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문제는 그게 아니야 (2)
나는 버팔로즈 라커룸 앞에서 오석훈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은데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친분이 있던 다른 선수들과 먼저 마주쳤다.
“선배!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그래요?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럼 잘 지내지.”
이제 에이전트가 됐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아직은 그 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요즘 근황을 묻는 후배의 물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하고 있다며 대충 얼버무렸다.
이후에도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경기장을 떠나는 다른 여러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여전히 오석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 기다리는 게 지루하기도 했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이 들어 직접 오석훈을 찾으러 나섰다.
잠시 후 내가 오석훈을 발견한 곳은 경기장 옆에 마련된 연습장이었다.
멀리서 티배팅 타격 연습기를 앞에 두고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탕. 탕. 탕.
공이 시원하게 맞아 나가는 소리가 실내 연습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석훈의 얼굴은 물론 팔에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스윙을 할 때마다 땀이 흘러내려서, 타격 연습기 앞에 놓인 수건으로 땀을 닦아야 할 정도였다.
타격하고 있던 자리 앞에 설치된 그물에는 야구공이 가득했다.
경기가 끝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 사이에 거의 쉬지 않고 연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스윙하는 오석훈 옆에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용민 타격 코치가 있었다.
체계적인 타격 이론으로 국내에서 인정받는 코치였다.
나도 선수 시절에 타격 능력을 기르고 싶어 김용민 코치가 쓴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그가 출연했던 야구 프로그램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며 타격 연습을 하기도 했다.
깊은 친분은 아니었지만 내가 선수였던 시절 오가며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다가가서 대화를 나눠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오석훈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은 상황이라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두 사람이 훈련하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 서서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일찍 열리잖아. 다시.”
“공 때리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쭉 밀어줘야지.”
오석훈이 스윙을 하고 나면 김용민 타격 코치가 직접 손으로 몸과 배트의 움직임을 다시 교정해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고등학생 시절 전국 대회를 평정했던 오석훈의 타격 자세를 다시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이 끝났는지 오석훈이 헬멧을 벗어 인사했고, 타격 코치가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타격 코치가 완전히 떠나고 난 뒤 조심스럽게 오석훈에게 다가갔다.
“석훈아.”
“어. 선배님…… 아니, 형.”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훈련했나 보네?”
“해야죠. 오늘 안타 하나도 못 쳤는데.”
오석훈이 한숨을 푹 쉬며 타격 연습기에 또 공을 올렸다.
“평소에도 코치님하고 훈련하는 거야?”
“코치님이 1:1로 봐주시는 경우도 있는데요. 보통은 팀 훈련 마치고 혼자서 해요.”
오석훈이 대답하며 가벼운 스윙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탕!
티배팅 연습기 위에 놓여있던 공이 실내 연습장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오. 스윙 좋은데?”
빈말이 아니었다.
그냥 가볍게 휘두른 스윙이었지만 하체의 중심이동과 상체의 회전까지 동반된 이상적인 타격 자세였다.
아까 경기 후반에 보여줬던 불안정한 타격 자세와는 완전히 달랐다.
“괜찮아요?”
“응. 너 고등학생 때의 스윙 자세가 보이는데?”
“정말요? 하……. 근데 실전에서는 왜 이런 스윙이 안 나올까요?”
한숨을 쉬는 오석훈의 표정에서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오늘은 훈련 끝난 거지?”
“조금 더할 생각이긴 한데……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 뭐 중요한 건 아니고. 첫날인데 가볍게 얘기나 나눠볼까 해서. 연습 시간 더 필요하면 기다리고 있을게.”
“아니에요. 오늘은 이미 많이 하기도 해서요. 금방 정리만 하고 나갈게요.”
오석훈이 배트를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진 공을 줍자, 나도 옆에서 같이 도왔다.
“형, 쉬셔도 돼요. 제가 할게요.”
“같이 해야지. 공도 엄청 많던데.”
훈련하는 것보다 끝나고 공을 줍는 게 더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노란 바구니를 두 개나 가득 채우고 나서야 바닥에 있던 공이 모두 사라졌다.
“형이 도와준 덕분에 금방 끝났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빨리 씻고 올게요.”
“천천히 하고 와.”
오석훈이 떠나고 나자 연습장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됐다.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오석훈이 들고 다니던 커다란 운동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 안에는 경기에 필요한 여러 장비들이 들어있었다. 그중 종류별로 다양한 글러브가 유난히 내 시선을 끌었다.
3루수용 내야 글러브와 우익수용 외야 글러브.
거기에 1루수용 미트까지 종류별로 가지고 있었다.
글러브는 실전에서 사용하기 전에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동시에 여러 개를 번갈아 가며 쓰는 게 일반적이긴 했다.
오석훈의 경우에는 포지션에 따라 각각 다른 글러브에다가 여분까지 가지고 다니다 보니, 글러브만으로도 가방이 가득 찰 정도였다.
흠…….
내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 * *
나와 오석훈은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카페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요즘 컨디션은 어때?”
“그냥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결과가 그냥 그렇죠.”
가볍게 대화를 시작해보려는 의도였는데 오석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지금 제일 고민스러운 게 뭐야?”
“고민이요?”
오석훈이 잠시 멈칫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요. 1군으로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오석훈의 정보창에서 본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프로에 처음 입단할 때만 해도 차세대 에이스라 불리며 슈퍼스타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는데, 이제 에이스는커녕 2군에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게다가 동기들은 하나둘 1군에서 경기를 뛰며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사랑까지 받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크게 비교되는 상황이 기분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럼. 넌 충분히 슈퍼스타가 될 능력이 있어. 내가 무조건 그렇게 만들 거고.”
“슈퍼스타요? 제가요?”
“그럼 내가 여기 왜 있겠어. 그렇게 만들려고 온 거지.”
오석훈의 눈빛에는 의심스러움이 어려있었다.
“지금 네 가장 큰 문제가 뭔 거 같아?”
“그야 타격이죠. 타율이 2할도 간당간당한 상황이니까요.”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니요? 그럼 뭐가 문젠데요?”
“지금 네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건 수비야.”
“수비요?”
“그래. 너 당장 경기 뛰는 것부터 두렵잖아.”
“네…….”
“그 이유가 수비 때문인 거고. 아니야?”
“그렇긴 해요.”
오석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오늘도 네 실책으로 내준 점수 때문에 팀이 지기까지 했잖아. 그런 상황에서 경기장이 무섭다고 느끼지 않을 선수가 어딨겠어. 누구나 두렵지.”
말을 하다 보니 불과 얼마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오석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뚝. 뚝.
오석훈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휴지 몇 장을 가져와서 오석훈에게 건네주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오석훈이 감정을 추스르는 데는 잠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형.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오석훈이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 *
“으아-”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아차!’
큰 소리를 내고 보니 혹시나 옆 방에 들렸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에이전트로 일하겠다고 결심한 뒤, 급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고시원으로 오게 됐다.
신축이고 나름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기는 해도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아서, 빨리 집을 구해 나가고 싶었다.
그나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며칠 동안 집에서 쉬다가 오랜만에 바깥 활동을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편하게 누운 지금 자세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아! 맞다.”
눈을 감았는데 문득 오전에 김민환이 말했던 보고서 작성을 아직 못 했다는 게 생각났다.
경기 내내 기록은 해두었지만 노트북이 없어서 바로 작성하지 못했다.
“빨리하고 자야지.”
피곤한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켰다.
이때까지는 문서 작업을 할 일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익숙해져야 한다.
“워드가 어디 있나? 미리 연습이나 해둘 걸.”
문서 작업을 해본 적이 너무 오래되어 업무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다.
일단 메일부터 확인했다.
오랜만에 로그인을 했더니 안 읽은 메일이 1000개가 넘게 와 있었다.
맨 첫 페이지를 보니 가장 최근에 온 메일을 보낸 이가 김민환이었다.
제목도 인 걸 보니 내가 아는 김민환이 보낸 메일이 확실했다.
그나저나 아이디가 powerhitter 였다.
어렸을 때 야구를 했거나, 홈런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몸집만 보면 4번 타자를 맡겨도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어렸을 때 운동을 한 적이 있는지 꼭 물어봐야겠다.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하고 화면을 켰다.
매일 보고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작성해야 하는 내용이 많지는 않았다.
옮겨 적기 위해 아까 적어두었던 노트를 꺼냈다.
그런데,
“어, 뭐지……?”
노트를 보며 타이핑을 하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왜 빈칸에 클릭이 안 되는 걸까?
처음 해보는 문서 작업이라 지금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바로 알기 어려웠다.
마우스도 제대로 움직이고 클릭도 잘 되고…….
한참을 봐도 뭐가 문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화면을 오고 가며 문제를 찾다 보니.
“아…….”
PDF였다.
김민환 이 사람이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