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한바탕 소동 (4)
나는 김석원 펠리컨즈 단장을 만나기 위해 펠리컨즈 경기장을 찾았다.
연봉조정 신청 이후로 오랜만에 마주 앉았는데도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불쾌감이 느껴졌다.
김석원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보니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소영준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서는 그의 결정이 무조건 필요했다.
이번만큼의 내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먼저 대화의 물꼬를 텄다.
“단장님, 못 뵌 사이에 얼굴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갑자기 좋아졌을 리가 있나.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들 때문에 늙지만 않았으면 다행이지. 흐음.”
김석원의 반응은 역시나 예상대로 시큰둥했다.
이런 그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게 절대 쉬운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트레이드는 정말 진행하실 계획입니까?”
“이미 자네 에이전시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나? 그거 때문에 내가 기자들한테 연락을 얼마나 받았는지 알고 있긴 한 거야?”
김석원이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답했다.
“만약에 구단에서 선수가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다면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죠.”
“우리가?”
정확하게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지.
“단장님께서 하신 인터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거잖습니까. 선수에게 오해를 풀어주셔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테니까요.”
“글쎄…….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라서.”
지난번 연봉 협상 때 봤던 그 얄미운 표정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아우 저걸 그냥 확.
후……. 참아야지.
“당장 펠리컨즈 라인업에 영준이가 빠지면 타격이 크지 않나요? 공격이랑 수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는 걸 모르실 리도 없을 테고요.”
“구단 입장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로 잡음을 많이 만들어내는 선수는 불편해. 연봉 협상 때 시끌시끌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시즌 중에도 여러모로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인데, 어떻게 좋아하겠나.”
빨리 소영준이 이적해서 당신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 막았다.
“그럼 정말 이렇게 계속 진행하시는 겁니까?”
“카드가 맞으면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는 거지. 만약에 우리한테 이익이 되는 방향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
김석원의 고집을 꺾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희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김석원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수민에게 이 내용을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씨 또 이수민 기사네. 그럼 드림에이전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게 거의 팩트라는 거 아냐?
└재규어즈에서 제대로 노리고 제안했다는 말이 있던데.
└이미 수비 잘해주는 김재형도 있는데 굳이 유격수를?
└지명타자로라도 쓰려는 거지. 당장 중심 타선 보강하는 것만으로도 전력 급상승이잖아.
└와. 진짜 우승 노리려는 건가. 여기서 타선 보강되면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닐 거 같은데. 나 진심 설렌다.
└아……. 펠리컨즈 큰일 난다고. 제발 ㅠㅠ
* * *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운호 펠리컨즈 감독이 단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단장님, 이제 무슨 일입니까?”
“어, 임 감독. 어서 들어와.”
김석원은 평온하게 임운호를 향해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이게 무슨 일인 겁니까.”
하지만 임운호의 표정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긴. 구단을 운영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어떻게 이런 결정을 저랑 상의도 하지 않고 진행하시는 겁니까!”
“이 사람아. 상황이 다급하면 단장이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다급한 일이 있는 건데요?”
“그거야…… 그럴 일이 있었어.”
김석원이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뜬금없이 트레이드가 왜 나온 겁니까? 비슷한 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요.”
“나는 그런 얘기 한 적 없어. 소영준이 먼저 꺼낸 거지. 임 감독도 소영준이 인터뷰한 거 봤을 거 아냐?”
“하……. 만약 선수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고 해도, 대화를 잘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먼저이지 않습니까?”
임운호가 김석원을 노려보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며 물었다.
“한 선수가 팀 전체의 케미스트리를 해치는 상황인데, 하루라도 빠르게 원인을 제거해야지. 그래야 팀이 제대로 돌아갈 거 아닌가?”
“……그럼 영준이 나가면 대책은 있으십니까?”
“트레이드하면 다른 팀 좋은 선수들 데려올 수 있을 거 아냐? 그걸로 충분히 해결되겠지. 소영준이 무슨 골든글러브 받을 정도로 엄청난 선수도 아닌데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
김석원이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답했다.
“당장 주전 유격수를 내줄 팀은 있답니까?”
“유격수야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겠지. 아니면 우리 팀에도 유격수 보는 애들 많잖아. 걔네들 출전시키면 되지.”
“허……. 유격수가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인지 모르시진 않을 텐데. 당장 백업 선수들로 남은 시즌 운영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임운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기회에 걔네들한테 기회 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 그 선수들도 그렇게 기회를 얻으면서 성장하는 거지.”
“주전 유격수의 빈자리를 단숨에 메우기는 어렵죠! 그것도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더더욱이요.”
“감독이면 그런 것도 대비하고 있어야지. 한 시즌 진행하면서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는 건데. 그런 고민도 안 했다는 건가?”
“시즌 중에 감독하고 상의도 하지 않고 주전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것까지도요?”
“트레이드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부상을 당할 가능성도 있는 거잖나. 선수들이 경기하다가 다치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말이야.”
“후…….”
김석원의 답을 들은 임운호는 답답하다는 듯 깊은숨을 내쉬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대화가 멈추자 어색한 공기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자 김석원이 입을 열었다.
“아직 구체적인 트레이드 제안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도 있는 거고. 기다려봐. 내가 카드 잘 맞춰볼 테니까.”
“지금 우리 팀에 주전 선수를 보내줄 팀이 있겠습니까? 우리 팀이랑 트레이드한다고 하면 유망주 여러 명 보내준다고 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미래가 유망한 애들이 우리 팀에 오면 더 좋지. 우리 펠리컨즈의 미래가 밝아지는 건데.”
김석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하……. 단징님, 지금 우리가 유망주가 없어서 10위 하고 있는 겁니까? 당장 팀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이끌어줄 만한 선수가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유망주들을 성장시켜서 그런 선수로 만들어내라고 자네한테 감독을 맡긴 거 아닌가! 우리 팀에 리빌딩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당장 라인업에 어린 선수들로만 채우는 게 리빌딩이 아니잖습니까. 경기장에서 베테랑 선수들이 끌어주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요! 리빌딩도 미래를 길게 보면서 진행해야죠.”
임운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알았어. 자네 생각은 잘 알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려 봐. 내가 베테랑 선수들도 데려올 수 있도록 만들어볼 테니까.”
김석원의 답을 들은 임운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김석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영준이 트레이드되는 순간, 저 나가라는 의미로 알고 곧바로 사임하겠습니다.”
“임 감독! 그게 무슨 말이야!”
김석원은 단장실이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영준이 없이 팀을 운영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도 트레이드를 추진하신다면, 저보고 나가라는 말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 나도 우리 팀이 조금이라도 더 잘 되게 하려고 하는 거니까.”
“이만 경기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임운호는 김석원의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문을 쾅 닫으며 단장실을 빠져나갔다.
* * *
며칠 사이에 트레이드 시장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트레이드 같은 경우는 지난 장수영 건과는 달리 내가 전면에 나서서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김석원 단장이 나와 우리 에이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아서, 조금은 뒤로 빠져 있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에이전시로 연락해오기보다는 펠리컨즈 단장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구단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수민을 포함해서 여기저기서 전달해 주는 소식이 있던 덕분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벌써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을 하는 구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울프스와 드래곤즈는 물론이고 재규어즈와 버팔로즈까지 상위권 팀들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제안을 던졌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 유망주 2, 3명을 카드로 제시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선수인지 까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재규어즈는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제안한 내용까지 정확하게 알려준 유일한 구단이었다.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을 했을 때, 펠리컨즈 입장에서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제안이었다.
이러다 정말 재규어즈로 갈 수도 있겠다는 예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소영준에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진행 상황을 전달해 줬다.
재규어즈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를 함께 듣고 있던 마이클 스콧의 얼굴이 밝아졌다
“와우, So! 우리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는 거야?”
“스콧, 이러다 나 재규어즈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원더풀. 나 So랑 상대할 때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어. 마운드에서 So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춤을 추고 싶어져.”
그러더니 스콧이 비트를 타듯 몸을 움직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스콧 공 때리기 너무 힘들기도 하고.”
“정말 재밌을 것 같아. 내가 선발 투수로 등판했을 때, So가 홈런도 때리고 몸 날려서 수비해 주면 짜릿하지 않을까?”
소영준과 스콧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무조건 되게끔 만들어야 하나?”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더풀! So에 Seo, 왓슨이 센터라인을 맡아주면 너무 든든하지. 거기에 Han이 포수 마스크까지 써주면 퍼펙트한데?”
스콧은 가상의 라인업이 상상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우리가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위이잉-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강 대표, 내일 펠리컨즈 단장하고 만나서 최종 카드 맞춰볼 계획이야.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