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무조건 굽힐 순 없지 (3)
드디어 오늘이 연봉 조정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몇 년 만에 열리는 연봉 조정 신청이었기 때문에 팬과 기자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야구 관계자들까지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서든 조율을 해서 도장을 찍을 거라고 예상했는지, 조정 회의 당일까지 협상 타결 소식이 나오지 않자 기자와 야구 관계자들이 우리 회사로 연락을 많이 해왔다.
우리가 연봉 조정 협상이라는 것을 단순히 연봉 협상의 카드 중 하나로 활용한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원하는 협상을 이뤄내기 위한 카드 중에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도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지난 20여 년간 선수들은 구단이 가진 거대한 힘에 밀려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 후배들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
이제까지 연봉 조정 협상에서는 선수가 이긴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단의 불합리한 연봉 제안에도 힘없는 선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과거에 선수가 조정 협상에서 승리했던 경우에도 그 선수는 구단에 제대로 찍혀 이른 나이에 쫓겨나듯 은퇴하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하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어떤 선수가 자신의 구단을 상대로 연봉 조정 협상을 신청할 수 있을까?
이번에 내가 노력해서 좋은 선례를 만들어낸다면 우리 후배들도 점차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번 연봉 조정 협상은 소영준의 연봉뿐만 아니라 이후 수많은 후배들의 연봉 협상을 위해서도 중요한 무대였다.
└아무리 꼴찌 팀이라도 16홈런 때려준 유격수한테 이래야 하냐.
└홈런 많이 치면 뭐 하냐. 타점 봐라. 영양가가 없다는 말이지.
└앞에서 출루를 해줘야 타점이 올라가지 ㅋㅋㅋ 펠리컨즈에서 그게 되겠냐.
└소영준 제시액이 1억 원이라는데, 펠리컨즈가 3천만 원도 못 올려주는 상황인 건가?
└솔직히 소영준도 시즌 중반 이후에 빠짝 한 거잖아. 잠깐 빠짝 한 거 가지고 이럴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시즌 내내 소영준이 펠리컨즈 타선 이끌었잖아. 타격에서 활약했다고 할 만한 다른 선수 누가 있냐. 거의 소영준과 아이들이었는데.
└과연 끝나고 누가 웃게 될지 궁금하네.
나 스스로도 오늘 회의의 중요도를 무겁게 느끼고 있었는지 평소보다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눈 뜨자마자부터 마지막까지 오늘 회의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준비를 했다.
이주혁이 옆에서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나 혼자서 해결하는 게 가장 훌륭한 그림이었다.
몇 시간의 최종 이미지 트레이닝을 마지막으로 나는 이주혁과 함께 이제 회의가 열릴 곳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우리 선수들은 이주혁이 출발할 시간이 되자 훈련을 하다 말고 나와 배웅해 줬다.
“우리 대표님 파이팅!”
“잘하고 오세요.”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소영준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대표님, 나 그냥 연봉 대충 받아도 되니까. 편하게 하고 와.”
소영준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지 내 손을 잡으며 애써 내 압박감을 지워주려고 했다.
“준비한 대로 최선을 다하고 올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
나는 소영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 대표님.”
“그럼 이제 다녀올게요.”
잠시 동안 선수들과 인사를 마친 나는 이주혁과 함께 차를 타고 야구협회로 향했다.
* * *
나는 이주혁과 함께 야구 협회로 들어섰다.
연봉 조정 회의가 열릴 회의실로 들어가자 널찍한 공간에서 직원들이 회의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늘 연봉 조정 협상에서는 먼저 선수 측에서 왜 이 정도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이어서 구단 측에서는 왜 선수가 원하는 연봉을 줄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을 한다.
다음으로 선수 측의 반박, 그리고 구단 측의 반박이 이어진다.
모든 설명이 끝나면 조정 위원들의 판단으로 선수 측과 구단 측이 제안한 연봉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선수 측과 구단 측이 마주 보는 위치에 있었고, 발표를 하게 될 중앙 단상 반대편에는 조정 위원들이 앉을 자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이주혁과 함께 가장 먼저 들어와 선수 측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석원 버팔로즈 단장도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단장님, 오셨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석원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에헴.”
하지만 김석원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내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나와 김석원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이 되자 연봉 조정의 결론을 내려줄 야구 협회 조정 위원 다섯 명이 자리를 채웠다.
에이전시와 구단이 각각 추천한 위원 두 명과 법조인, 스포츠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였다.
양복을 입은 위원들이 자리를 채우니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나는 옷매무새를 만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사이 가운데 앉은 조정위원장이 자신의 앞에 놓인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펠리컨즈 소영준 선수의 연봉 조정 신청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드디어 회의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사전에 공지된 순서대로 선수 측에서 먼저 발표해 주십시오.”
조정위원장은 나를 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앞에 마련된 단상으로 걸어갔다.
화면에는 우리가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띄워졌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소영준 선수를 대리하는 드림 에이전시 대표 강현우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 측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다섯 명의 조정 위원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프레젠테이션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
“소영준 선수의 올해 성적은 2할 6푼 8리에 홈런은 16개 WAR은 3.10 wRC+는 125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기록한 성적으로는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팀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펠리컨즈 선수들의 지표가 나왔다.
“홈런 1위, 장타율 1위, WAR 1위 등등. 타선에서 누구보다 확실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만약에 소영준 선수가 펠리컨즈 타선에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정말 말 그대로 아찔하네요.”
나는 몸을 과장되게 부르르 떨며 페이지를 넘겼다.
“소영준 선수의 진가는 경기력뿐만이 아닙니다. 팬들의 인기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올스타전에서도 펠리컨즈 선수로는 유일하게 소영준 선수만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팬들의 투표 결과로 이뤄낸 결과입니다.”
또 한 장의 페이지를 넘겼다.
“SNS 팔로워 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유니폼 판매량까지 펠리컨즈에서 어떤 선수도 소영준 선수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소영준 선수가 선발로 출전한 경기와 아닐 때 경기장을 찾은 관중 수는 물론, TV 시청률에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습니다. 펠리컨즈의 관중 동원력에 소영준 선수의 역할이 크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죠.”
나는 레이저로 데이터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영준 선수는 차기 주장으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동료 선수들이 직접 뽑은 주장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기도 했죠. 선수단 내에서 평판도 나쁘지 않고 리더십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다섯 명의 조정위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이런 선수한테 연봉 3천만 원 올려주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
“저희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는 조정위원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발표를 마쳤다.
내가 자리로 돌아가자 조정위원장은 다시 마이크를 켜고 입을 열었다.
“이제 구단 측에서 발표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김석원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펠리컨즈 김석원입니다.”
김석원은 다섯 명의 조정위원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저희 구단은 지난 시즌에 10위를 했습니다. 무려 열 개 팀 중에서 10위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삭감 요소가 확실합니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다음 페이지에는 소영준의 월별 기록이 나와 있었다.
“소영준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성적이 좋은 편이라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팀의 초반 순위가 벌어진 다음에 잘했다는 겁니다. 야구는 팀 스포츠인데, 혼자만 잘하면 뭐 합니까? 스탯 관리하는 거밖에 더 되나요?”
나와 만나기 전인 4, 5월 성적이 부족하다는 건 확실한 내용이었다.
“스탯 관리를 한 거라고 하니까 또 그건 아니라고 하실 거 같은데. 그것도 다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김석원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아까 홈런 얘기하면서 타점은 왜 빼먹나 모르겠어요? 소영준의 이번 시즌 타점이 몇 점인 줄 아십니까? 68타점이에요. 68타점. 홈런을 많이 치면 뭐합니까? 타점이 이렇게 적은데. 거의 다 영양가 없는 홈런이라는 얘기예요.”
김석원의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당장이라도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무엇보다도 아까 저쪽에서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했다고 하는데, 참나 웃기는 소리죠. 소영준이 기본적으로 수비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에요.”
김석원은 고개를 여러 차례 가로저으며 새로운 페이지를 띄웠다.
“수비율을 보면 바로 답 나옵니다. 여기 자료 한번 보시죠. 9개 구단 주전 유격수랑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답 없어요. 아니, 이런 선수가 무슨 자격으로 수비 부담이라는 말을 꺼냅니까. 창피한 줄 알아야죠. 쯧쯧.”
김석원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선수가 이런 쓸데없는 회의를 제안하는 바람에 구단 직원들이 며칠 동안 여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일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거기다가 변호사 자문도 구하느라 돈도 엄청 썼어요.”
김석원이 말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조정위원장이 끼어들었다.
“잠깐, 구단 측에서 지금 말씀하신 변호사에 대한 비용은 연봉 산정의 근거로 삼을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긴 한데, 아무튼 그런 것도 있었다는 겁니다.”
김석원은 조정위원장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까 차기 주장으로 거론되고 있다더라고 하던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이걸 보고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봅시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자 다음 페이지에서는 영상이 재생됐다.
회의장의 모든 시선은 영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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