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애착 혹은 집착 (1)
나는 오랜만에 수천고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갑자기 이렇게 찾은 이유는 드디어 최우진이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한석 수천고 감독과 대화를 나눈 것이 영향을 준 건지 최우진의 성장을 직접 확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선발 등판 예고를 받고 난 이후로 최우진은 흥분을 쉽게 주체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선발 투수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즐거울 거라는 것도 이해는 했지만, 너무 들떠서 오버 페이스 하다가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당장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은 그를 진정시키느라 하루 종일 애를 먹었다.
경기 시간보다 1시간쯤 일찍 도착한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경기장을 바라봤다.
최우진이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안범석의 선발 등판 경기와는 다르게 스카우터들의 수가 적다는 점이었다.
기본적인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한 인력만 눈에 띄었다.
언뜻 봐도 구단 스카우트에서도 높은 직급이 아닌 팀원급 스카우트들이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최우진이 드림 에이전시 소속 선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 구단에서는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것들 때문이라도 최우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볼 만하지 않나?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최우진의 진가를 알아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최우진이 공식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만약 오늘 선발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으로도 선발 등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한 경기 한 경기 치르면서 제구력이 좋은 왼손 투수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프로 구단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도 없겠지.
잠시 후, 1회 초 수천고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틱!
틱!
수천고 타자들은 1회부터 끈질기게 승부를 이어갔다.
1회부터 득점권까지 주자가 출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안타가 나오지 않으며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회 말 0:0.
수천고의 수비 이닝이 되며 드디어 최우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심판에게 공을 건네받은 최우진은 연습 피칭을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긴장이 됐는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선발 투수 최우진의 첫 번째 피칭이 시작될 차례였다.
펑!
“스트라이크!”
심판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콜을 외쳤다.
“와우.”
나는 절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선발 첫 등판에서 던진 첫 번째 공을 스트라이크로 던졌다는 점은 물론이고,
138km/h!
작년까지만 해도 130km/h 초중반에 머무르던 구속이 후반으로 껑충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우진의 최고 강점인 제구력도 여전히 유지된 채로 말이다.
아직 구속이 아주 빠른 건 아니었지만, 스트라이크 존 보더라인에 걸쳐 들어오는 패스트볼은 구속에 관계 없이 위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성장해서 140km/h 중반만 넘어가더라도 프로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선수가 될 게 분명했다.
이어지는 공도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패스트볼이었다.
틱!
타자가 배트를 돌려봤지만, 워낙 코너로 정확하게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안타로 연결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틱!
틱!
이어지는 패스트볼에도 커트를 했다.
0 볼 2 스트라이크 상황이 계속됐다.
구속이 아주 빠른 것은 아니다 보니 상대 타자가 커트를 해낼 정도는 됐던 것 같다.
아직 패스트볼만으로 스트라이크 아웃을 잡아낼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이제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이번 겨울에 확실한 변화구를 하나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고지훈은 물론이고, 정인규에게 오랜 기간 코칭을 받았는데.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최우진이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좌타자를 상대로 절묘하게 멀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지기만 한다면 위력적일 게 분명했다.
그러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어?”
처음 던져보는 공이라 그런지 손에서 약간 빠진 듯했다.
하지만,
후웅-
타자는 당연히 최우진이 이번에도 패스트볼을 던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까와 똑같은 타이밍에 스윙을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완벽한 코스로 공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상대 타자의 타이밍은 뺏을 수 있었다.
일단 첫 타자를 상대로 아웃을 잡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곧바로 2번 타자와의 승부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최우진이 패스트볼을 던지는데, 타자의 배트가 초구부터 빠르게 돌았다.
딱!
타구는 2루수와 1루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첫 번째 피안타를 허용하는 순간이었다.
공이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몰리니 여지없이 안타를 허용했다.
지금보다 구위를 더 키울 필요는 있어 보였다.
1 아웃 주자는 1루.
타석에는 곧바로 3번 타자가 들어왔다.
선발 투수에게 1회가 어려운 이유였다.
아직 긴장이 완전히 풀리지도 않은 데다, 상대팀에서 점수를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라인업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발 투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최우진은 1루 주자를 바라보며 투구를 준비했다.
과연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최우진은 1루 주자가 신경 쓰였는지 두 번이나 견제구를 던지고 나서야 타자와 승부를 시작했다.
펑!
“볼!”
펑!
“볼!”
1번 타자와의 승부와는 달리 공이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틱!
2 볼 상황에서 던진 공을 노려준 타자 덕분에 스트라이크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이것도 만약 스윙을 하지 않았다면 볼이 됐을만한 공이었다.
2 볼 1 스트라이크.
이제 최우진이 네 번째 공을 던지는데,
“2루! 2루! 2루!”
최우진이 견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1루 주자가 2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볼을 잡은 포수가 2루를 향해 던져보지만,
“세이프!”
주자는 여유 있게 2루에 들어갔다.
방금 던진 공도 볼이 되며, 3 볼 1 스트라이크로 몰리게 됐다.
펑!
“볼!”
결국 볼넷으로 또 한 명의 타자에게 출루를 허용하게 됐다.
주자를 내보내고 난 상황에서 경기를 운영하는 부분은 경험이 쌓이면 좋아지겠지.
1 아웃 주자는 1, 2루.
이제 상대 팀 4번 타자를 상대해야 했다.
위기 상황이 되자 최우진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포수에게서 사인을 받은 최우진은 2루 주자를 흘끗 살피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방금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기 때문인지 4번 타자는 기다릴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을 던지는데,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를 듣자마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설마 넘어가나? 제발 제발 제발.’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이 통했을까.
아슬아슬하게 펜스에 맞고 떨어졌다.
그사이 2루, 1루 주자는 빠르게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우익수가 빠르게 공을 잡아 던져보지만,
두 명의 주자는 이미 홈 베이스를 밟은 뒤였고, 타자는 2루 베이스에 도착해있었다.
‘아깝다.’
상대팀 스코어가 2점으로 바뀌었다.
최우진은 만족스럽지 않은지 고개를 저으며 마운드로 돌아왔다.
1회부터 연속 출루를 허용하며 실점을 한 탓에 흔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어지는 두 명의 타자에게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추가 실점은 막았다.
2회에 접어들면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최우진의 피칭에도 조금 여유가 생긴 듯했다.
아직 상대 타자를 구위로 찍어 누를 정도는 아니다 보니 맞춰 잡는 피칭으로 승부를 펼쳐갔다.
틱!
틱!
정교한 제구력을 무기로 상대 타자의 빗맞은 타구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수천고 내야수와 외야수의 도움을 받으며 아웃 카운트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맞춰 잡는 피칭으로 투구 수를 줄이기도 했지만,
펑!
“볼!”
펑!
“볼!”
주자를 내보내거나 파워가 좋은 선수를 상대할 때는 정확하게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 탓인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우진이 흔들릴 때마다, 수천고 동료들의 좋은 수비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따악!
수천고 타자들이 안타와 홈런으로 점수를 뽑아주며 결국 앞서기 시작했다.
리드하는 상황에서 등판을 하게 되자 최우진의 표정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그 덕분인지 슬라이더의 각도도 점점 날카로워지며 상대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방금 던진 결정구는 본인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는지 주먹을 불끈 쥐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선발 승리의 기준이 되는 5회.
최우진은 여전히 마운드에 있었다.
투구 수가 80개를 넘어가면서 지친 기색이 느껴지기는 했는데, 완급조절로 구속을 높였다 줄이며 타자의 타이밍을 뺏어갔다.
게다가 구속을 다르게 던지면서도 제구력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저건 알려준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혹시 고지훈을 보며 배운 걸까?
펑!
“스트라이크 아웃!”
95번째 던진 공이 최우진의 오늘 경기 마지막 아웃 카운트였다.
5이닝 2실점 4피안타 4탈삼진.
선발로 첫 번째 등판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성적 자체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95구째를 던지는 순간에도 패스트볼 구속이 135km/h가 찍혔다.
오늘 경기의 최고 구속이었던 139km/h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였다.
선발 투수로서 필요한 스태미나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중간중간 흔들린 탓에 투구 수가 늘어났으니 점점 흔들림을 줄여간다면 이닝 소화력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게 분명했다.
이 정도면 앞으로도 꾸준히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만족스러운 첫 선발 등판이었다.
* * *
수천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낮 경기였던 덕분에 6시도 되지 않아서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우리 선수들의 경기 중계를 볼 계획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데,
숙소 대문이 열리더니 정인규와 함께 한 선수가 걸어 나왔다.
“그래, 교진아. 조심히 가고, 구단 복귀하기 전에 들러.”
정인규는 한 선수의 등을 두드려줬다.
“네, 선배님.”
그 선수가 정인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선수의 이름은 한교진.
재규어즈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와 함께 2군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군대에 다녀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전역을 해서 정인규를 찾아온 건가?
“교진아!”
“어, 선배님!”
나와 눈을 마주친 한교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잘 지냈지?”
“네, 그럼요. 그리고 선배 축하드립니다. 에이전시가 정말 멋지네요.”
“고맙다. 더 열심히 할게.”
나는 자연스럽게 한교진과 악수를 나눴다.
정보창에 나타나는 내용을 보니,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눴을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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