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은밀한 유혹 (2)
모든 스포츠 도박이 불법인 건 아니다.
국내에도 스포츠 경기에 베팅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도박이 있었다.
다만, 합법 스포츠 도박에서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얼마나 득점하고 실점할지 정도만 베팅할 수 있다.
특히 프로야구는 수십 명의 선수가 함께 펼치는 단체 스포츠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 선수가 승부를 결정하거나 원하는 만큼의 득점이나 실점을 하도록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불법 도박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승패나 득실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도 베팅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1회에 몸에 맞는 볼이 나올지 아닐지와 같이.
이런 조건이라면 선수 한 명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 그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두 분이 이야기 나누셔야 하는 거 같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나는 당황스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현우 씨.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기회 되면 또 뵙죠.”
이주호가 마지막까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형님. 조심히 가세요.”
최정환이 이주호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나는 그가 나가는 동안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배님. 앉으세요.”
“어……. 그래.”
나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최정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됐다.
-거액을 제안받아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이주호와의 친분 때문에 바로 거절하지 못했다.
이주호라는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최정환과 친분을 쌓아둔 걸로 보였다.
똑같은 부탁을 해도 친분이 있는 상대가 한 부탁은 거절하기 어려운 법이다.
브로커들이 파고드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정환도 이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 좋은 경기를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래도 오늘만큼은 운으로라도 승리 투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최정환의 표정에서는 나를 향한 미안함마저 느껴졌다.
“근데 말이야. 혹시…… 방금 만났던 저분. 잘 아는 분이야?”
나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냥 친한 형이에요. 데뷔할 때부터 응원해주고 도와준 팬이기도 하고요.”
“데뷔하고 난 이후부터 알고 지낸 거야?”
“네. 선배들이 소개해주셔서 알게 됐는데요. 연락도 종종 주셔서 인사하고 지내요.”
같은 팀 선배들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의심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겠지.
“요즘도 가깝게 지내고 있고?”
“자주 보는 건 아닌데, 종종 따로 불러서 열심히 하라고 밥도 사주세요.”
브로커들이 선수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가는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뭐 하시는 분인지는 알아?”
“사업한다던데. 돈은 꽤 많은 거 같더라고요. 차도 비싼 거 타고 다니고.”
“무슨 사업하는지는 모르고?”
“어……. 그런 거까지는 안 물어봤는데요.”
역시나 이주호에 대해서 의심해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믿을 만한 분이야?”
“그럼요. 몇 년째 알고 지내기도 했고요. 형들하고 같이 만난 적도 있어요.”
최정환이 이주호의 유일한 타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만약 이미 다른 여러 선수들과 친분을 쌓아뒀다면 말이다.
여기서 내가 모르는 척하고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후에 더블즈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를 뒤흔들 대형 사건으로 커질 게 분명했다.
내가 먼저 알게 된 이상 무슨 일을 해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런데 혹시 벌써 가담한 건 아니겠지?
이미 조금이라도 돈이 오가고 조작이 실행된 상황이라면 최정환도 단순히 피해자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원치 않는 대답이 나올까 두려웠지만, 지금 당장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그냥 직접 물어볼까?
아니지.
최정환과 나는 아직 깊은 신뢰를 느낄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사실을 나에게 숨기려고 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 있었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게 좋겠다.
“혹시 그분하고 돈거래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도, 돈거래요?”
나는 최정환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지 집중해서 살폈다.
“하, 한 번도 없어요.”
“정말 거래한 적 한 번도 없는 거지?”
“네. 그럼요. 전혀 없어요.”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단 다행이었다.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자꾸 깊게 물어보자 슬슬 긴장하는 눈치였다.
“다른 게 아니라,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돈거래는 조심해야 하니까.”
갑자기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려니 힘들었다.
“얼마 전에 주변에서 절친끼리 돈 거래 몇 번 했다가 서로 사이 나빠지고 그랬다고 하길래. 혹시나 해서.”
“아……. 네. 조심할게요. 저도 이제 성인인데요.”
의심은 피한 것 같았다.
최정환의 다음 선발 등판은 5일 후다.
분명히 5일 후 등판 때 경기 내용을 조작해달라고 부탁했을 게 틀림없다.
승부 조작이 실행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 * *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이동한 지 30분쯤 지났다.
한적한 느낌이 나는 동네로 접어들었다.
이제 주변에 빌딩이라고 할 만한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 어디까지 가나요?”
“이제 다 왔어. 저기야.”
김민환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 시선도 그의 손을 따라 이동했다.
헉! 설마?
“정말 저기예요?”
“어. 지금 왼쪽에 있는 저 건물.”
“우와! 대박이네.”
새로운 집을 보자마자 내 입은 떡 벌어졌다.
“진짜 이 집이라고요?”
“그럼. 내가 거짓말하겠어?”
차는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주택 앞에서 멈춰섰다.
마당에는 잔디까지 깔려있었다.
“이 정도면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긴 하는데…… 저 혼자 살기에는 너무 과한 거 같은데요?”
이 정도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계속 혼자 사는 건 아니고, 조만간 새 식구들이 들어올 거야.”
“새 식구요? 누가 와요?”
“우리 회사 소속 선수들이 갑자기 머무를 곳이 필요할 때 여기 와서 며칠 머무를 수도 있어.”
“좋네요. 저 혼자 살기에는 집이 너무 큰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는데.”
이런 집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면 심심하긴 했을 것 같다.
“훈련 장비도 곧 들어올 거야. 마당이랑 지하 두 군데에.”
“지하도 있어요?”
“마당에서 훈련해도 되고, 밖에서 훈련하기 어려운 날씨에는 지하에서 실내 훈련하면 되고.”
“오……. 근데 이런 데를 어떻게 구하셨어요?”
혼자 사는 원룸을 구하는데도 며칠은 걸리는데, 이런 집을 어떻게 금방 구했는지 궁금했다.
“점점 선수들이 많아지니까 대표님도 선수들이 언제든지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라,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거든.”
“아.”
“현우 씨가 운 좋은 거지. 타이밍이 딱 좋았어.”
“감사합니다. 팀장님 덕분입니다.”
“내가 뭐한 게 있다고.”
김민환의 대답과 표정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조금 띄워주니 이번에도 올라간 그의 입꼬리는 쉽게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종종 이렇게 띄워주는 얘기를 해야 나한테 적대적이지 않을 사람이다.
“현우 씨가 수고 좀 해줘야겠어. 여기서 선수들 관리하다가 필요한 부분 생기면 나한테 전달해주고.”
“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대신에 여기 사는 비용은 전부 공짜야.”
“정말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이 커졌다.
“여기서 관리해주는 것도 일이니까.”
서울 근교에 살면서 주거 비용이 안 들어간다는 점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공과금도 다 회사에서 지불하긴 할 건데. 너무 낭비하지는 말고.”
“물론이죠.”
관리비도 없고.
“그리고 식단 관리해줄 조리사도 매일 방문할 거야.”
거기에 밥까지 해준다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청소가 다 돼 있는 거니까. 바로 생활해도 문제없을 거야. 짐은 차에 있는 게 전부인가?”
“네.”
“단출하네. 바로 옮기자.”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짐이 많지 않았다.
넉넉하게 담은 것 같았는데도 다섯 박스 밖에 되지 않았다.
나와 김민환이 하나씩 들고 옮기자 10분도 안 돼서 끝났다.
“더 물어볼 거 있어?”
“아뇨 없습니다.”
“오늘은 짐 정리하고 여기서 일해.”
“근데 다른 선수들은 언제쯤 오나요?”
“글세……. 이제 막 계약한 거라. 며칠 동안은 혼자 지내야 할 것 같은데?”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김민환이 떠나고,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서둘러 새로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일하라는 뜻인지 사무실에서 쓰던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 안식처가 될 집을 둘러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나는 어제부터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다?’
처음엔 회사에 말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최정환이 우리 회사 소속 선수도 아니라서 난감했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내 인맥이 그리 넓지 않았다.
더 많은 인맥과 자원을 동원해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나서도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이름을 눌렀다.
통화음이 세 번도 울리기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 씨. 안 그래도 연락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밝은 목소리의 이수민 기자였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별일 없기는요. 난리였죠.”
“난리요?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어요?”
“현우 씨 덕분에 회사에서 대우가 달려졌어요.”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의미에서의 난리였군요.”
“네. 조만간 식사 어떠세요? 제가 한턱 쏠게요.”
“좋죠.”
“드시고 싶으신 걸로 말씀하세요.”
“그래요? 제대로 한 번 골라봐야겠네요.”
“너무 비싼 건 빼고요. 직장인 월급으로 가능한 걸로.”
나는 웃으며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전에 제가 선물로 특종 하나 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