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쉽지 않은 FA 협상 (9)
“고지훈 선수 계약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어서요.”
최민성 버팔로즈 단장이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느껴졌다.
“저희로서도 좋은 조건에 계약할 수 있으면 좋죠. 버팔로즈 쪽 제안이 좋다면 거절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나는 여유를 한껏 즐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옵션 포함해서 총액 60억 원이면 계약이 가능할까요? 보장액 50억 원에 옵션 10억 원으로요. 옵션 조항은 고지훈 선수가 큰 부상만 없다면 아마 무난하게 받아 갈 수 있을 만한 수준입니다.”
60억 원. 분명히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내가 처음 생각해두었던 액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지훈을 꼭 잡아달라는 감독의 부탁에 어깨가 무겁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알게 된 이상, 쉽게 끝낼 수는 없지.
“이 정도로는 조금 어렵겠는데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네? 지난번에 그렇게 얘기 나눴는데요?”
최민성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잔뜩 서려있었다.
“그건 지난번이고요. 단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이제 흘러가는 상황이 여러모로 좀 바뀌었지 않습니까. 고지훈 선수를 영입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구단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요. 단장님께서 여기까지 오신 것도 그것 때문이실 테고요.”
“…….”
최민성은 완전히 협상의 키를 잃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딱딱하게 굳은 채로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다른 구단에서 제안한 내용도 저희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어서요. 버팔로즈에서 조금 더 성의를 보여주셔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어느 정도면 될까요?”
최민성이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갑자기 너무 과한 제안을 한다면 협상 자체가 엎어질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우리로서 실리는 충분히 챙기면서, 상대가 거절하기는 애매한 정도 수준을 제안해야 했다.
“5억 원만 더 얹어주시죠.”
“5억 원이요……?”
“그 정도 보장해 주시면 확실하게 이적할 메리트가 생길 것 같은데요.”
“그 5억 원이 옵션으로 들어가도 되나요?”
“선택은 단장님께서 해주시죠. 하지만 아무래도 저희로서는 보장 금액인 게 좋긴 하죠.”
구단에 선택지를 준 것 같지만, 사실 거절하기는 어려운 제안일 거다.
최민성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는 듯하더니,
“알겠습니다. 보장 금액으로 하죠.”
그렇다면 4년 65억 원.
보장금액 55억 원에 옵션 10억 원.
연봉 조건은 처음 계획보다 더 만족스러운 수준이 됐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게 하나 남았다.
“그리고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렸던 조항을 넣는 건 가능하실까요?”
“선발 투수 보장 요건이죠?”
“네.”
총액까지 우리의 제안대로 맞춰줬으니 이 제안 정도는 그냥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겠지.
“좋습니다, 넣죠. 대신에 저희도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죠?”
“고지훈 선수가 직전 시즌에 100이닝 이상 소화했을 경우에 다음 시즌 선발 보직을 보장해 주는 걸로요.”
“…….”
“물론 100이닝을 못 채웠다고 해서 무조건 불펜으로 보직을 옮기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저희도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있으니까요.”
구단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고지훈이 불의의 부상을 당하는 것만 아니라면 100이닝 정도는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을 만했다.
이쯤에서 받아들여야 협상이 엎어지지 않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그 조항도 추가하시죠.”
“그럼 언제쯤 계약서를 쓸 수 있을까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쓰는 게 느껴졌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다급한 말과 행동은 어쩔 수 없었다.
“고지훈 선수에게 최종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서요. 선수가 결정하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중 최고의 조건이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이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지훈 본인의 생각이 어떤지는 확인을 해봐야 했다.
* * *
나와 최민성 단장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FA 시장에서는 또 하나의 대형 이슈가 터져 나왔다.
└나이스! 일단 최하위 추락은 막았다!
└엔젤스가 그래도 올라가려면 고성표는 기본으로 잡고 가는 게 맞지. 잘했다.
└그래도 국내 1선발은 잡았으니 용병만 잘 뽑아 봐라.
└고성표랑 용병 두 명이 선발 맡고, 장수영이 뒷문 막아주면 나름 투수 운용 계산은 서겠다.
내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걸렸다.
더블즈가 영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고성표는 엔젤스에 잔류했고, 고지훈도 이미 영입 경쟁이 치열하게 붙은 상황이었다.
만약에 고지훈까지 잡지 못한다면 더블즈의 다음 시즌 투수 구상이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금 김규상 더블즈 단장의 표정은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최정환에게 살짝 미안하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통쾌했다.
협상 초반에 조금만 성의를 보여줬다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위이잉-
역시나 내 스마트폰은 쉴 틈이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발신자는 김규상 단장이었다.
“단장님.”
“강 대표님, 지금 어디 계시나요?”
“저희 에이전시 사무실에 있는데요.”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오늘은 일정이 바빠서…….”
내가 뭐라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뚜뚜뚜.
통화는 이미 끝나 있었다.
바쁘다고 한 번 튕길 생각이었는데.
단장이 애타게 만나고 싶다는데, 그냥 한 번 만나 주지 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초인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김규상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김규상은 자리에 제대로 앉기도 전에 대화를 시작했다.
“고지훈 선수, 아직 계약 안 했죠?”
“협상을 많이 진행하기는 했는데, 아직 도장은 안 찍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저희랑 얘기해서 결정하죠.”
“네. 그러시죠.”
다급해 보이는 김규상을 보니 나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고지훈 선수가 받은 제안 중에서 가장 좋은 제안이 어느 정도입니까? 저희가 그거대로 100% 맞춰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럼 한번 화끈하게 질러볼까?
“4년 80억 원입니다.”
“80억이요?!”
김규상은 일그러진 표정을 쉽게 펴지 못했다.
“네. 80억 원이요.”
나는 표정에 조금의 변화도 없이 답했다.
김규상이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멍하게 나를 바라봤다.
“고지훈 선수가 아무리 좋은 선수라지만 그 정도 액수는 너무 과하지 않나요?”
김규상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지훈 선수가 왜 그 정도 선수가 아니죠?”
“투수인 데다 나이가 적지 않잖습니까. 앞으로 4년 동안 평균 20억 원의 연봉을 받아 갈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물론 나도 그 액수가 과하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빠트리면 안 되는 게 있다며.
이번에는 내가 그대로 갚아줄 차례였다.
“단장님, 수요 공급 법칙에 대해서 잘 아시죠?”
“…….”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됐는지 김규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장에서 물건값이 결정되는 이유는 그 가치가 얼마인지도 중요하지만, 시장 상황도 정말 중요하잖습니까. 공급은 한정돼있는데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가격이 오르는 게 당연한 원리라고 배웠는데요.”
“……지금 다른 구단에서 그 정도로 불렀다는 의미인가요?”
“지금 더블즈가 다른 구단 정도로 부르시면 안 되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셔야 영입하실 수 있는 거니까요.”
“고지훈 선수는 더블즈 프랜차이즈 선수 아닙니까? 같은 조건이면 더블즈에 남으려고 하겠죠.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건 다른 팀에서 영입해가려고 할 때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물론 협상 초반이었다면 당연히 그러려고 했겠지.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더블즈에서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오기로라도 이적을 권유하고 싶을 정도였다.
만약 내가 고지훈에게 차마 전달할 수 없었던 굴욕적인 순간들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제 역할은 선수에게 최고의 계약을 안겨주는 겁니다. 저는 제가 맡은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고요.”
“에이전시의 욕심 때문에 한 팀의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선수를 굳이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는 게 최고의 계약일까요?”
최고의 계약.
그건 선수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이 고지훈에게 최고의 계약일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김규상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수가 가장 존중받을 수 있는 곳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게 에이전트가 선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계약 아닐까요?”
* * *
이제 고지훈의 최종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는 고지훈을 만나 세 장의 제안서를 건넸다.
“구체적으로 협상을 나눈 구단은 더블즈, 버팔로즈, 엔젤스 총 세 팀이에요.”
고지훈은 더블즈 쪽 제안서부터 집어 들었다.
더블즈는 최종적으로 옵션 30억 원을 포함해서 4년 70억 원을 제안했다.
처음의 4년 23억 원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제안인 데다, 옵션 10억 원에 65억 원을 제안한 버팔로즈보다 총액은 높은 액수였다.
대신 옵션 비중과 난이도가 높고, 선발 투수 보장 요건은 첫 1년만 보장해 주기로 했다.
앞부분을 넘겨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나에게 물었다.
“더블즈 쪽 제안이 처음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
“점점 경쟁이 붙다 보니까 제안도 좋아지더라고요.”
“음…….”
고지훈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다시 제안서를 살폈다.
“그럼 일단 엔젤스는 가장 떨어진다고 봐야겠지?”
“계약 조건이 가장 떨어지는 건 분명한데요. 선발 투수 보장 요건을 확실하게 넣어줬다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에요. 그리고 엔젤스로 가신다면 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에이스 대우를 받게 될 것도 분명할 테고요.”
지금 엔젤스에는 고지훈 이상의 퍼포먼스를 기대할 만한 투수가 없었다.
그 말은 굳이 계약서 조항이 없더라도 선발 보직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럼 돈으로만 보면 옵션 비중이 높긴 해도 더블즈가 제일 좋은 거긴 한 거네.”
“그렇죠. 더블즈 쪽 옵션이 난이도가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받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라서요.”
“음…….”
고지훈은 더블즈의 제안서를 다시 들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제안서를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대표님 생각은 어때. 어느 구단을 추천해 주고 싶어?”
나는 잠시 고민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돈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게 프로이긴 하지만, 선수로서 가장 존중받으면서 야구를 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음……. 쉽지 않네.”
고지훈의 표정에서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고민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고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다.
이제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과연 고지훈은 어떤 결정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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