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두 번째 연봉 협상 (5)
“단장님! 삭감이라니요?”
나도 모르게 실내가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에게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팀이 10위를 했다는 사실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어? 선수단 전체가 감수하고 가야 하는 일이지.”
-연봉 협상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계획이다.
이건 정보창이 잘못된 거 같다.
이 정도면 단순히 비협조적인 게 아니라 그냥 생떼를 부리는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팀 성적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기는 해도…… 선수 개인 성적에 따라서 평가가 이루어져야죠.”
“일단 우리가 이번에 10위를 한 건 사실이잖아.”
계속 10위라는 말만 할 생각인가 본데.
그나저나 펠리컨즈가 이번에도 10위를 했다는 게 그리 큰 이슈도 아니잖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면서.
“그럼 이번에 펠리컨즈 선수들은 모두 삭감인 겁니까?”
“그래야지. 팀 상황이 그런 거니까.”
다른 선수들의 협상 결과는 연봉 협상이 모두 끝나야 공개를 할 테니, 지금으로서는 저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럼 어느 정도 삭감을 생각하고 계시는 건데요?”
“지금 연봉이 7천만 원이지? 여기서 1천만 원 삭감해서 6천만 원.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으니까 삭감 폭은 가장 낮은 편이야.”
“허…….”
7천만 원에서 1천만 원 삭감이면 15%나 삭감된다는 얘기였다.
인상 폭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고민했던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팀이 10위를 한 마당에 연봉 파티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얄미울 정도로 심술이 아주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다른 선수들은 인정하고 사인하던가요?”
“이런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겠어? 대신 다음 시즌에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확실하게 인상해 줄 거야.”
하긴, 소영준을 제외한 다른 펠리컨즈 선수들의 성적은 어떤 제안을 받아도 반발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기는 했다.
그래도 그 선수들이랑 소영준은 분명히 다르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영준 선수 연봉을 삭감한다는 건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겠는데요?”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다음 시즌 안 뛰게 할 생각이야?”
만약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을 뛸 수 없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선수는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니까.
“그래도 제가 준비해온 자료가 있으니 얘기 한 번 나눠보시죠.”
나는 가져온 자료 한 묶음을 김석원에게 건넸다.
직접 만든 자료를 써야 하는 상황은 이번 시즌에는 처음이었다.
다른 구단과는 내가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결국 뻔한 이야기 아닌가? 데이터는 이미 나도 확인했던 건데.”
김석원은 귀찮다는 듯 내가 건넨 자료를 받아들었다.
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얄미움을 힘겹게 참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이번 시즌 소영준 선수가 펠리컨즈 타자 중에서는 고과 1위라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쎄?”
하…….
여기서부터 막힌다는 건가?
솔직히 펠리컨즈 팀 안에서는 성적으로 소영준과 비교할 만한 선수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단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고과 1위를 가린다는 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성적이 잘 나온 팀에서는 선수별로 고과를 가리는 게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같은 팀에서 선수 사이에 우열을 가린다는 게 아이러니해서 말이야.”
핑계도 참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1위 팀은 소속 선수 모두가 좋은 활약을 펼쳐줬을 테니 우열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같은 폭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건가?
“그래도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준 선수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까요?”
“흐음……. 일단 하던 얘기나 마저 해봐.”
“…….”
나는 표정을 숨기느라 한동안 진땀을 빼야 했다.
“소영준 선수는 16홈런 68타점으로 펠리컨즈에서 홈런 1위, 타점 1위를 기록했습니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임에도요.”
“요즘 누가 그런 단순한 데이터로 선수를 판단하나. 야구 통계가 얼마나 발전했는데.”
클래식 데이터는 너무 옛날이라 이거지?
물론 나도 그걸로 판단하자는 말은 아니지.
“지금 보시는 자료에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만, 세이버매트릭스 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데이터를 보더라도 소영준 선수가 구단 내부 순위권에서 빠진 지표는 찾아보실 수 없을 겁니다.”
“흐음…….”
“그럼 이제 소영준 선수 본인의 데이터끼리 비교해 보겠습니다. 지난 시즌 성적이랑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훨씬 뚜렷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김석원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듣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니,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해야지.
“안타, 홈런, 타점에서 지표가 개선된 건 물론이고, 득점권 타율이나 결승타도 뚜렷하게 많아졌습니다. 작년 소영준 선수 성적하고 비교해 봐도 명백하게 좋은 기록을 보여줬다는 건 확실하지 않나요?”
“누가 그걸 모른다고 했나? 팀이 10개 팀 중에서 10위를 했으니 그만한 감수를 하자는 거지.”
“팀 성적이 좋지 않으니 같은 성적의 다른 팀 선수보다 인상률이 높지 않다는 것까지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삭감은 너무 나가신 거 같은데요?”
“그래, 듣고 보니 강 대표 말에도 일리가 있긴 하네.”
휴……. 그래도 일이 복잡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그럼 인상 폭은 어느 정도…….”
내가 다음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삭감 폭을 절반으로 줄여서 5백만 원만 삭감하지. 그 정도면 납득할 수 있겠지?”
후…….
이제까지 내가 한 말을 듣기는 한 건가?
말문이 턱 막히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몇 번 더 뵙고 조율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힘들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빨리 끝내지 그래. 이거 말고도 할 일이 많을 거 같은데.”
“제가 생각해왔던 거랑은 차이가 너무 커서요. 이 자리에서는 도저히 결론이 안 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다음에 뵙죠.”
오늘은 더 얘기해 봤자 내 입만 아플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펠리컨즈 단장실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급하게 계약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음 시즌 스프링캠프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협상이 마무리되면, 개막을 준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
협상이라는 건 아무래도 급한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정받으려면 더더욱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약 혹시라도 연봉 협상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고 해도, 그에 맞는 대책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 * *
소영준의 계약을 제외한 에이전시 소속 선수의 모든 연봉 협상이 끝났다.
9월 말에 정규 시즌을 마무리한 뒤로도 10월까지 한 달이 넘도록 한국에서 머무르며 즐거운 휴가를 보내던 마이클 스콧은 11월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재규어즈가 다음 시즌 스프링캠프를 미국에서 차릴 예정이었으니 2월에 현지에서 다시 만날 계획이었다.
마이클 스콧이 떠나는 날이 정해지자 어느새 절친이 된 소영준이 직접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기 위해 에이전시 숙소에 놀러 와있었다.
“스콧, 너 이번에 연봉 많이 올랐더라. 부러워.”
소영준의 표정에서는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So,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내가 다 사줄게.”
“이야, 멋진 형이야.”
소영준이 스콧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언제부터 갑자기 스콧이 형이 됐어.”
“원래 돈 많이 벌면 형이잖아. 사실 올해부터도 형이긴 했는데, 내년부터는 스콧이 완전히 형이야.”
소영준이 나에게 대답하고는 스콧에게 안기려는 듯 파고들었다.
띵동. 띵동.
“드디어 왔다.”
오석훈이 서둘러 나가서 도착한 배달 음식을 받아왔다.
스콧은 어느새 음식을 먹을 준비를 다 마친 상태로 경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석훈이 들어오자 집 안은 순식간에 양념치킨 냄새로 채워졌다.
“와우, 오늘도 기가 막힌다.”
스콧은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콧이 치킨을 그렇게 좋아해요?”
오석훈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따 먹는 거 봐봐. 장난 아니야.”
소영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죽했으면 우리 에이전시로 치킨 협찬이 진짜 미친 듯이 들어왔겠어? 이거 이러다가 라이브 방송할 때마다 다른 치킨 먹게 생겼다.”
나와 소영준의 답을 들은 오석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스콧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치킨을 먹으려다 말고 갑자기 스콧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제 이것도 얼마 안 남았네.”
“이건 또 뭔 소리야, 갑자기?”
소영준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스콧을 바라봤다.
“이제 이거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슬프잖아.”
“스콧, 내년에 한국 안 와?”
“오지.”
“뭐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한국 아예 떠나는 사람인 줄 알겠어.”
소영준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슬픔도 잠시, 스콧은 오늘의 첫 식사를 하는 것처럼 엄청난 먹방을 보여줬다.
이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인 오석훈과 박성주는 그저 감탄사만 내뱉으며 스콧의 먹방을 관람했다.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두 마리에 가까운 양을 뚝딱 해치웠다.
잠시 후, 스콧은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듯 배를 만지며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소영준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대표님, 내일 일정도 비는데 스콧이랑 어디 한번 놀러 갔다 오죠?”
“그럴까?”
에이전시 선수들하고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한데?
“다 같이 놀이공원 가보는 거 어때요. 가본 지 진짜 오래됐는데.”
박성주가 벌써부터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좋네. 주변에 이것저것 놀 것도 많잖아.”
소영준도 박성주의 말에 호응했다.
“그럽시다. 내일 가고 싶은 선수들은 다 모아서 가보죠.”
놀이공원을 포함해서 재밌어할 만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스콧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박성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운전은 제가 할게요. 저 어제 면허증 받아왔거든요. 새 차니까 깔끔해요.”
“네, 네가? 연수는 충분히 받았어? 운전면허 땄어도 충분히 연수받고 하는 게 좋을 텐데…….”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게 됐다.
“면허 시험 준비하면서 받기도 했고요. 다음 주에 추가로 연수 예약도 했어요.”
“다음 주에?”
그럼 내일 운전하는 게 거의 처음이라는 거 아닌가?
“그래도 면허 주행 시험 볼 때 보니까 잘하던데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 그래. 다들 괜찮지?”
“…….”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선수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보험은 들어있지……?”
“제일 비싼 걸로 들었어요. 걱정 마시라니까요.”
박성주의 표정에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당당함이 느껴졌다.
“보험 좋은 걸로 들었다고 사고가 안 나는 건 아닐 텐데…….”
설마, 별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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