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첫 번째 미션 (3)
지금 상황의 문제는 오석훈을 무리해서 3루수로 기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석훈의 송구 능력이 좋은 건 맞지만, 수비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어서 내야수보다는 외야수에 적합했다.
만약 3루수가 주 포지션인 박성주의 경기력을 높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오석훈이 외야 포지션에서 기회를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운이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일단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른 선수들이나 코치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나마 눈치 보지 않고 오석훈과 박성주의 훈련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훈련 연습장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오석훈은 박성주를 위해 티배팅 연습기에 공을 하나씩 놓아주고 있었다.
탁.
박성주가 휘두르자 공이 살짝 빗맞으며 애매하게 떠올랐다.
나는 박성주가 쥔 배트를 수평으로 만들어주며 말했다.
“지면하고 수평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휘둘러봐.”
“이것보다 더요?”
“응.”
나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박성주가 자세를 바뀌 스윙을 하는데,
탕.
타구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빨랫줄처럼 뻗어 나갔다.
“오. 느낌 좋은데?”
오석훈이 감탄하며 탄성을 질렀다.
탕.
또 한 번 휘두르자 공이 이번에도 날카롭게 뻗어 나갔다.
“좋다 좋아.”
나도 만족스러움에 손뼉을 쳤다.
“근데 이러면 지금보다 타구 각도가 더 낮아지지 않을까요?”
박성주가 의아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지금은 억지로 어퍼스윙을 하기보다는 레벨스윙으로 공을 더 정확하게 때리는 게 필요할 거 같아서 그래.”
“정확도도 필요하긴 한데…….”
박성주가 아쉬운지 말끝을 흐렸다.
-홈런타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어퍼스윙이 아닌 레벨스윙으로 정확도를 높이면 더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다.
홈런은 야구의 꽃이라 불릴 만큼 매력적이다.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홈런을 치고 나서 관중들의 박수와 응원의 함성을 들으며 천천히 베이스를 도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싫어할 선수는 아무도 없다.
오직 홈런을 친 선수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러면 홈런 타자가 되기 어려울 거 같아서 그래?”
“어…… 그렇기도 하고요.”
“우와.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옆에 있던 오석훈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딱 보면 알지.”
“그래요? 얘 진짜 홈런 좋아하거든요. 게임 할 때도 무조건 홈런만 치려고 하고요.”
오석훈이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박성주의 얼굴에는 아쉬움의 빛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정확도도 중요하긴 한데 제 포지션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홈런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박성주는 주 포지션이 3루수였지만 상황에 따라 1루수를 번갈아 가면서 맡고 있는 선수였다.
같은 포지션 경쟁자 중에 홈런타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고, 팀에서도 그에게 4번 타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네 스윙 스피드에서 나오는 타구 속도라면 굳이 어퍼스윙을 안 하더라도 충분히 홈런 칠 수 있어.”
“정말요?”
“그럼. 나 한 번만 믿어봐. 반드시 좋아질 수 있으니까.”
실제 데이터로도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 정보창에서 보이는 내용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확신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티배팅 연습기에 공을 올려줬다.
내가 확신에 차서 말한 덕분인지,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던 아까와는 다르게 박성주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탕. 탕.
박성주가 자신 있게 배트를 돌리자 연습장에는 공이 시원하게 맞아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윙의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타구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석훈이 하자.”
박성주의 훈련을 마무리하고 나서 오석훈의 타격 자세를 잡아주며 훈련을 이어갔다.
탕. 탕.
자신 있게 휘두르며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를 보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스윙을 할수록 오석훈의 타격 자세가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석훈이 최근에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해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다는 점이 우려되기는 했다. 그것 하나만 제외하고는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오석훈의 훈련까지 마치고 나자 어느덧 경기 시간이 다가왔다.
* * *
관중석으로 돌아온 나는 어제 앉았던 자리를 다시 찾았다.
라인업을 확인해보니 3루수에 박성주의 이름만 올라가 있었을 뿐, 오석훈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 나눈 대화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빼버리고 싶었겠지.
아까의 상황이 떠오르자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박성주의 활약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이진원 감독이 더그아웃에 앉는 걸 볼 수 있었다.
근엄하게 자리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경기는 예정대로 시작됐다.
5번 타자 박성주의 타석이 돌아왔다.
2아웃에 주자가 1, 3루에 있는 상황이었다.
고작 몇 시간 정도 훈련을 도와준 게 다였지만,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궁금했다.
박성주가 상태 투수의 첫 번째 공부터 자신 있게 배트를 휘둘렀다.
타이밍이 살짝 맞지 않아 파울이 됐지만, 내가 해준 조언대로 레벨 스윙을 했다.
두 번째 공에도 자신 있게 배트를 휘둘렀다.
딱!
“어?”
타이밍이 살짝 빠른 감이 있었지만 배트에 제대로 맞았다.
힘도 충분히 실렸기에 담장 밖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다만 홈런의 기준점이 되는 파울 폴 안쪽으로 들어갈지가 관건이었다.
“아…….”
아쉽게도 파울 폴을 살짝 벗어났다.
이게 안쪽으로 들어와서 홈런이 됐다면 박성주가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을 텐데.
파울임을 확인하고 아쉬워하는 박성주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반면, 상대 투수는 파울임을 확인하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긴장한 듯 심호흡을 몇 번이나 크게 하고는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따악!
“오…… 오오!”
박성주가 휘두른 배트에 공이 맞자마자 소리만으로도 제대로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파울이냐 아니냐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공은 타석에서 가장 먼 중앙 전광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박성주가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홈런!”
2루에 있던 심판이 검지를 돌리며 홈런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완벽한 3점 홈런이었다.
게다가 그냥 홈런도 아니고 장외홈런이라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박성주의 파워가 더 엄청났다.
“와아아!”
버팔로즈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탄성이 새어나왔다.
입꼬리가 귀에 걸린 박성주가 베이스를 돌았다.
엄지를 치켜올리고 있던 3루 베이스 코치와 힘차게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이후 경기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
외마디 비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버팔로즈 우익수가 수비를 하러 달려가다가 발목을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의료진이 급하게 선수 쪽으로 달려갔다.
몇 가지를 체크하고 선수와 대화를 나누더니 더그아웃을 향해 엑스자를 그리며 더 이상 경기 진행이 어렵다는 신호를 보냈다.
부상 당한 선수가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어. 설마?”
내 머릿속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 이진원 감독이 코치를 불러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글러브를 들고 그라운드로 달려가는 오석훈이 보였다.
“예스!”
나는 오석훈을 보자마자 주먹을 불끈 움켜쥐다가 이내 부상 당한 선수가 떠올라 급히 손을 내렸다.
오랜만이고 갑작스러운 경기 출전이었지만 오석훈은 무난한 수비를 펼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닝이 바뀌고 오석훈의 타석이 돌아왔다.
주자는 만루였다.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다. 훈련한 대로만.”
나는 관중석에 앉아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마치 내가 타석에 선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딱!
투수가 던진 초구부터 오석훈이 시원하게 자기 스윙을 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노리고 있던 공인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와아아아-”
“달려, 달려!”
공이 배트에 맞자마자 버팔로즈 더그아웃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맞은 공이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가다 외야 펜스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2, 3루에 있던 주자는 물론 1루에 있던 주자까지 전력을 다해 홈으로 달렸다.
그사이 오석훈이 2루를 지나 3루까지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세이프!
우익수가 던진 공이 정확하게 3루로 날아왔지만, 3루심이 세이프를 선언했다.
3타점 3루타였다.
모든 주자를 불러들이며 오늘 승부에 쐐기를 박는 완벽한 적시타였다.
오석훈이 저렇게 밝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오석훈과 박성주 모두 경기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해냈다.
첫 단추를 잘 끼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더그아웃에 있는 이진원 감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량 득점으로 승리가 사실상 확정되는 순간이었지만,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표정 관리를 하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지금은 전혀 상상조차 못 하겠지만, 조만간 내 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계속 증명해 보일 테니까.
* * *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오석훈과 박성주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 정말 감사합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박성주가 나를 향해 허리가 접힐 듯 인사했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네가 열심히 한 거지.”
“아니에요. 선배 조언대로 스윙을 바꾸고 나니까 훨씬 부드러워졌어요.”
“고맙다. 더 잘될 거야.”
나는 박성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오석훈을 바라봤다.
“석훈이도 축하한다. 이번 시즌 3루타는 처음이지?”
“네. 맞아요.”
오석훈이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까 달릴 때 보니까 다리가 아예 안 보이던데.”
박성주도 오석훈의 어깨를 툭 치며 즐거워했다.
둘의 밝은 표정에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어.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갑자기 오석훈과 박성주가 모자를 벗더니 누군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인사한 방향으로 내 고개가 돌아갔다.
이진원 감독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진원 감독의 시선은 아까의 뒤끝이 남아있는지 차갑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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