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애착 혹은 집착 (2)
내 시선은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정보창으로 향했다.
-포수 포지션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루빨리 프로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한교진은 훌륭한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그래서 신인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감 덕분에 공격형 포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아직 포수 수비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서 1군 선수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타격 말고도 포수 수비에 필요한 블로킹, 주자 견제, 프레이밍을 포함해서 경기 전체를 보는 눈까지 가지고 있어야 했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서 갖춰야 할 능력이 많기 때문에, 포수 한 명을 육성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그의 나이가 24살이니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교진아, 이제 전역한 거지?”
“네. 이제 마지막 휴가 나왔어요. 전역은 다음 주고요.”
“축하한다. 전역하고 나면 바로 구단으로 합류할 계획이야?”
“그래야죠. 최대한 빨리 경기 뛰고 싶어서 군대에서도 운동을 계속해뒀거든요. 실전 감각만 찾으면 바로 경기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교진의 몸을 보니 시즌 중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원래 포수치고는 덩치가 큰 편이 아니었는데, 이제 보니 체격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이야, 그럼 조만간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겠네.”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그래. 조만간 인규 코치랑 같이 식사하자. 전역 축하로 맛있는 거 사줄게.”
“네, 또 찾아뵙겠습니다.”
한교진이 나와 정인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멀어졌다.
* * *
나는 정인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에게 물었다.
“근데 교진이한테 무슨 일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정인규가 나를 보며 깜짝 놀라 물었다.
“내가 누구냐. 딱 보면 딱 알지.”
“하……. 내가 교진이 고등학생 때 코칭 했던 거 알지?”
“그럼. 잘 알지.”
한교진도 진한고를 졸업했다.
진한고는 물론 재규어즈에서 선수 생활까지 하고 있어서 나의 각별한 후배이기도 했다.
“저 친구가 포수를 되게 늦게 시작했잖아.”
“어, 그렇지.”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전까지 우익수를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포수로 전향을 했으니 다른 포수들에 비하면 시작이 꽤 늦은 편이었다.
다만 좋은 어깨와 정확한 송구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포수로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이번에 구단에서 주 포지션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나 봐.”
“포지션을 바꿔? 재규어즈에서 교진이를 포수 유망주로 생각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 그래서 군대도 빨리 해결하게 한 걸로 아는데.”
“그렇긴 해. 근데 아무래도 포수 수비라는 게 짧은 시간에 성장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당장 교진이가 가진 타격 재능만 놓고 보면 2군에 두기가 아까우니까.”
“아……. 그래서 포지션 변경해서 1군으로 가자는 말이구나?”
“응. 1루수를 보거나 원래 했던 코너 외야수로 넘어가기만 하면 당장 내년 시즌에 1군 콜업도 가능한 상황이니까. 내년이 뭐야, 이번 시즌 후반에 확대 엔트리 시행되면 바로 콜업될 수도 있지.”
“문제는 교진이가 포지션 변경을 하기 싫어하는 거고?”
“그렇지. 포수 애들이 대부분 그렇잖아. 교진이도 포수 포지션에 애착이 크더라고.”
특정 포지션에 애착을 갖고 있어서 포지션 변경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의 대부분은 포수였다.
포수는 야구 수비에 있어서 가장 힘든 포지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몸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뜨거운 여름에도 무거운 장비를 맨 채로 쭈그리고 앉아서 몸을 날려 투수의 공을 받아야 하고, 상대 타자에 대해서 밤새도록 공부까지 해야 했다.
거기에 다른 타자들과 마찬가지로 타격 훈련을 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직 포수만이 누릴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포수는 투수를 포함해 내야, 외야 선수들을 리드하며 경기 전체를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이었다.
그러다 보니 포수를 경험한 선수들은 포수라는 포지션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애착이 있지 않다면 포수라는 포지션을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타격 좋고, 어깨 좋으면 코너 외야수가 딱이긴 한데.”
한교진의 심정이 어떨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하루빨리 1군 무대를 밟고 싶다면 이것도 분명히 좋은 방법이긴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지금 재규어즈 코너 외야수 자리면 경쟁해 볼 만 하거든.”
“음……. 그럼 교진이 불러서 얘기 좀 나눠볼까?”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정인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도 우리 후배기도 한데. 도와줄 수 있는 건 뭐라도 해줘 봐야지.”
“안 그래도 교진이가 우리 에이전시에 관심이 있어 보이더라고. 아마도 도움을 받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 거면 당연히 만나서 얘기 나눠봐야지.”
“그렇지? 지금 바로 연락할게.”
내 대답을 들은 정인규는 곧바로 한교진에게 전화를 했다.
* * *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
한교진이 다시 에이전시 숙소를 찾았다.
거의 꼭두새벽이나 다름없을 만한 시간에 도착했다.
얼마나 일찍 도착했는지 제대로 씻기도 전이었다.
이 정도면 집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얘긴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군대 생활을 해서 그런 건가.
나는 급하게 겨우 옷을 챙겨 입고 그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제가 너무 일찍 왔죠?”
“아니야. 빨리 만나서 이야기 나누면 좋지.”
나는 한교진에게 시원한 음료를 한 잔 건네며 마주 앉았다.
“선배 대단하시던데요. 군 생활하면서도 기사를 보기는 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정말 장난 아니던데요.”
“아니야, 아직 가야 할 일이 멀었지.”
내가 손사래를 치는 데도 한교진은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민망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화제를 돌렸다.
“교진아, 요즘 너 고민 있다며.”
“네……. 이번에 감독님하고 얘기 나눴거든요.”
“인규한테 조금은 들었어. 구단에서 포지션 변경하자고 했다던데?”
“네…….”
한교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정말 하기 싫어?”
“후……. 안 하고 싶긴 해요.”
“근데 지금 너한테는 우익수가 제일 잘 맞을 것 같은데? 외야수로 가면 포수보다 수비 부담도 줄어들 테니까 타격에 집중할 수도 있을 거고.”
한교진이 가진 타격 역량이라면 중견수 도널드 왓슨과 함께 무시무시한 외야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한데요……. 제가 꼭 포수가 해보고 싶어서요.”
“너, 빨리 1군 가고 싶지 않아?”
나는 한교진의 정보창을 보며 물었다.
-포수 포지션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루빨리 프로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 한교진에게 두 가지 내용은 상충되는 상황이었다.
포수 포지션과 1군에 하루빨리 올라가는 것 중에서 하나는 내려놓아야 했으니까.
“1군으로 가고 싶기는 하죠. 2군 경기 뛰고 싶어서 야구 선수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프로 팀에서 주전 포수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 그리고 팀에서 세 번째 포수는 1군 경기에 출전할 횟수도 거의 없을 거고.”
수비에서 포수가 차지하는 역할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보니, 준비되지 않은 선수를 쓸 구단은 없었다.
“…….”
“지금 네 타격 실력에 코너 외야에 1루까지 커버하면 당장 1군 갈 수 있을 텐데.”
“그것도 그렇긴 하죠…….”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런 선수 있잖아. 메이저리그에서 빨리 뛰고 싶어서 포수 포기하고 우익수로 전향한 선수. 그 선수가 만약에 계속 포수 하겠다고 했으면 아마 지금도 메이저리그 무대 못 밟아봤을지도 몰라.”
“후…….”
한교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민에 잠겼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포수가 꼭 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사실 포수는 화려한 포지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쭈그리고 앉아서 몸을 날려야 하고, 공이 타자의 배트에 빗맞기라도 한다면 몸에 맞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투수의 빠른 공이 배트에 빗맞는 순간에 구속이 더욱 빨라지니, 아무리 보호대를 하고 있어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하고 싶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그냥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
그냥 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보다 강력한 동기였다.
“선배님, 계속해 보면 안 될까요?”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
“1군 포수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동안 끊임없이 포지션 변경해 보라는 유혹도 있을 테고. 그럴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참아낼 수 있겠어?”
나의 물음에 한교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해보겠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지?”
“정말 꼭 해보고 싶어요.”
한교진의 눈빛을 보니 확실하게 결심을 세운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같이 해보자. 우리 후배가 해보겠다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선배님, 감사합니다.”
한교진이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훈련은 많이 했어?”
“네. 군 생활하면서도 일과 끝나고 틈날 때마다 했어요.”
“군대에서도 훈련을 했어?”
“중대장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요. 훈련할 수 있게 지원해 주셨어요.”
“오, 정말? 좋은 분이시네.”
나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갔다.
“교진아. 지금 네가 포수로서 제일 부족한 부분이 어떤 거지?”
“블로킹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제일 자신 있는 건?”
“송구는 자신 있어요. 2군에서도 도루 저지는 4할이 넘었거든요.”
포수로 전향하기 전에 외야수로도 송구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럼 같이 훈련을 해보면서 얘기하는 게 좋겠다. 내일 장비 가지고 에이전시로 와. 오고 가는 거 힘들면 당분간 여기서 지내도 되고.”
“근데, 선배…….”
내 말을 들은 한교진이 주저하며 나를 바라봤다.
“뭐 할 말 있어?”
“사실 제가 짐을 다 챙겨오기는 했거든요. 혹시 선배만 괜찮으시면 오늘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다 가져왔다고? 장비를?”
“네. 혹시 몰라서 다 가져왔어요. 며칠 지낼 옷들도요.”
“내가 오라는 말 안 했으면 어쩌려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설마 선배가 저한테 그냥 가라고 하시지는 않을 거 같았어요.”
그 대답을 듣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네 말이 맞다. 그럼 바로 가서 준비해서 시작해 보자.”
나는 한교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함께 사무실 문을 나섰다.
* * *
나와 정인규 그리고 한교진은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한교진이 가져온 포수 장비를 갖춰 입는 동안, 나는 한교진이 포수로 경기를 뛰던 시절 데이터를 살펴봤다.
솔직히 타격 부분에서는 자세하게 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이미 두 눈으로 봤으니까.
한교진에게 중요한 건 포수 수비였다.
“전체적으로 체크를 해보려고 하니까. 블로킹부터 송구, 프레이밍까지 한번 봐볼게.”
“네.”
한교진은 씩씩하게 답하고는 홈 베이스 뒤편에 앉았다.
잠시 후, 타격 기계에서 공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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