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숨겨진 보석 (1)
FA 협상을 마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연말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정은 이걸로 얼추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아, 아직 펠리컨즈하고 소영준의 연봉 협상이 남았구나.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에만 마무리되면 큰 문제는 없긴 한데.
다음 시즌을 여유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결정을 지을 필요가 있었다.
조만간 직접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야겠다.
일단 FA 계약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나는 오랜만에 늦잠을 자는 사치를 즐기고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방을 나섰다.
나는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담아 와서 식탁에 앉았다.
“선배, 오늘도 어디 나가세요?”
오석훈이 바나나 하나를 까먹으며 내 옆에 앉았다.
“야구 좀 보러 가려고.”
“지금 시기에 야구를 해요?”
“오늘이 고교 야구 결승전 하는 날이라서.”
“아, 맞다. 근데 형이 진한고 나오지 않았어요? 이번에 결승전까지 올라갔던데.”
“맞아. 인규가 지금 거기 코치이기도 하잖아.”
“인규 코치님도 보고 싶네요.”
“이제 원 없이 보게 될 거야.”
이번 결승전만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우리 에이전시 활동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정인규가 전담해서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해 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밀도 있는 훈련과 회복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그나저나 고등학생 선수 중에 요즘에 장난 아닌 애 한 명 있던데요.”
“수천고 안범석?”
요즘 고교 야구 뉴스를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수였다.
“맞아요. 고등학교 2학년인데 구속이 벌써 150km/h를 넘는다면서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영상으로 봤는데 공 던지는 게 심상치 않더라고.”
오늘 진한고의 상대 팀 선수이기는 했지만, 얼마나 잘 던질지 기대됐다.
“경기장에서 만나면 힘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한번 상대해 보고 싶어요.”
오석훈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메이저리그 갈 거라는 말도 있던데.”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고등학생 때 메이저리그에서 제안 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죠?”
“너랑 성주도 메이저리그 가야지.”
“가능하다면 도전은 해보고 싶어요.”
“지금부터 준비해두고 있을 테니까, 너는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돼.”
아직 스카이코퍼레이션과 구체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괜히 벌써부터 이를 의식해서 오버 페이스를 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벌써부터 준비를 해요? 아직 FA 되려면 2년이나 남았는데?”
“아무리 못해도 1년 전부터는 선언을 해야 미국 스카우터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테니까. 슬슬 준비해야지.”
“오. 메이저리그는 진짜 상상만으로도 설레요.”
오석훈은 손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석훈아, 너는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해줄 테니까.”
“네,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근데 성주는 어디 갔어?”
항상 오석훈이랑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존재였는데.
얘기하는 내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다면서 땀 좀 흘리고 싶다고 하던데요.”
“내려간 지는 얼마나 됐어?”
“가볍게 러닝만 할 거라고 말하긴 했는데…….”
오석훈이 시계를 보더니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벌써 두 시간이 넘어가는데요.”
“석훈아, 네가 가서 자제 좀 시켜줘. 아무리 몸이 근질거려도 그렇지, 무슨 러닝을 두 시간이나 해.”
“네, 바로 데리고 올게요.”
내가 오석훈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이주혁이 밖으로 나왔다.
“주혁 씨, 밥 먹었어요?”
“네, 아까 일찍 먹었습니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일어나 식판을 정리해 식기세척기에 두었다.
“석훈아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와 이주혁은 오석훈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나섰다.
그러고는 곧장 고교 야구 결승전이 열릴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차로 한 시간쯤 달리자 돔 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는 선수들이 타고 왔을 구단 버스 여러 대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아직 경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인지 관중들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나와 이주혁은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나와 이주혁은 진한고 라커룸 근처에서 정인규를 만나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를 마주칠 수가 없었다.
결승전을 앞둔 상황에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조금 그렇고.
‘경기 앞두고 정신없을 수도 있을 테니…….’
그런 생각에 그냥 돌아가려고 하는데.
“강 대표님!”
나를 부르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진한고 유니폼을 입은 정인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 코치님, 얼굴 보기 정말 힘드네.”
“평소보다 더 정신이 없다.”
나는 정인규와 반갑게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눴다.
“주혁 씨, 오랜만이에요.”
“코치 님, 잘 지내셨죠?”
정인규와 이주혁도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
“오늘 경기는 어때. 준비는 잘 됐어?”
“경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했고. 이제 경기하면서 바로바로 잘 대응해 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아.”
정인규가 나와 이주혁을 번갈아 보며 자신 있게 답했다.
“오늘 상대 팀 선발이 안범석이라 만만치 않을 거 같던데?”
“나도 분석하느라 영상을 엄청 돌려봤는데, 진짜 잘하긴 하더라. 고등학생인데 그 정도면 프로 가서는 훨씬 잘할 거 같아.”
정인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선수, 공략할 방법은 있는 것 같아?”
“타격 코치님이랑 여러 각도로 분석해서 선수들한테 전달해 주기는 했는데, 혹시 안범석이 오늘 긁히는 날이면 빨리 투구 수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더라고. 컨디션 좋을 때는 아마 프로 선수들도 치기 어려울걸.”
옛날 같았으면 결승전에서는 에이스 투수를 무리시켜서라도 완투를 하게 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교 선수 보호를 위해 생긴 투구 수 제한 규정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오늘 진한고 우승 세리머니 볼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해서든 하게끔 만들어야지.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결승전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지금 진한고에는 수천고처럼 확실한 에이스 투수가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코치로서 팀을 운영하기 더욱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토너먼트 같은 단기전에서는 에이스 선수 한 명이 흐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진한고 코칭스태프들의 선수 운용이 뛰어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 오늘 결승전 끝나고 나면 바로 에이전시로 합류할 수 있게 얘기 다해뒀어.”
“정말? 그럼 겨울부터 우리 선수들 훈련 맡아줄 수 있는 거야?”
“그럼. 이제부터는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이 내년에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지. 조만간 에이전시에서 전지훈련도 갈 거라며. 비싼 돈 들여서 가는 건데, 안 아깝게 만들어 드려야지.”
정인규의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너까지 합류해 주면 이번 전지훈련 진짜 제대로 할 수 있겠는데?”
“안 그래도 훈련 프로그램도 틈틈이 준비하고 있는 중이야. 조만간 1:1로 얘기하면서 선수 스타일이나 필요한 게 뭔지도 자세히 파악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려고.”
“우리 코치님이 이렇게 열정적이셔서 벌써부터 기대되네.”
“그럼요.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선수들을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하시는데, 저도 최선을 다해야죠.”
“정말 고맙다.”
든든한 동료가 또 하나 늘어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제 나 들어가 봐야겠다. 애들 준비하는 것도 챙겨 봐줘야 해서. 이따가 와주는 거 안 까먹었지?”
경기가 끝나고 나서 후배들을 응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안 까먹었으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서 파이팅 해.”
“그래, 이따 보자. 주혁 씨도요.”
정인규는 나와 이주혁에게 인사를 하고는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정인규가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주혁 씨, 우리도 이제 올라가죠.”
나는 이주혁과 함께 관중석으로 향했다.
* * *
이제 관중석에 앉아 경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경기가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보면서 기대되는 선수가 있는지도 고민해 볼 참이었다.
내가 고교 야구의 모든 경기까지 다 확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오늘처럼 경기를 직접 볼 때 더 집중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 보게 될 선수들도 여럿 있을 테니까.
나는 이주혁과 함께 몇몇 선수들이 경기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석을 시작했다.
이주혁이 미리 준비해온 데이터를 참고해서 선수의 움직임을 보니 훨씬 수월했다.
내가 이주혁과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강현우 대표님 맞으시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 맞는데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기는 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는 MBS 스포츠의 김진성 PD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는 MBS 스포츠국 본부장님과도 만났는데, 여기서 또 같은 회사 사람을 만나는구나.
그나저나 스포츠 PD가 갑자기 나한테 무슨 일이지?
“오늘 경기 보러 오셨나 봐요?”
“네, 야구 경기가 있다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고교 야구에도 관심이 많으신 줄은 몰랐네요.”
“아무래도 한국 야구에서 가장 뿌리가 되는 무대니까요. 언제나 관심 가져야죠.”
김진성이 내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 간단하게 인터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터뷰요? 그럴까요.”
굳이 방송 출연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와 우리 에이전시를 아는 팬들이 고교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니까.
김진성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스포츠 부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러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기를 중계할 캐스터가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네 왔다.
“갑자기 요청드렸는데도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내가 캐스터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스태프가 마이크를 채워줬다.
“저희도 예정했던 게 아니라서 급하게 준비를 해봤는데요.”
캐스터가 말하는 동안 다른 스태프가 나에게 질문지를 건넸다.
“벌써 준비를 하셨어요?”
나는 질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중고등학교 어린 선수들에게 선배로서 좋은 말씀해주신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대화 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질문지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부분 내 생각을 묻는 질문들이라 이야기 나누는 데 그리 어려워 보이는 건 없었다.
잠시 후, 김진성 PD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강 대표님, 그럼 이제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 준비되셨을까요?”
“네, 다 됐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김진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스태프들을 보며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