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야구보다 중요한 것 (6)
그라운드에는 수천고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았고, 상대팀 1번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며 타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번 안범석의 등판 경기에서 출전했던 3루수와 중견수 그리고 포수까지 세 선수 모두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었다.
지난 안범석의 등판 경기 이후에서는 세 선수 모두 실책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 경기에서도 변함없이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과연 오늘 경기에서도 세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나에게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플레이 볼!”
심판의 콜로 경기가 시작됐다.
펑!
펑!
펑!
“스트라이크 아웃!”
안범석의 공의 위력은 오늘 경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패스트볼의 가장 느린 구속이 149km/h였다.
컨디션 좋은 에이스 선발 투수가 던지는 공은 아무리 뛰어난 타자가 와도 공략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제구력도 나쁘지 않았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 20살도 안 된 고등학교 3학년인데, 과연 5년, 10년 후에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있을까.
펑!
“스트라이크 아웃!”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포심 패스트볼에 슬라이더는 물론 낙차가 크게 떨어지는 커브까지.
변화구도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안범석은 퍼펙트게임을 노리는 것처럼 모든 공에 전력을 다해서 던지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구위가 좋은 투수가 전력을 다하기까지 하다 보니, 이닝이 바뀌어도 상대 타자들은 배트를 헛돌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 팀의 타순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어떤 선수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했다.
따라서 4회가 되어서야 1번 타자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아직 안범석은 35구밖에 던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4회에도 변함없이 호투를 펼쳐가고 있는데,
틱!
빗맞은 타구가 3루수를 향해 날아갔다.
평소라면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만한 타구였지만, 3루수의 표정과 움직임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3루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제발 잘 잡아서 아웃 시켜라.’
공은 날아오는 동안 그라운드에 한 번 바운드되기까지 했다.
3루수는 긴장된 표정으로 글러브를 갖다 대보는 데,
아…….
타구는 3루수의 글러브에 한 번에 들어가지 못했다.
예상보다 더 많이 튀어 오른 공을 몸으로 막아내기는 한 덕분에, 공이 뒤로 빠지지는 않았다.
3루수가 재빠르게 다가가 공을 집어 들고 1루로 던지는데,
‘아…….’
마음이 너무 급했던 나머지 1루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2루! 2루! 2루!”
공이 뒤로 빠지자 상대팀 1루 코치가 2루 베이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1루 베이스를 밟고 있던 주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2루까지 도착했다.
수천고의 다른 선수들이 끝까지 수비를 하며 2루 진루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세이프!”
전광판에는 상대팀의 안타 하나와 수천고의 에러 하나가 올라갔다.
결국 3루수는 오늘도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3루수의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안범석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경기는 곧바로 이어졌는데,
펑!
“볼!”
펑!
“볼!”
역시나 실책 이후로 안범석의 피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2 볼 0 스트라이크.
이번 공도 볼이 된다면 볼넷을 내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야 했다.
안범석이 여러 차례 심호흡을 고르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딱!
이번 타구도 공교롭게 3루수가 있는 곳을 향해 바운드되며 날아갔다.
3루수에게는 극한의 긴장 상황이었는지 움직임이 눈에 띄게 딱딱했다.
겨우 자세를 낮춘 채로 글러브를 갖다 대고 공이 예상되는 코스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좋은 수비를 보여줘서 방금 실책을 만회하고 싶었을 텐데,
턱!
타구가 잔디와 흙 경계에 애매하게 맞으며 바운드가 예상했던 높이만큼 튀지 못하면서, 3루수의 글러브가 기다리고 있던 곳보다 더 낮게 날아왔다.
‘아!’
결국, 3루수는 다리 밑으로 타구를 흘려보내는 알까기를 저지르고 말았다.
“달려! 달려! 달려!”
상대팀 더그아웃에서는 주자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치기 시작했다.
2루에 있던 주자는 3루를 거쳐 홈까지 내달렸고, 타자 주자도 1루를 지나 2루까지 도착했다.
“와아아아-“
안범석을 상대로 선취득점을 뽑아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는지 상대 팀 더그아웃에서는 광란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2루에 도착한 주자도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올리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반면, 이어지는 실책으로 실점까지 이어지자 안범석의 표정에서는 분노가 가득 느껴졌다.
연속으로 실책을 2개나 저지른 3루수는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타임!”
두 사람의 심정을 읽기라도 했는지 수천고 벤치에서 곧바로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그러고는 결국 연속된 실책으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3루수를 교체했다.
알까기는 운이 안 좋았던 거긴 한데.
어찌 되었건 3루수의 연속된 실책으로 실점까지 연결됐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새로운 3루수가 수비 위치에 서자마자 경기는 재개됐다.
딱!
이번에는 타구가 높이 떠올라 외야로 날아갔다.
중견수가 타구 판단은 제대로 했지만, 주춤주춤했던 탓에 공이 떨어질 곳으로 빠르게 대시하지 못했다.
결국 타구가 한 번 바운드된 다음에 공을 잡고는 2루수를 향해 던졌다.
저 정도는 빠르게 달려왔다면 충분히 아웃을 시킬 수 있는 타구였는데.
아마 지난 경기에서 실책 아닌 실책으로 실점을 내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실책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아웃 카운트 하나를 놓친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범석은 자신의 힘으로 아웃 카운트를 쌓아갔다.
결국 6이닝을 소화하며 자책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오늘 경기를 보니 나는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있었다.
* * *
바로 다음 날, 나는 안범석의 아버지와 다시 마주 앉았다.
“최종 결정은 끝난 건가요?”
“네.”
“그럼 세부적인 계약 내용들을 조율해 볼까요?”
안범석의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계약을 전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에이전시에서는 안범석 선수를 매니지먼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는지 안범석의 아버지는 순간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드림 에이전시에서 범석이랑 계약해서 매니지먼트를 해주신다면 못해도 당장 억 단위 돈을 벌 텐데요. 게다가 몇 년 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다면, 에이전시의 인지도도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테고요.”
미안한 말이지만 명성은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만 해도 국내 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데다 인기도 많은 선수들이었으니까.
“저희가 선수를 영입하는 데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범석 선수가 그 원칙을 충족시키지는 못한 것 같아서요.”
“범석이가 어떤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거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팀워크를 깨트리는 선수와 함께할 수는 없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어제 정인규의 말처럼 우리 에이전시에서 그가 팀플레이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 소속 선수들 사이의 관계에 위기가 생긴다면 의미가 없었다.
“저희 아들이 승부욕이 강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종종 과한 경우가 있긴 하죠. 하지만 선수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그러는 거 아닌가요?”
“제가 봤을 때는 승부욕이 아닙니다. 팀 동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걸로 보입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래서 계약을 안 하시겠다는 말인 거죠?”
“네, 원하는 답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큰 실수하시는 것 같은데, 후회 안 하시겠어요? 사실 YJ에이전시에서도 제안을 받은 상황이라서요.”
안범석의 아버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저는 제 선택에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거고요.”
“우리 범석이를 거절하는 곳은 처음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제가 안범석 선수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선수입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쳐줘야죠. 저희 에이전시와 함께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아버님께서 꼭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진심으로 한 부탁이었다.
* * *
나는 안범석 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치고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펑!
“나이스 볼!”
펑!
“굿, 좋아.”
훈련장에는 시원시원한 피칭 소리와 정인규의 외침이 들려왔다.
피칭존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선수는 바로 최우진이었다.
개학을 한 이후에도 거의 매일같이 학교 훈련이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와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참 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 훈련장에 자주 올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았고, 이곳에서 매일 생활하는 오석훈과 박성주도 원정 경기를 떠나기도 했다.
덕분에 최우진은 널찍한 훈련장을 혼자 쓰면서 정인규의 1:1 코칭을 원 없이 받고 있었다.
같은 팀에 안범석이 있었기 때문에 최우진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최우진은 분명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잘 먹으면서 프로 선수들과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구속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펑!
펑!
“여기까지 하고 잠시 휴식하자.”
“네.”
최우진이 글러브를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훈련이 잠시 멈춘 듯하자 나는 피칭존으로 다가갔다.
“대표님, 오셨네요?”
“볼 던질 때 점점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정말요?”
칭찬이 반가운지 최우진은 밝게 웃었다.
“그리고 우진아,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
“좋은 소식이요? 뭔데요?”
“네 선배 안범석 있잖아. 우리 에이전시 안 오게 됐어.”
“영입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학교에서도 다들 우리 에이전시로 올 거라고 하던데.”
최우진은 의아한 듯 물어보며서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원래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우리 회사랑은 조금 안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는 게 본인한테도 더 좋은 선택일지 모르니까.”
“오호.”
최우진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우진이 너 되게 좋아하는 거 같다?”
“아, 아니에요. 그래도 같은 학교 선수가 오는 건데 싫어할 이유가 있나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최우진의 얼굴에서는 기쁜 감정이 쉽게 숨겨지지 않았다.
나와 최우진의 대화가 들렸는지 정인규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대표님, 완전히 결심하신 거예요?”
“네.”
나는 정인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결정하셨네요.”
“그렇죠.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눈앞에 아른거리는 수억 원의 돈이 탐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게 될 선수와 함께하고 있다는 명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선수들이 가장 중요했다.
안범석이라는 선수가 앞으로 좋은 환경에서 잘 성장해서 좋은 선수가 되어 주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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