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야구를 잘하는 방법 (4)
야구 아카데미의 첫인상은 특별할 것 하나 없었다.
입구부터 운동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특유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핀 조명이 비치고 있는 빅토리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로고였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정인규는 입구에 선 채로 고개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인규야, 뭐해. 어서 들어가자.”
“우리 별일 없겠지?”
“설마 무슨 일 있겠냐? 결국 애들 훈련하는 곳인데.”
“그렇겠지. 후우-”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나는 긴장한 정인규의 손을 이끌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시간은 아닌지 실내가 조용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벽면에 붙어있는 상장을 시작으로 진열된 트로피를 볼 수 있었다.
선수 시절에 야구로 상을 많이 받은 선수는 아니었을 텐데, 이건 다 어디서 받은 상일까?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정인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운 좋게 곧바로 이한승을 만날 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한 아우라 덕분에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어? 혹시 강현우?”
이한승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나를 알아봤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정인규과 함께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워.”
다행히 이한승은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선배님, 잘 지내셨죠.”
“그냥 뭐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면서 사는 거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건 처음이었지만, 야구계 선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예전부터 친밀했던 것처럼 대화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최근 아카데미 운영이 잘돼서 만족하고 있다.
-매출을 더 높일 방법을 고민 중이다.
정보창에는 개명한 이름이 아니라 선수 시절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선수들을 교육하는 사람이 매출을 고민한다는 게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안 좋게만 볼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매출을 높이는 건 좋은 일이었으니까.
“근데 이쪽은 어떻게 되지?”
이한승이 정인규를 보더니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희 에이전시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정인규 코치입니다.”
“아, 그렇구나. 만나서 반가워요.”
이한승이 정인규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사이 나는 이한승의 이곳저곳을 빠르게 살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이한승의 문신이었다.
양팔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물론이고 셔츠 사이로도 문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
딱 봐도 값비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밖에 세워진 자동차도 비싼 외제 차던데, 요즘에 돈을 많이 벌기는 했나 보네.
목에는 굵직한 금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저게 정말 진짜 금이라면 무거워서 무리를 줄 것 같은데 목 디스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만약 야구 선배라는 걸 모르고 만났다면 동네 불량배라고 생각했을 만한 외모였다.
정인규와 인사를 마친 이한승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근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아, 다름이 아니라 선배님께서 훌륭한 훈련장을 하고 계시다고 들어서요. 한번 뵙고 이것저것 여쭤보고 싶어서요.”
“아이고, 내가 조언해 줄 게 있으려나. 더 잘나가는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배님께서 가르치신 선수 부모님들한테 들어보니까 명성이 자자하시던데요.”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낮추기 위해서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까지 줄줄 말했다.
“대단한 에이전시를 하는 후배가 말해주니까 감격스럽네.”
겸손함이 느껴지는 말과는 달리 이한승의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
이한승이 나와 정인규에게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네.”
나와 정인규은 이한승을 따라 들어갔다.
대표실에 마련된 회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한승은 캔 음료 두 개를 가져와 나와 정인규에게 건네고는 마주 보며 앉았다.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선배님들께 피해 안 끼치려고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겸손하기는. 요즘에 잘하는 애들이 다 드림 에이전시에 있던데.”
이한승이 입가에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뭘 잘해줘서 좋아졌다기보다는 원래부터 잘했던 선수들이라서요. 선수들 덕분에 그냥 운 좋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에이, 학생들도 그렇지만 코치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내가 선수 생활할 때는 구단 코치들이 도와주는 것도 크게 없었어. 펑고나 몇 번 쳐주는 게 다였는데.”
과거를 돌아보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는지 이한승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여기서 반박할 필요는 없었다.
“요즘하고는 확실히 다르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적으로 분석해 주는 장비도 없었으니까요.”
“요즘 애들은 야구하기 편할 거야. 선배들이 때리는 것도 없잖아. 요즘에 그랬다가는 난리 날 거 같은데?”
이한승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렇죠. 선후배 관계도 그렇고 옛날 교육 방식은 지금 통하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나 때는 말이야, 중고등학생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도 그렇게 때렸어.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 그런다고 야구를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
옛날 얘기가 나오자 지겨움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음료를 마시는 척했다.
그러자 그제야 이한승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은 게 뭐야?”
“저희도 조만간 훈련장을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는데 이한승의 표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거야?”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한승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건 아니고요. 저희는 에이전시 선수들하고 프로 선수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요.”
“아아, 난 또 중고등학생 애들 생각하는 줄 알았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SNS로 보니까 지금 에이전시 훈련장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것 같던데?”
“지금은 에이전시 선수들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괜찮은데요. 슬슬 인원이 늘어나면 감당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요.”
“이야, 여기서 선수들을 더 영입한다고? 정말 한국에서 초대형 에이전시로 키울 생각이구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같이 사업 하나 해봐야겠는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이야기 나눠봐야죠.”
내 말을 들은 이한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구경 좀 해볼래?”
“그래도 될까요?”
“같이 가자. 내가 소개해 줄게.”
이한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나와 정인규는 이한승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정인규에게 눈빛으로 잘 살펴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잘 전달이 됐는지 정인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전에 아카데미를 여기로 옮겼는데 말이야, 훈련장을 처음에 지을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어.”
이한승이 훈련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사업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훨씬 호의적인 반응을 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이곳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확실히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건물 곳곳이 깔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널찍하면서도 깔끔하기는 했지만, 내가 알아보고 싶은 게 아니라서 눈길이 가지 않았다.
“여기 건물을 임대하셔서 리모델링하신 건가요?”
“아니. 땅을 사서 새로 지은 거야. 원래 있던 건물로는 훈련장을 만들기가 어려워 보이더라고.”
“아, 그래서 이렇게 깔끔하게 만들 수 있었구나.”
땅까지 샀다고?
아무리 외곽이라지만 직접 사려면 돈이 꽤 들었을 텐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놀란 감정을 감추며 이한승의 설명에 집중했다.
“근데 선배님이 학생들 가르치시기 시작한 게 얼마쯤 되셨나요?”
“야구 쪽으로 넘어온 건 그렇게 오래 안 됐어. 2, 3년 됐나?”
2, 3년이면 얼마 안 되기는 한 것 같은데.
그럼 다른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의미일까?
“지금 훈련하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우리 학생 수가 얼마나 되냐고?”
민감한 질문이었는지 이한승이 표정에서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다.
“다른 게 아니라요. 이렇게 멋지게 운영하려면 교육비를 어느 정도로 책정해야 하는지도 고민스럽더라고요.”
“아아. 아무래도 교육비야 천차만별이지. 선수들마다 투입해 주는 시간이 다르니까. 그거에 맞게 받는 거지.”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더 자세하게 묻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유독 눈이 가는 방 하나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가서 문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과연 어떤 곳일까?
나는 방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려는데,
“거기는 안 돼.”
다급하게 다가온 이한승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네?”
나는 깜짝 놀라 철렁 내려앉은 마음을 힘겹게 붙잡았다.
“여기는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서, 보여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
“혹시…… 어떤 공간인데요?”
“직원들만 갈 수 있는 곳이라니까.”
이제까지 미소를 띠던 것과는 달리 이번만큼은 이한승의 눈빛에서 매서움이 느껴졌다.
“아, 그렇군요.”
“안쪽으로 들어가지. 여기가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이거든.”
이한승은 우리를 훈련장으로 데려갔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에이전시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데다, 열어보지 못했던 공간이 머릿속에 떠올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설명하는 이한승을 향해 예의상 신기한 척하며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 * *
아카데미를 나오자마자 나와 정인규는 차에 올랐다.
“인규야,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의심스럽긴 한데,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
정인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2, 3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땅을 사서 건물까지 올렸다는 게 너무 말이 안 되지 않아?”
“전에도 다른 사업을 했다고 그랬잖아, 그걸로 돈 많이 번 거 아니야?”
“그걸로 돈 많이 벌고 있으면 그거 그냥 하고 있겠지, 왜 갑자기 야구 쪽으로 넘어왔겠어.”
“하긴, 그렇네.”
“정상적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걸로는 안 됐을 거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인규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일 것 같은데…….”
“그럼 이대로 끝내는 거야?”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지. 확실한 증거를 모아서 한 방에 때려야지.”
이미 경험을 통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애매한 심증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한 증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나는 지난번에 만났던 부모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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