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
2화>
잊지 못할 1군 데뷔전 (2)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정환의 행동에, 병실에는 잠시 적막이 흘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어머니였다.
“아이고, 이제 충분해요. 어서 일어나요.”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인 최정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배님. 이게 죄송하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른 최정환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는 100kg에 가까운 거구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안간힘을 쓴다고 해서 들어 올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현재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 머리가 복잡했지만, 최정환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만 일어나.”
“네?”
나는 직접 침대 밑으로 내려가 최정환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최정환이 그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옆에 있던 의자를 최정환에게 가져다주었다.
“여기 편히 앉아요.”
최정환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다음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최정환의 머리 위로 이상한 화면이 나타났다.
-몸쪽 공을 던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건 뭐지?
혹시 내 눈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단순한 수술 후유증인가?
몇 번 눈을 비벼봤지만 화면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런 게 보일 수 있어서 의사랑 간호사가 잘 보이냐고 계속 물었던 건가?
후유증이 나타났다는 건 일단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최정환이 몸쪽 승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아는 최정환은 제구력이 떨어질 뿐 절대 몸쪽 승부를 두려워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어, 잠깐?
아니구나…….
자기가 던진 공 때문에 누군가가 쓰러졌다면.
심지어 그 선수가 일주일 가까이 정신을 잃고 누워있다면 몸쪽 공을 던지는 게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복잡해진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최정환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네 머리 위에 떠있는 화면 때문에 뭔가 이상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어서 간단히 대답했다.
“큰 문제는 없는 거 같아.”
“하……. 정말 다행입니다.”
내 대답에 긴장이 풀렸는지 최정환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아버지가 음료수를 꺼내왔다.
“시원한 거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나눠요.”
“예. 감사하게 잘 마시겠습니다.”
최정환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음료를 건네받았다.
나는 그런 최정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난 부분을 물었다.
“근데 나 깨어난 건 어떻게 안 거야? 아직 아무도 모를 텐데.”
“아……. 저, 그게…….”
최정환이 우물쭈물하자, 뒤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대신 대답했다.
“너 다치고 나서 거의 매일 왔어.”
“정말이야?”
“예. 안 올 수가 없었습니다.”
대답과 함께 고개를 푹 숙이는 그에게선 미안함을 넘은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그렇다면 아까 본 이상한 글자가 진짜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너…… 옛날처럼 공 던지기 어렵지?”
“네?”
불쑥 던진 내 질문에 최정환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꼭꼭 숨겨둔 비밀을 들켜버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조금…… 그렇습니다.”
맞구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아버지를 살펴봤다.
두 분의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이 현상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눈앞에 있는 최정환부터 챙겨야 했다.
병원에 누워있는 건 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후배…….
그를 보자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해줘야 할까?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그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나 안 죽었어.”
“예?”
“아무 문제 없이 괜찮다고.”
“선배님…….”
“죄송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가서 훈련해.”
그가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고, 또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 계속 찾아와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싶었다.
“나, 오늘부터 네 경기 꼭꼭 챙겨볼 테니까 보란 듯이 잘 던지는 모습을 보여줘. 그게 나를 위한 거야.”
고작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고 해서 그의 트라우마가 단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거듭 어깨를 두드려주자 최정환의 눈빛이 차츰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꽤 긴 정적이 흐르자 민망해진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곧 훈련 시간이지 않아?”
“……네.”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얼른 가서 준비해야지.”
“흐흐흑-”
갑자기 최정환의 어깨가 떨리더니 곧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뺨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그의 눈물에 놀란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의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키 190cm에 몸무게 100kg가 넘는 거대한 덩치가 흐느끼며 울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꼬.”
온 가족이 모여 그를 다독여줬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최정환은 마음이 진정된 듯했다.
“선배님. 그럼 오늘은 일단 갔다가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안 와도 돼 인마.”
“아닙니다. 내일 홈 경기라서 시간이 넉넉합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오지 말라고 해도 또 올 것 같았다.
최정환이 떠나고 나자 나는 부모님께 잠깐 산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진짜 산책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까 최정환의 머리 위에 보였던 그게 도대체 뭔지 알아보고 싶었다.
* * *
한사코 따라오겠다는 어머니를 말린 뒤 병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거닐었다.
대형 병원이다 보니 7층 입원실에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환자와 의사, 간호사 그리고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까지.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최정환에게서 본 것 같은 화면이 떠있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너무 멀리서 봐서 잘 안 보이는 건가 싶어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도리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만이 점점 많아졌다.
하는 수 없이 병실로 되돌아갔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의사에게 물어볼까?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괜히 물어봤다가 머리를 다치고 후유증이 생겨서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안 물어본 것보다 못한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럼 부모님한테 물어볼까?
그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부모님이라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는 않겠지만,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당분간 혼자 알아봐야겠다.
* * *
의식을 되찾은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최정환이 서너 번 다녀갔고, 내 기억에 별 문제가 없는지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늘 정상이었으나, 최정환의 머리 위에 떠오른 화면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처음엔 일주일간 의식을 잃었다가 막 깨어난 상태여서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최정환이 올 때마다 화면이 보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기초 체력을 회복하여 퇴원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갑갑한 마음에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입원 환자들만 있던 7층과 달리 1층에는 외래 환자들이 많았다.
나는 며칠 전과 달리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사람들을 살폈다.
그러나 상황은 이전과 똑같았다.
할 수 없이 병실로 되돌아가려는 찰나,
“어, 아저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건가?
고개를 돌려보니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날 보며 서 있었다.
“아저씨, 혹시 야구 선수 아니에요?”
아이가 글러브와 공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야구팬인 것 같았다.
“아저씨, 재규어즈 선수 맞죠? 며칠 전에 머리 다친 선수?”
“어… 어. 맞아.”
1군 경기를 고작 한 경기 뛴 나를 알 정도면 굉장한 야구팬인 것 같았다.
“우와. 이 병원 입원했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병원까지 알고 있다고?
“여기 입원해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그걸 어떻게 몰라요. 스포츠 뉴스에도 나오고, 재규어즈 선수들이 안타 칠 때마다 아저씨한테 세리머니도 했는데.”
“그게 정말이야?”
진짜 내 소식을 담은 기사가 나가고, 팀에서 나를 위해 매일 세리머니를 했다고?
에이 설마…….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럼요. 손가락으로 이렇게 한다고요.”
아이가 글러브와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왼손과 오른손의 손가락을 겹쳐 K를 만들어 보였다.
내 성의 이니셜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 근데 몸은 다 나은 거예요? 아직 못 일어난 줄 알았는데.”
“이제 괜찮아졌어.”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문제없다는 자세를 취해보였다.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그래? 재규어즈 응원 많이 다닌 모양이구나?”
“아뇨. 저는 버팔로즈 팬이에요. 근데 아빠가 재규어즈 팬이에요. 그래서 잘 알아요.”
왜 당연히 재규어즈 팬이라고 생각했을까.
무안해진 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글러브 좋아보이네. 혹시 캐치볼은 할 줄 아니?”
“그럼요. 저 나중에 야구 선수 될 거예요.”
야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
어린 시절의 나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이 아이에게 멋진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성공한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프로 1군 경력이라고 해봐야 고작 한 경기.
이 아이도 나보다는 더 훌륭한 선수에게 배우고 싶겠지.
“같이 캐치볼 할래?”
“오. 정말요? 같이 해주실 수 있어요?”
“그럼. 같이 하자.”
“우와 대박! 프로 선수랑 캐치볼을 하게 되다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즐거워하니 다행이었다.
병원 부지에 딸린 잔디밭.
나는 아이에게서 받은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할 준비를 했다.
평소에 끼던 글러브보단 작았지만 캐치볼을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공을 들고 간 아이는 생각보다 꽤 멀리 갔다.
“아저씨, 던져도 되죠?”
“어. 준비됐어.”
나는 글러브를 들어 올리며 던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방금까지 미소를 짓던 아이가 공을 던질 때가 되자 진지해졌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프로 선수처럼 와인드업 자세를 갖췄다.
선수를 따라 하려는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슈웅-
그 공이 글러브를 떠나 날아오르는 순간.
내 입가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몸이 그대로 꼿꼿하게 굳어버렸다.
피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지만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이 날아오는 걸 더 이상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억!
날아오는 공에 머리를 직격당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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