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두 번째 연봉 협상 (4)
“검증된 선발 투수를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자고요?”
“네.”
내 당당한 한마디에 김규상 더블즈 단장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당장 필요한 마무리 투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아주 매력적이긴 한데…… 검증된 선발 투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과연 이게 합리적인 선택인지 의문이 드네요.”
구단 입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물론 선발 투수를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최정환 선수에게 당장 1선발을 맡길 수 있는 상황은 몇 년 안에 오기 어려울 겁니다. 당분간 포스트시즌 선발 투수를 결정하실 때도 후 순위로 밀려있을 테고요.”
“상당히 도발적인 말씀이시네요.”
김규상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선수지만 냉정한 진단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정말 필요한 걸 제안해 줄 수 있을 테니까.
“4-5선발 투수를 포기하고 확실한 마무리 투수를 얻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시도 아닌가요?”
“틀린 말은 아니죠.”
고민을 드러내듯 김규상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선발 투수야 외국인 선수를 활용할 수라도 있지만, 불펜 투수는 결국 국내 선수들을 육성해야 하잖습니까. FA 시장에는 확실한 선수가 보이지도 않고, 혹시 있다고 해도 영입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테고요.”
타자도 그렇지만 확실하게 믿을 만한 투수는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몸값은 기대치보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정환 선수가 정말 마무리 투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이 좋다는 데는 반박할 여지가 없지만, 9회를 책임진다는 게 단순히 구위가 좋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닐 텐데요.”
“한 경기 한 경기가 치열하게 진행됐던 이번 포스트시즌에 등판해서도 위력적인 피칭을 보여줬잖습니까. 그것도 타이트한 경기 중후반임에도요.”
게다가 시리즈에서 세 경기나 등판하면서, 연투를 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것도 증명해냈다.
여기서 제구력만 더 가다듬는다면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선수 입장에서는 선발 투수로 자리 잡는 게 좋지 않나요? 불펜에서 성공해도 결국 선발 자리를 얻고 싶어 하는 게 보통 투수들의 생각인데요.”
“소속 선수의 잠재력을 지금보다 더 발휘할 수 있도록 고민하다 보니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선수 본인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요.”
“그럼 강 대표님께서는 최정환 선수가 마무리로 더 성공할 수 있다고 보시는 거고요?”
“물론입니다.”
내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김규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아이디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당장 이 자리에서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감독, 투수코치랑 진지하게 회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셔야죠. 급하게 결정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일찍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수도 그에 맞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저희로서도 최대한 빠르게 결정해 봐야죠. 연말까지는 전달드릴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오늘 나눌 대화가 끝난 듯하자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규상도 나와 함께 일어났다.
“그럼 이제 우리는 고지훈 선수 FA 협상 때 뵙겠네요.”
“그렇겠네요.”
“저희랑 제일 먼저 협상하실 거죠?”
“그래야죠.”
다른 구단의 제안을 들을 때 듣더라도 우선은 원 소속팀과 협상하는 게 기본이라면 기본이었으니까.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럼요.”
나는 밝게 웃으며 더블즈 단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정보창의 특수문자에는 무슨 내용이 숨겨져 있던 걸까?
* * *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운 호응을 받은 우리 에이전시의 라이브 방송은 포스트시즌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마이클 스콧은 지금까지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참여했다.
정말 라이브 방송에 참가하고 싶어서인지 협찬으로 들어온 양념치킨을 먹고 싶어서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참여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강력하게 한 건 사실이었다.
아무튼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라이브 방송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협찬 브랜드의 홍보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이클 스콧의 씬 스틸러 급 먹방도 한몫을 했을 게 분명했다.
에이전시로서도 적지 않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기에 여러모로 긍정적이었다.
오석훈과 박성주는 더블즈와의 준플레이오프 때와는 달리 탄탄한 투수진을 갖춘 드래곤즈를 만나면서부터는 상대 투수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그것 때문인지 정규 시즌에서 보여줬던 폭발력 있는 타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포스트시즌 경험이 점점 쌓여가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드래곤즈가 버팔로즈를 3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서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던 팀들의 재대결이 성사됐다.
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 짓고 상대를 기다리던 울프스 선수들도 1년 전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망의 한국시리즈.
울프스와 드래곤즈의 이번 시즌 상대 전적은 8승 8패로 완벽하게 동률이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팽팽하게 갈릴 정도로 우승팀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한국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시즌 초반 엔젤스에서 지영욱을 영입해오며 내야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한 울프스는 지난 시즌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드래곤즈 또한 나준호의 홈런을 무기 삼아 치열한 승부를 이어갔다.
6차전까지 이어지는 동안 어느 한 경기도 3점 이상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지만…….
결국 이번 시즌의 승자는 4승 2패의 울프스였다.
한국시리즈가 끝나자 우승팀 울프스와 관련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는 내 눈길을 끄는 기사도 있었다.
└진짜 시즌 초에 했던 트레이드가 신의 한 수였네.
└좌완 필승조 내준다고 했을 때는 미친 짓 하는 줄 알았는데, 우승이랑 바꾸는 거면 얘기가 다르긴 하지.
└이제부터는 드림 에이전시 소속 선수한테 뭔가 변화가 있으면 개소리라고 무시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근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소스가 남아 있긴 한가? 오석훈이나 박성주 급 선수가 뜬금없이 이적할 일은 없을 테고.
└강현우라면 또 어디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지.
└과연 이번에는 어디서 어떤 한 방을 보여주려나.
└포스트시즌 끝나면 스토브리그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네.
한국시리즈가 진행되는 사이에 버팔로즈와의 연봉 협상이 진행됐다.
개인 커리어 하이 시즌은 물론이고 리그의 모든 선수들과 비교해 봐도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협상이 아주 수월했다.
두 선수 모두 FA 요건을 갖추는 데 이제 딱 두 시즌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협상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줬다.
오석훈 3억 5천만 원. 박성주 3억 3천만 원.
둘 다 작년보다 200% 이상 인상된 액수였다.
그리고 엔젤스와도 협상을 다시 진행했다.
내가 했던 강한 액션이 통했는지 처음보다는 훨씬 협조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결국 내가 처음 목표로 세웠던 60% 인상으로 4억 원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에이전시로서는 마지막 한 구단과의 협상만 남게 되었다.
* * *
다른 구단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가장 의문이었던 점은 펠리컨즈에서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규 시즌이 끝나자마자 회사 차원에서 보냈던 메일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이번 시즌에도 최하위를 기록하며 시즌이 끝나기 한참 전부터도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없었는데, 일 처리를 이렇게 늦게 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잘 지내셨죠?”
“흐으음, 어서 와.”
내가 밝게 건넨 인사에도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업데이트될 정보창에 집중했다.
-마이클 스콧을 영입하지 못해 강현우에게 기분이 상했다.
-이번 연봉 협상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계획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마이클 스콧 같은 선수는 영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던 건 본인이면서, 나한테 기분이 상했다니?
게다가 이번 협상에서도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라고?
어이가 없네.
“어서 앉아.”
김석원의 말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상황이 기가 막혔지만 일단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았다.
“단장님께서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 봐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정규 시즌 끝나자마자 부르실 줄 알았는데 전혀 답변이 없으시더라고요.”
“아, 그게 일이 좀 있었어. 시즌이 마무리되면 단장이 해야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말이야.”
어색한 연기를 보니 방금 말은 100% 거짓말이다.
다른 구단 단장들하고는 이미 연봉 협상을 마치기까지 했는데, 유독 펠리컨즈만 바쁠 리도 없잖아.
“하긴, 지금이 제일 바쁘실 시기죠?”
김석원은 내 물음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앞에 있던 서류만 뒤적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가야 했다.
“단장님, 오늘 소영준 선수 연봉 협상 진행할 수 있을까요?”
“아, 해야지. 아휴 매년 협상하는 것도 일이야.”
그럼, 일인 게 당연하지.
그 일 하라고 구단주가 당신한테 연봉도 많이 줘가면서 그 자리에 앉혀둔 거잖아.
“그럼 어떻게, 제가 간단하게라도 브리핑해 볼까요?”
이번 시즌 소영준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서 0.268 16홈런 68타점 WAR 3.10 wRC+ 125을 기록했다.
초반을 제외하면 유격수 수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줬다.
최하위 펠리컨즈 소속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좋은 지표를 보였을지도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시즌 소영준의 활약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일단 이거 먼저 보고 얘기하지.”
김석원은 나한테 종이 한 장을 툭 던지듯 건넸다.
“이게 뭐죠?”
“이번 시즌에도 우리가 10위를 했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안타까운 소식이지.”
“그래서 혹시…….”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삭감을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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