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윈터 리그 (3)
도널드 왓슨은 이주혁과도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사이 왓슨 위로 보이는 정보창에 시선이 고정됐다.
-새로운 팀을 구하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지금 몸 상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도널드 왓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 계기는 왓슨이 한 시민을 폭행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종종 선수와 팬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건은 그 정도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폭행을 당한 팬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왓슨은 형사 입건까지 됐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왓슨이 FA 계약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결국 지난해 겨울에 왓슨을 영입하려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그는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무대를 옮겨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리그다 보니 왓슨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잊힐 수밖에 없었다.
왓슨의 지난 시즌 성적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팀을 찾지 못했다는 정보를 보니 만족스럽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거 같이 저녁 식사나 할까?”
“좋죠.”
알렉 토마스의 제안에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토마스는 우리를 배려했는지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왓슨, 여기에 앉아.”
알렉 토마스가 자신의 옆자리에 왓슨을 앉혔다.
나와 이주혁은 그 두 사람을 마주 보고 앉았다.
토마스가 왓슨과 나를 번갈아 보며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는 한국에서 야구 에이전트를 하고 있는 분들이고, 이쪽은 야구선수 도널드 왓슨이고.”
“Kang, 당신은 미국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는 건가요?”
인사를 마치자마자 왓슨이 나에게 물었다.
“미국을 오고 가고 있긴 한데, 아직은 한국에서 활동 중이에요.”
“그럼 당신의 에이전시는 주로 한국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겠네요?”
왓슨이 나를 유심히 보며 관심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의 비중이 가장 크고요. 조금씩 외국인 선수들과도 함께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럼 지금 회사에 외국인 선수도 있나요?”
왓슨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난 시즌부터 한국 무대에 진출한 선수가 있거든요. 마이클 스콧이라고.”
“아하. 상당히 흥미롭네요.”
왓슨의 반응을 보니 마이클 스콧에 대해서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스콧이 여기서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한식이 하나둘씩 테이블에 놓였다.
“토마스랑 왓슨은 한식 먹어본 적 있어요?”
“나는 이게 처음이야. 왓슨은?”
내 물음에 토마스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도 처음이에요.”
왓슨은 처음 보는 음식들이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비빔밥, 불고기, 잡채는 물론 김치찌개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이 차려졌다.
나와 이주혁은 토마스와 왓슨에게 음식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우리의 설명을 들으며 식사를 했다.
현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절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먹는 음식의 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맛있게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엄청난 덩치에 근육을 자랑하듯이 왓슨의 식사량은 어마어마했다.
상당히 많은 양을 주문했는데도 접시들은 하나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배고픔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자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게 됐다.
토마스가 왓슨을 보며 물었다.
“왓슨, 아이는 잘 크고 있어?”
“네, 하루하루 커가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왓슨의 입가에는 어느새 한껏 올라갔다.
“축하드려요. 결혼했다는 기사는 본 것 같은데, 아이까지 생겼는지는 몰랐네요.”
해외야구 뉴스를 자주 살펴보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왓슨에 대해서 올라오는 기사가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두 살이거든요.”
왓슨은 스마트폰을 꺼내 아내와 아이 사진과 영상을 한 장씩 넘겨가며 보여줬다.
사진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TV에서 자주 보던 과격하고 다혈질적인 장면과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그가 사진과 영상을 다 보여준 듯하자 토마스가 자연스럽게 야구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경기 뛰는 거 보니까 컨디션은 좋은 거 같던데?”
“요즘 아픈 곳도 없고, 타격감도 아주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왓슨의 답을 들은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꺼냈다.
“혹시 이번에 제안 받은 팀은 있어?”
“……아니요. 아직요.”
왓슨이 깊은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괜찮아.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히 좋은 기회가 올 거야.”
토마스가 왓슨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혹시 이걸 물어봐도 될까?
나는 조심스럽게 궁금했던 걸 물었다.
“혹시 지금 제안을 못 받고 있는 이유가?”
“…….”
“……아마도 작년에 그날 사건 때문이겠지.”
갑자기 말이 없어진 왓슨 대신 토마스가 대신 답해줬다.
“아……. 그렇군요.”
나는 왓슨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왓슨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근데 그날 사건은 정말 억울해요.”
“억울하다고요……?”
“물론 내가 이제까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많이 쳤던 건 사실이에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제 완전히 다르게 살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그날은 얘기가 완전히 다르죠.”
“다르다고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그날 내가 때린 그 자식이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요?”
왓슨의 이글거리는 눈빛에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움찔하게 될 정도였다.
“그 사람이 어머니께 뭐라고 했는데요?”
“쓰레기 같은 거나 치우는 년이라고요.”
“…….”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저런 식으로 자기 부모님을 욕하는 말을 듣고 나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죠.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우려고 청소부 일을 오랫동안 했어요.”
왓슨은 몸을 부르르 떨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나서는 이제 돈을 안 벌어도 되니까 일 그만하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 했어요. 청소 일을 하는 게 즐겁다고요.”
나와 이주혁 그리고 토마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엄마의 생각을 존중했죠. 몸도 힘들 테고 주변의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텐데도 엄마는 그 일을 하면서 정말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식은 우리 엄마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내뱉은 놈이에요. 근데 그런 얘기를 직접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왓슨의 눈빛이 다시 매서워졌다.
“그런 거였군요…….”
억울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내가 폭력을 쓴 게 잘못됐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하지만 그때 그 상황은 다시 생각해도 참을 수가 없었어.”
왓슨은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또 한 번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럼요. 만약에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내 반응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나는 물론 이주혁과 토마스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왓슨은 그러고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화를 누그러트렸다.
* * *
나는 호텔로 들어오자마자 인터넷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어는 도널드 왓슨.
워낙 유명한 선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모든 걸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번역기를 돌려보는데 첫 페이지부터 부정적인 기사들로만 가득했다.
역시나 가장 상단에 올라온 기사는 지난해 있었던 폭행 사건이었다.
└왓슨이 싸운 게 한두 번인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그냥 기사도 날짜하고 위치만 바꿔서 업로드하면 될 듯.
└그래도 형사 입건까지 됐다는 건 심각한 거 아닌가.
└상대방이 전치 12주 나왔다고 하던데.
└12주??? 미쳤네. 그 정도면 피해자는 중상 입었다는 말인데.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저런 선수는 퇴출이 답이다.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아무리 FA라고 해도 왓슨을 영입하는 팀은 팬을 죽도록 때린 사건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봐야겠지?
천천히 스크롤을 내려 보니 예전에도 봤던 영상과 기사가 있었다.
왓슨이 상대 선수의 위협구에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돌하며 격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던 순간이었다.
상대 투수에게 들소처럼 돌진하는 왓슨을 말리기 위해 만만치 않은 덩치의 동료 선수들이 달려들었는데도, 그는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감정이 격해지며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포함해서 총 10명이 퇴장 당했던 경기였다.
메이저리그 벤치클리어링을 검색하면 항상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이었다.
└저 정도면 야구하러 온 게 아니라 싸움하러 왔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야구만 잘하면 뭐 하냐. 사람이 안 됐는데.
└왓슨 보고 있으면 매일 싸움하고 싶어서 안달 난 애 같아.
└이제 그냥 격투기로 전향해라. 당장 링으로 올라가는 게 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왓슨에 대해서는 안 좋은 뉴스가 많은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야구장에서 야구로 보여주는 모습만큼은 세계적인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표로 드러나는 성적은 물론이고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낸 선수이기도 했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던 시기에 왓슨의 중견수 수비를 보며 공부하기도 했으니까.
└오늘 경기는 혼자서 다했네.
└중견수 중에서 이 정도로 홈 송구할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을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줘라 왓슨!
└내일 경기장에서 왓슨 유니폼으로 한 장 더 사야겠다.
└이번 시즌에도 올스타 가자! 도널드 왓슨 파이팅!
나는 검색을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의 야경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아까 만난 왓슨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도널드 왓슨.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신인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였으니 야구 실력이야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경기장 안과 밖에서 수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이제까지는 선수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수준이었는데.
하지만 마지막 폭행 사건은 미국 무대에서도 퇴출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아무리 그날 상황이 억울했다고 해도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되기 어려웠으니까.
그럼 혹시 그런 선수를 한국으로 데려온다면 어떤 반응일까…….
결혼하고 아이도 생겨서 이전의 모습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냥 이렇게 선수 생활을 끝내기에 아까운 선수인 건 맞지만, 어쩔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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