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무조건 굽힐 순 없지 (5)
조정위원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일 분이 일 년 같았다.
생각보다 그들의 회의는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나자, 조정위원장과 조정위원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나와 이주혁은 물론이고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도 긴장된 표정으로 조정위원장을 바라봤다.
조정위원장은 들고 있던 종이를 보며 마이크를 켰다.
“소영준 선수의 연봉 조정 신청에 대한 선수 측과 구단 측의 의견을 종합해 조정위원들과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금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이어질 조정위원장의 말을 기다렸다.
“이번 조정에서는 선수 측과 구단 측의 의견을 토대로 소영준 선수의 직전 시즌 공헌도와 이에 대한 기간 및 지속성, 선수의 성적에 의거한 공식 수상 경력과 최근 소속 구단의 성적 그리고 선수의 과거 연봉 및 동급 연차 선수들의 연봉 수준 등을 상대적으로 고려해 판단했습니다.”
조정위원장은 잠시 한 템포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손에 땀이 쥐어졌다.
“선수 측과 구단 측의 의견을 종합해서 판단을 내려본 결과, 내년 펠리컨즈 소영준 선수의 연봉은 선수 측 주장대로 1억 원으로 조정 결론 내리는 바입니다.”
조정위원장은 의사봉을 두드리고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혹시 구단 측에서 조정 내용을 거부하시거나 10일 이내에 조정된 연봉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신다면 소영준 선수는 즉시 자유계약 선수로 신분이 변경되며, 동시에 모든 구단과 FA 협상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선수 측과 구단 측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연봉 조정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발표를 마친 조정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나이스!”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기쁨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대표님, 고생하셨습니다!”
“주혁 씨, 우리가 해냈어요.”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주혁과 포옹을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강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회의를 지켜보던 야구협회 관계자들도 손뼉을 치며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축하를 건네주는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반면, 김석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김 단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김석원이 나가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흐음.”
그리고 김석원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바라봤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 * *
나와 이주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구협회를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몇몇 스포츠 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서있는 이수민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내 앞에 선 한 기자가 나를 향해 물었다.
“강현우 대표님, 최근 몇 년 동안은 연봉 조정에서 선수가 이긴 적이 거의 없는 상황인데도 승리를 거두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솔직히 오늘 회의가 이렇게 많은 분들께 주목받고 있다는 게 아주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가능했어야 하는 일이 이제서야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니까요.”
오늘 연봉 조정 신청 사례가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거라는 건 확실했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에도 연봉 조정 신청에서 선수가 이긴 적은 있지만, 암묵적으로 팀에서 찍히고 그다음 해에 사실상 방출을 당했던 사례가 있는데요. 소영준 선수가 그런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되지는 않으십니까?”
“그게 거의 20년 전이었죠. 그때랑 지금은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펠리컨즈에서 그런 잘못된 판단을 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혹시라도 소영준 선수가 그런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된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답하자마자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혹시 소속 선수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 연봉 조정 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지원해 주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부당한 제안을 받으셨다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돕겠습니다.”
동료 선수 중 누구라도 부당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얼마든지 나설 계획이었다.
나는 마지막 내용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치고는 차에 올라탔다.
이제야 조금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연봉 조정 신청의 결과와 내 인터뷰 내용까지 더해지자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제 진짜 선수도 이길 수 있는 세상인 건가?
└강현우도 대단하긴 하다. 이걸 이겨버리네.
└내 연봉 협상도 강현우가 해줬으면 좋겠다.
└소영준 같은 선수가 연봉 3천만 원 올리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게 슬프긴 하다.
└소영준이 불이익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대, 강현우 멋있네.
└강현우 에이전시 소속이면 구단한테 보복당할 일은 없겠다 ㅋㅋㅋ
└중요한 선례가 만들어졌으니까 앞으로는 연봉 조정 신청도 할 만하지 않을까?
└솔직히 이제부터는 구단들 양아치 짓 좀 그만하자.
└펠리컨즈에서 조정 연봉으로 계약 거절하면 FA 된다는데, 그럴 가능성도 있나?
└아무리 소영준이 꼴 보기 싫어도 펠리컨즈 단장이 제정신이라면 그럴 일은 없다.
└그래도 당장 소영준 FA로 풀리면 제안하는 팀 많을걸. 후반기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면 웬만한 팀에서는 주전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무리 펠리컨즈가 노답이라고 해도 소영준까지 없으면 진심 해체해야지.
* * *
힘겨운 일정을 마치고 나와 이주혁은 에이전시 숙소에 도착했다.
이렇게까지 숙소에 도착했다는 것이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드디어 차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마당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는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도착하는 모습을 보자,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모든 선수들이 일렬로 선 채로 손을 번쩍 들고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날도 추운데 다들 여기 왜 나와 있어요?”
“우리 대표님이 이기고 돌아오시는데 그냥 있을 수 있나요.”
오석훈과 박성주가 가장 먼저 다가오더니 가마를 태우듯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선수들 앞을 지나가며 하이파이브를 하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는 선수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모든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서야 가마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러자 소영준이 나에게 달려오더니 두 손으로 나를 힘껏 껴안았다.
“대표님,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왜 이래, 징그럽게.”
“잠깐만 이렇게 있자. 너무 좋다.”
소영준이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우.”
나는 질색하며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우리 대표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고지훈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멋있어요.”
최우진도 나에게 다가와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진아, 고마워.”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걸까 부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러분, 오늘은 내가 쏩니다. 먹고 싶은 거 다 말하세요.”
소영준이 두 손을 벌리며 크게 외쳤다.
“진짜? 비싼 거 먹어도 돼요?”
박성주가 눈이 반짝이며 물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오늘은 내가 다 쏜다!”
“오오, 소영준 짱이다!”
소영준의 외침에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소영준 덕분에 흥겨운 파티가 열렸다.
나와 이주혁이 선수들을 위해 직접 맛집을 찾아가서 픽업을 해왔다.
이런 자리에 자극적인 음식들이 빠질 수는 없겠지만,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음식은 고민 없이 제외했다.
오늘만큼은 매일 식사를 준비해 주시던 조리사분들도 함께 음식을 먹으며 깜짝 휴가를 즐겼다.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에는 족발, 보쌈을 시작으로 양장피, 깐쇼새우, 팔보채까지 다양한 메뉴가 세팅됐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근데 이렇게 사도 괜찮은 거지?”
문득 소영준의 지갑 사정이 걱정됐다.
“어허, 내가 이 정도도 못 할 거 같나. 괜찮으니까 어서 드세요.”
소영준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영준아, 맛있게 먹을게!”
“선배,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소영준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유명한 맛집답게 음식의 맛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도 오랜만에 걱정을 내려놓고 동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배고픔을 해소하고 나서 오석훈 옆에 껌처럼 붙어있는 최우진에게로 다가갔다.
“우진이는 훈련할 만해?”
“네, 진짜 재밌어요.”
최우진의 눈이 초롱초롱 반짝이고 있었다.
“오호. 훈련이 재밌어?”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더 잘해지는 거 같아서 기분도 좋아요.”
나는 싱글벙글 웃는 최우진의 표정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흐음. 훈련이 재밌으면 안 되는 건데. 코치님한테 말해서 훈련을 조금 더 강하게 시켜달라고 해야겠는데?”
“히익.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최우진이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농담이야.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돼.”
“근데 서성민 아저씨는 괴물이에요?”
최우진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귓속말을 하듯 말했다.
“괴물? 무슨 말이야?”
“훈련을 진짜 엄청 많이 하던데요? 훈련장에 제일 일찍 나와서 제일 늦게 나간다고 하던데, 지치지도 않나 봐요.”
“성민 선배 훈련할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같이 해봐. 배울 게 많을 거야.”
“따라 하면 많이 달라지겠죠?”
“그럼, 프로 선수들 옆에서 열심히 훈련하면 당연히 달라지지.”
나는 최우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정인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쳐서 집중을 유도했다.
“아! 이렇게 모인 김에 전달사항 하나 말해야겠네요.”
자연스럽게 내 시선도 정인규를 향했다.
“다들 어느 정도 들으셨겠지만, 우리 에이전시에서 조만간 따뜻한 나라 괌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우와아!”
선수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근데 우리가 놀러 가는 거 아니죠? 따뜻한 나라로 가서 열심히 훈련하고 돌아오도록 합시다.”
“코치님, 그래도 자유시간은 있죠?”
소영준이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훈련 프로그램만 충실히 수행하시면 자유시간은 당연히 드릴 겁니다.”
“나이스!”
소영준은 주먹을 불끈 쥐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여기 계신 고지훈 선배님과 곧 괌에서 만날 나준호 선배님께서 비용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정인규가 고지훈을 두 손으로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고지훈을 향했다.
“오오오! 고지훈! 고지훈!”
“에이, 아니야 아니야.”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자 고지훈이 민망한 듯 두 손을 저었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까 즐기고, 내일부터 또 열심히 달려봅시다.”
“네!”
정인규의 말을 마지막으로 선수들은 늦은 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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