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무조건 굽힐 순 없지 (1)
어느새 고지훈을 포함해서 FA를 선언한 선수들의 계약이 모두 완료되었다.
그렇게 프로야구의 계약 시즌도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협상 하나가 있었다.
바로 펠리컨즈의 소영준의 연봉 협상이었다.
“주혁 씨, 펠리컨즈랑 얘기 나눠보는 건 어떻게 되고 있나요?”
내가 단장과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에도 이주혁을 통해 다른 실무자와의 대화는 이어가고 있었다.
혹시 긍정적인 뭔가가 있지는 않았을까 기대해 봤는데,
“여러 번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처음 제안에서 달라진 건 없습니다.”
“흠…….”
“다른 실무자 선에서 해결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대표님께서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이랑 협의를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겠네요.”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다음 시즌이 시작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빨리 마무리해야 단장 입장에서도 다른 일을 진행할 수 있을 텐데.
“주혁 씨, 김석원 단장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제가 김석원 단장이 이제까지 했던 인터뷰를 찾아봤는데요. 이분 마인드가 심하게 꼰대인 거 같던데요?”
꼰대라는 말에 나는 순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맞아요. 구단 운영이나 선수 코치들 관리 방식까지 옛날 방법이긴 하죠.”
펠리컨즈가 꾸준히 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이유 중에 김석원 단장의 비중이 적지는 않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후우……. 여러모로 쉬운 상대는 아니죠.”
나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귀찮은 일은 이진원 전 버팔로즈 2군 감독을 마지막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대표님, 근데 계속 이런 식으로 의견이 평행선만 달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봐도 삭감은 말이 안 되는데…….”
이주혁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
“이러다가 정말 스프링캠프 참가 못 하면 진짜 큰 문제일 텐데요.”
그건 절대 안 되지.
협상이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건 선수였다.
시즌을 준비하는 데 모든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에 협상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경기력에도 영향이 갈 테니까.
그랬기 때문에 선수를 위해서 최악의 상황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구단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그 방법을 선택한다면 피곤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어쩌겠나.
소속 선수가 합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 * *
이제 에이전시 숙소에는 또 한 명의 동료가 합류할 시기였다.
띵동. 띵동.
나와 이주혁은 벨소리를 듣자마자 밖으로 나가 그를 맞았다.
“우리 코치님 어서 오세요.”
“대표님께서 마중까지 나와 주셨네요.”
나는 정인규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주혁 씨, 잘 지냈죠?”
“네, 잘 지냈습니다.”
정인규는 이주혁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서 들어가자. 춥다.”
나와 이주혁은 정인규의 짐을 나눠들고 마당을 지나갔다.
“여기는 진짜 봐도 봐도 멋지다.”
“이제부터 아주 오랫동안 지낼 곳이니까 천천히 즐겨.”
“내가 진짜 좋은 회사에 들어온 거 같아.”
정인규는 숙소로 걸어가는 내내 쉴 새 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1층에 있는 방으로 정인규를 안내해 줬다.
“방은 여기 쓰면 될 거 같은데, 어때 괜찮아?”
“어휴, 과분하죠.”
“청소는 매일 해주실 거야. 테이블 위에 올려둔 물건에는 손 안 대시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이건 뭐 거의 호텔인데?”
정인규가 놀랍다는 듯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점심은 먹었어?”
“당연히 못 먹었지. 빨리 오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서둘렀는데.”
“잘됐다. 일단 밥부터 먹자.”
“우리 에이전시는 식사도 어마어마하지?”
“그럼.”
내 말에 정인규는 기대에 찬 얼굴로 짐만 내려놓더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식사를 하려는데 지하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오석훈, 박성주, 서성민과 고지훈, 최정환, 장수영, 소영준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방에서 생활 중인 나준호 그리고 미국으로 잠시 돌아간 마이클 스콧을 제외하고는 모두 와있었다.
“코치님, 오셨네요!”
“다들 잘 지냈죠?”
정인규는 이미 만난 적 있는 오석훈, 박성주, 최정환, 장수영, 소영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성민 선배나 지훈 선배는 이번에 보는 게 처음이지 않나?”
나는 세 사람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직접 만나 뵙는 건 처음이네요. 안녕하세요, 정인규라고 합니다.”
정인규가 서성민과 고지훈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그러자 고지훈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주 유능한 코치님이 오실 거라던데 이렇게 만나 뵙네요.”
“별말씀을요. 열심히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강 대표님께서 함께하자고 하신 분이니까 의심 없이 그냥 믿을 겁니다.”
고지훈이 정인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저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정인규는 고지훈의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성민도 정인규에게 악수를 건넸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훈련 열심히 시켜주십시오, 코치님.”
“물론이죠. 그건 걱정 마세요.”
화기애애한 인사가 어느 정도 된 듯하자,
“일단 배고프니까 식사부터 하시죠.”
우리는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점 식구들이 늘어가니 한동안 식사 시간은 계속 이렇게 북적북적할 것 같았다.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정인규, 이주혁과 함께 사무실에서 마주 보고 앉았다.
이제부터 해가야 할 일들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회의를 진행한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정인규가 우리 에이전시에 완전히 합류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남달랐다.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조만간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하고 전지훈련을 떠나려고 합니다.”
이미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했던 나준호는 물론이고, FA 계약을 맺은 고지훈도 선뜻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좋은 계약을 맺어줘서 고맙다며 지원을 하겠다는데 무작정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대신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는 거라는 점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두었다.
“어떤 나라로 가는 건가요?”
“괌으로 가보려고 해요.”
거리도 가까운 편이었고, 시차도 거의 없었다.
날씨가 따뜻한 건 물론이고.
“키야,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정인규가 이주혁과 손을 부딪치며 즐거워했다.
“인규 코치님이 훈련장 확보랑 훈련 프로그램 구성해 주시고요. 주혁 씨가 비행기랑 교통편 준비 좀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인규와 이주혁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에 외국인 선수 영입을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오호. 글로벌하기까지 한 회사네요.”
정인규가 또 한 번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저랑 주혁 씨는 우리가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에 미국으로 잠깐 출장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이번 겨울 영입 시즌 중에 구단에 제안할 수 있게 하려면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겠네요.”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이 무조건 계약을 하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계약이라는 건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였으니까.
“주혁 씨, 토마스랑 만나서 얘기 나눠볼 수 있도록 준비 좀 부탁드릴게요.”
“네, 준비해두겠습니다.”
이주혁이 답하며 메모를 적었다.
이제 다시 정인규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리고 정 코치님.”
“네, 말씀하시죠.”
“저희가 출장 가있는 동안 선수들의 몸 관리 좀 부탁드리고요.”
“물론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그럼, 코치님만 믿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정인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마음이 놓였다.
이번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기만 하면 됐다.
* * *
내년 시즌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연봉 협상부터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오늘은 결론 내려보시죠.”
나는 그와 만나자마자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석원과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고 지금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봅시다.”
김석원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자리에 앉았다.
“구단 쪽에서는 생각 정리 좀 해보셨습니까?”
“내가 할 게 뭐가 있나, 에이전시에서 정리를 해서 와야지.”
김석원이 헛기침을 크게 한 번 뱉으며 말했다.
“그럼 지난번 제안에서 바뀐 것 없이 그대로라는 말씀이신가요?”
“다른 선수들도 다 그렇게 해서 도장 찍었어.”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오늘도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강 대표,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그래? 이런 걸로 시끄러워질수록 피해 보는 건 선수야.”
“에이전트가 없는 선수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 찍겠지만, 저희 선수라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나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김석원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에이전트의 열정이 뜨거워서 좋아 보이긴 하는데, 연봉 협상이 마무리 안 되면 우리 구단으로서도 선수를 스프링캠프에 데려갈 수가 없어.”
“제가 그렇게 놔둘 리가 없겠죠? 반드시 그전에 해결할 겁니다.”
“아무리 에이전트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뻣뻣하게 나와서는 의견을 조율할 수가 없는 거야, 이 사람아.”
“하지만 말씀하시는 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인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100% 만족스럽지 않아도 적당히 맞춰가야지.”
이 자리에서 계속 얘기해봤자 시간 낭비였다.
“그럼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네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연봉 조정 신청하겠습니다.”
“뭐? 연봉 조정 신청?”
김석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거잖습니까.”
“허허허. 정말 오랜만에 듣는 단어네.”
기억이 흐릿할 법도 했다.
마지막 연봉 조정 신청이 10년도 전이었으니까.
“저라고 연봉 조정 신청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구단 내부 일을 굳이 다른 사람들이 알게 만드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잖습니까. 서로 의견 조율을 잘 해서 이 자리에서 해결하는 게 좋죠.”
“뭐가 문제야, 우리 제안에 도장 찍으면 되는 건데. 그럼 깔끔하게 끝나잖아.”
김석원의 생각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는 게 분명했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정말 연봉 조정 신청을 해보는 수밖에요.”
“정말 괜찮겠어? 그걸로는 선수가 이긴 적이 거의 없었을 텐데. 거기서 판단 내려준 거에도 승복 안 하면 바로 임의탈퇴야. 소영준의 선수 인생이 끝나는 거라고.”
임의탈퇴를 당한다면 구단의 허락 없이는 그라운드 복귀가 불가능했다.
사실상 국내 무대에서 은퇴를 당한다는 의미였다.
“저희 걱정은 마시죠. 반드시 이길 테니까요.”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는 김석원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