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절박하게 내민 손길 (2)
마이클 스콧이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르기 바로 하루 전,
서성민은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6주네요. 임신 축하드려요.”
“정말요?”
서성민은 아내의 손을 붙잡으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성별은 아직 모르겠죠?”
“지금은 알 수가 없고요. 20주 정도는 돼야 알 수 있어요.”
“아하. 제가 이런 게 처음이라서요.”
서성민은 머쓱하게 웃으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간 채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서성민은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나섰다.
“그나저나 우리 애 이름은 뭘로 해야 하지?”
“벌써 이름부터 지어놓게?”
“우리 새 친구랑 만나는 날도 금방 올 거 아니야.”
“이제 6주밖에 안 됐는데.”
남편만 보며 걷던 아내가 툭 튀어나온 턱에 걸려 넘어질 뻔하자, 서성민이 황급히 팔을 뻗었다.
“어이구 조심해. 넘어지면 큰일 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아니긴, 무조건 조심해야지.”
서성민은 아픈 아내를 부축하듯 자세를 바꿨다.
“내가 앞으로 야구 열심히 해야겠다. 다시 1군으로 올라가서 잘해야 연봉 많이 받아서 우리 가족들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주지.”
서성민은 아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꼭 잡으며 말했다.
“지금도 정말 잘하고 있어. 충분히 멋져.”
“요즘 감이 나쁘지 않아서, 금방 좋은 소식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까 이제 훈련하러 가야 할 시간 아니야?”
“가야지. 근데 오늘은 개인 훈련이라 시간 괜찮아.”
“어서 훈련하러 가. 아무리 개인 훈련이라고 해도 훈련 시간에 늦으면 안 되지.”
“집까지만 데려다주고 갈게. 가다가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아내는 설렘이 가득해 보이는 서성민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 * *
서성민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블즈 2군 경기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경기가 없는 날이라 혼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주로 할 계획이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라커룸을 나가려는데,
한 후배가 급하게 서성민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성민 선배, 단장님께서 찾으시던데요. 지금 회의실로 오라고 하셨어요.”
“단장님이 나를 찾으셨다고?”
단장이 갑자기 선수를 따로 만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2군 경기장까지 직접 와있다는 건 더더욱 낯선 일이었다.
“네, 도착하는 대로 오라고 하셨어요.”
“무슨 일로 부르신 건지는 모르고?”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몇몇 선수들이랑 만나서 얘기 나눠 보시려는 거 같았어요.”
“그래?”
혹시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가 되는 건가?
갑자기 먼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하면 아내가 깜짝 놀랄 텐데.
혹시 트레이드되는 거라면 차라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빨리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서성민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똑. 똑. 똑.
서성민이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서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규상 더블즈 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단장님, 찾으셨습니까?”
“어, 성민아. 어서 들어와 앉아.”
김규상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서성민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서성민이 자리에 앉자 김규상이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어떻게, 훈련은 잘하고 있지?”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네…….”
“열심히 해야죠.”
오늘 대화의 주제는 이게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민아,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할게.”
“…….”
서성민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김규상은 깊은숨을 한 번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 시즌 끝나면 재계약이 어려울 것 같아.”
“네……?”
“너도 프로 생활 오래 해봐서 잘 알고 있겠지만, 내년에 신인 선수들하고 계약을 하려면 선수단 인원 정리를 해야 하잖아. 그러다 보니까 팀으로서도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어. 미안하게 됐다, 성민아.”
“아…….”
머리가 멍해져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리 계획 세우라고 지금 전달해 주는 거야. 이번 시즌 연봉은 문제없이 지급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동안 훈련장 사용하는데도 문제없도록 말해 둘 테니까 편하게 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너무 갑작스럽네요……. 예상을 전혀 못 하고 있었거든요.”
“혹시 다른 구단에서 너를 필요로 할 수도 있으니까, 보도자료 나가기 전에 다른 구단에 미리 전달은 해줄게.”
김규상의 마지막 배려가 고맙기는 한데…….
그런데 왜 방출까지 당해야 하는 거지?
“제가 수비에서도 더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고, 타격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팀에선 제가 아무런 역할을 못 할 거라고 보신 건가요?”
“물론 성민이 너 같은 선수가 팀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내야는 물론 외야 수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선수는 국내에서 서성민이 유일했다.
어느 포지션에 세워 놔도 중간 이상의 퍼포먼스는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프로 무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수비 훈련만큼은 정말 미친 듯이, 남들보다 수십 배는 노력했으니까.
그런 노력을 모를 리 없는 김규상이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근데……”
그는 서성민의 눈치를 보더니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제 너도 나이가 어리다고는 할 수 없잖냐.”
“…….”
서성민도 이제 어느덧 34살.
더 이상 유망주라고 불리기에는 민망한 나이였다.
“수비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현장 스태프들이 보기에는 타격에서 약점을 보완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하더라고.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서 너한테 길을 열어주자는 의견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보여드릴 기회를 주시는 건…… 어렵나요?”
“미안하다. 이미 최종 결정을 내린 상황이라서…… 더는 어려울 것 같아.”
“…….”
“성민아, 그래도 훈련 열심히 하고 있어. 네 역량이 필요한 팀이 있을 테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봐. 잘될 거야.”
“네……. 감사합니다.”
서성민은 김규상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터덜터덜 다시 라커룸으로 돌아가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겨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엄연히 구단 선수라 훈련장을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다른 선수들과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조용히 가방을 멘 서성민은 라커룸에 아무도 없을 때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 * *
아직 해가 저물기 전이라 포장마차에 사람들이 많을 시간은 아니었다.
서성민은 포장마차로 들어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친구가 서성민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성민은 친구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가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친구는 조용히 잔에 소주를 따랐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잔을 부딪치고 마셨다.
곧바로 서성민의 잔을 다시 채워 준 친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냐?”
“솔직히 전혀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어떻게 바로 적응이 되겠냐.”
“단장님이 부른다길래 트레이드 되려나 보다 했지. 설마 내가 당장 방출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거든.”
다시 생각해 봐도 충격적인 통보였다.
“올해는 1군 콜업된 적 없었지?”
“아직은 없었는데, 9월에 엔트리 확대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제까지 시즌 중에는 콜업이 안 되더라도 후반부에 수비 보강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항상 1군의 부름을 받아왔다.
“와이프한테 얘기는 했고?”
“아직.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 나도 와이프 얼굴 보고 얘기하려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를 않더라.”
친구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성민은 그런 친구를 향해 힘겹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애도 생겼다. 6주.”
“뭐? 정말이야?”
서성민은 눈을 크게 뜬 친구를 향해 씁쓸한 미소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진짜 좋은 소식이라 축하해 줘야 하는데…… 타이밍이 왜 이러냐.”
“그러게나 말이다.”
서성민은 친구와 술잔을 부딪쳤다.
“그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데?”
“글쎄……. 야구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해 본 게 없어서.”
서성민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잔을 비워냈다.
“나랑 같이 장사해 볼래? 우리 가게에서 몇 년 배우면 나가서 혼자 차리는 것도 가능할 텐데.”
“장사……?”
“장사도 괜찮아 인마. 잘하면 웬만한 선수 연봉보다 더 벌면서 살 수 있어.”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뭔가 하기는 해야 할 텐데.
“돈 때문이 아니라, 아직 야구에 미련이 남아서.”
“…….”
야구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친구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직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 평생 야구만 보면서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선수 생활이 끝난다는 게 억울하기도 해서.”
프로 지명을 받을 때만 해도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당연히 몇 년 후에는 스타플레이어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1군에서 안타는 물론이고 홈런을 쳐보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선수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 너, 현우한테 가 보는 건 어때?”
“현우? 혹시 재규어즈 강현우 말하는 거야?”
경기 중에 큰 부상을 당했던 선수라 서성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오고 가며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는 사이였다.
“현우가 이번에 에이전시 만들었잖아. 거기 한 번 가 봐.”
친구의 말에 서성민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야, 방금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가 무슨 에이전시야. 최소한 1군에 발이라도 걸치고 있어야 받아주지. 어떤 에이전시에서 나 같은 선수를 받아주겠냐?”
서성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소주를 한 잔 마셨다.
“아니야. 얼마 전에 인터뷰 보니까 너 같은 애들 도와주고 싶다고 하던데?”
“뭔 소리야. 거기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 봐라. 지훈이랑 정환이 있는 거 같던데. 둘 다 1군 선수들이잖아.”
그냥 1군 정도가 아니라 에이스 선수들이지.
“이따가 채널 구독해서 봐봐. 내가 이런 상황에서 너한테 거짓말하고 있겠냐?”
친구의 확신에 찬 말에 서성민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서성민은 친구와 술자리를 마친 뒤 터덜터덜 벤치로 가서 홀로 앉았다.
“후…….”
집에 가야 하는데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슨 채널이 있다고 했었지?”
문득 아까 들었던 말이 떠올라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강현우가 운영한다는 채널에 들어가서 영상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부상 방지를 위한 워밍업 방법부터 나에게 맞는 배트를 선택하는 법, 배트를 쥐는 방법 같은 기초적인 내용들이 담긴 영상부터, 프로 선수들이 실전을 앞두고 하는 훈련 방법까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었다.
-얼마 전에 인터뷰 보니까 너 같은 애들 도와줄 거라고 하던데?
강현우가 정말 나 같은 선수를 받아줄까?
나이 많은 방출 선수라고 쪽팔리는 일만 당하면 어쩌지?
에이 모르겠다.
내가 이런 고민할 때냐.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데.
고민할 시간에 일단 가서 만나 보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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