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쉽지 않은 FA 협상 (7)
협상을 진행하면서 언론이나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건 중요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전략이 나만 활용할 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당황스러운 뉴스를 보게 됐다.
└기사 내용대로면 강현우가 과하게 지른 거 같은데?
└고지훈이 솔직히 애매하긴 하다. 놓치기는 아까우니까 잡기는 잡아야겠는데, 그렇다고 오버페이 하기에는 내구성이 확실하지가 않고.
└3, 4년 뒤에는 악성 계약될지 몰라도, 당장은 건강하기만 하면 리그 톱클래스 선발 투수인데 잡아야지.
└나준호 때처럼 6년 제안했다는 썰이 있던데.
└ㄹㅇ? 그런 거면 그냥 버려라. 더블즈 욕할 게 아니었네.
└강현우 벌써 돈독 오른 거 봐라. 이래서 빨리 성공하면 안 된다니까.
└ㅁㅊ 지금 고지훈 나이에 6년 제안이면 말이 안 되지. 어떻게 생각해 봐도 이건 실드 불가다.
“진짜 어이없네.”
나는 기사를 보자마자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무리한 조건을 요구했다고?
게다가 6년 계약을?
분명히 이 기사는 더블즈에서 흘러나왔을 텐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지.
나의 승부욕을 활활 불타오르게 만들어주는구나.
나는 우선 고지훈을 만나기로 했다.
이제까지의 진행 상황을 전달해 주면서, 이적 가능성에 대한 본인의 의사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가도, 막상 팀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 생각이 복잡해질 법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협상 과정이 궁금해서라도 나에게 한 번쯤 전화를 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협상 기간 동안 고지훈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먼저 묻지 않았다.
나를 믿고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겠지.
나는 고지훈과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더블즈하고 계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응.”
고지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으면서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더블즈 쪽이랑은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그래?”
“최종안은 4년 23억 원이에요.”
“4년 23억 원……?”
구체적인 액수를 듣자 고지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첫 제안이 3년 20억 원이었는데 추가로 협상 진행하면서 좋아진 상황이에요.”
나는 고지훈의 표정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급하게 한 마디를 덧붙인 거였는데,
“…….”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훨씬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괜히 말해줬나.
“아직 초반이기도 하고요. 다른 구단하고도 협상 진행 중이니까요, 조건이 좋아질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어요.”
내 말을 듣고 고지훈이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정말 더블즈한테 6년 제안을 한 건 아니지?”
“물론 아니죠. 계약 조건을 여러 가지 고민해서 제안하기는 했어도, 6년을 제안하는 건 계획에 없었어요. 솔직히 거기까지는 무리잖아요.”
“그럴 리 없을 거 같으면서도, 혹시나 했거든. 준호 선배 일도 있다 보니까.”
“선배한테도 장기 계약이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투수는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그럼 지금까지는 어디가 제일 좋은 조건이야?”
고지훈이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버팔로즈요.”
“버팔로즈…….”
“계약 조건에서 차이가 큰 편이라, 이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셔야 할 것 같아요.”
“버팔로즈 쪽 조건은 괜찮다는 말이지?”
고지훈은 고개를 들어 올려 생각에 잠기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그리고 조건은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선발 투수 보장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건 협의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어려우면 안 넣어도 돼. 물론 되면야 좋겠지만, 까짓거 내가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지. 내가 잘하면 선발 투수로 안 쓸 리는 없잖아?”
“그렇기는 하죠.”
내 부담을 덜어주려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 * *
고지훈을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이제까지의 협상 진행을 정리해 봤다.
우선 더블즈.
자존심을 무너뜨릴 정도로 낮은 제안을 한 것도 모자라 언플까지.
사실상 협상은 결렬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도 더블즈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 이적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 팀으로 유력한 곳은 버팔로즈.
버팔로즈 입장에서도 고지훈을 영입한다면 투수진을 훨씬 탄탄하게 만들 수 있었고, 고지훈으로서도 몇 년 안에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에서 뛸 수 있다면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버팔로즈에서는 선발 투수 보장 조항을 넣는 것에 심각한 난색을 표했다.
고지훈은 그 조항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꼭 넣고 싶었다.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재규어즈에는 내가 역으로 제안을 해볼 생각이었다.
재규어즈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선발 투수 보강을 할 필요가 있는 팀이었으니까.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이주혁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앞에 커피가 담긴 컵을 내려놓았다.
“대표님, 한 잔 드시면서 하세요.”
“고마워요.”
커피가 가득 담긴 컵에는 각얼음이 동동 떠있었다.
날씨가 쌀살하기는 했지만,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한 게 없었다.
이제 내 취향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구단하고 만나서 협상하는 게 쉽진 않으시죠?”
“아무래도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어렵네요.”
“대표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주혁이 내 뒤로 오더니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요즘 숙소에서 별문제 없죠?”
“다들 시즌도 끝났으니까 쉰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훈련하던데요. 기술적인 훈련만 안 할 뿐이지, 웨이트 트레이닝은 시즌 때랑 다른 게 하나도 없어 보여요.”
“진짜 우리 선수들이긴 하지만 대단하네요.”
“열심히 하는 모습 보니까 저도 부족한 거 없이 챙겨주고 싶더라고요.”
시즌이 끝난 시기이기는 했지만, 선수들에게는 사소하게라도 지원이 필요했다.
그 부분을 이주혁이 깔끔하게 해결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FA 협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 주혁 씨. 혹시 펠리컨즈에서는 아무 연락 없었나요?”
문득 소영준의 연봉 협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네. 구단에 전화도 해보고 서면으로 연락까지 했는데, 다른 말이 없네요. 제가 직접 찾아가 볼까요?”
“아니에요. 거기는 제가 직접 가볼게요.”
이주혁을 대신 보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펠리컨즈 단장은 고지훈의 FA 협상을 마친 다음에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다.
* * *
그러던 중에 전혀 뜻밖의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엔젤스였다.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일단 조건은 다 들어볼 필요가 있으니 만남을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FA 고성표를 잔류시키고 새로운 투수까지 영입해 선발 투수진을 탄탄하게 하고 싶다.
-전력 강화를 위해 올해 FA 시장에서 영입할 만한 선수는 고지훈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고지훈의 영입에 관심이 있었다면, 왜 장수영하고 연봉 협상을 할 때 그런 제안을 했던 거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수영과의 연봉 협상에서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앙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조재원이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고지훈 선수 협상 때문에 이리저리 바쁘시죠?”
“아무래도 그렇죠. 여러 팀들 만나야 하니까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보다 말투는 물론이고 나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엔젤스에서도 고지훈 선수한테 관심을 갖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저희도 내년부터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선발 투수 보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그럼 고지훈 선수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나요?“
“옵션 포함해서 4년 총액 55억 원 정도면 괜찮을까요?”
일단 더블즈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인 건 분명했다.
버팔로즈에서 총액 60억 원에 동의할지 아닐지는 기다려봐야 하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엔젤스가 가장 좋은 제안을 던진 셈이었다.
“옵션이 어떻게 되죠?”
내 말에 조재원이 기다렸다는 듯 서류를 건넸다.
“선발 등판 횟수와 이닝으로 넣었습니다. 고지훈 선수가 부상 없이 시즌 소화만 한다면 무난하게 받아 갈 만한 조건일 겁니다. 액수는 15억 원이고요.”
나는 천천히 조항을 읽어내려갔다.
구단에서 이 정도 안전장치를 두고자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다.
지금 시장 상황으로 봤을 때 그렇게 나쁜 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넣었으면 하는 조항이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조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고지훈 선수가 선발 투수 보직을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점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데요. 계약서에 명시하기도 하고요.”
“선발 투수 보장이요……?”
“네.”
내 대답을 들은 조재원이 잠시 고민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2년 정도 확실하게 보장하는 건 어떨까요. 고지훈 선수를 선발 투수로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4년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잖습니까.”
처음으로 확실하게 선발 투수 보직을 보장받았다.
4년은 아니었지만 결코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연봉 총액부터 선발 보장 옵션까지 전체적으로 제안이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질 않지.
“엔젤스 생각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럼 선수 본인의 의견을 물어보고 다시 말씀드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마침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블즈 단장의 뻣뻣한 고개를 숙이게 만들 만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엔젤스로서도 위험 요소를 알게 되는 것이니 나쁠 게 없었다.
“제가 일어나기 전에 단장님께 좋은 정보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요.”
“어떤 거죠?”
“엔젤스에서는 고성표 선수랑 계약하실 계획이죠?”
“그거야 물론이죠. 우리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니까요.”
조재원이 당연한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성표 선수부터 제대로 잡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여차하다가 다른 팀이 먼저 도장 찍을지도 모르니까요.”
“고성표 선수를 탐내는 구단이 많을 거라는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조재원의 표정을 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만한 상황이 아닐 텐데.
“지금 물밑에서는 선수 쪽 에이전시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구단하고도 협상이 꽤 진행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여유 부리셔도 괜찮으실까 싶네요.”
“……YJ 에이전시에서 다른 팀하고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요? 저희랑 얘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상황인데요? 확실한 근거가 있는 말씀인가요?”
“제가 단장님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잖아요.”
“어…….”
이제서야 조재원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00원이라도 돈 더 주겠다는 구단이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이적시킬 곳이 YJ 에이전시입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도장 찍으세요. 지금 제안했던 것보다 돈도 더 준비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내 말을 들은 조재원이 멍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굳어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단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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