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야구를 잘하는 방법 (8)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누구일까?
나이대로 봐서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로 보였다.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인 것 같은데.
“강현우 대표님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근데 혹시 어떤 일로 오셨죠?”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혹시 잠깐 이야기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저한테 무슨 이야기를……?”
“저희 아들이 야구를 하고 있어서요.”
“아, 그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지금 너무 힘들기는 하지만, 야구를 하고 있다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나는 남녀와 함께 에이전시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는 사무실에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음료를 건네주며 그들의 몸에 살짝 접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아들의 선수 생활이 끝나게 될까 봐 걱정스럽다.
-의도적으로 주사를 맞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 숨길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정보창 내용만으로도 왜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주사를 맞은 선수인 것 같은데.
혹시라도 정말 그런 거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화를 시작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나요?”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요.”
“부탁이요?”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찾아와서 부탁을 한다니.
“저희 아들이 이번에 도핑 테스트를 받게 됐는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마 거의 모든 아마추어 선수들이 받게 될 예정이었다.
혹시 누락되더라도 프로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도핑 테스트를 거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상황이었다.
“혹시 이번에 저희가 도핑 테스트를 안 받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아예 안 받는 건 아니더라도, 몇 달 뒤로 조금 미루는 거라도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몇 달 뒤로 미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저희 아들이 투수를 하고 있는데요. 구속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 빅토리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주사를 맞으라는 제안을 받았거든요.”
“…….”
“그때는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한 건데, 생각보다 상황이 복잡해지더라고요.”
“구속을 높이고 싶으셔서 주사를 맞으신 건가요?”
“그전까지는 솔직하게 말해서 프로 데뷔를 노리기가 어려워 보였거든요. 근데 주사를 맞으면 확 달라질 거라고 해서…….”
선수 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효과가 있던가요?”
“처음 맞기 전보다 구속이 훨씬 빨라졌어요. 지금은 140km/h가 넘어가고 있거든요.”
“원래는 어느 정도 나왔는데요?”
“130km/h도 겨우 나왔죠.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그 정도 구속으로 어떻게 프로 드래프트에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겠습니까?”
구속이 10km/h나 올랐다는 선수가 바로 이 선수였구나.
그나저나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정말 그 주사를 한 번 맞고 그런 변화가 생겼다고요?”
“한 번은 아니죠. 주사 관련해서 아카데미에 갖다 준 돈이 3천만 원도 넘으니까요.”
한 번에 300만 원이라고 했으니, 열 번 이상 맞았다는 의미였다.
그럼 이 상황을 모르고 맞은 선수는 아니라는 게 확실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훈련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나 보다 싶었죠. 솔직히 그거 맞았다고 완전히 바뀔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훈련 프로그램을 바꾸기도 했던 터라서 그거 덕분인 줄 알았죠.”
이건 거짓말이겠지.
“훈련을 하는 방식에서 어떤 변화를 줬는데요?”
“네?”
예상하지 못한 물음이었는지 부모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드러났다.
“단시간에 구속이 10km/h나 올랐다는 건 엄청난 변화잖습니까. 훈련에서 어떤 변화를 주셨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변화가 생긴 건가요?”
“그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그 주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정말 모르셨습니까?”
“…….”
나의 물음에 부모는 잠시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한 번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아직 자식이 없으셔서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부모 마음이 다 비슷할 겁니다. 자식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건 해주고 싶죠.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겠습니까?”
“혹시 선수 본인도 알고 있는 부분입니까?”
“그거야…… 야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으니까요……. 근데 애가 뭘 알고 했겠습니까. 그냥 야구를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랬겠지요.”
선수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는 깊은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답했다.
“어머님 아버님, 야구를 잘하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훈련장에서 제대로 된 훈련 방법으로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거요. 그거 말고는 어떠한 방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되고요.”
“…….”
“그리고 만약 정직하지 않은 방법을 선택해서 적발이 됐다면, 그에 대한 처벌도 달게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부모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희 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다 저희의 불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요.”
“어찌 되었건 아드님도 부정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맞으셨다는 거 아닌가요?”
“야구를 잘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세상에 야구를 잘하고 싶지 않은 선수가 있나요?”
“…….”
“아드님의 선택 때문에 정직하게 땀 흘리고 있는 다른 선수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
“지금 하신 행동은 그 수많은 정직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입니다. 만약 자식이 그런 유혹을 느낀다고 해도 부모님이 그걸 막으셨어야죠. 그게 부모의 역할 아닌가요?”
“하…….”
선수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차피 제가 경찰 수사를 두고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만약에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저는 도와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본 어머니도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나는 다가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바뀔 리는 없었다.
“어차피 아드님 인생이 오늘로 끝나는 거 아닙니다. 앞으로 야구 선수를 계속하게 될지, 다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일로 큰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도핑 검사에서 발각이 된다면 선수 생활에 큰 지장을 주게 될 거라는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선수로서 인생이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었다.
선수 생활 내내 꼬리표가 따라다니긴 하겠지만, 징계를 받고 난 이후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기는 할 테니까.
이번 사건을 통해 큰 배움을 얻게 된 사람이 될지, 아니면 그냥 실패한 야구 선수가 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린 일이었다.
* * *
이후로도 수사가 진행되며 속속들이 불법 내용들이 드러났다.
단순히 기존에 있는 금지 약물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전문 불법 약물 제조업자에게 의뢰해서 제조를 했다고 한다.
도핑 검사가 예상되는 시기에 검출되지 않게끔 하려고 약물의 반감기까지 계산해서 만든 치밀함도 있었다.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학생들 중에서도 고의성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은 모든 선수들이 필수로 도핑 검사를 받게 되었다.
└A 씨 도대체 누구지? 미친 거 아니냐? 학생 선수들한테 불법 약물을 투약했다고?
└선수 애들이 맞고 싶어서 맞은 거 아닌가? 그냥 쟤가 약물 가져와서 투약해 준 거고?
└난독증이냐? 기사 좀 제대로 읽고 와라. 원하지 않은 애들도 억지로 맞췄다잖아.
└저런 미친놈도 있네.
└쟤네들 그럼 다 도핑 걸려서 데뷔 못 하면 어떻게 되냐?
└도핑한 애들은 프로에 발도 못 붙이게 해야지. 열심히 운동한 애들을 호구로 만들 수는 없잖아.
└원하지 않았는데도 맞은 애들이 있다며. 그런 애들은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모르고 맞았다고 해도 이미 몸이 달라졌을 거 아니야. 징계를 확실히 때리든가 불이익을 주긴 해야지.
* * *
야구 경기장 밖에서 벌어지는 시끌벅적한 이슈가 벌어지는 사이에도 프로야구는 바쁘게 진행되었다.
약물 파동으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올스타전은 성황리에 열렸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에이전시의 주요 선수들은 올스타전에 초청을 받았다.
도널드 왓슨은 물론이고 서성민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초청받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고지훈도 올스타전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도널드 왓슨은 오석훈을 2위로 밀어내고 팬 투표 1위를 차지했다.
재규어즈의 탄탄한 팬층의 힘도 있었고, MVP 급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고지훈과 마이클 스콧은 각각 다른 팀의 선발 투수로 낙점이 되며, 실전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오석훈, 박성주, 나준호, 소영준, 서성민은 각각의 포지션에서 멋진 수비와 타격을 보여주며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마무리 투수로 나선 장수영과 최정환도 완벽한 피칭으로 마지막 이닝을 막아냈다.
그중에서도 소영준은 이번에도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물론 올해도 역시나 퍼포먼스 상은 그의 차지였다.
올스타전이 마무리되고 나자, 순위 싸움은 다시 치열하게 이어졌다.
어느덧 구단별로 80경기를 넘게 소화해가고 있었다.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울프스가 여전히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건 특별할 것 없었는데, 2위부터는 지난 시즌과 달라진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3위 버팔로즈가 2위 드래곤즈와의 승차를 맹렬하게 쫓고 있었다.
2게임 차 이상 벌어지지 않은 채로 추격 중이라, 언제든 순위를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만간 예정되어 있는 두 팀의 맞대결이 기대되는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팀은 재규어즈였다.
4위 재규어즈의 약진으로 인해서 2, 3위 경쟁을 하는 두 팀은 따라오는 재규어즈까지 염두에 두며 경기를 해야 했다.
더욱 강력해진 전력 덕분인지 재규어즈 경기마다 구름 관중이 모여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재규어즈 팬이기도 한 정인규 또한 가을야구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버팔로즈와 재규어즈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확실한 선발 투수 덕분이었다.
고지훈과 마이클 스콧은 나란히 13승을 거두며 치열하게 다승왕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줬는지 시즌 내내 흔들리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역하고 구단에 복귀한 한교진은 2군에서 포수로 경기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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