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쉽지 않은 FA 협상 (6)
더블즈와 두 번째로 만나 협상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첫 협상 이후에 흘러나간 기사들도 그렇고, 시상식에서의 내 발언도 들었을 테니 협상을 진행하는 데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김규상 더블즈 단장을 만났다.
하지만 협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오늘 이 자리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 자리에서 고지훈 협상의 결론을 내리고 싶다.
-고지훈이 무리한 부탁을 한다면, 엔젤스 FA 선발 투수 고성표를 대신 영입할 계획이다.
임예지가 제안했다는 선수가 엔젤스 고성표였구나.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이기도 하고, 고지훈보다 나이도 3살이나 어리니 충분히 매력적인 카드지.
냉정하게 말해서 더블즈 입장에서는 고지훈을 잃더라도 고성표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전력 보강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저렇게 뻣뻣하게 나올 수 있는 거겠지.
“에이전시에서는 생각 정리를 좀 해보셨습니까?”
김규상은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나에게 물었다.
“저희 쪽 생각은 지난번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계약 기간은 4년으로 하고 옵션 조항에 대해서 논의해 보시죠.”
“4년 보장이요? 계약 기간에 대해서 동의가 어려우시다면 오늘 자리에서도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김규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반응을 본 나는 깊은숨을 내쉬는 것과 함께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더블즈에서는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나 봅니다.”
아무리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존중하는 느낌은 분명히 아니었다.
“저희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최대한 잡아야죠.”
김규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안해주신 내용이랑 하시는 말 사이에 괴리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네요.”
“비즈니스는 분명히 비즈니스니까요. 구분은 확실하게 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비즈니스, 틀린 말은 아니지.
“단장님께서 FA 선수를 영입할 때 몸값을 책정하시는 기준은 뭔가요?”
“그야, 미래 가치죠. 이 선수가 우리 구단에 있는 동안 어느 정도의 가치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요.”
“그럼 고지훈 선수의 미래 가치가 이 정도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시네요? 고작 3년 20억 원?”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최근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더블즈 구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으신 거 아닙니까?”
“어떤 영향을 말씀하시는 거죠?”
“팬들이 더블즈 선수 중에서 고지훈 선수를 특히나 좋아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요.”
고지훈이 선발 등판하는 경기에는 평균적으로 더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다른 선발 투수 경기보다 TV 시청률이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김규상이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중요한 하나를 빠트렸네요.”
“……?”
“수요와 공급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죠. 우리 팀 정환이가 드림 에이전시 소속이기도 해서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려고 합니다만, 저희도 시장의 반응이 어떤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
내가 가만히 듣는 사이, 김규상은 몸을 살짝 앞으로 당기며 말을 이어갔다.
“냉정하게 말해서 국내 구단 중에서는 고지훈 선수를 영입하려고 하는 팀은 없을 겁니다. A등급 선수를 영입할 때 감수해야 하는 출혈이 너무 크잖아요. 경쟁이 붙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가격이 높아지기는 어렵겠죠. 그렇다고 해서 고지훈 선수가 해외 무대에 진출하는 것도 무리일 테고요.”
“그럼 지난번 제안이 최대치라는 의미이신 거죠?”
돌리고 돌려서 말했을 뿐, 결국 지난번 미팅과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았다.
“한발 양보해서 계약 기간을 4년으로 조절하는 부분은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팀 선수를 위해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네, 정말 고맙네요.
“그럼 더블즈 측 제안은 4년 25억 원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아니요. 4년 23억 원이요.”
김규상의 말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 23억이죠? 연봉 5억 원으로 계산하면 한 시즌이 더 늘어나서 25억 원이 맞을 텐데요.”
“마지막 시즌은 3억 원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4년 차라면 나이가 36세인 건데, 그때 보여줄 퍼포먼스가 좋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요.”
4년 25억 원도 만족스러운 제안이 아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아니었다.
“더블즈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협상은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될 것 같네요.”
나는 가져온 가방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지훈 선수에게도 잘 전달해 주세요. 빨리 계약을 완료하고 홀가분하게 시즌 준비해서 다음 시즌에는 함께 우승 노려보자고요.”
김규상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인사만 하고 단장실을 빠져나왔다.
“……후우.”
나준호 협상 때와는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다.
내가 에이전트로서 듣고 있는 것도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는데.
만약 선수가 직접 협상을 진행했다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선수 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을 법한 상황이었다.
나는 더블즈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이수민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협상이 잘 안되나 보네.
└드림 에이전시에서 고지훈 몸값 올리려고 언플 하는 듯.
└고지훈이 다른 팀 유니폼 입는 건 상상이 안 가는데.
└말만 이렇게 하다가 계약하겠지. 설마 이적할까?
└하긴, 고지훈도 더블즈 부심 크잖아.
└결국 프로 선수는 연봉으로 평가받는 거 아니겠냐.
└더블즈도 적당히 밀당하다가 잡긴 잡아야지. 타 팀 이적하면 난리 난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강현우가 나준호도 드래곤즈 잔류시켜 줬으니까. 이번에도 해주지 않겠어?
└고지훈도 더블즈 영구 결번 가야 한다고!!! 강현우 제발 잘해줘라!
* * *
시상식장에서 약속한 대로 나는 더블즈와의 미팅을 마치자마자 버팔로즈 최민성 단장을 만나러 이동했다.
-고지훈 영입전에서 다른 팀과 경쟁할 가능성은 희박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고지훈 영입을 위해 최대 총액 50억 원 정도까지는 지출할 의향이 있다.
경쟁할 가능성이 희박할 거라고 예상한다…….
보면 볼수록 자존심 상하는 문장이었다.
버팔로즈가 영입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말은 모순이 생기게 된 거지만 말이다.
다행인 건, 더블즈보다 준비한 총액이 많다는 점이었다.
“강 대표님, 지난 후반기에 제가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아십니까?”
“속이 쓰리시다니요?”
“마이클 스콧 던지는 거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던지. 원래 저 선수가 우리 선수였는데 말이야 하면서요.”
“이번에라도 좋은 선수 놓치지 않으시면 되죠.”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나저나 고지훈 선수랑 더블즈의 계약이 쉽지는 않으신 듯합니다?”
최민성도 이미 여러 기사들을 봤을 테니 분위기를 짐작하는 것도 당연했다.
“계약을 하면서 처음부터 의견이 맞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고지훈 선수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제안이 적당할까요?”
“다른 팀보다 더 나은 제안을 해주셔야죠.”
정보창에서 버팔로즈가 생각하는 최대 액수를 알고 있었지만, 굳이 내가 먼저 카드를 열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저희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총액 40억 원 정도 준비돼있습니다. 4년 계약에 계약금 8억 원에 연봉 8억 원씩이요.”
우선 첫 제안부터 더블즈의 조건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정보창이 말해주듯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었다.
“버팔로즈에서 확실히 영입을 하시려면, 여기서 조금은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에이전시에서는 어느 정도를 생각하시나요?”
“4년 60억 원입니다.”
“60억 원이요……?”
최민성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버팔로즈에서도 선발 투수진을 강화하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죠.”
“고지훈 선수를 영입하신다면 그 부분 확실하게 충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최민성의 눈을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60억 원은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단장님, 국가대표급 선발 투수입니다. 지금 더블즈에서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최고로 꼽히는 선수이기도 하고요. 분명히 6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수입니다.”
포스트시즌 같은 중요한 단기전에서 2선발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그렇기는 한데…….”
최민성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상이 걱정이신 거죠?”
“그렇죠. 고지훈 선수의 커리어 기록만 봐도 한 시즌을 부상 없이 소화한 적이 많지 않잖아요. 애초에 완투를 기대할 수 있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기도 하고요.”
최민성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단장님, 그럼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요?”
최민성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말을 이어갔다.
“60억 원 중에서 일부는 옵션 조항을 넣죠. 출장 경기 수랑 이닝 수 조건을 넣는다면 구단 입장에서도 충분히 리스크를 줄이실 수 있을 테니까요.”
“음……. 확실히 옵션이 필요해 보이기는 하는데.”
뭔가 또 할 말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총액을 50억 원 정도로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정보창에서 확인한 대로였다.
협상을 통해서 10억 원이나 높여준 것 같지만, 버팔로즈에서 이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저희 제안은 60억 원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답할 수 있었다.
“음……. 60억 원이요.”
사실 아무리 단장이라고 해도 당장 10억 원의 추가 지출을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하시지는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더 경쟁이 붙기 전에 빠르게 계약하시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되겠죠.”
“총액은 60억 원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나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저희가 준비한 것과는 차이가 좀 있어서요. 구단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 말도 빠트리면 안 되지.
“그리고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죠?”
“고지훈 선수의 선발 보직을 보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지훈 선수를 영입하면 당연히 선발로 써야죠. 그러려고 영입하는 건데요.”
최민성이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계약서로 정확하게 보장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 말은…… 선발 보직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자는 건가요?”
내 한마디에 최민성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네, 저희 선수가 정말 원하는 조건이라서요.”
“음…….”
최민성의 얼굴에서는 연봉을 논의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스러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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