장주호.
여기서 대타카드 발동.
훈이가 빠지고 주호가 타석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체구를 쿵쿵거리며 타석으로 향하는 모습은 마치,
“주호야, 가즈아아아!!”
“날려버려어억!”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줄 것 같았다.
초구는 볼, 그리고 2구째도 볼.
볼 두 개를 떠안게 된 시점에서 당연히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지만,
고의사구입니다.
이렇게 된 바, 그냥 걸러버린다.
발이 느린 주호는 곧장 외야 백업인 병천이와 교체됐다. 1루를 밟은 채 고관절을 풀 시간은 상대 포수의 타임 요청으로 인해 더욱 길어졌다.
상수의 포수가 다시 홈플레이트에 앉은 뒤 맞이하는 성문이의 초구.
“스윙-.”
있는 힘껏 휘둘러보지만 강력한 직구에 늦어도 한참 늦는다. 이후 낮게 바운드되는 체인지업을 편하게 구경하고 맞는 3구째.
따악―
“갔…!”
타이밍을 맞춰내고 질끈 감은 눈으로 휘두른 타구가 하늘 높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