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첫 번째 미션 (2)
“오늘 약속된 게 아니었나요?”
“약속……? 오늘은 YJ 에이전시랑 만나기로 했는데…….”
벽에 붙은 달력으로 시선을 돌린 이진원 감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YJ 에이전시에서 온 게 바로 접니다.”
“어……. 그래?”
이진원 감독은 에이전시에서 온다는 사람이 나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좀 뜻밖이긴 한데, 들어와.”
“예.”
나는 이진원 감독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들고 온 음료 상자를 건넸다.
“뭐 이런 걸 사 왔어. 고마워.”
이진원 감독이 나를 향해 앉을 자리를 가리키며 자신도 건너편에 앉았다.
당연히 악수부터 건넬 거라고 예상했는데, 인사만 나누고는 바로 자리에 앉아 버렸다.
이제까지 알아낸 바로는 상대와 악수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몸이 닿을 때만 정보창이 보였다.
그와 아무런 접촉을 하지 못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역시나 아무 창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한 정보를 얻고 난 뒤에 대화를 풀어가 보려고 했던 계획에 처음부터 차질이 생겼다.
“은퇴했다더니 에이전시로 들어간 거야?”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랬구먼. 당연히 김 팀장이 올 줄 알았는데 네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하하하.”
의외로 친분이 있던 사이처럼 편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도 손님인데 뭐라도 대접해야지.”
두리번거리던 이진원 감독이 내가 가져온 상자를 열고 음료 두 개를 꺼냈다.
“평소에는 뭘 안 마셔서 말이야.”
“감사합니다.”
나는 음료를 건네받으며 티 나지 않게 이진원 감독과 스치듯 손을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이 정도 접촉만으로도 정보창이 떴다.
-최근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x!$가 경질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도 특수문자로 가려진 내용이 있었다.
추측컨대 특수문자는 나와 친분이 깊지 않은 상황이거나, 숨기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만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경기에 패배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글을 보니 순위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게다가 누군가가 경질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니,
감독 중 누군가가 경질이 되면 자신이 그 자리에 가고 싶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다.
다른 팀의 2군 감독으로 가는 건 큰 의미가 없을 테니 아마도 1군 팀 중에 어딘가를 노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성적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구나!’
아무래도 감독 자리에 가려면 당장의 성적을 보고 데려가려 할 테니, 이진원 감독으로서는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래. 편하게 마셔.”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말라버린 목을 조금이나마 축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나한테? 뭔데 얘기해봐.”
서로 근황을 물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름이 아니라 오석훈 선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해서요.”
“오석훈? 아! 네가 에이전트로 왔다는 걸 잠깐 깜빡했네.”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어진 이진원 감독이 들고 있던 음료수 캔을 내려놓았다.
“그럼 나도 소속 선수 에이전트한테 답을 해줘야겠지?”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이진원 감독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높아졌다.
“질문을 받았으니 내가 반대로 하나 물어보지. 우리 팀에서 오석훈이 꼭 출전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가장 자신있는 질문이라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타격 능력만큼은 지금 당장 1군에서도 통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석훈이?”
다시 음료수 캔을 집어 든 이진원이 한 모금 마시며 슬쩍 비웃었다.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검증된 선수이지 않습니까. 타자로서 필요한 건 모두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 당시 경기도 보셨겠지만 타격 천재 소리를 듣던 선수입니다.”
“그건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 프로 무대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지.”
이진원 감독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람되지만, 프로 무대에서도 분명히 통할 만한 능력을 갖춘 선수입니다.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증명? 네가 무슨 자격으로?”
“네?”
“선수 경력도 제대로 없고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도 없잖아? 그런데 갑자기 에이전트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고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나?”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 반박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진원 감독이 그런 나를 보며 비웃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 에이전트로 이제 막 일을 시작했으니 소속 선수 편에 서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을 시간은 없어.”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가방 속에서 김민환이 어젯밤 보내준 자료를 꺼냈다.
“이건 뭐야?”
“왜 오석훈 선수가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인지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자료를 가지런히 모아 건네자 이진원 감독이 귀찮다는 듯 억지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앞부분에 있는 몇 장을 겨우 넘겨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툭 던졌다.
“이런 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야구는 숫자로 하는 게 아니야. 이런 숫자들 뒤에 숨어있는 부분이 진짜니까.”
“하지만 구체적인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데이터는 과거일 뿐이잖아. 과거에 잘했다고 미래에도 잘할 거라는 보장이 있나?”
“하지만 오석훈 선수에게는 가능성을 증명할 제대로 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기회?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인데. 그 정도 출전 기회를 준 게 부족하다면 도대체 얼마나 더 줘야 한다는 말이야?”
이진원 감독이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반박했다.
“단순히 출전 횟수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중에서 오석훈 선수가 주요 포지션에서 출전한 적은 몇 번 없었습니다.”
“이봐. 야구는 팀 스포츠야. 팀이 한 선수를 위해 움직일 수는 없어, 선수가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대화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흐름을 다시 내 쪽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확실한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나는 이진원 감독이 테이블에 던졌던 자료를 집어 필요한 부분을 펼쳐보였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석훈 선수는 다른 포지션보다 우익수로 출전했을 때 타격 성적이 월등하게 좋았습니다. 수비도 마찬가지고요. 정확한 송구로 아웃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고정 우익수로 뛰기만 한다면 충분히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이진원 감독이 자료를 채가듯 가져갔다.
자료에서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다음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찌이익. 찌이익.
이진원 감독이 가져갔던 자료를 그 자리에서 찢고 있었다.
“감독님?”
“감독님 같은 소리 하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예? 저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자료 좋아하시네. 지금 날 가르치겠다는 거야!”
실내가 울릴 정도의 큰 호통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에이전시에서 나왔다고 해서 최대한 존중해주려고 했는데, 이건 아니지. 그럴 거면 그냥 네가 감독하지 그래.”
“……!”
“나 우승 감독이야. 왜, 2군 감독이라고 하니까 실력도 2군인 거 같아 보여서 무시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게 아니라…….”
“됐고. 에이전트면 에이전트답게 선수 뒤치다꺼리나 해. 경기에 직접 관여하고 싶으면 네가 직접 감독하든가.”
이진원 감독의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마음속 깊은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 * *
“하…….”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감독실을 나왔다.
이진원 감독의 성격이 아무리 제멋대로여도 준비한 대로만 이야기하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릴 줄이야.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자료조사에서부터 선수의 가능성. 그리고 선수에게 가장 적합한 포지션까지 꼼꼼하게 준비했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건 이진원 감독의 자존심과 욕망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가 통계 자료를 내미는 순간, 그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깡그리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또 하나.
1군팀 감독 자리를 탐내고 있는 그로서는 당장의 성적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2군에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오석훈이 그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오늘 미팅이 예상보다 훨씬 꼬여버려 대안 마련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이진원 감독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뒤끝이 오래 갈 것 같았다.
‘정말 트레이드라도 요청해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현우 형!”
누군가가 반갑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다른 선수 몇몇과 걸어오는 오석훈이 보였다.
“어 석훈아.”
“일찍 오셨네요?”
“응. 다른 일이 좀 있어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그 옆에 있던 다른 선수 한 명이 나에게 인사했다.
“어 그래. 고생이 많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와 악수했다.
그 선수의 머리 위로 정보창이 떠올랐다.
-홈런타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어퍼스윙이 아닌 레벨스윙으로 정확도를 높이면 더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다.
정보창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박성주의 정보창을 보고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자 오석훈과 박성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봤다.
“형, 괜찮아요?”
오석훈이 내 어깨를 살짝 만지는 순간 멍하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아!
그래 이거다.
박성주의 정보창을 보자 해결책이 떠올랐다.
“너희들 지금 훈련할 거지?”
“네. 그래야죠.”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오석훈과 박성주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그들과 함께 훈련 연습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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