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야구보다 중요한 것 (4)
나는 수천고 감독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나와 눈이 마주친 수천고 감독이 밝게 웃으며 맞았다.
“강 대표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이쪽으로 앉으시죠.”
나는 박한석 수천고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는 마주 보고 앉았다.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그의 정보창에 향했다.
-안범석 덕분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서 뿌듯하다.
-올해에도 대회 우승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과거에 그토록 에이스 선수들을 혹사하면서 경기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프로 입단이나 입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선수도 마찬가지지만, 고교 야구 감독도 자연스럽게 더 나은 팀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인지도 상승과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었다.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다른 동료 선수들도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을 수 있었고, 감독이나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도 좋은 커리어 하나가 생기는 셈이었다.
과한 혹사만 아니라면 어쩌면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었다.
다행인 건 수천고에서 안범석에게 의존하는 건 사실이지만 과하게 혹사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박한석이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별말씀을요.”
“오늘 오신 게 범석이 관련하신 거죠?”
“네, 안범석 선수랑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면서, 감독님께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제가 고등학교 감독 생활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선수는 처음 봅니다. 투수로서 갖춰야 하는 모든 것을 갖춘 선수예요.”
박한석은 안범석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신이 난듯했다.
“그렇죠……. 실력만큼은 대단하다는 건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정보창에서 좋지 않은 내용을 확인한 나로서는 밝은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반면, 박한석의 얼굴에는 싱글벙글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이번에 범석이 부모님과 얘기를 나눠보니까 국내 잔류를 하는 것도 고민 중이시더라고요. 프로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에 진출하는 방식으로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벌써 찾아가셨군요. 그럼 이제 범석이가 드림 에이전시랑 계약을 하게 된 건가요?”
“아직 결정된 건 아닙니다. 안범석 선수가 최종 결정을 한 게 아니라서요. 저희도 그렇고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안범석이 동의만 한다면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긴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었다.
“하긴 미국으로 갈지 한국에 남을지를 결정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강 대표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떤 선택이 좋을까요?”
“글쎄요……. 어느 한쪽이 확실히 좋았다면 이렇게 고민하고 있지도 않았겠죠.”
“그렇죠. 정말 어렵네요.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긴 하지만요.”
이런 이야기보다는 안범석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안범석 선수가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나요?”
“그럼요. 동료 선수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죠.”
박한석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나의 반응이 신경이 쓰였는지 박한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수가 팀 케미스트리를 흩트리지는 않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아! 그렇죠. 팀 스포츠에서는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범석이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기장에서 다른 선수들하고 호흡도 아주 잘 맞으니까요.”
“그렇군요…….”
사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박한석이 답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는 걸 알고는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감독님께서 보시기에 안범석 선수의 약점은 뭘까요?”
“범석이의 약점이요?”
“투수로서 뿐만 아니라 야구 선수로서요.”
“글쎄요……. 특별하게 약점이 보이지는 않는데요? 약점이 분명했다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보러 오지도 않았겠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박한석과의 대화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제가 대표님께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런 걸 여쭤 봐도 될지 모르겠네요.”
박한석이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우진이가 드림 에이전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정말 정식으로 계약을 한 건가요?”
“네, 그럼요. 이제 저희 에이전시 정식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박한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갸웃했다.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무슨 이유인지 궁금하기는 해서요.”
“……?”
“드림 에이전시는 이제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에이전시인데, 우진이가 들어갔다는 게 의아하기는 하더라고요. 성장하고 있는 선수이기는 하지만 프로에 갈 수 있을지는 확실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럼 감독님께서는 우진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데요?”
“그래도 귀한 왼손 투수다 보니 운이 좋아서 하위 순번으로 지명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학에 가서 몇 년 더 다듬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박한석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나는 박한석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까지 우진이가 보여줬던 모습은 모두 지우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좋아졌을 테고, 내년에는 더욱 좋아질 겁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최우진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으로 정리가 될 테니까.
* * *
나는 안범석을 직접 만나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섰다.
동시에 수천고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수천고 야구단은 역사도 오래된 데다 우승도 여러 차례 차지했을 정도의 야구 명문 고등학교였다.
전국에서도 야구로 잘 알려진 학교답게 야구 선수들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깔끔하면서도 널찍한 실내 훈련장은 물론이고, 한눈에 봐도 쾌적해 보이는 선수단 버스까지.
프로 선수들 못지않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선배 중에 프로 선수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었다.
출신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고 나서 프로 구단으로 받게 되는 지원금은 물론, 야구 선배들의 든든한 후원까지.
야구 명문 고등학교라는 명성은 물론이고, 재정 상황도 여유롭다 보니 선수들이 진학하고 싶어 하는 학교가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시설을 둘러보는데,
구석에서 누군가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이씨, 진짜!”
대화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조용히 다가가 고개를 살짝 내밀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걸 못 막으면 어쩌자는 거야, 어?”
안범석 앞에는 세 명의 선수가 서 있었다.
그중 한 선수는 두 손을 뒤로 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있었다.
아까 경기에서 3루수로 뛰었던 선수였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죄송합니다.”
“차라리 확실하게 에러를 하든가! 애매하게 하니까 에러 판정도 못 받잖아. 그거 때문에 내 자책점도 올라간 거고!”
안범석은 들고 있던 배트로 한 선수의 머리를 밀며 말했다.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
“그놈의 다음부터는 도대체 언제쯤 되는 거야? 나 졸업하면 그렇게 할래?”
“죄송합니다.”
“3루에서 제대로 잡지도 못해, 1루 송구도 불안해서 출루까지 시켜주고. 너, 나랑 다른 팀이냐? 아니면 나 망하게 하고 싶어서 그래?”
안범석은 처음보다 더 강하게 3루수의 어깨를 밀쳤다.
“아닙니다.”
후배인 3루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당하고만 있었다.
“야구를 몇 년째 하는데 볼 하나 제대로 못 던지면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해도 안 될 거 같으면 지금이라도 기술 배워!”
“…….”
“네가 오늘 내준 실책만 아니었어도 내가 아웃카운트 몇 개는 더 잡았어. 알아?”
“죄송합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와있는데, 너 때문에 내 능력을 제대로 못 보여준 거라고! 에이씨!”
안범석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가 힘겹게 다시 내렸다.
이제는 중견수를 향해 분노 가득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너는 외야수가 펜스 플레이 어떻게 하는지 아직도 몰라?”
“야, 나도 그거 바로 잡아보려고 한 거잖아.”
반말을 하는 걸 보니 중견수는 후배가 아닌가 보다.
“못 잡을 거 같으면 빨리 판단해서 바꿨어야 할 거 아니야! 아까 그것만 아니었어도 점수 안 내줬을 거 아냐!”
2:0에서 2:2가 되던 상황의 중견수 펜스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실점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외야수로서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아슬아슬했을 뿐이지 충분히 잡을 수도 있었어.”
중견수는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그러자 안범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하……. 야구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자기 분수를 아는 거야. 네 실력에는 그 공을 못 잡는다는 걸 모르니까 발전이 없는 거라고. 네가 그걸 못 하니까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
안범석의 한마디에 중견수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포수로 보이는 선수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너는 리드를 그렇게밖에 못해? 상대 선수 분석 안 하냐고.”
“무슨 소리야. 경기 전에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는데.”
“사인은 왜 그렇게 내는 거야?”
“그거 벤치에서 코치님이 보내준 거야.”
“벤치에서 해주는 대로만 하는 거면 도대체 너는 왜 있는 거야? 그냥 볼 받아주려고 있는 거야?”
“코치님이 보내주는 사인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포수가 발끈하며 안범석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코치가 그런다고 해도 너도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할 거 아냐. 이 대가리는 그냥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냐? 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플레이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안범석은 포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며 말했다.
“아이씨 진짜!”
그러자 포수가 안범석을 밀치며 발끈했다.
“왜, 때리기라도 하게? 지금 내 몸값이 얼만 줄 알아?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계약금으로 얼마 준다고 하는지 아냐고!”
안범석의 말에 포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분을 삭였다.
힘겹게 숨을 고른 안범석이 눈앞에 있는 세 선수를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작년에 내가 우승 시켜줬지? 올해도 내가 우승 시켜줄 거야. 2년 연속 우승하면 이렇게 개판 쳐도 대학은 어디든 붙을 거야. 대신에 니들도 니들의 역할 똑바로 해. 내가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냐, 잘해가고 있는 걸 망치지는 말아 달라는 거야! 알았어?”
안범석은 말하는 동안 차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려웠는지 결국 옆에 있던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
분위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제 가서 훈련해. 다음 경기에서 또 똑같은 짓 하지 말고. 꼴 보기 싫으니까 빨리 사라져.”
안범석의 말이 끝나자 세 선수는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중 후배였던 선수는 안범석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 선수들을 향해 안범석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가라는 손짓을 했다.
안범석과 마주 보고 있던 세 선수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후우-”
이 모습을 보고 나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최우진과 그 동료 선수들의 정보창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한 안범석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뒤따라가며 그의 등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저기, 안범석 선수.”
“어?”
안범석은 나를 바로 알아본 듯했는데, 고개를 한 번 갸웃할 뿐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잠깐 나랑 얘기 좀 나눌까?”
나는 안범석을 향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