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절박하게 내민 손길 (5)
펠리컨즈 벤치의 고의사구 신호를 확인한 심판은 오석훈에게 1루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오석훈은 타석에 서자마자 장비를 내려놓고 1루로 달려갔다.
“우우우우-”
버팔로즈 팬들은 펠리컨즈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여기서 펠리컨즈가 자동 고의사구를 선택하네요!
-오석훈 선수와 승부하지 않고 박성주 선수를 선택하겠다는 거예요. 펠리컨즈에서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집니다.
-평소라면 3번 타자를 피해서 4번 타자를 선택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지금처럼 컨디션이 바닥인 박성주 선수라면 상황이 많이 다르죠. 충분히 선택해 볼 만한 전략입니다.
-이제 주자는 만루 상황입니다. 경기 후반 중요한 상황에서 과연 박성주 선수가 해결사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이제 버팔로즈의 주자들이 모든 베이스를 채우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펠리컨즈 팬들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펠리컨즈 선수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박성주는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내 앞에서 고의사구를 했다고?’
타석으로 다가가는 박성주는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처럼 결의에 차 있었다.
상대 팀의 전략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직전 타석에선 코스가 좋지 않아서 아웃 됐을 뿐이지 스윙은 나쁘지 않았어. 자신 있게 하자.’
1 아웃에 주자는 만루.
펠리컨즈의 내야수들은 병살타를 잡아내기 위한 포메이션으로 수비를 하고 있었다.
박성주는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하나쯤은 기다려 보자.’
투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투구를 했다.
펑!
박성주는 지나가는 공을 보며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
투수가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을 통과했다.
‘패스트볼을 한가운데로 던진다고?’
변화구가 아니라 패스트볼이었기 때문에 실투일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박성주와의 승부가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선수가.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풀 스윙으로 응수하고 싶었지만 힘겹게 마음을 다잡으며 다음 공을 기다렸다.
‘설마 또 한가운데로 패스트볼을 던지지는 않겠지?’
만약 패스트볼이 날아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배트를 휘두를 생각이었다.
투수가 투구 자세를 취하자 박성주는 배트를 움켜쥐었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자신이 기다렸던 공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공은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더니 역방향으로 회전이 걸리며 속도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구종만 체인지업으로 바뀌었을 뿐,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박성주 선수가 노 볼 투 스트라이크까지 몰렸습니다.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를 통과하는 공에도 전혀 배트가 나오지 못하네요.
-어느새 타자에게 매우 불리한 카운트에 몰리게 됐는데요.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이기도 합니다. 과연 박성주 선수가 헛스윙을 하지 않고 참아낼 수 있을까요?
“삼구 삼진! 삼구 삼진!”
펠리컨즈 팬들은 무난하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차서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박성주는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관계 없이 손에 쥔 배트를 보며 집중했다.
‘변화구가 날아올 가능성이 높다.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고 지켜보자.’
투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공을 힘껏 던졌다.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오다가 날카롭게 휘어 나갔다.
박성주는 움찔하며 배트를 살짝 움직이기는 했지만 스윙을 참아내는 데 성공했다.
“볼!”
-방금은 정말 타자를 유인하기에 좋은 슬라이더였는데요. 박성주 선수가 이걸 참아내네요.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좋은 변화구가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스윙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배트를 잘 멈춰 세웠습니다.
이제 1 볼 2 스트라이크.
아직까지도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였다.
카운트만 보면 유인구를 하나쯤 더 던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주자 만루 상황이었다.
마운드에 선 투수가 경험이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그리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포수가 투수를 향해 신중하게 사인을 전달했다.
다시 승부가 이어졌다.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면 자신 있게 스윙하자.’
박성주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배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공을 확인하고는 배트를 과감하게 휘둘렀다.
일단 정확하게 공을 맞히는 데는 성공했다.
따악!
‘이거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 보는 손맛이었다.
멀리 뻗어갈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박성주는 일단 1루를 향해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오오! 제대로 맞았습니다. 엄청난 타구 스피드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설마 넘어가나요?
공은 경기장에서 가장 먼 중앙 펜스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펠리컨즈 중견수는 타구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몸을 돌려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비수의 예상과는 다르게 공은 쭉쭉 뻗어졌다.
결국 공은 펜스를 아슬아슬하게 살짝 넘어갔다.
“홈런!”
타구를 확인한 심판이 콜을 외쳤다.
“와아아아아-”
-넘어갔습니다! 넘어갔어요! 박성주 선수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라인드라이브 홈런입니다. 경기장 가장 먼 곳으로 날아갔어요! 그것도 만루홈런이에요!
-경기 내내 끌려다니던 버팔로즈가 박성주 선수의 홈런 한 방으로 리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게 바로 홈런 타자의 무서움이죠. 아무리 부진하더라도 언제 한 방이 터질지 몰라요. 솔직히 중계하던 저희도 못 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야구가 재밌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성주! 박성주! 박성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버팔로즈 팬들은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질렀다.
1루를 지나 2루로 달리던 박성주는 홈런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속도를 늦췄다.
‘드디어 됐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쳐다봤다.
며칠 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을 조금은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박성주가 2루와 3루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향하자 만세를 부르고 있는 동료 선수들이 보였다.
홈 베이스에 도착한 박성주가 두 발로 껑충 뛰어서 베이스를 밟자 세 명의 선수들이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박성주의 머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이스 홈러어어언!”
“아파, 아파. 너무 세잖아.”
동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박성주의 입가에는 안도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지막에 서 있던 오석훈이 박성주에게 몸통 박치기를 하듯 부딪쳤다.
“우리 팀 4번 타자 살아있네!”
“여기서도 못 쳤으면 나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고생 많았어. 방금 타구는 진짜 장난 아니었어.”
박성주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팬들의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홈런 타자 박성주! 날려버려 박성주!”
이제야 박성주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버팔로즈 팬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들어 올렸다.
반면, 펠리컨즈 선수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싹 사라졌다.
버팔로즈가 4:2로 앞서기는 했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버팔로즈 투수들이 힘겹게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펠리컨즈의 공격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매서워졌다.
그 중심에는 소영준이 있었다.
소영준은 곧바로 이어진 타석에서 홈런에 가까운 장타를 때려냈다.
펜스 앞에서 겨우 잡힐 정도로 버팔로즈에게는 위협적인 타구였다.
-펠리컨즈가 정말 마지막까지 버팔로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네요.
-야구에서 2점 차는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는 점수 차이죠. 투수들이 조금 더 편한 상황에서 던질 수 있게 해 주려면 버팔로즈 타자들이 추가 득점을 만들어 줘야 할 텐데요.
다시 돌아온 버팔로즈의 공격 이닝.
타석에는 오석훈이 서 있었다.
이제는 당연히 박성주를 앞에 두고 고의사구를 할 수는 없었다.
투수가 집중해서 승부를 해 보려고 하지만,
딱!
결국 오석훈은 경쾌한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주자는 1, 3루.
또 한 번의 득점 찬스에서 박성주가 다시 타석에 섰다.
-지난 타석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친 박성주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아마 경기 초반의 박성주와 지금의 박성주가 주는 위압감은 차원이 다를 거예요.
-그냥 서 있기만 하는데도 뭔가 하나 쳐줄 것만 같아요. 홈런 한 방이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 놓는군요.
딱!
박성주는 이번에도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타구가 외야로 쭉쭉 뻗어 나갑니다! 장타 코스예요! 3루 주자에 1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옵니다! 주자 올 세이프!
-박성주 선수가 결국 오늘 승부에 쐐기를 박는군요!
-고의사구가 오히려 계기가 된 걸까요? 한 방에 각성한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박성주 선수는 4번 타자잖아요. 자존심을 건드려도 너무 심하게 건드렸어요.
박성주의 맹활약에 힘입어 버팔로즈는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연패를 끊고 더블즈와의 승차를 다시 벌리며 리그 3위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당연히 오늘 경기의 MVP는 결승 홈런을 포함해 6타점을 쓸어 담은 박성주였다.
* * *
숙소에 도착한 박성주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호탕한 웃음도 함께였다.
“으하하하하. 대표님, 제가 홈런 친 거 봤어요?”
“그럼 당연히 봤지. 열 번은 돌려봤어.”
“이야, 오랜만에 손맛을 느껴 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박성주는 스윙하는 자세를 하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며칠 동안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어.”
“이게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문득 표정이 진지해진 박성주가 내 손을 잡더니 허리를 숙였다.
“갑자기 부담스럽게 왜 이래.”
“저한테는 선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또 한 번 크게 느꼈네요.”
나는 박성주와의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에이전시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어.”
“누구요?”
내가 옆에 서 있던 서성민을 손으로 가리키자 오석훈과 박성주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더블즈 서성민 선배 알지?”
“오, 안녕하세요.”
오석훈과 박성주는 서성민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워요.”
서성민이 머쓱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성민 선배님도 우리 에이전시로 영입되신 거예요?”
박성주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응, 앞으로 같이 훈련하게 될 거야.”
“오호.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성주가 다시 한번 서성민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더 잘 부탁할게.”
“그럼 여기서 숙식도 하시는 거예요?”
오석훈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서성민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몸이라서…… 집에서 오가면서 해야 할 것 같아.”
“아쉽네요. 같이 지냈으면 재밌었을 텐데.”
오석훈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경기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서 씻고 쉬어.”
“알겠습니다.”
오석훈과 박성주는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선배, 우리는 내려가시죠.”
나는 서성민과 함께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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