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에이전트 강현우 (2)
“흠. 그래요? 기대 이상이네요.”
“네. 어제 경기 이후로 오석훈 선수의 SNS 팔로워 수나 검색량이 20배 이상 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늘어나고 있고요.”
서류를 넘겨보던 임예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김민환은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갔다.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중 몇 군데 골라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좋네요. 경기력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 잘 조절해주세요.”
“네. 그리고…… 강현우 씨한테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진행하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임예지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선수 출신이기도 하니까 홍보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몇 마디 덧붙였다.
“이제부터 경기 성적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실수하지 않도록 선수 관리를 철저하게 해주세요.”
“예. 문제 안 생기도록 주의시키겠습니다.”
“팔로워 수나 관련 기사는 매일 업데이트해서 보내주시고요. 그것 말고도 혹시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보고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민환이 대표실을 나서려고 살짝 몸을 돌리는데 임예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 참. 김 팀장님. 현우 씨한테 필요한 지원은 다 해주고 있나요?”
“그, 그럼요. 제가 다 해주고 있습니다.”
“진행하면서 특별히 요구하는 게 있던가요?”
“음…… 아직 특별한 요청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대단하네요. 짧은 시간에 회사의 도움도 없이 이 정도 성과를 냈단 말이죠?”
“굳이 말한다면 그렇다고도…… 아!”
자신이 강현우와 이진원의 미팅 자리를 만들어줬다는 걸 뒤늦게 떠올린 김민환이 그 내용을 말하려고 했지만, 한번 지나가 버린 타이밍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앞으로는 현우 씨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팀장님이 먼저 제안해주세요. 회사의 도움 없이도 성과를 올리는데 제대로 지원해주면 훨씬 낫지 않겠어요? 이런 때일수록 팀장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 제가 따로 설명 안 해도 잘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김민환의 대답을 들은 임예지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짓더니 이만 나가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깨가 축 처진 김민환은 힘없이 대표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임예지는 아까보던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역시 예상대로인가?”
임예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 * *
“아휴. 선배님 별말씀을요. 이제 시작이죠.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길었던 통화를 끝내자마자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오! 그래, 인규야. 반갑다. 그동안 잘 지냈냐?”
고등학교 동창인 정인규였다.
-나야 잘 지내는데, 친구가 에이전트 됐다는 소식을 TV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몇 주 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도 그렇지 서운하게. 내려오면 꼭 연락해라 밥이나 먹자.
“그래, 내가 이번에 휴가 때 연락할게.”
정인규와의 통화를 마치자 이제야 잠시 쉴 수 있었다.
“휴…… 끝이 없네. 끝이 없어.”
이제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약속 장소가 여기 어디쯤이었던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있는 가게 간판을 확인했다.
“현우 씨, 여기예요!”
마침 저 앞쪽에서 나를 향해 해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깔끔한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이수민이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아니에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갑자기 바빠져서 못 오실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그리고 바빠도 당연히 와야죠. 약속한 건데.”
내 말에 이수민이 수줍게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이수민이 약속 장소로 정한 카페는 조용하고 심플한 공간이었다.
“어떤 거로 드세요? 제가 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할 게요.”
“네. 금방 주문하고 올게요.”
잠시 후 주문을 마친 이수민이 돌아왔다.
“커피는 금방 가져다줄 거예요. 바쁘실 거 같으니 바로 인터뷰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인터뷰 끝날 때쯤 사진 기자가 올 거예요.”
이수민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녹음해도 될까요? 원고 작성만 끝나면 바로 삭제할게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내가 시원하게 대답하자 이수민이 녹음기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녹음 버튼을 누르려다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
“사실 어젯밤부터 너무 설렜거든요.”
“네? 왜요?”
“얼마 전까지 제가 진심으로 응원하던 선수를 인터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그 말씀은 설마…… 저를 응원하셨어요?”
“그럼요. 부상을 이겨내고 복귀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데요.”
나는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굴도 잘생기고 야구도 잘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나를 응원했을까.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1군에서 경기 뛰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지금 모습도 충분히 멋져요.”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근데 어떻게 해서 갑작스럽게 에이전트의 길을 선택하게 되신 거예요?”
드디어 인터뷰의 시작인지 이수민이 녹음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대학 시절에 저를 지도해주신 감독님의 영향이 컸어요. 유성환 감독님은 제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시거든요. 머리 부상 이후 감독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다가, 저도 감독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러셨군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정한 편이신데요. 혹시 은퇴를 하고 나면 더이상 선수로 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미련 같은 건 없으셨나요?”
“음…… 미련이요?”
나는 잠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솔직히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마지막 순간까지 선수로 뛰어보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으니까요.”
“그럼 그 미련이랄까, 좌절감 같은 건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극복을 했다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생각해봐도 선수로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 보였거든요.”
“그럼 에이전트로서 강현우는 다르겠죠?”
“아마도요?”
답변하는 내내 이수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사이 종업원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제가 처음부터 너무 무겁게 대답했나요?”
“아니에요. 아마 팬들은 현우 씨의 이런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을 거예요.”
그러면서 노트를 한 장 넘긴 이수민이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궁금증이 있는데요. 어제부터 커뮤니티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현우 씨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오석훈 선수가 저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건가요?”
“아……. 저도 어제 석훈이 인터뷰를 보긴 했는데요. 사실 저는 한 게 없어요. 지금 석훈이한테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뿐이거든요. 딱 그거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다 석훈이가 열심히 해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거죠.”
“두 분이 서로 상대방 덕분이라고 하시네요.”
“아마 제 말이 맞을 거예요.”
이수민이 큭큭 웃음을 터뜨리자 내 입꼬리도 함께 올라갔다.
“그럼 앞으로 어떤 에이전트가 되고 싶으세요?”
“음…… 선수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운동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든 순간이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고 언제든지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형 같은 에이전트가 된다면 가장 행복할 거 같은데요?”
내가 에이전트를 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꿈만 같은 순간을 상상하니 내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이수민이 인터뷰를 올렸다며 톡을 보내왔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에이전트다! 오석훈의 슈퍼 에이전트 강현우
-선수들에게 언제나 힘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형이 되고 싶다.
“이게 뭐야! 도저히 못 봐주겠다.”
그녀가 보내준 기사를 보고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제목이나 인터뷰 내용은 둘째치고, 어색하게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바라보는 내 사진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분명 그날 찍은 사진 가운데 오랜 시간 고민해서 고른 건데.
대문짝만하게 실린 내 사진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위이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어 석훈아.”
-형. 이 사진 뭐예요. 너무 어색하잖아. 하하하-
핸드폰 너머로 오석훈의 함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또 다른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로 봐서는 박성주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선배. 팔짱도 좀 자연스럽게 해보지. 완전히 굳었네.
“이것들이? 야. 내 사진 그만 보고 훈련이나 해.”
-이거 보다가 너무 웃겨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잖아요.
“후…… 너희가 기쁘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이다.”
-우울할 때마다 이거 보면 되겠어요. 으하하하-
둘의 웃음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오늘은 회사에 일이 있어서 못 가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우리가 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서 잘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 수고들 해.”
나는 전화를 끊고 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김민환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사무실로 향하는데,
“선배님!”
누군가가 저 앞쪽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 정환아?”
“선배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어. 나야 잘 지냈지.”
“은퇴하셨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는데 자세한 건 오늘 기사 보고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인사는 무슨. 한참 시즌 중이라 바쁘잖아.”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최정환과 대화하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는 마지막에 만났을 때 봤던 내용이 떠 있었다.
그런데 최정환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순간, 그 내용들이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강현우의 은퇴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x$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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