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두 번째 연봉 협상 (2)
조재원 엔젤스 단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팀 내부 균형이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으니, 5천만 원 인상해서 3억 원 정도로 가 보는 건 어떨까요?”
뭐라고?
아무리 팀의 상황이 있다고는 해도 내가 생각했던 액수 차이가 너무 컸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조재원의 표정에도 살짝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대표님 생각과 많이 다르신가 봅니다?”
“우리 선수의 가치를 너무 인정해 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유쾌하지 않네요.”
나는 진심에서 나오는 표정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조재원이 급히 두 손을 저으며 답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장수영 선수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합니다. 이번 시즌에 마무리 투수로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쳐줬는데요.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선수의 가치는 말이 아니라 연봉으로 판단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구단 상황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이번만 조금 양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이렇게 나온다고?
그럼 나도 착하게만 나갈 수는 없지.
“……장수영 선수가 언제까지 엔젤스 선수일 거라고 보십니까?”
“네?”
내 한마디에 조재원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앞으로 두 시즌은 엔젤스 팀을 위해서 뛰어야겠죠. FA 요건을 채우기 전까지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깜짝 놀랐는지 조재원이 말을 살짝 더듬었다.
“우리 프로야구의 구조상 연봉 협상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선수는 을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구단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
“장수영 정도의 선수라면 FA 시장에서 최고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최고의 왼손 불펜 투수인 데다 나이까지 어리니까요.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2년이 그리 긴 세월도 아니고요.”
“현우 씨, 아니 강 대표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조재원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엔젤스가 지영욱까지 울프스로 보내면서 데려온 선수 아닌가요? 그런 선수가 3년만 뛰고 이적한다면 엔젤스 입장에서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텐데요.”
“무, 물론이죠.”
나는 조재원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갔다.
“이런 일에서 구단과 회사 사이에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긴다면, 저희 소속 선수들을 영입하시는 데도 어려움이 생기실 겁니다. 계약에는 감정을 배제하고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서요.”
나는 내 할 말만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 대표님, 잠깐만요.”
조재원도 다급하게 일어났다.
“더 이상 얘기 나눠 봐야 의미가 없을 거 같으니 오늘 협상은 여기서 마치죠. 생각이 바뀌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 * *
나는 곧바로 다음 단장을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유일한 외국인 선수인 마이클 스콧이 소속된 재규어즈였다.
“강 대표, 어서 와.”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은 밝은 미소로 두 손을 들어 올리기까지 하며 나를 맞았다.
이렇게까지 나를 반기는 이유는 명확했다.
마이클 스콧은 후반기에만 6승과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하며 이번 시즌 프로야구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10경기 동안 소화한 이닝이 73이닝이나 됐다.
사실상 등판하면 거의 한 경기를 책임져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아직 좌타자 상대로 피안타율이 높다는 약점은 여전하지만, 국내 리그에서 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데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도 바꾸어 말하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강현우의 말이라면 이제 무조건 신뢰할 생각이다.
-이번 겨울에는 타선 보강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의 정보창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내 말을 무조건 신뢰할 거라니.
마이클 스콧의 한 방이 이렇게까지 강력할 줄이야.
물론 스콧의 성적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않기가 더 어렵겠지만.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재규어즈 오는 길은 언제든 발걸음이 가벼워서요.”
나는 조광훈의 환대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조광훈은 미리 준비했는지 커피를 한 잔 타왔다.
“일단 한 잔 마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마이클 스콧이랑 재계약은 하실 거죠?”
“그거야 당연하지.”
조광훈이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그러다 갑자기 불안한 눈빛으로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스콧이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한 건 아니지?”
“다행히 아직은 아닙니다. 당분간은 걱정하실 필요도 없으실 거 같고요.”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계속 있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야.”
조광훈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럼 스콧 연봉은 어느 정도로 주실 겁니까?”
“아주 넉넉하게 준비했어. 아마 한 방에 만족할 거야.”
조광훈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달리 자신 있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얼만데요?”
“100만 달러.”
헉.
100만 달러?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80-90만 달러 정도 생각했는데…….
지난 시즌 절반 동안 옵션 포함 30만 달러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거의 두 배 가까이 인상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깜짝 놀란 속마음과는 달리,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화를 이어받았다.
“재규어즈에서 그래도 저희 선수를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엔젤스에서 그렇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온 뒤라 이번 제안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럼. 우리 강 대표 선수인데 당연히 인정해야지.”
내가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이 느껴졌는지 조광훈도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조 단장님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거든요. 시원시원하게 해주시니까 제가 뭐 걱정할 게 없어요.”
“나는 쓸데없이 간 보면서 질질 끄는 거 딱 싫어해.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내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조광훈이 의자 팔걸이를 내리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구단에서도 이번 시즌 재규어즈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고 보시죠?”
주전 중견수였던 이상훈이 FA로 이적한 반면에 에이스급 FA 선수 영입은 없었기 때문에, 최하위로 떨어질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최종 6위를 기록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였을 거다.
물론 혜성같이 등장해서 후반기에만 6승을 거둔 마이클 스콧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
“그렇지. 포스트시즌 진출은 아쉽게 못 했지만, 마지막까지 5위 싸움을 했으니까. 이번 겨울에 전력보강을 잘 하면 내년에는 가능성 있을 것 같아.”
“약점 몇 군데만 보강해도 내년에는 상위권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타선 보강만 되면 해 볼 만하지.”
조광훈이 결의를 다지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근데 올해 FA에는 적극적으로 영입 시도해 볼 만한 타자가 없지 않나요?”
선수층을 두텁게 할 만한 선수들은 여럿 있었지만, 당장 팀 전력을 상승시켜줄 수 있을 만한 선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고민이야. 확실한 보강책이 떠오르질 않아서.”
언제 그랬냐는 듯 조광훈의 얼굴에는 걱정이 내려앉았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요.”
“뭔데?”
내 한마디에 조광훈이 나에게로 몸을 가까이 당겼다.
“타자 용병을 제대로 뽑아 봐야죠.”
“혹시 한국 와서 터질 만한 타자 용병이 있어? 내가 돈은 얼마든지 받아올게.”
조광훈의 눈빛에서는 레이저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이번에 타자 선수를 한번 찾아보려고 했거든요.”
“오케이. 그럼 그 타자는 무조건 우리랑 계약해.”
이렇게 적극적이라니.
“재규어즈에 안 어울리는 선수일지도 모르는데요?”
“아니, 절대 그럴 리 없어.”
조광훈이 확신에 찬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또 열심히 찾아봐야겠네요.”
타자 용병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카드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꺼내기는 조금 빨랐다.
지금보다 확실한 타이밍에 던져야지.
“그나저나 고지훈 협상은 어떻게 될 거 같아?”
조광훈이 넌지시 흘리듯 물었다.
“투수도 영입하시게요?”
“검증된 선발 투수야 항상 관심 대상이지.”
“다른 구단도 단장님과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요?”
나는 조광훈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투수도 그냥 확 질러버리고 싶은데, 고지훈의 내구성이 조금 걱정되기는 해서 말이야.”
“제가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 에이전시 소속 선수인 이상 분명히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은 활약 펼쳐줄 겁니다.”
나의 자신 있는 한마디에 조광훈이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 * *
재규어즈 협상은 한 번에 끝났고, 엔젤스 장수영 쪽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준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는 버팔로즈와 더블즈 중에서 탈락하는 팀과 바로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버팔로즈 오석훈과 박성주는 이번 시즌에 워낙 좋은 활약을 펼쳐서 걱정되는 게 없었는데, 더블즈 최정환이 계속 신경 쓰였다.
에이전시를 설립한 초반에 합류했던 탓에 정신없다는 이유로 세심하게 관리를 해 주지 못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도 부상 없이 자기 역할을 잘 해줘서 정말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태블릿으로 최정환의 성적을 살펴봤다.
132이닝 8승 8패 평균자책점 4.20에 WAR 2.45을 기록했다.
팀 4선발 투수로는 더할 나위 없는 성적이었다.
물론 지난 시즌보다 이닝 소화도 많아졌으니 연봉 인상도 당연한 거였고.
하지만 정말 이게 최선일까?
내가 생각하는 최정환의 잠재력이 아직 다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근데…… 실현 가능한 일일까?
사실 국내 무대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드문 일이긴 했다.
하지만 에이전트라면 최정환이라는 선수 개인의 성장을 위한 방법을 제시해 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주혁 씨, 정환이한테 이걸 한번 제안해 보려고 하는데 어떨까요?”
이주혁은 흥미 가득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내 말을 듣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종종 봤는데, 한국에서 이런 전환이 가능할까요?”
“팀은 둘째치고 정환이 개인한테만 포인트를 맞춰 봅시다.”
“음……. 지표만 보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 일단 이야기는 해 보자.
혹시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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