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포스트 시즌 라이브 (1)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선수들은 각자 팀에 합류해서 경기 준비를 하느라 한창이었다.
반면,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소영준과 장수영, 마이클 스콧은 오랜만에 에이전시 숙소로 모였다.
물론 서성민에게도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참석하기를 부담스러워했는데, 내가 꼭 와달라고 간곡하게 말하니 결국 와주었다.
어차피 몇 달 뒤면 소속팀을 찾게 해 줄 자신도 있었고, 우리 에이전시 식구이기도 했으니까.
한 시즌을 치르느라 고생했을 선수들을 위한 자리였다.
그런 의미를 담아 시즌 중에는 편히 먹기 어려웠을 치킨을 주문했다.
프라이드부터 양념, 파닭에 요즘 유행하는 치킨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주문했다.
사람은 다섯 명이었지만 치킨은 총 열 마리를 시켰다.
물론 시원한 맥주도 함께였다.
‘……설마 부족하지는 않겠지?’
너무나 익숙해서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메뉴였지만, 한 사람에게만큼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냄새부터가 인크레더블한데?”
마이클 스콧이 신기한 듯 다가왔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치킨의 향을 맡아보더니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스콧은 치킨 처음 먹어보는 거야?”
소영준이 그런 스콧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이지. 치킨을 이런 식으로도 요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방법인 거 같아.”
소영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스콧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이 우리 스콧의 인생에서 아주 역사적인 날이 되겠구만.”
아직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스콧은 그저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
잠시 후, 나와 이주혁 그리고 소영준, 장수영, 서성민, 마이클 스콧까지 총 여섯이 거실에 모였다.
세팅을 마치자 나는 맥주캔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선수들 한 시즌 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부상 없이 마무리해서 정말 다행이고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푹 쉬시고 또 열심히 달려봅시다. 자, 다 같이 건배하시죠.”
“건배!”
“선배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선수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맥주캔을 부딪쳤다.
그러고는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역시 맥주는 친구와 함께 마셔야 맛있는 법이었다.
소영준은 옆에 앉아 있는 스콧에게 양념치킨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콧, 이거부터 먹어 봐. 생각했던 대로 아주 인크레더블 할 거야. 손에 묻는 거 싫으면 위생장갑 하나 끼고.”
“오케이. 안 그래도 제일 궁금했던 거였어.”
스콧은 양손에 위생장갑을 끼고는 양념치킨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부러웠는지 루피가 다가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루피가 치킨을 먹으려고 하는 걸 힘겹게 막아 세웠다.
“루피, 잠깐만 기다려봐. 당연히 너한테도 선물 준비했지.”
나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 강아지용 육포를 가지고 나왔다.
“루피는 이거 먹어. 엄청 좋아하던 거야.”
루피는 내가 육포를 놓아주자마자 꼬리를 살랑거리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스콧, 근데 시즌도 끝났는데 집에 가야 하는 거 아냐?”
소영준이 질문을 던지며 고개를 돌리는데,
스콧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양념치킨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우.”
대답할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누가 보면 며칠 굶긴 줄 알겠다. 많이 먹어.”
소영준은 스콧이 먹는 모습을 경이로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스콧은 들고 있던 치킨 한 조각을 다 먹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한국이 더 좋아.”
“갑자기?”
“이건 도대체 어떤 사람이 개발한 거지?”
“한국 치킨이 기가 막히긴 하지.”
소영준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여기 많이 유명한 곳인가 봐? 우리 에이전시 너무 원더풀이야.”
“이거 프랜차이즈야.”
“프랜차이즈?”
“한국에서 이 정도 치킨은 어디를 가도 시켜 먹을 수 있어.”
소영준의 한마디에 스콧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행동을 멈췄다.
“……재규어즈 경기장 근처에서도?”
“당연하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데. 스콧이 말만 하면 어디로든 갖다 주지.”
“와우…… 언빌리버블.”
스콧은 잠시 멍하게 멈춰 있더니 무언가에 홀린 듯 기립박수를 쳤다.
“대표님, 스콧한테 치킨 좀 자주 사 줘야겠어요.”
소영준이 고개를 놀리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자주 시켜 줘야겠어.”
“우리 보스 너무 좋아. 원더풀.”
스콧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스콧과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마치고 서성민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을 걸었다.
“선배, 형수님 출산 예정일이 언제시죠?”
“6개월 정도 남았어요.”
“6개월이면…….”
“내년 시즌 시작할 때쯤일 거 같아요.”
“우와. 그럼 얼마 안 남았네요.”
“아직 먼 것 같으면서도 얼마 안 남았죠.”
서성민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했다.
“아들일 것 같으세요, 딸일 것 같으세요?”
“아무래도 딸이 이쁘지 않을까요?”
역시 아빠들의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제 야구 시작하겠다!”
장수영이 TV를 켜자 더블즈와 바이킹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야구 경기로 향했다.
오늘 경기에서는 아쉽게도 에이전시 선수들을 볼 수 없었지만, 포스트시즌이 주는 매력은 야구의 재미를 더해줬다.
특히나 단 몇 경기만으로 승부를 결정하게 되는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 시즌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더블즈와 바이킹스 선발 선수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소영준이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장수영을 보며 물었다.
“수영이 너는 울프스 있었으면 이번에 한국시리즈 뛸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이적해서 아쉽지 않아?”
“아쉽긴 한데요, 우승은 몇 번 해 봤으니까요. 이제는 제가 경기를 더 많이 뛰는 게 좋더라고요.”
“에이 재수 없어. 부러우니까 더 재수 없다. 우승 못 해 본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나.”
소영준은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켜더니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대표님, 나도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보내주시죠.”
“그러지 말고 펠리컨즈가 우승할 수 있도록 해 보는 건 어때?”
“펠리컨즈가 우승……? 어휴, 내가 선수 생활하는 동안은 기대도 없어……. 굳이 소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죽기 전에 우승하는 거 한 번은 봤으면 좋겠다.”
“왜 안 될 거라고 생각해. 펠리컨즈 에이스 소영준 선수가 잘 이끌어가면 충분히 할 수 있지.”
“에이, 몰라.”
소영준은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사이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포스트시즌답게 두 선발 투수의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한 경기만으로 승부를 끝내려는 더블즈와 2차전까지 끌고 가서 승리하려는 바이킹스의 투지가 느껴졌다.
승부는 경기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서야 갈렸다.
따악!
“우와!”
시원한 타격 소리가 들리자 우리의 시선은 동시에 TV에 집중됐다.
-간다! 간다! 간다! 호오오오옴러어언!
-중요한 상황에서 홈런으로 리드를 만들어 주네요.
-더블즈가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합니다!
-와아아아아-
더블즈 팬들의 환호성이 TV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TV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릿함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소영준이 나에게 다가왔다.
“근데 대표님, 우리도 뭐 해야 하지 않겠어요?”
“뭘 한다니?”
“그냥 보는 것도 심심하고 뭔가 재밌는 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다들 모인 것도 오랜만이잖아.”
“그렇긴 한데, 재밌는 게 뭐가 있을까?”
그 때 장수영이 갑자기 아이디어 하나를 툭 던졌다.
“우리 라이브 방송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라이브 방송?”
“준플레이오프부터는 우리 선수들도 여러 명 나오잖아요. 우리 선수들 편파적으로 해설을 해 주는 거예요.”
내가 고민할 틈도 없이 소영준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아이디어 미쳤다. 팬들하고 소통도 하고 같이 경기도 보고. 재밌을 것 같은데?”
재밌을 것 같긴 했다.
“그럼 한번 해 볼까요? 혹시라도 쉬고 싶거나 방송 출연이 불편한 선수들은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모두가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데,
유일하게 서성민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번에 저는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시기는 아무래도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서성민 선배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네, 그럼요. 서로 재밌자고 하는 건데요. 다른 선수들도 부담 갖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고개를 돌리다 보니 스콧이 눈에 띄었다.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쳤는지 스콧이 배를 만지며 편하게 등을 기대고 누워 있었다.
“스콧은? 집에 정말 안 가도 돼? 외국인 선수들은 보통 시즌 끝나자마자 바로 자기 나라로 가서 쉬고 싶어 하던데?”
“나는 여기서 더 지내다 갈 거야. 여기 너무 좋거든. 그날도 치킨 시켜 줄 거지?”
“그거야 어렵지 않지. 라이브 방송도 괜찮은 거지?”
“당연하지. 그런 거 꼭 해 보고 싶었어.”
스콧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근데 라이브는 한국말로 해야 할 텐데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소영준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제가 옆에서 통역해야죠.”
이주혁이 답했다.
“오, 역시 퍼펙트 에이전시야.”
이제 모든 게 해결됐다는 듯 소영준이 손뼉을 쳤다.
“그날은 고지훈 선배가 선발 등판하기도 하니까 딱 좋네요.”
장수영이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한번 해 봅시다.”
나도 살짝 설레는 기분이었다.
* * *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준플레이오프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소영준과 장수영, 마이클 스콧과 함께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간략한 경기 데이터가 놓여 있었다.
이주혁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곳에 앉아서 스콧에게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 줄 계획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무리 편파 방송이어도 욕 같은 건 하면 안 된다.”
나는 모두를 향해 하는 말이었지만, 유독 한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갔다.
“왜 나를 보고 얘기하세요. 대표님.”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소영준이 발끈했다.
“아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
“걱정 마세요. 오히려 나 같은 사람들이 이런 데서 실수를 안 해. 그리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도 낮은 편이고.”
“그 말도 맞긴 하네.”
“우씨.”
소영준이 장난스럽게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 화장실 가고 싶으신 분은 어서 다녀오세요.”
이제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하는 게 좋지 않나?”
소영준이 캔맥주를 들이켜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맥주는 무슨.”
“자연스럽게 팬들하고 맥주 한 잔씩 하면서 소통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재밌지 않겠어요?”
“그건 절대 노!”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영준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벌써 만 명 이상이 들어와 계신데요?”
장수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숫자를 다시 세어보며 말했다.
“와. 반응이 뜨겁네.”
내 손에는 절로 땀이 쥐어졌다.
“1분 뒤에 방송 시작합니다!”
이제 라이브 방송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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