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살얼음판 승부 (1)
오늘은 프로야구의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100명의 선수들이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될 예정이었는데, 가장 뜨거운 선수였던 안범석은 결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오늘 드래프트에서는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없을 예정이었다.
나는 최우진, 정인규와 함께 그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거실 TV 앞으로 모였다.
“우진아, 내년 드래프트에서 네 이름이 제일 먼저 불리면 정말 눈물 나올 거 같아.”
지금 고등학교 2학년 중에서 아직 안범석처럼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투수는 없었다.
따라서 매 경기 성장하고 있는 최우진이라면 내년에 1라운드 지명을 받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1순위로 지명받는 것도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음……. 좋은 일이긴 한데, 정말 그러면 어쩌죠?”
최우진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 느껴졌다.
“드래프트에서 처음으로 불리면 좋은 거 아니야?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1라운드로 불리고 싶기는 한데요. 그래도 저는 버팔로즈로 가고 싶은데.”
“아. 펠리컨즈로 갈까 봐 그러는 거구나?”
내년 1순위 지명권도 펠리컨즈가 가지고 있었다.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다면 펠리컨즈로 갈 확률이 아주 높다는 의미였다.
1라운드에서는 구단이 당장 필요로 하는 포지션보다는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선수를 지목할 게 틀림없었으니까.
“영준 선배가 있어서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우승할 수 있는 팀이 좋잖아요. 제가 버팔로즈 좋아하기도 하고요.”
“영준이가 펠리컨즈 우승하게 만들 거라고 했잖아. 우진이 네가 가서 영준이랑 같이 우승해 봐. 더 멋지잖아. 펠리컨즈 팬들이 안 그래도 열정적인데, 한국시리즈 가는 순간 우리나라 난리 날걸.”
“에이……. 펠리컨즈가 한국시리즈 가는 날이 진짜 올까요?”
최우진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영준이가 들으면 섭섭하겠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준 선배는 참 좋아요, 야구도 진짜 잘하고. 근데…… 이왕이면 좀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이 좋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리고 우승이라는 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최우진의 표정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했다.
대화를 듣던 정인규가 웃음을 터트리며 최우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우진아, 혹시라도 네가 펠리컨즈에 가도 실망할 건 없는 게, 오히려 그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좋은 기회가 돼요?”
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당장 프로 팀에 가면 프로 선수들이랑 경쟁을 해야 할 텐데, 상위권 팀에서는 주전 경쟁하기가 보통이 아니잖아. 대신에 하위권 팀에서는 당장 선발 등판 기회도 얻을 수 있으니까 좋을 수도 있지.”
“흠…….”
“버팔로즈로 가서 고지훈 선배랑 선발 투수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 당장 선발 등판할 기회 잡는다는 게 쉽지 않을걸?”
“그렇기는 한데…….”
최우진의 깊은 실망감이 느껴졌다.
나는 최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펠리컨즈가 우승할 확률이 우리나라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확률보다는 높지 않겠어?”
“그 말도 맞기는 하네요…….”
“그리고 아직 드래프트하려면 1년 남았는데 벌써부터 시무룩해할 필요는 없잖아.”
“하긴 제가 솔직하게 1번으로 지명받을 가능성이 높지도 않겠죠? 아직 그 정도라고 하기에는 멀었잖아요.”
“글쎄……. 우리 우진이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말이야. 여기서 경기 운영까지 잘하게 되면 당장 즉시 전력감이라고 해도 무방할 텐데. 제구력 좋은 왼손 선발 투수를 포기할 팀이 있을까 싶네.”
“후……. 일단 열심히 해야죠. 제일 먼저 이름 불리는 것도 대단한 영광이잖아요.”
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지명받지도 못했어.”
내가 정인규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렇지. 내 이름 박힌 유니폼을 한 번만 입어봤으면 소원이 없었을 텐데 말이야.”
정인규는 깊은숨을 내쉬며 TV 화면을 바라봤다.
잠시 후, 드래프트 행사가 시작됐다.
올해 드래프트에 참여한 학생은 1천 명이 조금 넘었다.
그중에서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을 수 있는 선수는 1백 명 남짓.
10:1이 넘는 경쟁률인 셈이니 상당히 치열했다.
간단한 개회식이 진행되고 난 뒤에 드디어 지명이 시작됐다.
펠리컨즈를 시작으로 각 구단에서 선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선수들은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함께 앉은 부모님 중에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진 10라운드.
아마 아직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이 긴장될 게 분명했다.
나도 마지막 10라운드에서 지명받았지.
그것도 완전히 마지막 순번에서.
지명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는 드래프트에서 두 번이나 지명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앞날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었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며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있을 때,
-외야수 강현우
라는 말이 들려왔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멍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 있던 동료 선수들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준 뒤에야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여기 앉은 선수들도 아마 그때의 나와 같은 심정이겠지.
그들을 보고 있으니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선수 열 명의 이름까지 모두 불렸다.
다음 시즌을 함께할 새로운 선수들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 뒤로 고개를 푹 숙인 선수들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
* * *
몇 시간쯤 지나자, 2군 경기를 마치고 온 한교진이 에이전시 훈련장에 도착했다.
우리 에이전시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1군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는 선수였다.
확대 엔트리가 시행됐음에도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포지션 전환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구단에서는 수비 실력을 더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한교진이 평소와 다름없이 훈련을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타격 머신에서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오는 공을 블로킹하거나 스트라이크존에 가깝게 프레이밍을 하는 훈련을 쉬지 않고 이어갔다.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지만, 포수로서 필요한 수비 능력이 몇 달 훈련한다고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대로 간다면 내년 시즌이 되더라도 1군 콜업을 받기는 어려울 게 분명했다.
뭔가 전략에서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잠시 쉬고 있는 한교진에게 다가갔다.
“교진아, 잠깐 얘기 좀 하자.”
“네.”
“이제부터 훈련하는 전략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데.”
“어떤 전략을요?”
“이대로 가면 지금 주전 포수가 되려면 몇 년이나 더 걸려야 할 거고, 혹시 1군의 2번째 포수가 된다고 해도 많은 경기에 출전하기는 어려울 거야.”
“솔직히 말해서 그렇긴 하죠…….”
한교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이제부터 스콧한테만 집중해 보자.”
“스콧한테요?”
“지금 당장 네가 1군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택과 집중밖에 없을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한교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스콧의 장단점은 물론이고 당일 컨디션에 맞는 피치 디자인까지 연구해 보는 거야.”
“좋은 생각이긴 한데, 다른 투수들 연구는 안 해도 될까요? 그래도 포수라면 같은 팀 투수들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어야 할 거 같기도 한데요.”
“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일단 지금은 스콧한테만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번이라도 네 강점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다른 투수들한테도 그렇고 코칭스태프들한테도 믿음을 얻어낼 수 있잖아.”
스콧이 가장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전담 포수가 된다면, 내년 시즌에 충분히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대표님 말씀이 맞네요. 그럼 어떤 거부터 할까요?”
“일단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나는 한교진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와서 모니터를 켰다.
“이제까지 스콧이 등판했던 경기를 여러 번 돌려보면서 어떤 볼 배합을 좋아하는지 파악해 봐. 투수가 원하는 볼 배합을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 포수한테 고개를 저은 순간에는 왜 그랬을지를 분석해보는 거야.”
한교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말고 관찰해봐. 컨디션이나 경기 상황에 따라서 분명히 달라지는 게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에이전시에서 함께하는 동안 스콧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는 것도 중요하잖아.”
투수가 포수에게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지금부터 영어 공부를 많이 해야겠네요.”
“그것도 정말 중요하지. 아무리 구단 통역이 마운드에 같이 올라가 준다고 해도, 스콧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훨씬 좋으니까.”
이제 스콧이 선발 등판한 경기를 재생했다.
“그럼 지금부터 스콧에 대한 모든 걸 파헤쳐 보자. 스콧도 모르는 스콧까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한교진이 반짝이는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나는 한교진과 함께 스콧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가장 먼저 스콧이 원하는 피칭 스타일을 연구했다.
특히 포수의 사인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은 상황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승부를 원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데이터와 영상을 비교해가면서 컨디션에 따라 구종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 투구 폼이 바뀌거나 다른 습관이 생기지는 않는지도 빠트리지 않고 살펴봤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스콧에 대한 분석을 이어갔다.
힘든 훈련으로 녹초가 된 날에도 예외는 없었다.
* * *
프로야구의 정규 시즌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규 시즌은 이제 120경기를 소화하며 시즌 종료까지 20경기 남짓 남겨둔 상황이었다.
마이클 스콧과 고지훈은 잠시 어려움을 겪다가도 금세 승리를 추가하며 팀의 상승을 견인했다.
지금까지 둘 다 15승을 기록하며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고지훈은 이미 개인 한 시즌 최다승을 넘어 150이닝을 돌파하며 본인 커리어 하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풀타임 선발 투수로는 첫 시즌인 마이클 스콧도 당연히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시즌이었다.
하지만 순위 싸움은 후반으로 넘어갔음에도 안개에 싸인 것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오직 1위를 달리고 있는 울프스만 확실하게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건 2, 3, 4위 경쟁과 포스트시즌의 마지막이 달려 있는 5, 6위 경쟁이었다.
2위 드래곤즈와 3위 버팔로즈의 승차가 0.5게임, 3위 버팔로즈와 4위 재규어즈의 승차가 2게임 차이밖에 나지 않으며 세 팀 중에 어느 팀도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2위 드래곤즈와 3위 버팔로즈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두 팀의 정규 시즌 마지막 맞대결이자 2, 3위 순위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빅 매치였다.
이번 시리즈의 승자가 정규 시즌 2위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두 팀 팬들은 물론이고 다른 팬들도 관심을 가지는 아주 중요한 매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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