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쉽지 않은 FA 협상 (8)
이번에는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을 찾았다.
재규어즈에게는 오히려 고지훈을 제안해보기 위함이었다.
“아이고, 우리 강 대표 어서 와.”
오늘도 역시나 조광훈 단장은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줬다.
조광훈과 마주 앉으면서 그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지훈 영입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혹시나 강현우와의 관계가 틀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아쉽게도 재규어즈에서는 부정적이구나.
이미 결과는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물어봐야지.
“재규어즈에서는 어떠신가요?”
“고지훈 영입을 진지하게 고민을 했는데 말이야……. 코칭스태프 쪽에서 그리 탐탁지는 않아 하네.”
조광훈이 조심스럽게 내 말에 답했다.
“그러시군요.”
“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설득을 해보려고 했는데도 현장도 그렇고 사장님도 그리 호의적이지가 않아서…… 미안하게 됐어.”
“단장님께서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죠. 단장님은 팀에 필요한 선수를 영입해야 하는 거니까요.”
“강 대표가 멀리까지 왔는데,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
사실 오늘 내가 재규어즈 구단을 찾아온 데는 영입 제안 말고도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런 부탁을 믿고 할 수 있는 단장은 조광훈 단장이 유일했다.
“그럼 단장님,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부탁?”
나는 궁금해 하는 조광훈에게 내 계획을 말했다.
이미 이수민에게도 전달해둔 내용이었다.
“그런 거야, 당연히 도와줘야지.”
조광훈은 역시나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역시 시원시원한 성격이 이런 점에서는 참 좋다니까.
“단장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대신에 나랑 했던 약속은 잊지 않았지?”
“약속이요?”
내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조광훈이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까먹으면 안 되지! 타자 용병은 이번에 무조건 우리랑 계약하는 거야.”
“아아, 그거야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조광훈은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
“제가 여기 들어오는 모습하고요. 단장님하고 차에서 얘기 나누는 것까지 해서 몇 장 찍어보죠.”
“자연스럽게 나올지 모르겠네. 사진 찍는 거는 영 어색해서 말이야.”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광훈 얼굴에 어느새 긴장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 진짜 다음 시즌 얘기 나눠보시죠.”
“그래, 그러자고.”
나와 조광훈은 단장실을 나가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주차되어 있던 내 차에 타서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액션을 취했다.
그사이 재규어즈 구단 관계자가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진짜 야구 얘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내년에 어떤 스타일의 타자 용병이 필요하세요?”
“음……. 아무래도 지금 장타가 부족해서 말이야. 공격에서 중심을 맡아줄 만한 타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번 시즌 재규어즈는 팀 홈런이 최하위를 기록했다.
타자 용병이 부진했다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다른 타자들의 홈런도 많이 부족했다.
“그럼 홈런 능력을 갖춘 코너 야수라고 보면 될까요?”
“중견수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럼 홈런 타자를 찾기가 어려울 텐데요?”
아무래도 홈런 타자는 1루수, 3루수나 좌익수, 우익수 같은 코너 수비수들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홈런 타자는 우리 팀에도 유망한 선수들이 몇몇 보이기는 하니까, 장기적으로 그 선수들 중에서 키워볼까 해서. 그리고 당장 외야 수비를 안정화해야 할 필요도 있고 말이야.”
재규어즈는 작년 겨울에 주전 중견수였던 이상훈이 엔젤스로 이적한 이후로, 지난 시즌 내내 주전 중견수를 찾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내가 타격이 조금만 좋았다면 충분히 그 중견수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가정이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염두에 둔 선수가 있어?”
조광훈이 기대에 찬 얼굴로 슬쩍 물었다.
“현지에서 데이터를 받고 있기는 한데요. 정확한 건 미국으로 가서 직접 보고 결정해 보려고요.”
지난번에 미국에서 만났던 알렉스가 꾸준히 현지 선수들의 데이터와 영상을 보내주고 있었다.
눈길이 가는 선수가 있기는 했는데, 영상만으로 결정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이제 현지 네트워크도 있나 봐?”
“단장님, 그래도 저 이제 에이전시 대표입니다.”
“하하하. 그렇지. 몇 년 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 됐어.”
조광훈이 호탕하게 웃으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몰입해서 야구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나와 조광훈 모두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나는 그중 괜찮은 사진 몇 장을 골라 이수민에게 전송했다.
이제 됐다.
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협상 테이블에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낼 만한 소재가 될 거다.
* * *
에이전시 숙소 거실에 유리로 된 진열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석훈과 박성주가 자신들의 트로피를 놓을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해서 공간을 따로 빼놓았다.
점점 트로피는 많아질 테니, 거실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큼지막한 사이즈로 주문했다.
진열장이 설치가 완료되고 드디어 골든글러브 트로피를 올려놓으려고 하는데,
“성주야, 트로피 이제 줘봐. 올려두게.”
“잠시만요. 여기만 닦고요.”
박성주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트로피를 닦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트로피 닳겠다.”
“여기 약간 얼룩이 있는데, 아무리 닦아도 안 없어지네요.”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입으로 불어가며 닦는 중이었다.
“그 정도면 깨끗하네. 어차피 트로피를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보는 사람도 없을 거야.”
“잠시만요.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닦아 볼게요.”
박성주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트로피를 닦는 데 열중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만하고 이제 넣는 게 어때?”
“이제 다 됐어요.”
박성주는 귀중한 보물이라도 옮기는 것처럼 트로피를 두 손으로 들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장 높은 곳에 조심스럽게 올려뒀다.
드디어 오석훈과 박성주의 골든글러브가 진열장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몇 년 후면 여기도 가득 차서 자리가 없겠죠?”
박성주가 뿌듯한 표정으로 트로피를 바라보며 말했다.
“머지않아 그렇게 되겠지? 우리 선수들은 앞으로도 다들 잘할 테니까.”
“하하하.”
박성주는 상상만으로도 뿌듯한지 호탕하게 웃었다.
진열장이 트로피로 가득 차는 것도 즐거운 일이긴 했지만,
“상 받는 게 야구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걸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는 마.”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상 받으면 기분은 좋잖아요.”
하긴 박성주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선수였다.
“그래. 성주 네가 여기 좀 가득가득 채워줘.”
선수가 즐거워하는 걸 굳이 억누를 필요는 없겠지.
“네. 제가 한번 채워볼게요.”
박성주는 진열장을 만지며 흐뭇하게 웃었다.
“근데 성민 선배도 와 계신 거 같던데, 어디 계셔?”
내가 아무리 주변을 두리번거려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겠어요.”
박성주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오석훈의 표정을 보니 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와 진짜 지훈 선배가 훈련량으로는 끝판왕인 줄 알았는데, 더 대단한 선배가 있었어요.”
오석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야?”
“그냥 저희가 훈련하는 거에 두 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아니지 두 배가 뭐야, 훨씬 많죠. 타격을 왼손으로 했다가 오른손으로 하고, 내야 수비 훈련도 했다가 외야 수비도 하고.”
사실 오석훈과 박성주의 훈련량도 만만치 않은 편이었다.
다만 서성민이 말도 안 되게 많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어쩔 때는 부상이 걱정되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오른손 타자라고 해도 되겠던데요?”
“정말?”
요즘 바빴던 탓에 직접 보지는 못하고 이주혁이 찍어서 보내주는 영상으로 보기는 했는데, 프로 선수가 직접 보고 느꼈다는 건 확실하다는 말이겠지.
“오른손으로는 파워가 훨씬 좋으신 거 같아요. 원래 오른손잡이여서 그런 건가?”
오석훈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주로 사용하는 손의 힘이 좋긴 하니까.”
“양손으로 다 타격할 수 있는 건 부럽네요.”
오석훈이 오른손 방향으로 스윙하는 자세를 취하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오! 지훈 선배 영입도 경쟁이 치열한가 봐요?”
박성주가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며 말했다.
“기사 나왔어?”
“네, 지금 선배 사진도 올라왔는데요.”
나는 곧장 내 스마트폰을 켜서 기사를 확인했다.
만족스러운 헤드라인과 함께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과 일부러 찍힌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확실히 조광훈 단장과 비밀리에 만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법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몰래 찍힌 듯한 느낌이 잘 살아 있었다.
└ 은근히 고지훈 인기가 많네.
└아무리 전성기는 꺾였다고 해도 당장 웬만한 팀에서는 국내 1선발급인데 경쟁 붙을 만하지.
└엔젤스에서도 찔러봤다는 얘기가 있던데.
└이번 FA 시장에 S급 타자가 없으니까 혜택을 보긴 할 거 같다. 이 정도로 계산 되는 선발 투수가 흔한 것도 아니고.
└재규어즈는 타자가 급하긴 해도 고지훈 정도면 영입할 만하긴 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더블즈에서 잡지 않겠어?
└슬슬 경쟁 붙으면 상황 어떻게 될지 모르지.
위이잉-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벨 소리에서부터 다급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발신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나니 입꼬리를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전화 통화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민성 버팔로즈 단장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최민성이 직접 우리 에이전시 숙소를 찾아오기까지 했다.
예감이 좋다.
“단장님, 어서 들어오시죠.”
“오, 에이전시 시설이 상당히 좋네요.”
나는 최민성과 사무실로 들어가는 동안 간단하게 에이전시 숙소를 소개해 줬다.
“우리 선수들이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고 훈련하니까 성적이 좋은 거였군요.”
최민성은 곳곳을 둘러보면서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편하게 쉬고 있던 소속팀 선수 오석훈, 박성주와도 마주쳤다.
“단장님, 오셨어요?”
“석훈이, 성주. 여기서 보니 더 반갑다. 아픈 곳은 없지?”
“컨디션 정말 좋습니다. 당장 시즌 시작해도 될 것 같을 정도예요.”
오석훈의 씩씩한 대답에 최민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훈련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다치지 않게 조심해.”
“네.”
두 선수와도 인사를 마치고, 나와 최민성은 사무실로 들어와 마주 앉았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물론 최민성이 여기까지 왜 직접 찾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고지훈의 영입에 경쟁이 붙었다는 점에 상당히 당혹스럽다.
-고지훈을 꼭 잡아달라는 감독의 부탁에 어깨가 무겁다.
“어떤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지난번과는 달리 내 입가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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