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올스타 브레이크 (5)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애써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물었다.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은 데이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무리 우리 팀이 투수 교체가 급한 상황이라지만, 확실하게 검증된 투수가 아니라면 교체하기에는 부담이 있으니까.”
“아직 약점이 있는 선수이기는 해도 이 부분만 보완하면 무시무시한 투수가 될 겁니다. 패스트볼이랑 슬라이더 던지는 거 보셨잖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프로 경력이 없다는 건, 이 선수가 와도 당장 성적을 낸다는 보장을 하기 어렵다는 말 아닌가? 게다가 선발 투수로 검증도 안 됐고 말이야.”
“남은 시즌 동안 적응 기간을 가지면서 약점을 보강해가면 내년, 내후년에는 분명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김석원의 표정에서는 아직도 만족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맞는 말이지. 하지만 우리한테는 지금 당장 팀 성적을 올려줄 수 있는 투수가 필요해. 연봉을 많이 주더라도 프로 무대에서 충분히 검증된 선발 투수를 데려올 필요가 있다고.”
어차피 펠리컨즈는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당장 눈앞에 있는 성적에 집중할 필요가 있나?
“당장 성적을 올려줄 투수가 필요하시다고요? 펠리컨즈는 리빌딩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요?”
“리빌딩도 리빌딩인데. 팬들이 난리인 건 둘째 치고. 이제는 모기업에서도 슬슬 압박이 들어오니까. 별수 있나,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가야지.”
“모기업에서요?”
“그리고 리빌딩이라는 게 팀에 있는 어린 유망주 선수들을 육성하자는 건데, 우리가 외국인 선수까지 성장하기를 기다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외국인 선수라면 팀의 중심 역할을 해주면서 당장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선수여야지. 그래야 우리도 리빌딩한다는 명분이 서기도 할 테고.”
“…….”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선수 말고 다른 선수는 없어? 와서 잘할 수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연봉은 얼마든지 받아올 수 있는데.”
“당장 에이스급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선수를 원하신다는 거죠?”
“검증된 에이스라면 당장 계약할 수 있지. 어떻게든 돈은 최대치로 받아올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저도 추천해 드릴 만한 선수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김석원과의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더 이야기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빨리 마이클 스콧이 뛸 수 있을 다른 팀을 찾아야 했다.
* * *
펠리컨즈와의 협상 결렬과는 무관하게 마이클 스콧은 약속한 날에 맞춰서 한국에 도착했다.
스콧이 어느 구단 유니폼을 입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부터 영상으로 담아서 채널에 업로드를 할 생각이었다.
대신 팀이 정해지고 난 뒤에야 업로드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영상팀과 함께 스콧과 이주혁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는 큼지막한 팻말도 함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항 입국장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영상팀의 카메라도 바빠졌다.
잠시 후, 이주혁과 함께 걸어 나오는 마이클 스콧이 보였다.
나는 들고 있던 팻말을 들고 흔들어댔다.
요란스러운 움직임 덕분인지 눈이 마주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Kang!”
스콧과 이주혁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옆에서 촬영 중이란 것을 확인한 스콧이 카메라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준비해온 꽃목걸이를 스콧의 목에 걸어 줬다.
“정말 고마워. 정말 기쁜 날이야.”
스콧은 예상치 못한 환대에 기분이 좋은지 하얀 이를 보이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며 덩실덩실 몸을 흔들었다.
“스콧 그리고 주혁 씨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보스! 비즈니스 클래스 감사합니다.”
한국어 인사는 언제 배웠는지 감사하다는 한국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행기 오래 타서 피곤할 텐데 일단 에이전시 숙소로 갑시다.”
“어서 가자!”
스콧의 텐션은 오랜 비행에도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동안에도 처음 보는 한국의 풍경을 감상하며 감탄사를 쉬지 않고 내뱉었다.
카메라가 있어서 그런 건가, 미국에서 봤을 때보다 더 톤이 높아진 것 같았다.
힘든 기색 없이 스콧이 궁금해하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이주혁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어느덧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정말 멋지잖아!”
스콧은 숙소 앞에 서자마자 탄성을 내뱉었다.
“스콧, 어때 맘에 들어?”
“내가 앞으로 여기서 지내게 되는 거야?”
만약 먼 지방 팀과 계약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매일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있기는 할 텐데.
“그럼, 이곳에서 자주 생활하게 될 거야.”
숙소와 가까운 수도권 팀이 절반이나 되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와우, 뷰티풀 하우스.”
스콧은 마당을 지나가는 내내 엄지를 치켜세우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단 숙소로 들어가서 스콧이 쓰게 될 방을 안내했다.
스콧이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함께 지내게 될 오석훈과 박성주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오……. 외국인 선수랑 같이 지내 보는 건 처음이에요.”
오석훈이 내 옆으로 다가와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너도 지난번에 만났던 선수야.”
“제가요?”
눈이 커진 오석훈이 스콧을 바라보며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 기색이었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때 네가 홈런 때렸잖아.”
“정말 그 선수예요?”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석훈이 입을 벌리며 놀랐다.
뒤에서 갑자기 박성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때 그 선수라고요?”
2층에서 거의 뛰어 내려오며 말하고 있었다.
“성주는 기억하는구나?”
“그럼요. 그때 패스트볼이 장난 아니었다고요. 제 배트가 그렇게까지 밀린 느낌을 받은 게 정말 몇 번 안 되거든요.”
박성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 봐. 밝은 친구라서 재밌을 거야.”
“선배, 그럼 스콧은 어느 팀으로 가는 거예요? 외국인 투수 교체한다는 소문은 아직 못 들었는데. 발표만 안 난 건가?”
박성주의 질문에 나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지금 협상 진행 중이라. 확실하게 결정되면 알려줄게.”
“혹시 버팔로즈로 올 가능성도 있어요?”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버팔로즈는 아닐 거라는 거야.”
“그래요? 그럼 상대팀으로 만나게 되겠구나……. 나한테는 좀 살살해달라고 해야겠다.”
앞으로 스콧을 상대할 일이 아득한지 박성주가 머리를 짚으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드디어 스콧이 이주혁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스콧은 오석훈과 박성주를 보자마자 기억이 났는지 두 팔을 벌리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 두 사람은 Oh랑 Park일 것 같은데?”
“맞아. 이쪽이 오석훈, 여기는 박성주야.”
나는 오석훈과 박성주를 가리키며 소개해 줬다.
“그때 Oh는 스피드가 엄청 빨랐던 선수잖아, 나한테 홈런도 쳤고. 그리고 Park은 메이저리그 파워 히터라도 해도 될 만큼 센 선수고.”
스콧은 오석훈을 보고는 제자리에서 빠르게 달리더니, 박성주를 보고서는 크게 스윙하는 액션을 취했다.
“Your fastball is great…… 에이, 영어 어렵네, 주혁아 전달 좀 해줘. 내가 살면서 그런 패스트볼은 처음 봤다고.”
이주혁에게서 대화를 전달받은 스콧은 밝게 웃으며 박성주에게 미국식 인사를 건넸다.
“그럼 이제 새로운 식구도 도착했는데 환영식을 시작해 볼까?”
우리는 마당으로 나가 작은 파티를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리그 재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휴식 시간을 줄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야구 선수들답게 대화는 야구 이야기로 넘어갔다.
스콧은 한국 공인구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결국 글러브와 공을 가져와 캐치볼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야구 선수라서 이런 걸까, 이러니까 야구 선수가 된 걸까.
* * *
식사를 마치고 대화가 한참 이어지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방으로 들어왔다.
선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스콧과 계약할 팀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스콧을 어느 팀에 제안하는 게 가장 좋을까?
노트북을 펼쳐서 현재 팀 순위표를 켰다.
펠리컨즈 단장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 스콧 같은 선수는 최하위권 팀에서 원하는 선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외국인 투수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상위권 팀은 말할 것도 없었다.
포스트시즌 출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할 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는 내년을 위한 모험보다 남은 시즌 동안 1승이라도 더 거둬서 이번 포스트시즌에 출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그렇게 지워 가다 보니 이제 남은 팀은 중하위권 팀밖에 없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으면서도 전력이 아예 엉망인 건 아니라서, 남은 시즌 동안 준비를 잘하면 내년을 노려볼 수 있을 만한 팀.
내 눈에는 가장 먼저 한 팀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다른 단장들보다는 내 의견에 더 깊은 신뢰를 보내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연락처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어, 강 대표.
“단장님, 오늘 시간 괜찮으신가요?”
-혹시…… 좋은 소식인가?
“제가 단장님께 좋은 소식 안 전해 드린 적 있었나요?”
-그렇긴 한데 물먹은 적이 많아서 말이야.
내가 물을 먹인 적은 없었는데?
내 제안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건 본인이었으면서.
“이번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그래? 강 대표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기대해 봐야겠네.
“오늘 시간 괜찮으신 거죠? 바로 뵀으면 해서요.”
-강 대표가 좋은 소식 전해줄 거라는데,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지.
“제가 구단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기차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할 겁니다.”
-아니야, 지금 내가 다른 일 때문에 서울에 와있어서. 그냥 여기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말요? 그럼 지금 계신 곳 보내 주세요.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마치자마자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출발해도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만한 호텔이었다.
이제 좀 일이 잘 풀리려나.
나는 곧장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