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치열한 순위 싸움 (2)
버팔로즈와 더블즈의 3연전 경기의 두 번째 날.
평소 아침과는 다르게 숙소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고지훈의 반대편에 오석훈과 박성주가 앉아 조용히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면 각자 소속 팀의 준플레이오프 직행을 위한 중요한 경기를 치러야 했다.
긴장을 한 탓인지 세 선수는 조용히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중간에 있던 나는 이 어색하고 무거워진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풀고 싶었다.
예전 같았다면 선발 등판을 앞둔 고지훈에게 단 한 마디를 거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이제 그렇지는 않았다.
“선배, 오늘 컨디션 괜찮으세요?”
“오늘을 위해서 내가 몇 달을 준비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아야지. 오늘 무조건 이길 거야.”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고개를 돌려 오석훈과 박성주를 바라보니, 상대 팀 선수인 고지훈의 투지 넘치는 한마디 때문인지 둘도 조용했다.
“석훈이랑 성주는 어때?”
그나마 박성주에게서는 대답할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무조건 이겨야죠. 시즌 내내 잘해 왔는데 마지막에 와서 4위로 내려앉을 수는 없잖아요. 와일드카드전까지 치르고 올라가려면 더 힘들 텐데.”
음……. 이것도 아닌데.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고지훈이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너희 팀 전략이 어떻게 되냐?”
“네?”
박성주가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다.
오석훈은 사레에 들린 듯 여러 번 기침을 뱉었다.
“중요한 경기니까 팀에서 미리 회의도 하고 준비했을 거 아냐?”
“당연히 그렇게 하기는 했는데, 그걸 말해 달라고 하시면…….”
“우리 사이에 하나쯤은 말해 줘도 되지 않아?”
말만 들으면 분명히 농담인데, 고지훈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럼 선배는 어떤 전략으로 나오실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그럼.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박성주의 물음에 고지훈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먼저 말해 주세요.”
“일단 뭐 가장 중요한 거 하나만 말하면…….”
고지훈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오석훈과 박성주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오늘 너희들을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거야.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에이, 그게 뭐예요.”
혹시라도 진짜 핵심 전략을 말해주지는 않을까 기대했는지 실망이 커 보였다.
“그게 정말 중요한 전략 아니야? 중요한 경기니까 중심 타자들을 피해 갈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건데, 그렇지 않고 정면 승부하겠다는 거잖아.”
“그럼 저도 오늘 경기에서 적극적으로 풀 스윙할 거예요. 선배가 스트라이크 던지면요.”
“진짜 그렇게 한다는 거지? 꼭 풀 스윙해야 한다.”
“그럼요.”
박성주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가 오늘 컨디션만 괜찮으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텐데.”
박성주가 곧바로 반박하려다가 멈칫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네.”
“농담이야.”
고지훈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숟가락으로 국을 떠먹었다.
“근데 무슨 농담을 그런 표정으로 하세요.”
박성주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오늘 경기도 중요하지만, 포스트시즌이 더 중요하니까요. 세 분 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걱정 마세요.”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의 식사는 편안한 듯 무겁게 이어졌다.
선수들의 승부욕이란…….
세 선수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성민이 훈련을 하기 위해 도착했다.
오늘 경기에 관계 없이 서성민과 계획했던 훈련을 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늘 같은 경기를 뉴스로만 보는 건 너무 아깝잖아.
서성민 선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물어보기나 해 보자.
“선배, 오늘은 그냥 편하게 경기 보고 할까요?”
“음…….”
서성민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이유로 미루면 끝이 없지.
“훈련 열심히 하죠.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이 있는 거니까요.”
애써 단념하려고 했는데,
“아니. 저도 웬만하면 그냥 훈련에 집중해 보려고 했는데, 그냥 보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결과가 궁금해서 훈련이 제대로 안 될 것 같아요.”
“그렇죠? 빨리 올라가서 우리도 경기 봐요.”
결국 나와 서성민은 훈련을 그대로 마무리하고 함께 TV 앞으로 향했다.
* * *
-시즌이 마지막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두 팀의 대결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두 팀의 승률은 이제 딱 1경기 차. 만약 오늘도 더블즈가 승리를 한다면 승률이 정확하게 같아집니다.
-짜릿짜릿하죠. 어젯밤부터 기대하고 계셨을 팬분들이 많으셨을 텐데요. 두 팀의 맞대결이 이번 시리즈로 마무리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오늘 경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고지훈 선수의 복귀전이 예정되어 있는데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등판하게 됐습니다.
-시즌 경기 중에 부상이 다시 심해지면서 3개월 가까이 등판을 하지 못했거든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서 돌아왔어요. 게다가 2군에서 충분하게 경기를 소화하고 등판했다면 좋았겠지만, 더블즈의 팀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습니다.
-평일 경기인데도 관중석은 빈 곳 없이 가득 찼습니다. 이번 시즌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한판 승부.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순위 역전만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버팔로즈와 극적인 순위 반전을 꿈꾸는 더블즈.
두 팀의 더그아웃에서는 비장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오석훈과 박성주가 캐치볼을 하며 워밍업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지훈이 불펜 피칭을 하며 등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더블즈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선취점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오늘 같은 경기에서는 특히나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블즈는 고지훈 선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타자들이 도와줄 필요가 있어요.
“더블즈 안타! 안타!”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더블즈의 1회 공격은 투수에게 밀리며 힘을 쓰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수가 교대되며 버팔로즈의 공격 이닝이었다.
고지훈이 마운드를 향해 걸어 나오자, 더블즈 팬들은 열광적인 환호성을 보냈다.
“고지훈! 고지훈! 고지훈!”
-이제 1회 말 버팔로즈의 공격이 이어질 차례입니다. 고지훈 선수의 피칭을 보게 될 텐데요. 고지훈 선수가 이번 시즌에만 두 번이나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제외가 됐는데요. 특히 지난 부상은 회복 기간이 아주 길었죠?
-그렇습니다. 이번 시즌은 FA를 앞둔 시즌이라 선수 스스로도 의욕이 넘쳤을 것 같은데요. 부상이 길었다는 점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오늘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르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고지훈 선수의 최고 강점을 하나 꼽으라면 멘탈이 강하다는 점이에요. 몸에 문제만 없다면 충분히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운드에 선 고지훈은 버팔로즈 1번 타자를 상대로 첫 번째 투구를 준비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당연히 볼이라고 생각했던 타자는 심판의 콜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첫 번째 공부터 정말 기가 막힌 공인데요?
-스트라이크 존 보더라인에 정확하게 공을 던졌어요. 저런 공에는 스윙하지 않는 게 현명합니다.
고지훈은 첫 번째 공과는 살짝 다르게 투심 그립을 잡았다.
그리고 조금도 표정의 변화 없이 다음 공을 던졌다.
아까와 비슷한 공이라고 판단한 타자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공이 마지막에 살짝 가라앉으면서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틱!
빗맞은 타구는 유격수가 어렵지 않게 잡아서 아웃시킬 수 있었다.
“아웃!”
두 번째 타자와의 승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틱!
2루수가 편하게 잡아 1루로 던져 투 아웃을 만들었다.
두 타자 연속 땅볼 유도에 성공했다.
이제 3번 타자 오석훈이 타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지훈 선수가 두 타자를 모두 편안하게 땅볼로 유도했습니다. 공 다섯 개만으로요.
-앞선 두 선수도 물론 쉬운 타자는 아니었습니다만, 지금 타석에 선 타자는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죠.
-리그에서 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석훈 선수인데요. 이번 시즌 상대 전적을 보면 오석훈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과연 오늘 경기에서도 좋은 상대 전적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고지훈은 포수가 보낸 사인에 몇 번 고개를 흔들더니, 마지막 사인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첫 번째 공을 그냥 지켜본 오석훈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타석에서 지켜보던 박성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방금 던진 공을 다시 보고 싶은데요?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던졌습니다. 그것도 리그 타율 1위 선수를 상대로요.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투수가 몇 명이나 있을까요? 정말 대단한 배짱입니다.
고지훈은 타석에서 웃고 있는 오석훈을 바라보며 무언의 한마디를 던지는 듯했다.
‘내가 너희들 상대로는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 던진다고 했지?’
그의 생각이 들리기라도 한 듯이 오석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트를 움켜쥐었다.
-과연 두 번째 공은 어떻게 승부를 할까요?
-첫 번째 공으로 허를 찌르는 데는 성공했으니까요. 유인구 하나쯤 던지지 않을까요?
경기장의 모든 시선은 두 선수의 승부에 쏠렸다.
고지훈이 힘껏 공을 던지는데,
이번에는 오석훈이 배트를 휘둘렀다.
틱!
빗맞은 타구는 파울 존으로 날아갔다.
-이번에 휘두르지 않았어도 스트라이크가 됐을 공이었어요. 정말 좋은 공을 던졌습니다.
이어지는 공에도 오석훈은 힘껏 배트를 돌렸다.
틱!
고지훈의 꿈틀거리는 공에는 오석훈도 제대로 맞추기 어려웠다.
-오늘 고지훈 선수 컨디션이 정말 좋은데요? 지금까지 던진 공은 모두 스트라이크였어요. 게다가 첫 번째 공을 제외하고는 한가운데로 몰리는 공도 없네요.
오석훈은 힘껏 배트를 돌려봤지만,
이번 공은 마지막에 솟아 올라가며 도저히 배트로 맞출 수가 없었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고지훈 선수가 오석훈 선수의 헛스윙을 유도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고지훈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비장의 커브를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오늘 저 공이 저 정도로 제구가 된다면, 버팔로즈 타자들이 오늘 경기에서 안타 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석훈은 억울한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석에 잠시 서 있었다.
마운드를 내려가던 고지훈은 그런 오석훈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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