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절박하게 내민 손길 (4)
전반기까지만 해도 버팔로즈 팬들은 박성주가 타석에 서면 한 방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감에 설레 했었다.
하지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타점과 홈런이 실종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면서 기회를 끊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팬들은 제발 흐름만 끊지 말아 달라는 외침을 보내고 있었다.
한두 경기 잘 안 풀리는 일이야 시즌 중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기는 한데,
후반기 내내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박성주 스스로도 자신이 없는지, 배트가 돌아가는 스피드도 훨씬 느려졌다.
나는 박성주의 타격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했다.
후반기 첫 경기부터 바로 어제 경기까지의 타격 모습을 자세하게 살폈다.
똑. 똑. 똑.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이주혁이 들어와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
“대표님, 부르셨어요?”
“주혁 씨, 혹시 성주 타격 영상을 비교해 보려고 하는데, 한 화면에서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전반기에 홈런 쳤을 때 하고, 후반기 타격들을 비교해 보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주혁이 분주하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내가 원했던 영상이 완성됐다.
동시에 타격 자세를 비교해 보니 컨디션이 좋았을 때와 지금의 모습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주혁 씨가 보기에는 어때요?”
“전반기랑 비교해 보니까 어제 경기에서는 성주 만의 스윙이 완전히 망가진 게 확실히 느껴지네요.”
“후반기 첫 경기랑 비교해서는요?”
“음……. 글쎄요. 후반기 타격이랑 비교해 봤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주혁이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크지 않은 변화였다.
하지만 분명히 두 장면에는 차이가 있었다.
타격 자세가 아니라 스윙 궤적이 미세하게 달랐으니까.
박성주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의 타격 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곧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지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주혁 씨, 지금 태블릿에 영상 넣어서 바로 만나러 갑시다.”
나는 이주혁과 함께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박성주는 이른 아침인데도 훈련장에서 배팅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오석훈과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히 서로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벌써 훈련을 꽤 오래 했는지, 운동복은 흠뻑 젖다 못해 땀까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박성주가 타격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박성주는 내가 다가왔는지도 모른 채로 타격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틱!
틱!
틱!
배트에 맞아 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타격이 불규칙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주야, 잠깐 멈춰봐.”
“어, 오셨어요?”
박성주는 그제서야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극심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컨디션이 좋았을 때의 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
“요즘 타격이 어렵지?”
“하……. 미치겠어요.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컨디션 좋았는데.”
박성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뭐인 거 같아?”
“……글쎄요. 그냥 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거 같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영상 보면서 이야기해 볼까?”
내 말에 이주혁이 태블릿을 펼쳤다.
전반기 홈런 타석과 어제 경기의 비교 영상이었다.
박성주는 영상 속 자신의 타격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과연 스스로 눈치챌 수 있을까?
“음……. 혹시 스윙 궤적이 달라진 건가요?”
“맞아.”
박성주가 곧바로 알아채자 옆에 듣고 있던 이주혁이 놀라워했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좋던 궤적이 왜 달라졌을까?”
“혹시…….”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어퍼 스윙을 하려는 거 같은데.”
“아…….”
내 말을 듣자마자 박성주는 탄식을 내뱉었다.
올스타전과 홈런 더비를 준비하면서 했던 어퍼 스윙 훈련.
사실 프로 선수가 어퍼 스윙을 몇 번 했다고 해서 자신의 스윙 궤적을 잃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박성주가 홈런 더비를 준비하면서 연습을 해도 너무 많이 했다는 점이었다.
기존과 다른 자세로 수백수천 번 연습하다 보니 예전의 스윙을 잃을 만도 했다.
“그럼 뭐부터 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티배팅 훈련기를 가져왔다.
“일단 스윙부터 다시 잡아 보자. 레벨 스윙을 의식하면서 휘둘러봐.”
내가 티배팅 훈련기에 공을 하나 올려줄 때마다 박성주는 시원하게 배트를 돌렸다.
딱!
딱!
딱!
훈련을 하면 할수록 컨디션이 좋을 때의 스윙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성주의 표정에서도 조금씩 미소가 지어졌다.
다만 날씨가 무더워지다 보니 에이컨을 틀어놔도 흘러내리는 땀을 막기가 어려웠다.
이제 더 이상 하다가는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고생 많았어. 오늘은 이제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박성주의 어깨를 두드리며 올라가자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박성주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스윙 몇 개만 더 해 볼게요.”
“지금도 많이 했어. 날씨도 더운데 이따가 경기도 뛰려면 쉬어 줘야지.”
“몇 번만 더하고 푹 쉴게요. 지금 해야 감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성주는 완강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박성주는 이후에도 수십 번의 스윙을 더 했다.
스윙을 마치고 떨어져 있던 공까지 줍고 나서야 훈련은 마무리됐다.
어느새 내 이마는 물론이고 등에도 땀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 * *
-치열한 순위 싸움을 펼치고 있는 버팔로즈와 최하위 팀 펠리컨즈가 맞대결을 펼치겠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지금 두 팀이 처한 상황이나 선발 투수의 무게감을 보더라도 버팔로즈가 승리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버팔로즈는 지금 1승이 소중한 상황이죠?
-그렇습니다. 만약에 오늘 경기까지 패하게 된다면 4위 더블즈에게 역전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거든요. 오늘 경기만큼은 반드시 이겨야겠습니다.
“플레이 볼!”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버팔로즈 선발 투수는 예상했던 대로 호투를 펼치며 실점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신인 선수인 펠리컨즈 선발 투수도 만만치 않은 승부를 보여줬다.
띡!
후웅-
-버팔로즈 선수들이 펠리컨즈 투수를 전혀 공략을 못 하고 있네요. 컨디션이 좋은 오석훈 선수마저도 제대로 된 승부를 하지 못했어요.
-마음이 급한 것 같아요. 펠리컨즈 투수가 신인 선수다 보니 오늘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답답하게 막혀있는 분위기를 바꿔줄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이제 오석훈에 이어 이제 박성주의 타순이 되었다.
역시나 팬들의 표정에서는 큰 기대가 느껴지지 않았다.
박성주는 배트를 움켜쥐며 타석에 섰다.
버팔로즈의 상위 타순을 손쉽게 제압한 펠리컨즈 선발 투수의 표정에서는 이제 자신감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긴장을 해야 했을 박성주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펠리컨즈 선발 투수는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원하는 공이 날아온다고 판단한 박성주는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돌렸다.
딱!
이번만큼은 공이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이었다.
공은 펠리컨즈 유격수 소영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아웃!”
소영준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어렵지 않게 공을 잡아냈다.
-박성주 선수에게 운도 안 따라 주네요. 이런 타구가 왜 하필 수비 정면으로 향할까요.
-안 풀릴 때는 정말 뭘 해도 안 풀리네요.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경기가 막혀 있을수록 중심 타선에서 해결을 해줘야 할 텐데요. 지금 버팔로즈의 공격이 정말 꽁꽁 막혀 있어요. 버팔로즈에서는 오늘 경기를 반드시 잡고 싶을 텐데요.
0:0으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6회 펠리컨즈의 공격 이닝에서 선두 타자가 볼넷을 끌어내며 출루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펠리컨즈 유격수 소영준과의 승부가 이어졌다.
투수는 땅볼을 유도해 병살타를 만들 생각인지 스트라이크 존 낮은 곳을 연달아서 공략했다.
하지만 소영준의 배트는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어느덧 2 볼 0 스트라이크.
이번에 던진 공마저 볼이 된다면 쓰리볼로 몰리게 된다.
일단 스트라이크로 던져서 볼 카운트가 심하게 밀리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했다.
버팔로즈 투수는 1루에 있는 주자를 한 번 흘끗 살펴보고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거라고 확신한 소영준은 주저하지 않고 배트를 시원하게 돌렸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타격이 이루어졌다.
따악!
공과 배트가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를 듣자마자 결과를 직감했는지 소영준은 만세를 부르며 배트를 던졌다.
“와아아아-”
-어, 어어? 타구가 생각보다 쭉쭉 뻗어 가는데요? 설마 넘어가나요?
-이야! 담장을 넘어갑니다. 중요한 순간에 소영준의 투런 홈런이 나오네요.
-역시 이런 경기에서는 홈런이 나와 줘야 해요. 펠리컨즈의 해결사는 소영준 선수였네요. 다시 봐도 기가 막힌 스윙이었습니다!
소영준의 2점 홈런으로 펠리컨즈가 앞서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7회 버팔로즈의 공격.
버팔로즈 1, 2번 타자들이 안타를 치고 나가며 기회를 만들었다.
-주자는 이제 1, 3루. 타석에는 3번 타자 오석훈 선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1루 주자가 스피드가 좋은 만큼 여기서 한 방이면 동점에 역전까지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오석훈 선수의 최근 컨디션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득점권에서 집중력이 좋은 선수기도 하거든요. 펠리컨즈에서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막아낼까요?
오석훈은 배트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서 타석에 들어섰다.
펠리컨즈 더그아웃과 포수 그리고 투수에게서 분주함이 느껴졌다.
사인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대기 타석에 서서 준비를 하려던 박성주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펠리컨즈 감독이 그라운드를 향해 손가락을 네 개 펼쳤다.
오석훈을 고의사구로 내보내고 박성주와 승부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이건 뭐지? 고의사구를 내주고 나랑 승부하겠다고?’
박성주의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순간이었다.
신인 시절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박성주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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