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야구보다 중요한 것 (2)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특수문자라는 건 나에게 숨기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직접 물어봐서는 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요즘 학교에서 훈련하는 건 어때?”
“이제 2학년 돼서 그런지 조금 더 나아진 것 같아요.”
“3학년이었던 선배들이 졸업해서?”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 이유도 있긴 해요.”
속마음을 들킨 게 민망했는지 미소가 어색했다.
이제 그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물어볼까?
“같은 학교니까 범석이랑 친한 사이지?”
나는 최우진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며 물었다.
“음……. 솔직히 친하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1살 선배잖아요.”
말하는 내내 최우진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정신없이 흔들렸다.
“투수 조면 같이 훈련할 텐데, 잘하는 선수가 옆에서 같이 훈련하니까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은데.”
“솔직히 그렇게 친하지가 않아서요. 그냥 오고 가며 인사하는 정도예요. 그리고 그 선배는 팀 훈련도 거의 안 해서요.”
“팀 훈련을 거의 안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고등학교 야구부를 떠올리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사설 훈련장 같은 데서 훈련하고 오는 것 같아요.”
“정말? 근데 보통 고등학교에서는 팀 훈련을 많이 하지 않나? 그것만 해도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방학 중에도 주말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학교에서 훈련하느라 다른 곳에 갈 시간은 없었던 거 같은데.
“그 선배는 감독님이 특별하게 봐주거든요. 에이스 투수니까요.”
“에이. 그래도 팀 스포츠인데 그런 식으로 해도 되나? 같이 훈련해야 호흡도 맞출 수 있지 않아?”
“감독님도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도 뭐라고 못하니까요. 에이스가 잘해줘서 학교가 우승하면 나머지 선수들한테도 나쁠 거 없잖아요. 그러니까 예외로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거죠.”
하긴 국내 프로팀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선수이다 보니 주변에서 불만을 쉽게 드러내기는 어렵겠지.
“그래서 별로 안 친하다는 거지? 자주 마주치지도 않고?”
“네, 하나도 안 친해요. 경기 있을 때나 마주치지 평소에 학교에서는 거의 마주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대화해 본 적도 별로 없고요.”
최우진은 말하는 내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더 이상 안범석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최우진의 반응을 보니 분명히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불편해하는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최우진과의 문제인지, 안범석 자체의 문제인지 간에 확실하게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자세한 건 내가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 * *
안범석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천고 경기를 보기 위해 고교 대회 경기장을 찾았다.
오늘은 마침 수천고 선발투수로 안범석이 등판하는 경기이기도 했다.
역시나 수천고의 경기에는 수많은 스카우터들이 참석했다.
안범석이 이제 고3이 되었으니 몇 달 뒤에 있을 프로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과 미국 중에서 어떤 무대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수는 있었다.
만약 국내 드래프트에 참여한다고 해도 가장 먼저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펠리컨즈의 선택을 받을 게 분명했다.
따라서 다른 구단에게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나 다름이 없을 텐데도 스카우터들은 스피드건을 들이대고 그의 경기를 관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최우진이 보였다.
지난해보다 분명히 발전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선발 등판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열심히 훈련하면서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으니, 아마 올해 후반기나 내년부터는 확실히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겠지.
안범석이 경기 시작 전에 몸을 푸는 순간부터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별할 것 없는 러닝을 하는 데도 멈추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들에게서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토스.
점점 거리를 늘려가는 데도 안범석의 공은 정확하게 날아갔다.
100m에 가까운 거리에서 던진 공도 정확하고 힘 있게 날아갔다.
확실히 좋은 피지컬을 가진 선수였다.
안범석이 워밍업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가 시작할 시간이 됐다.
마운드에 오른 안범석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부드러운 투구 폼으로 연습 투구를 하며 컨디션을 점검했다.
가볍게 던지는 것 같은데도 남다른 구속을 보여줬다.
펑!
150km/h!
펑!
151km/h!
역시나 패스트볼의 위력만 보면 당장 프로무대에 데려다 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거야 누구나 아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구속뿐만 아니라 그의 투구 폼이나 경기를 운영해가는 능력까지도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었다.
어쩌면 정말 우리 에이전시의 식구가 될지도 모를 선수였으니까.
“플레이 볼!”
심판의 콜로 경기가 시작됐다.
펑!
펑!
안범석은 역시나 150km/h를 넘나드는 패스트볼을 어렵지 않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던졌다.
틱!
상대 타자가 겨우 배트로 타구를 맞춰보지만, 패스트볼이 워낙 위력적이라 힘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첫 타자를 깔끔하게 아웃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두 명의 타자와의 승부도 어렵지 않게 마무리됐다.
“스트라이크 아웃!”
-안범석 선수가 예상했던 대로 1회를 깔끔하게 막아냈습니다.
-3학년이 되면서 공이 작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요?
-이렇게 끊임없이 진화해간다면 메이저리그 구단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붙을 것 같아요.
-한국 선수가 잘하는 게 좋으면서도, 이런 선수를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을 거라는 게 아쉽기는 하네요.
국내 프로구단 스카우터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터도 분주하게 무언가 기록하고 있었다.
그사이 중계 화면에서 내 얼굴이 비치자 댓글 창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오! 강현우 등장했다!
└오늘 경기를 보러 왔다는 건 빼박 안범석 보러 온 거겠네.
└안범석이 내년에 어느 구단 갈지도 궁금하지만, 어느 에이전시랑 계약할지도 궁금하네.
└에이전시는 드래프트 받기 전에도 당장 계약할 수 있지 않나?
└오늘 경기 끝나자마자 계약하는 거 아니냐? 이것도 오피셜처럼 뜨려나?
└안범석 던지는 거 보고도 계약 안 하면 바보지.
└대신에 안범석이 메이저리그 가고 싶으면 계약 안 할 수도 있잖아.
└하긴 강현우가 메이저리그 진출시켜 주기는 무리이긴 하겠다. 미국 에이전시에서도 접촉했다던데 거기랑 계약하는 게 훨씬 낫지.
└근데 드림 에이전시에 안범석 말고 수천고에 다른 애 가있지 않나?
└최우진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근데 걔랑은 왜 계약한 거지?
└유망주라고 보기에는 한참 멀었던데. 아무리 왼손 투수라도.
└강현우가 픽한 선수면 뭔가 있겠지. 이제까지 결과로 보여줬잖아. 조용히 기다려봐.
2회에도 안범석의 피칭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단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사이 수천고 타자들이 선취점을 얻는 데 성공하며 2: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3회.
안범석은 변함없이 위력적인 공을 던졌는데,
띡!
타자의 배트가 안범석의 구위에 밀리기는 했지만, 페어 존로 들어오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타자는 전력을 다해 1루를 향해 달렸다.
얼마나 절박하게 달리고 있는지, 1루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도 배트를 놓지 못했을 정도였다.
-타자가 타구를 그라운드로 날려 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야를 벗어나게 만들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힘을 이기기에는 안범석 선수의 구위가 너무 좋아요.
-어? 그런데 3루수가 볼을 한 번에 잡지 못했어요. 이러면 상황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빠르게 날아가던 공은 3루수의 글러브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3루수가 옆으로 흐른 공을 급하게 다시 잡아서 1루로 던져보았지만,
“세이프!”
주자의 발이 아슬아슬하게 베이스에 먼저 도착했다.
만약 이번 타자가 왼손 타자보다 한 발짝 더 먼 곳에서 출발해야 하는 오른손잡이였다면 아웃이 됐을 만큼 찰나의 차이였다.
-세이프! 세이프! 정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가 선언됩니다. 중계 화면으로 다시 봐도 정말 한 끗 차이였어요.
-이렇게 첫 출루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득점권이 아니긴 합니다만, 안범석 선수를 상대로 출루를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이번 기회를 살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안범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기록원은 3루수의 실책이 아닌 타자의 안타로 기록했다.
기록원이 보기에는 수비수가 곧바로 잡기에는 타구 속도가 매우 빨랐던 데다 주자의 스피드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안타가 될 만했다고 판단한 듯했다.
전광판을 확인한 안범석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펑!
“볼!”
펑!
“볼!”
안정적으로 피칭을 이어가던 이제까지와는 달리 쉽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펑!
“스트라이크!”
겨우 스트라이크를 하나 던지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펑!
“볼넷!”
결국 제구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주자를 출루시켰다.
안범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동시에 3루수의 표정에서도 어두움이 짙게 내려앉았다.
-내야 안타에 이어서 볼넷으로 주자가 출루하게 됩니다.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득점권에 주자가 서있습니다.
-1, 2회 상위 타선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의외로 하위 타선에서 처음으로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안범석 선수가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확실히 흔들리는 모습이 있네요. 이번 위기를 잘 넘어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무사 주자 1, 2루.
타석에는 9번 타자가 들어왔다.
펑!
펑!
안범석은 투 스트라이크를 어렵지 않게 잡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틱!
틱!
타자가 끈질기게 승부를 이어가며 투구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안범석 선수가 계속 고개를 젓고 있습니다. 원하는 공이 확실하게 있는 것 같아요.
-포수와 사인이 잘 안 맞는 걸까요?
-안범석 선수의 역량이라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겠지만요. 포수의 사인을 믿고 던지는 게 좋을 겁니다. 상대 타자를 가장 열심히 분석한 선수는 포수일 거거든요.
결국, 여러 번의 사인 교환 끝에 안범석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위기를 극복해냅니다.
-내야 안타에 이어 볼넷을 내주면서 득점권 위기 상황을 맞았는데요. 위력적인 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해냈습니다.
위기를 넘겼음에도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안범석의 표정에서는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실책성 플레이를 한 3루수의 표정도 밝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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