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쉽지 않은 FA 협상 (4)
우리 에이전시 숙소가 또 한 번 분주해지는 날이었다.
바로 내일이 골든글러브 시상식이었다.
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며 시상식에 초대를 받은 나준호와 장수영이 미리 올라왔다.
오석훈과 박성주도 마찬가지였다.
고지훈은 단순 성적만 보면 충분히 수상권이었는데,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해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소영준은 후보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 숙소를 찾았다.
“선배, 수상 소감도 준비하셨어요?”
박성주는 올스타전을 앞둔 날과 마찬가지로 나준호를 붙잡고 질문 세례를 던졌다.
“따로 준비했다기보다는 그냥 생각 정도만 해뒀어.”
“저는 혹시 상 받으면 올라가서 머리가 하얘질까 봐 그냥 적어봤거든요.”
박성주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옆에서 종이 내용을 확인한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올라가서 이걸 다 읽으려고?”
“감사해야 할 분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이렇게까지 감사한 분들은 도대체 어떤 분이야?”
무슨 내용인지 읽어보려고 박성주가 쥔 종이를 잡아보는데,
“에이, 이건 비밀이에요. 상 받게 되면 올라가서 말할게요.”
“보안이 장난 아닌데?”
나는 다시 한 번 종이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오석훈이 한 마디를 더했다.
“쟤 어제 혼자서 저거 읽다가 울컥해하던데요.”
“야, 내가 언제 그랬어?!”
“그랬잖아. 흐르지만 않았지 거의 운 거나 다름없어 보이던데.”
오석훈이 박성주를 보며 놀리듯 웃었다.
“나도 상 받으면 하고 싶은 말 진짜 많은데.”
갑자기 끼어든 소영준이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내년에는 받을 수 있을 거야. 공격력 좋은 유격수가 수비까지 안정적으로 소화해 주면 상 안 줄 이유가 없잖아.”
“그것도 팀 성적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하는 거 아냐?”
솔직히 팀 성적이 좋아야 유리한 건 맞는데, 왜 저렇게 슬프게 말하는 거야?
“하위권 팀에서 받은 적도 많잖아.”
“그래?”
“야, 그리고 펠리컨즈가 내년에도 최하위권이라는 보장 있어? 그건 시즌 해봐야 아는 거지. 충분히 할 수 있어.”
나는 소영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휴……. 내년에는 나도 같이 가고 싶다.”
펠리컨즈 얘기가 나오자 소영준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갈 수 있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나준호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잠깐 저랑 따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나는 나준호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대표님, 혹시 이번 겨울에 우리 선수들하고 전지훈련 가실 계획 있으신가요?”
“전지훈련이요? 아직 계획해둔 건 없는데요.”
“혹시 선수들이 괜찮다고 하면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이랑 같이 훈련 가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서로 친해지는 계기도 만들고요.”
“좋은 생각이네요. 준비해 볼게요.”
하긴 아무리 실내 연습장이 있다고 해도 추운 겨울에 훈련하다 보면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었다.
“우리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제가 지원할게요.”
“선배,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러시면…….”
“대표님, 그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도 신인일 때 선배들한테 도움 많이 받았거든요.”
나준호는 이번에도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수들과 에이전시를 생각해 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나로서는 참 여러모로 미안함도 함께 느껴졌다.
* * *
드디어 시상식 당일이 됐다.
숙소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각자 가져온 양복을 차려입었다.
“이야, 다들 이렇게 입으니까 멋지네.”
여전히 잠옷을 입고 있는 소영준이 선수들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의 눈빛에서는 부러움이 가득 느껴졌다.
“빨리 다녀올게.”
“재밌게 다녀와. 나는 루피랑 TV로 보고 있을 테니까.”
소영준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루피를 끌어안았다.
나와 다른 선수들은 소영준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유명한 숍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릴 호텔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작년에 참여했던 행사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행사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있었다.
레드 카펫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포토존을 지나게 됐다.
나는 우선 선수들부터 한 명씩 포토존으로 보내서 사진을 촬영했다.
오석훈과 박성주는 아마 이런 자리가 처음일 텐데, 나와는 다르게 잘 적응했다.
박성주는 사진기자들의 주문에 맞춰 큰 액션을 취하며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었다.
반면, 오석훈에게는 그리 복잡한 주문이 없었다.
그냥 서있는 모습만 찍어도 충분했으니까.
나준호와 장수영도 각각 촬영을 마치고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이제 내 차례였다.
작년에는 긴장한 채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올해는 분명히 달랐다.
걸음걸이부터 다르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포토존에 들어선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리며 눈이 부시도록 터지는 플래시를 즐겼다.
사진이 어느 정도 찍혔다고 느껴졌는지 기자는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고지훈 선수 FA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더블즈하고 만나셨다고 들었는데요. 분위기는 어땠나요?”
작년 이 자리에서는 의도치 않게 실수를 했었지.
이번에는 이 자리를 오히려 협상을 위해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아마 여러 번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더블즈와 합의점을 쉽게 찾기가 어려운 상황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아주 원만하게 진행되는 건 아닙니다.”
“고지훈 선수가 더블즈를 떠날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할까요?”
“에이전시는 선수에게 최고의 계약을 안겨주는 게 목표니까요. 어떤 게 선수에게 가장 좋은 계약이 될지, 다양하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다른 구단이 있나요?”
“고지훈 선수 정도 되는 투수를 영입하려는 팀이 없을 리는 없겠죠?”
“그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팀은 어디인가요? 재규어즈도 포함되어 있나요?”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 * *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리 강 대표님!”
내 이름을 누구보다 반갑게 불러준 사람은 박영노 울프스 단장이었다.
-이번 시즌 우승으로 아주 기분이 좋다.
-내년 시즌 우승을 위해 추가 전력 보강에 나설 계획이다.
“단장님, 우승 축하드립니다.”
“이게 다 강 대표 덕분이야. 고마워.”
박영노는 내 손을 꼭 잡고는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 덕분이라니요. 단장님이랑 선수들이 열심히 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죠.”
“강 대표가 아니었으면 이번 시즌에 우승까지는 어려웠을 거야. 내년에도 잘 부탁해.”
장수영과 지영욱의 트레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
그건 그렇고, 추가 전력 보강에 나설 계획인 것 같으니 혹시 어느 포지션을 강화하려는지 확인 좀 해볼까?
“이번 시즌 울프스 정도면 전력 유지만 잘해도 되지 않을까요?”
“우승 시즌 전력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서 다음 시즌에도 우승하는 건 아니더라고. 주축 선수들 한두 명만 부진해도 팀 구성이 와르르 무너지니까.”
역시 우승을 많이 해본 단장이라 달라도 뭔가 달랐다.
“어떤 포지션 쪽에서 추가 보강하실 생각이신데요?”
“선수층을 두텁게 해줄 수 있는 선수라면 얼마든지 고려해 봐야지. 그래야 변수가 생겨도 바로바로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럼 당연히 저희 에이전시에 고지훈 선수부터 영입하셔야겠네요.”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슬쩍 떠봤다.
“고지훈도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말이야. A등급이라는 게 많이 아쉽네.”
박영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울프스 입장에서는 쉽지 않으시죠?”
“FA로 영입할 때 보상 선수로 1군급 선수 한 명을 보내야 하니까…… 자칫하다가는 우승했던 팀 구성이 깨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긴 하지.”
FA A등급인 선수를 영입할 때는 보상 선수로 준주전급 선수 한 명을 상대 팀에 보내줘야 했다.
탄탄하게 선수 구성이 완료된 울프스라면 부담스러울 만한 상황이었다.
“지금 외국인 선수들도 다 잘했으니까 재계약하실 거죠?”
“그래야지. 우승하는 과정에서 자기 역할도 잘해줬고, 교체한다고 해서 이것보다 더 좋은 활약을 한다는 법도 없잖아.”
FA 영입도 조심스럽고, 외국인 선수도 바꾸기 어렵고.
우승을 거둔 팀의 구성을 가급적 흔들지 않으면서 전력 보강을 한다는 건 역시나 쉬운 게 아니었다.
여기서 서성민을 제안해 볼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다.
야수 뎁스를 두텁게 할 수 있는 방법인 건 틀림없으니까.
하지만 울프스는 이미 주전과 백업이 탄탄하게 자리 잡힌 팀이기 때문에, 서성민이 이곳에 들어간다면 경기 출전 기회를 얻기가 너무 어려울 게 분명했다.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서성민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팀이었다.
“잘한 팀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승을 했다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게 아니라니까.”
엄살을 부리는 듯한 말과는 달리 박영노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시즌 개막할 때까지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또 차 한잔하자고.”
박영노 단장과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곧바로 인사를 건넸다.
“강현우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눈앞에 선 사람은 문종민 MBS 방송국 스포츠 본부장이었다.
-얼마 전 본부장으로 승진하며 방송에 새로운 변화를 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강현우를 특별 해설 위원으로 영입하고 싶다.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방송 잘 봤어요.”
“방송이요……?”
“선수들이랑 포스트시즌 경기 해설하시던 거, 재밌던데요.”
하긴, 그것도 방송이기는 방송이지.
“하하하. 본부장님께서 재밌게 봐주셨다니 영광이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나중에 특별 해설로 한번 출연해 주시는 거 어때요?”
“정말 제가 해도 괜찮을까요?”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의 뒷이야기도 해주시면 시청자분들도 재밌어하실 거 같은데요?”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 많은 직업이라서요.”
“그거야 당연히 저희가 현우 씨 일정에 맞춰야죠. 국내 최고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시는 회사 대표님이신데요.”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면 거절할 수가 없죠. 연락 주세요.”
조만간 공중파 진출까지 하게 생겼다.
그 이후로도 여러 야구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선수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작년에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올해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반갑게 인사만 건넸던 작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나에게 진지한 제안을 건네 오는 관계자들이 여럿 있었다.
모든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나와 우리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야구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현우 씨!”
나를 부르는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나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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