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무조건 굽힐 순 없지 (2)
연봉 조정 신청.
구단과 선수의 연봉 협상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연봉 조정 신청에는 구단과 선수가 각각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연봉 액수를 제시한다.
조정 신청에서는 어느 한쪽이 제안한 액수를 반드시 선택하게 된다.
중간에서 절충안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없다는 의미였다.
또한 한 번 신청한 액수를 변경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신청할 연봉 액수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최대의 액수를 찾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선수 개인이 왜 자신이 제안한 연봉이 적절한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랬다면 연봉 협상에서 협의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을 테니까.
따라서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연봉 조정 신청을 공식적으로 신청할 수밖에 없게 되자, 우리 에이전시에서는 잠시 모든 일을 미뤄두고 며칠 후에 있을 연봉 조정 회의에 포인트를 맞추게 됐다.
나와 이주혁은 물론이고 정인규도 함께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자료를 만들었다.
덕분에 기본적인 구성은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소영준을 따로 불러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해 줬다.
기사로 이미 접해서 대충 상황은 알고 있겠지만, 본인이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소영준은 듣는 내내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다.
“후……. 그럼 그 연봉 조정하는 게 내일 결정 나오는 거야?”
“응. 내일 조정 회의 끝나고 바로 결과 나올 거야.”
“아이씨. 진짜 정떨어지네.”
소영준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나 진짜 이적하면 안 되나?”
“이적까지?”
“내가 이렇게 기분도 더러운데 이 팀에 더 있어야 하나 싶어.”
“그 얘기는 천천히 해보자.”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팀을 떠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일단 대표님, 잘 좀 부탁드릴게요. 당장 돈 몇 푼 더 받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
“걱정하지 말고 있어. 어떻게 해서든 좋은 결과 만들어낼 테니까.”
나는 분통을 터뜨리는 소영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동시에 이번에도 나는 이수민에게 연봉 조정 협상이 진행될 거라는 소스를 흘렸다.
└왜 펠리컨즈만 연봉 협상 마감됐다는 기사 안 뜨나 했는데 이유가 이거였구만.
└소영준한테 연봉 삭감 제안했대 ㅋㅋㅋㅋ 펠리컨즈 단장 미쳤냐?
└지금 펠리컨즈 연봉 총액이 너무 높아. 팀이 낮춰야 하니 어쩔 수 없을 듯.
└야구는 꼴찌하는 팀이 연봉 총액은 상위권이니 아이러니하긴 하지.
└펠리컨즈 연봉 총액이 낮아져야 한다는 거에는 무조건 동의하는데, 소영준 삭감은 개오바아니냐.
└연봉 조정에서 선수가 이긴 적은 없다고 하지만 강현우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강현우도 강현우지만, 올해 소영준을 삭감시킨다는 거에 손들어줄 정도면 저 제도는 사실상 폐지하는 게 맞지.
└구단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 않나? 우리가 모르는 팀 케미나 선수 평판도 무시할 수는 없잖아.
└소영준이 팀 케미를 흐트러트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 * *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중요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최우진이었다.
최우진이 에이전시 숙소로 들렀다 간 이후로 그의 아버지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
야구를 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고마워하면서도, 과연 자신의 아들이 이 길을 걷게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걱정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최우진의 부모님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을 해드렸다.
우진이가 제대로 된 준비 과정을 거치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혹시라도 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다른 선택지까지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며칠을 고민하시더니 결국 나를 믿어주시기로 했다.
특히 방학 동안에는 우리 숙소에서 같이 지내며 훈련하는 것까지도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최우진이 에이전시 숙소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띵동.
“어서 와. 우진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나는 최우진의 짐을 함께 들고 앞으로 그가 머무르게 될 방으로 안내했다.
“이제부터 여기서 지내면 돼.”
“방도 엄청 좋네요. 저희 집보다 더 좋아요.”
최우진이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아보더니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리하고 조금 쉬었다가 나와. 잠깐 얘기 좀 나눠보고 싶은 게 있어서.”
“지금 바로 나갈게요. 그리고 오늘부터 바로 운동해도 돼요?”
“당연하지. 그럼 옷만 갈아입고 나와. 같이 내려가자.”
“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우진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우린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는 나준호와 마이클 스콧을 제외한 소속 선수들이 시즌 때보다 더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기나긴 한 시즌을 지치지 않고 치르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이 필수인데, 그 훈련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유일했다.
“으아아악!”
“헉. 헉. 헉.”
비명에 가까운 괴성이 울려 퍼지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구단 스프링캠프도 물론이고 우리 에이전시 전지훈련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시기부터 탄탄하게 훈련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선수들은 정인규가 만들어준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헉!”
최우진은 훈련장 입구에서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게 굳어있었다.
“우진아, 뭐해 어서 들어와.”
“와……. 미쳤다, 말도 안 돼.”
최우진의 고개는 훈련 중인 선수들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정인규가 나와 최우진이 온 것을 보고는 다가왔다.
“오, 네가 최우진이지?”
“네……. 안녕하세요.”
겨우 정신을 차린 최우진은 정인규를 향해 인사했다.
“우진아, 여기는 새로 오신 우리 코치님이야. 얼마 전까지는 진한고 코치님이셨어.”
“진한고요? 저희 얼마 전에 진한고랑 경기했는데?”
“그 학교 맞아. 그날 너랑 반대편 더그아웃에 있었어.”
최우진에게 정인규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는데, 사실 그의 시선은 진작 다른 선수들에게 향해 있었다.
“근데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선수들이 진짜 야구장에서 보던 선수들이죠?”
“TV에 나오는 진짜 선수들이지. 지금 바로 소개해 줄까?”
“정말요? 얘기 나눠볼 수 있어요?”
최우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럼. 이제부터는 같이 훈련할 건데. 친해져야지.”
“와……. 내가 같이 훈련하다니 미쳤다. 미쳤어.”
감탄사를 연발하는 최우진을 귀엽게 보던 정인규가 손뼉을 치며 선수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잠시만 쉬시면서 우리 에이전시의 새로운 동료 좀 환영해 주세요.”
훈련을 멈춘 선수들이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와 최우진에게로 다가왔다.
“오, 우진이 왔구나!”
이미 만난 적 있는 오석훈이 최우진을 보고 가장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최우진은 어찌할 줄을 몰라 하며 선수들과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었다.
소영준이 최우진을 이리저리 보며 곰곰이 생각하다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대표님, 미안한데 저 친구 어느 팀인지 모르겠다.”
“여기는 최우진이고. 내년 고등학교 2학년 투수예요.”
“아, 고등학생 선수구나?”
나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최우진을 소개했다.
투수라는 말에 장수영과 최정환이 관심을 가졌다.
“우진아, 만나서 반가워.”
“대박. 진짜 대박이다.”
최우진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내내 감탄사를 멈추지 못했다.
그러고는 정인규와 잠시 면담을 하고 나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 * *
이제 연봉 조정 회의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와 이주혁은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선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어떤 프레젠테이션보다 긴장됐다.
오타가 없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우리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구단 측에서 들고 나올 주장에 대한 반박 요소까지 시뮬레이션을 하며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강 대표, 잠깐 만납시다.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이 보낸 짤막한 메시지였다.
하루 앞두고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는 건,
연봉 조정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율을 해보려는 생각이겠지.
열심히 준비해온 자료들로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긴 한데…….
만약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마지막까지 조율을 해봐야지.
내가 만나고 싶은 장소를 메시지로 보냈는데, 금방 답을 받을 수 있었다.
몇 시간 뒤, 서울에 위치한 한 호텔 카페에서 김석원 단장을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정말 연봉 조정 신청으로 진행할 거야?”
김석원은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벌써 기사도 나갔던데, 강 대표가 흘린 거야?”
“글쎄요. 요즘 하도 바빠서 기자분들이 어떻게 알았는지까지 알아낼 시간은 없네요.”
내 대답을 들은 김석원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답했다.
“후……. 시끌시끌하게 만들어서 판을 흔들어보려는 거 같은데, 그래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구단하고 사이 틀어지면 앞으로 이쪽 일 어떻게 하려고 그래?”
“저라고 뭐 일 크게 벌이는 게 좋아서 그러는 거겠습니까? 연봉 조정 회의 때문에 며칠째 밤을 새웠는데요.”
“그럼 한번 말해봐. 원하는 게 어느 정도야?”
김석원이 몸을 의자로 젖히더니 다리를 꼬며 물었다.
“이번에 저희가 소영준 선수의 적정 연봉이 얼마일지 꼼꼼하게 정리를 해보니까요. 1억 원이면 적절할 것 같네요.”
“에이, 1억 원은 너무 과하지.”
김석원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점에서 과하다는 거죠?”
올해 연봉 7천만 원에서 약 40% 정도 인상된 액수였다.
소영준이 이번 시즌에 유격수로 120경기 이상을 출전하며 0.268 16홈런 68타점 WAR 3.10 wRC+ 125을 기록했다는 걸 감안하면 그리 무리한 제안도 아니었다.
“지금 다른 선수들은 다 삭감인데, 소영준만 거의 50%를 올려달라는 거잖나.”
“왜 이 연봉이 적절한지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요. 자세한 내용은 내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주 원 없이 설명해 줄 자신이 있었다.
“됐고. 삭감은 없는 걸로 하고. 동결로 하지.”
김석원이 선심 쓰는 척 툭 던졌다.
“동결이요?”
이제는 헛웃음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더 좋은 제안을 던져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 대답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김석원을 향해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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