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쉽지 않은 FA 협상 (5)
“현우 씨. 잘 지냈어요?”
나를 부른 사람은 바로 임예지였다.
5개월쯤 전, 내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간 이후에는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대표님, 오랜만에 뵙네요.”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며 임예지와 오랜만에 악수를 나눴다.
-강현우가 독립해서 보여준 성과에 감탄하고 있다.
-더블즈에 고지훈을 대체할 만한 선발 투수 !@x$를 제안했다.
더블즈가 이렇게 뻣뻣하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임예지 때문이었구나.
더블즈에 고지훈을 대체할 만한 선수를 제안했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판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이 끼어들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인간적인 감정에 호소할 게 아니라 철저하게 비즈니스에서 승리하는 수밖에.
“이제 강 대표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임예지에게서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니 사뭇 어색했다.
“새로운 에이전시에서 잘하고 계신 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오는 능력도 뛰어난지 이번에 알았네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운이 좀 따라줬습니다.”
운이 좋다는 말에 임예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요즘에는 고지훈 선수 FA 협상으로 정신없겠네요?”
“그럼요.”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글쎄요…….
대표님이 더블즈에 다른 대안을 제안해 주신 것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협상이라는 게 한 번에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현우 씨라면 충분히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요. 반드시 잘되게 만들어야죠.”
소속 선수에게 최고의 계약을 안겨주고 싶다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임예지와 처음으로 맞붙는 만큼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것.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요.”
임예지는 옅은 미소를 보이고는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내가 임예지와 인사를 마치자 곧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강 대표님.”
“단장님 오셨어요?”
버팔로즈 최민성 단장이었다.
-고지훈이 시장에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하고 있다.
-과한 조건이 아니라면 영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얼마 전, 오석훈과 박성주의 연봉 협상을 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방금 로비에서 했던 인터뷰가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가 어떻든 우리로서는 나쁠 게 하나도 없는 내용이었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최민성은 나를 데리고 행사장 밖의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누가 듣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까지 했다.
“무슨 일이세요?”
정보창으로 왜 이러는지를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할게요.”
나는 최민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지훈, 영입 가능합니까?”
“그거야 당연히 FA니까요. 누구나 영입할 수 있죠.”
나는 농담을 던진다는 생각으로 던졌는데, 최민성은 그런 걸 받아줄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더블즈하고는 어느 정도로 진행된 겁니까?”
“여러 방법으로 논의 중입니다. 이제 막 협상 시작한 거니까요.”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 중인 건 아닌 거죠?”
“이미 기사로도 보신 것처럼 조건을 맞춰보고 있는 단계입니다.”
“음…….”
최민성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결단을 내린 듯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랑도 제대로 얘기해 봅시다.”
“저희야 얼마든지 환영이죠.”
나는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겨우 감추며 답했다.
“내일 시간 괜찮죠?”
“오전에는 더블즈랑 약속이 되어 있어서요.”
“더블즈? 그냥 미루면 안 되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그렇죠?”
앞으로 안 보고 살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 거기랑 얘기 끝나자마자 보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나는 최민성 단장과 구체적인 시간 약속까지 잡은 후에야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이런 분을 다 뵙네.”
“어, 감독님?”
내 눈앞에는 이번에 새로 부임한 김상문 국가대표 감독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상문 감독은 몇 년 뒤에 있을 국제 대회를 앞두고 일찌감치부터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선임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국제 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고 제대로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국가대표 감독과도 만나게 될 줄이야.
나는 김상문 감독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독님, 이번에 부임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김상문이 손을 내밀자 나는 자연스레 악수를 나눴다.
-국제 대회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국가대표로 선발할 선수들을 고민하고 있다.
“만나서 반가워요. 언제 한번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 저를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선수 보는 눈부터 육성까지 실력이 탁월하다고요.”
김상문은 입가에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몇 번 운이 좋았던 겁니다.”
“운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한테는 따르지 않는 법이니까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국가대표님 감독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정말 민망했다.
“나중에 자리 한번 만들죠. 제가 여러모로 조언을 구할 게 많을 것 같네요.”
“저야 영광입니다.”
국가대표 감독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었다.
* * *
이제 시상식이 시작할 시간이 되자 나를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았다.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시작으로 시상식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구단별로 테이블을 나눠서 앉아 있었고, 나는 다른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서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이번 시즌 골든글러브가 주인을 찾아갈 순서였다.
오석훈과 나준호는 외야수 부문, 박성주는 3루수 부문, 장수영은 투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골든글러브가 포지션별로 하나둘씩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고 있었다.
1루, 2루를 거쳐 이제 드디어 3루수 부문.
박성주는 물론이고 내 손에도 땀이 쥐어졌다.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과연…… 수상자는 누구일까요?”
시상하는 사람은 박성주의 숨이 넘어가고 있는 걸 모르는지 한껏 뜸을 들였다.
“수상자는…… 버팔로즈의 박성주 선수입니다!”
“우와!”
박성주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대박! 성주야 축하해!”
특히 옆에 앉아 있던 오석훈이 박성주의 머리를 두 손으로 쥐고 흔들며 격하게 기쁨을 표시했다.
“하아…….”
박성주는 깊은숨을 내쉬며 일어나 축하해 주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축하한다.”
나준호와 장수영도 박성주에게 다가와 포옹을 하며 축하를 건넸다.
박성주는 단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골든글러브를 건네받고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박성주 선수,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박성주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우선 프로야구와 버팔로즈를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홈런을 칠 때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내년에는 홈런 더 많이 쳐서 응원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 박성주! 박성주!”
관중석에 있던 버팔로즈 팬들이 또 한 번 뜨거운 환호를 보내줬다.
“그리고 드림 에이전시 식구들도 고맙고, 특히 강현우 대표님…….”
박성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경기장에서 홈런 치는 거하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 수상 소감 말해보는 게 제 꿈이었는데요.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고 있죠? 우리 영원히 함께해요.”
박성주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갑자기 카메라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
뭐라도 액션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 두 손으로 크게 원을 만들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로 박성주의 수강 소감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의 학창 시절 감독, 코치님까지 등장했다.
“내년에도 많이 사랑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특히 버팔로즈가 다시 우승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수상 소감을 마친 박성주는 다시 한 번 골든글러브를 힘차게 들어 올리며 기뻐했다.
이후로도 시상식은 계속 진행됐다.
“이제 드디어 외야수 부문입니다.”
화면에는 외야수 후보들의 경기 장면이 흘러나왔다.
“외야수는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포지션 관계없이 3명의 선수를 선발하게 됩니다. 그럼 과연 수상자는 누구일까요?”
긴장감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평온해 보이는 나준호와는 달리 오석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오석훈 옆에 있던 박성주는 이번에도 긴장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버팔로즈의 오석훈 선수! 드래곤즈의 나준호 선수! 그리고 엔젤스의 이상훈 선수입니다!”
오석훈과 나준호의 이름이 모두 불리자 우리 에이전시 식구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또 한 번 축하를 건넸다.
수상자인 세 사람은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골든글러브 트로피를 받자 나준호와 이상훈이 오석훈에게 먼저 서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오석훈이 마이크 앞에 섰다.
여성 팬들의 열렬한 환호가 귀를 찢을 듯이 터져 나왔다.
“어…….”
오석훈은 단상에 올라가면서부터 눈물을 글썽이더니 첫 마디를 시작하기도 전에 등을 돌렸다.
뒤에 서있던 나준호가 다가와 오석훈의 등을 두드려줬다.
“울지 마! 울지 마!”
팬들의 뜨거운 환호도 함께였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오석훈이 다시 관중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몇 년 동안 1군에서 자리를 못 잡고 2군을 오고 가면서 이제 제 야구는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1군 경기에 주전으로 뛰게 되고,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큰 상을 받게 된 건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일인데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벌써부터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기적을 있게 해준 최고의 형이자 선배이신 현우 형,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카메라가 나를 비췄다.
지금은 무슨 액션을 취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잊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석훈이 수상 소감을 마치며 꾸벅 인사를 하자 관중석에서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환호성과 박수는 오석훈이 무대를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나준호도 이어지는 수상 소감에서 나와 우리 에이전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장수영도 이번 시즌에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투수 부문은 경쟁이 너무 치열했던 탓에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실력으로는 충분히 수상할 만했지만 아무래도 팀 성적이 아쉽다 보니 선수 개인이 좋은 성적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장수영은 이런 자리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뿌듯해했다.
이로써 축제는 모두 끝났다.
즐거운 시간도 여기까지.
이제 다시 협상으로 돌입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프로야구의 스토브리그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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