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은 허구로, 그에 따른 설정은 극적 상황을 위한 작가의 연출이므로 현실과 다소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잊지 못할 1군 데뷔전 (1)
다소 늦은 내 1군 데뷔전은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콜업 통보를 받고 1군 데뷔전을 치르기까지 5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2군과 1군 경기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관중이었다.
2군 경기에서는 100명 남짓의 관객들과 소극장 공연을 했다면, 1군 경기는 2만 관중이 함께하는 블록버스터 뮤지컬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라운드에서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응원가를 듣고 있으니 온몸이 짜릿했다.
그렇다고 꼭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딱!
“어?”
상대 타자의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의 소리가 관중들의 커다란 함성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의 소리로 타구가 떨어질 위치를 예측해야 하는데, 그 중요한 소리를 듣지 못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혹시 다른 선수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일단 타구가 내가 서 있는 곳보다 멀리 갈 거라고 생각해 첫 스텝을 뒤로 끊었다.
다행인 건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급하게 뒤로 가는 스텝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 다시 앞으로 달렸다.
갑자기 방향을 바꾼 탓에 역동작에 걸려 초반 가속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안타를 허용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1군 팬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수비인 만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젖먹던 힘을 다해 달리는 동안 머릿속으로 온갖 가능성을 계산해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웃 카운트를 노릴지, 아니면 안타를 허용하더라도 안정적인 수비를 할지.
외야수의 실책은 평범한 1루타를 3루타 혹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치명적이었다. 따라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는 게 기본이었다.
그런데 몸은 머리로 정리한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앞으로 슬라이딩하며 글러브 낀 손을 쭉 뻗었다.
“와아아아-”
가까스로 포구에 성공한 내가 글러브를 들어 올리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이야! 강현우 선수가 1군 데뷔전에서 엄청난 호수비를 보여줍니다!
-첫 스텝에 미스가 있었는데도 엄청난 순발력과 폭발적인 스피드로 극복해내네요.
-올 시즌 하이라이트에 기록될 만한 멋진 수비였습니다.
-강현우 선수. 앞으로 기대해봐도 되겠는데요.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수비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향해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온몸에 소름이 느껴졌다.
그러나 짜릿함을 즐길 사이도 없이, 타자로 나설 준비를 해야 했다.
-재규어즈의 다음 타자입니다. 중견수 강현우.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배트를 휘두르며 타석을 향해 걸어갔다.
-재규어즈의 새로운 중견수 강현우 선수가 자신의 프로 1군 데뷔 첫 번째 타석을 향해 걸어 나옵니다.
-아까 수비에서 정말 멋진 슬라이딩 캐치를 보여줬죠. 좋은 수비 뒤에는 좋은 공격이 나오곤 하는데요. 과연 이번 타석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이제 2만 명도 넘는 관중들의 시선이 오직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를 처음 보는 팬들도 전광판에 뜬 내 이름을 외치며 응원해줬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1군 데뷔 타석이었다.
시원한 안타를 뽑아내고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내 모습을 그려봤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타석에 선 나는 배트를 움켜쥐고 마운드에 선 투수를 바라봤다.
상대 투수는 강속구 투수였다.
150km/h가 넘는 빠른 공을 언제라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제구 때문에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선수였다.
이런 유형의 투수를 상대로는 급하게 승부하기보다 끈질기게 버티며 스스로 흔들리게 만드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이 투수가 던지는 공의 대부분이 패스트볼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포수의 사인을 보던 투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나도 호흡을 멈추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투수가 던지는 공에 모든 집중력을 쏟았다.
그리 이제 투수의 와인드업이 시작됐다.
나는 배트를 힘껏 움켜쥐었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스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슈우웅-
퍽!
“윽!”
이게 무슨 일일까.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암전되었다.
동시에 2만 관중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던 경기장이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어. 강현우 선수 괜찮나요?
-머리를 강하게 맞았어요. 큰 부상이 아니면 좋겠는데요.
상대 투수가 던진 150km/h가 넘는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이 아닌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데뷔 첫 타석의 긴장이 풀리지 않았던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만 살짝 돌렸을 뿐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쇳덩이나 다름없는 공을 머리에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강현우 선수. 절대 무리해서 일어나면 안 됩니다. 천천히 해야 해요.
-아……. 상황이 좀 심각한 것 같은데요? 앰뷸런스가 빨리 들어와야 할 것 같아요.
그라운드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내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더그아웃에 있던 감독과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나에게 공을 던졌던 투수는 충격에 빠진 채 마운드 위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사이 멀리서 앰뷸런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달려온 의사가 나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아득한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이었다.
* * *
천천히 눈을 떴다.
지금 내 시선에는 하얀 천장과 형광등만 보였다.
여기는 어디지?
왜 누워있는 거지?
혼자 머리를 굴려봐도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끄응.”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고개만 살짝 움직여보니 내 몸에 환자복이 입혀져 있었다.
내 바로 옆에는 간호사가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간호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움직이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네……. 근데 여기가 어디죠?”
내가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하자 간호사가 깜짝 놀라 나를 진정시켰다.
“자, 잠시만요. 갑자기 일어나시면 안 돼요.”
간호사가 버튼을 누르니 침대 머리 부분이 올라가 상체를 약간 일으킨 자세가 되었다.
“지금 보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불편한 점이요?”
“네. 제가 뚜렷하게 보이세요?”
뚜렷하게 보이냐고?
묻는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네……. 잘 보이는데요.”
그때였다.
촤악!
갑자기 나를 둘러싸고 있던 흰 커튼이 확 젖혀졌다.
“현우야!”
“엄마?”
커튼을 젖힌 사람은 내 어머니였다.
“현, 현우 아버지! 빨리 와보세요.”
어머니가 부르르 떨며 뒤쪽을 향해 다급히 손짓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당신 괜찮…… 현, 현우야! 이제 정신이 든 거야?”
아버지 또한 놀란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호자분 잠시만 계세요. 지금 바로 선생님 모셔올게요.”
“네. 빨리요 빨리.”
들고 있던 차트를 선반에 내려놓은 간호사가 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어머니가 옆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현우야. 괜찮니? 엄마 알아보겠어?”
어머니의 눈이 빨개지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근데 여기가 어디예요?”
“기억이 전혀 안 나?”
“네……. 전혀 모르겠는데요.”
“어디까지 기억나니? 경기하던 거는?”
경기?
내가 경기를 했다는 건가.
무슨 경기였지……?
그 순간,
-와아아아-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던 함성이 떠올랐다.
아. 맞다!
내가 1군 데뷔를 했었지.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했다.
근데 왜 병원에 있는 거지?
힘겹게 기억을 되살리며 대답하려는 순간, 문이 확 열리더니 의사로 보이는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강현우 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저는 이번 수술을 집도한 박한도라고 합니다.”
수술?
“혹시 후유증이 있는지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일단 의사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이 이전처럼 보이시나요? 저나 강현우 씨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주변 사물들까지요.”
그 말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내가 알던 그 모습이었다.
TV, 의자, 냉장고 등도 낯선 형태를 하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네. 잘 보이는데요.”
내 대답에 의사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근데 제가 무슨 수술을 한 거죠?”
내 질문에 의사가 멈칫했다.
그는 안경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약간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군요.”
“선생님. 우리 아들, 괜찮은 건가요?”
아직도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봤다.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고 일주일 동안 의식 없이 누워있었으니, 일부 기억을 잃는 증상 정도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일주일? 내가 일주일이나 누워있었다는 건가?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행히 지금까지 뇌출혈 같은 특별한 증세도 없고, 사물을 보는 것에도 문제가 없다고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정확한 건 며칠 더 경과를 지켜보죠.”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현우 씨. 생활하시다가 혹시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네.”
그 대화를 끝으로 의사가 간호사와 밖으로 나갔다.
문 앞까지 의사를 배웅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다소 안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우야,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네, 괜찮아요.”
그때였다.
똑똑똑.
밖에서 병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이 열리자 190cm도 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과일 박스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가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오. 마침 잘 왔어. 들어오게, 어서.”
“네, 아버님. 마침 배가 좋은 게 들어왔다고 해서 사 왔습니다.”
“아휴. 이제 그만 사 와도 된다니까 그러네.”
남자는 아버지와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현우야, 손님 왔다.”
응? 내 손님이라고……?
속으로 의아해하는 찰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 혹시 선배님 깨어나셨습니까?”
“어어. 방금 일어났어.”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가 나를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얼굴이 조금씩 보였다.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지……?
그 순간이었다.
슈우웅-
퍽!
“억!”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아! 더블즈 최정환.
기억이 되살리는 동안 내 앞까지 다가온 최정환이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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