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숨겨진 보석 (5)
내 외침을 들은 최우진이 몸을 돌려 뒤를 돌아봤다.
등에 적힌 이름과 28번 등번호가 사라지더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 아저씨!”
우진이도 나를 알아봤다.
나는 밝게 웃으며 최우진에게 다가갔다.
“잘 지냈지?”
최우진과 악수를 하며 어깨를 쓰다듬어 줬다.
-오늘 경기에서 우승해서 매우 기분이 좋다.
-강현우를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아저씨,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우리 선수들 잘하나 보러 왔지.”
“아저씨 에이전시 선수 중에 학생도 있어요?”
역시 에이전시 만들었다는 소식은 알고 있구나.
“지금은 없는데 앞으로 들어오게 될 친구들이 있을 것 같아서.”
“우와, 부럽다.”
최우진이 진심으로 부러운지 입을 떡 불리고는 다물지를 못했다.
“오늘 경기 보니까 우진이도 공 잘 던지던데?”
“정말요? 아저씨가 보기에도 괜찮았어요?”
“그럼. 중요한 상황에서 무실점으로 아웃 두 개를 막아낸 건데 당연히 잘한 거지.”
“오, 다행이다.”
최우진과 이야기를 나누다 시선을 돌려보니 옆에 서 계시는 두 분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진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강현우라고 합니다.”
옆에 어머니로 보이는 분께도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우진이가 정말 보고 싶어 했던 분인데, 이렇게 만나 뵙네요.”
최우진의 아버지가 최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도 아까 관중석에서 보는데 정말 반갑더라고요.”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최우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저씨 저 그때 사인받았던 글러브 아직도 있어요. 오늘 만날 줄 알았으면 가져왔을 텐데.”
맞다, 내가 팬에게 사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해준 게 바로 우진이었지.
“정말 시간 빠르다.”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 근데 조금 아깝다.”
“아까워? 어떤 점이?”
“제가 야구 잘하게 되면 아저씨네 에이전시로 찾아가서 다시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게 조금 아쉬워요.”
최우진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던데 뭐.”
“근데 아저씨는 제가 오늘 던지는 거 알았어요?”
“아니, 여기 와서 알았어.”
“와, 대박! 엄청난 우연인데요?”
“그러게. 우리 여러모로 인연이야.”
나와 최우진이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무언가 생각이 떠오른 듯한 최우진의 아버지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선생님, 혹시 잠깐 저랑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나는 최우진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최우진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의 생각이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몇 년 전에 우진이가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제대로 야구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일단 시켜주고 있기는 한데요.”
“아, 정말요?”
나를 만나고 나서부터 제대로 시작한 거였구나.
“갑자기 이런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우리 우진이가 야구에 재능이 있는 건지 냉정하게 판단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재능이요?”
“우진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운동을 늦게 시작한 것도 있고, 체격 조건이 좋은 편도 아니잖아요.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데.”
“…….”
“선생님이라면 우진이의 가능성에 대해서 냉정한 판단을 내려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가능성이 없으면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면 우진이를 설득하기가 훨씬 쉬울 것 같아서요.”
“음…….”
정말 어려운 부탁을 하셨다.
재능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재능이 없으니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너무도 큰 영향을 주는 말일 테니.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우진이가 야구를 해도 괜찮을까요?”
아버지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 우진이는 분명히 자기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들이 있기는 해도, 앞으로 훈련 열심히 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간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투수가 될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고등학교 선수는 해가 지나면서 발전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 최우진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기대했던 답은 아닌 듯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아버님께서 보시기에는 아닌 것 같으세요?”
“제가 우진이 경기를 빠짐없이 지켜봤는데요. 솔직히 제 자식이지만 같은 팀 투수 중에서도 뚜렷하게 잘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안범석 그 친구야 전국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니까 빼더라도요.”
“…….”
냉정하게 말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우진의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안범석이랑 비교하는 건 민망할 정도이긴 하지.
“그리고 이런 말씀드리기가 참 쉽지 않은데요……. 저희 집 형편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서요. 운동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주기가 버겁네요.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확실히 프로 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길을 갔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아…….”
프로 선수 한 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돈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여건에서 훈련을 받은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만약 프로 데뷔를 하지 못한다면 학창 시절 훈련하느라 들였던 천문학적인 돈은 전부 허사가 된다.
물론 인생을 경험한 수업료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다면 그런 말을 할 낭만 따위는 있을 리 없었다.
“아버님, 혹시 우진이가 정말 야구를 해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야구를 꼭 해야겠다고요……?”
아버지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하면 되는 데까지 지원은 해줘야겠지만. 언제까지 지원을 해줄 수 있을지는…….”
자식이 하고 싶다고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럼 저한테 맡겨주시죠.”
“네?”
아버지는 내가 한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제가 우진이한테 필요한 지원은 모두 하겠습니다. 훈련부터 식사까지 전부 다요.”
“선생님께서요?”
아버지가 눈동자를 크게 뜨며 물었다.
“저는 우진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거든요. 우진이에게 정말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제가 도와주고 싶네요.”
최우진이 제구력을 확실하게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가 좋은 투수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그와의 엄청난 인연도 그냥 넘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 * *
나와 이주혁은 최우진과 함께 에이전시 숙소로 향했다.
에이전시 숙소도 소개해 주면서 야구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볼 생각이었다.
최우진은 영상으로만 보던 에이전시에 직접 가본다는 게 그저 신나는 듯했다.
“에이전시 가면 오석훈 선수도 볼 수 있어요?”
“그럼. 지금 가면 있을 거야.”
“우와, 대박.”
최우진이 설레는 표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했다.
“근데 너, 아저씨 소식 들었으면 찾아오지 왜 안 왔어?”
“성공해서 가려고 했죠.”
“성공?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건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아서 프로 선수가 되면 성공한 거잖아요. 그러고 난 다음에 당당하게 아저씨한테 찾아가려고 했죠.”
고등학교 선수에게 프로 지명을 받는 것보다 더 간절한 건 없겠지.
“우진이 네가 몇 학년이지?”
“내년에 2학년 돼요.”
“그럼 내후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을 수 있는 거야?”
“글쎄요…….”
최우진의 표정에 어두움이 내려앉았다.
“왜 그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어?”
그의 표정 변화를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열심히 훈련은 할 건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최우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리고 저 등번호, 아저씨 따라 한 거예요.”
“정말?”
최우진의 등번호는 28번.
내 선수 시절 등번호와 같았다.
“왜 그걸로 한 거야?”
“그냥 이걸로 하고 싶던데요.”
최우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의 한마디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됐다.
어느덧 우리는 에이전시 숙소에 도착했다.
내가 숙소 대문을 열자마자 최우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대박! 완전 좋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온 거 알고 있지?”
“그럼요. 영상 봤어요. 근데 실제로 보는 게 훨씬 좋아요.”
최우진은 마당을 지나가는 내내 고개를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밖에도 훈련장이 있기는 한데, 지금 시기에는 거의 대부분 지하에 있는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어.”
“진짜 대박이다.”
내가 손으로 어느 곳을 가리킬 때마다 최우진의 고개를 휙휙 돌아갔다.
그러다 최우진이 나를 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아저씨, 그럼 지금 선수들 만날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훈련 끝내고 집으로 간 선수들도 있을 텐데, 여기서 지내는 선수들은 지금 숙소에 있을 거야.”
“진짜 떨린다.”
최우진은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헉……. 오, 오석훈이다.”
최우진은 오석훈을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친구는 누구예요?”
오석훈이 최우진과 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최우진이라고 하는데. 나랑 친한 친구이기도 하면서 버팔로즈 광팬이야.”
“오, 정말요?”
오석훈이 최우진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진짜 잘생겼다.”
반면, 최우진은 멍하니 오석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어요?”
“지금은 너무 준비가 안 돼있는데…….”
오석훈이 난감해하자 최우진이 다급하게 답했다.
“저만 볼게요.”
“버팔로즈 팬이 찍어달라는데 안 찍어줄 수도 없고.”
최우진의 간절한 부탁에 오석훈은 잠시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고 나서 사진을 찍어줬다.
그사이 2층에도 인기척이 들렸는지, 이번엔 박성주가 내려왔다.
“대박, 박성주도 있어.”
자신의 눈앞에 박성주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최우진의 입은 다시 한 번 쩍 벌어졌다.
최우진은 박성주와도 사진을 찍었다.
짧은 팬미팅이 마무리된 듯하자, 나는 최우진을 데리고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우와! 프로 선수들은 이런 곳에서 운동하고 있구나.”
이번에도 역시나 최우진의 고개는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 웨이트 트레이닝은 어떻게 하고 있어?”
“학교에서 트레이닝하는 시간에 하고요. 주변에 헬스장 가서도 해요.”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은 되겠지만.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무슨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기는 어려울 텐데.
“우진아, 너 야구 선수 정말 되고 싶어?”
나는 최우진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요. 열심히 해서 꼭 버팔로즈에 입단할 거예요.”
최우진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정말이지?”
“네.”
그의 눈빛과 대답에는 분명히 확신에 차있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
“우진아, 이제부터 학교에서 훈련 다 끝나면 여기 와서 훈련해.”
“제가…… 여기서요?”
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봤다.
“필요하면 여기 방 하나 써도 돼. 물론 부모님께 먼저 허락 받고 난 다음에.”
“그럼 오석훈 선수랑 박성주 선수랑 같이 훈련할 수 있는 거예요?”
“당연하지.”
“대박 미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우진은 턱이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만큼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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