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본격적인 업무 시작 (4)
평소와 다름없는 에이전시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이주혁이 건네준 자료를 넘겨보다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석훈이가 1위네요?”
올스타전 투표에서 오석훈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냥 1위도 아니고 정말 압도적인 차이예요.”
“다른 선수들은…….”
내가 시선을 내려 다른 선수들의 이름을 찾으려 하자 이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성주랑 수영이도 무난하게 뽑힐 것 같습니다. 소영준, 나준호 선수나 고지훈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결과였다.
“정환이는 어떻죠?”
사실 내 관심은 최정환이 뽑힐 수 있느냐였다.
최근에 좋은 투구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올스타전까지 참석할 수 있다면 확실하게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아무래도 고지훈 선수랑 겹치다 보니까 1등을 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고지훈과는 격차가 많이 벌어지는 2등이었다.
하지만,
“근데 고지훈 선수가 올스타전 경기 참가해도 괜찮을까요?”
“이번에는 참석 못 하게 해야죠. 아무리 이벤트 경기라고는 해도 치료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니까요.”
올스타전에 출전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고지훈에게는 몸을 회복해서 후반기에 좋은 경기력을 펼치는 게 더 우선이었다.
덕분에 최정환이 차순위로 올스타전에 뽑혀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럼 에이전시 차원에서 참석하는 선수들한테 어떤 걸 해주면 좋을까요?”
“지방에서 와야 하는 선수들도 있으니까 여기서 하루 쉬고 같이 이동하는 걸로 하죠. 기분 좋은 날인데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것도 먹고요.”
“네, 그럼 최종 투표 완료되는 대로 선수들한테 전달하겠습니다.”
이주혁이 대답을 하자마자 노트에 할 일을 적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내 머리를 스치고 갔던 새로운 이슈 하나를 던졌다.
“주혁 씨, 혹시 지난번에 미국에서 만났던 마이클 스콧 선수 기억나요?”
“그럼요, 물론이죠. 무슨 일 있으세요?”
“그 선수가 한국에 와서 던지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주혁은 잠시 생각을 되살리고는 답했다.
“음……. 패스트볼 구위도 위력적이었고 평균 구속이 150km/h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면 한국 무대에서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변화구 제구에 약점이 있긴 했는데. 그 부분은 어떨까요?”
“구종이 다양하지는 못했지만 슬라이더는 수준급이었으니까요. 아! 그때 대표님이 스플리터 던져 보라고 제안하셨잖아요. 만약에 스플리터만 중간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선수랑 계약을 해 보려고 하는데요.”
“오……! 좋은 생각인데요.”
“국내 구단에 추천을 해볼까 해요. 용병 투수 교체를 고민하는 구단이 몇 군데 눈에 띄거든요.”
정보창으로 확인한 펠리컨즈 이외에도 더 확실한 투수를 확보하고 싶은 구단이 없을 리 없었다.
“저도 같은 생각인데요.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네요.”
“어떤 부분이요?”
“마이클 스콧이 당장 한국에 오고 싶어 할까 싶어서요. 아직은 너무 어리기도 하고, 미국에서 더 도전하고 싶어 할 거 같아서요.”
“음…… 그렇기는 하죠.”
최정환과 동갑이니 올해 한국 나이로는 아직 23세에 불과했다.
아무리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볼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해도 아직은 남아서 도전하고 싶을 나이였다.
“한국에서 잘해서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나이가 너무 어려서요.”
“미국 쪽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오면 꾸준하게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선발 투수로 자리 잡은 게 아니라면 충분히 메리트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이미 선발 투수로 기회를 얻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으로 데려올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어필할 수는 있겠네요. 경제적인 부분이나 육성에 있어서는 한국이 더 좋은 환경이기도 하니까요.”
“직접 만나서 생각을 들어보죠. 그전에 요즘 상황이 어떤지부터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에이전시랑 계약했는지부터 확인해 주세요.”
이미 에이전시가 있다면 모든 게 의미 없었으니까.
* * *
박성주는 벌써부터 홈런 더비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홈런 더비만큼은 꼭 우승을 하겠다는 의지를 뜨겁게 불태우고 있었다.
영혼의 단짝인 오석훈에게 배팅볼 투수를 부탁해서 호흡을 맞춰가고 있었다.
나와 이주혁도 훈련장으로 내려와 이들의 연습을 지켜봤다.
펑.
오석훈이 던진 공이 네트에 걸린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이 정도면 괜찮아?”
“날아오면서 살짝 휘는 거 같은데?”
배트를 들고 공의 궤적을 보던 박성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계속 빗맞는 타구가 나온 탓에 박성주는 오석훈이 던지는 공을 유심히 확인하는 중이었다.
“나 분명히 포심 그립으로 잡았어.”
오석훈이 억울한 표정으로 공을 들어 올리며 그립을 보여줬다.
“다시 던져봐.”
박성주는 심호흡을 하면서 타격 준비를 했다.
오석훈이 다시 치기 좋은 각도로 공을 던져줬다.
공을 확인한 박성주의 배트가 힘껏 돌았다.
띡!
빗맞은 공은 쭉 뻗어가지 못하고 땅볼이 됐다.
“거의 커터처럼 날아오는 거 같은데?”
“나 커터 어떻게 던지는지 몰라.”
박성주의 원망에 가까운 한마디에 오석훈이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배, 방금 공은 커터 아니에요? 계속 빗맞는데?”
박성주가 배트를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약간 꺾이면서 들어오는 거 같기도 한데……?”
내가 봐도 분명히 날아오는 동안 변화가 느껴졌다.
“제가 뒤에서 한번 잡아 볼게요.”
결국 이주혁이 장비를 갖춰 입고 앉았다.
오석훈은 새로운 공을 하나 집어 들고 아까와 다름없이 공을 던졌다.
펑.
“그냥 패스트볼은 아닌데요? 마지막에 꺾여서 들어와요.”
미트를 뻗어 공을 잡은 이주혁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마스크를 벗었다.
“야! 봐봐. 너 포심 던지는 거 아니라니까.”
“나는 분명히 포심 던졌는데. 포심 그립이 이거 아니에요?”
결국 오석훈이 나를 향해 다가오며 자신의 그립을 보여줬다.
오석훈의 그립은 분명히 포심 패스트볼이 맞았다.
“정말 이렇게 잡고 던졌다고?”
“그럼요. 배팅볼이니까 치기 좋게 던진다는 생각으로 던진 건데.”
그럼에도 커터에 가까운 궤적으로 날아온다는 건 던지는 순간의 손목 감각과 손가락으로 찍어누르는 힘이 좋다는 의미였다.
역시 야구도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건가.
“석훈아, 너 투수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이게 커터예요?”
“이 그립으로 던져서 이런 궤적이 나온다는 건, 던질 때 감각이 좋다는 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이주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오석훈의 그립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지금이라도 다른 배팅볼 투수 알아봐야 하나? 무슨 배팅볼 투수 패스트볼이 이렇게 지저분해.”
박성주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오석훈을 쏘아봤다.
“내가 잘 던져볼게. 연습하면 잘 되겠지.”
“선배, 이걸 어떻게 해야 해요? 석훈이한테 포심 던질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어요?”
박성주가 나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석훈이가 던지는 궤적에 적응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며칠 안에 석훈이 투구 스타일을 바꾸는 게 더 어려울 거 같은데.”
프로에서도 통할 만한 좋은 공을 억지로 버리게 만드는 것도 왠지 모르게 아까웠다.
당장은 써먹을 데가 없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가서 다시 던져봐. 대신 계속 똑같이 던져야 한다.”
“알았어.”
다시 오석훈과 박성주는 투구와 타격 준비를 했다.
띡!
띡!
오석훈은 여전히 공략하기 어려운 공을 던졌다.
다행인 건 계속 일관된 투구를 하다 보니 조금씩 박성주가 적응해 간다는 점이었다.
딱!
딱!
점점 제대로 맞아가면서 시원시원한 타구가 만들어졌다.
연습장에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릴 정도였다.
딱!
딱!
둘의 호흡이 점점 맞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웅-
“갑자기 뭐야?”
당황스러운 헛스윙으로 박성주의 배트가 헛돌았다.
“너무 지루한 거 같아서 다르게 던져봤어.”
“야! 깜짝 놀랐잖아.”
박성주의 표정을 보고는 오석훈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시 제대로 던질게.”
“장난치지 마. 나 우승해야 한단 말이야.”
“알겠어.”
둘의 연습은 한참 더 이어졌다.
내가 중간에 말리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이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 * *
나는 한참 동안 차를 몰아 그곳에 도착했다.
내가 더 바빠지기 전에 꼭 찾아야 하는 곳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있게 해준 그날의 기억을 오랜만에 되살리고 싶기도 했고, 그분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지난번에도 여기 앉았던 것 같은데.”
나는 경기가 잘 보이는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확하게 이 자리에 앉았던 순간이 고작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작년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눈앞에 놓인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와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딱!
“달려! 달려!”
“세이프!”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훈련하는 후배들의 모습에서는 달라진 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후배들은 유니폼에 온통 흙먼지가 묻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마이 볼!”
동료 선수들에게 콜 하는 목소리도 경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우렁찼다.
투수는 한 구 한 구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던지는 것 같았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자신이 던진 공에 타자가 꼼짝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자, 투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짜릿함을 만끽했다.
반면 타자는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이 원망스러운지 애먼 배트를 바닥에 세차게 내리쳤다.
틱!
특별할 것 없는 파울 플라이볼에도 수비수들은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부상을 당할지도 모를 곳으로 몸을 날리는데도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아웃!”
“부상 조심해!”
심판의 콜과 함께 벤치에서는 한 코치가 큰 목소리에 걱정을 담아 외쳤다.
대학교 야구팀의 특별할 것 없는 연습경기였지만 선수들의 열정만큼은 한국시리즈와 다를 게 없었다.
내가 경기를 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데,
“현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성환 감독님이 나를 향해 빠르게 걸어오고 계셨다.
내게는 너무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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