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살얼음판 승부 (2)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오석훈, 박성주와 고지훈은 긴장된 표정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긴장을 잘 하지 않는 고지훈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다들 너무 긴장한 거 아니에요? 그냥 정규 시즌 중에 한 경기일 뿐이에요.”
나는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저는 긴장 안 했는데, 다들 떨리나 봐요.”
박성주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해보지만, 평소와 다르게 뻣뻣하게 움직이는 입꼬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성주야, 네가 제일 긴장한 거 같아.”
“대표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 이런 거로 긴장 안 해요.”
“웃는 게 너무 어색해. 동영상 찍어서 보여줄까?”
“하하하. 그럴 리가 없는데…….”
박성주가 애써 웃어보지만 어색한 입꼬리까지 숨기기는 무리였다.
“지금까지 다들 잘해왔으니까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오늘 준호 형 컨디션이 어떨까?”
고지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하……. 준호 선배가 이번 시즌 타격하는 거 보니까, 컨디션이 나빴던 경기가 몇 번 없었던 거 같아요.”
오석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그 형은 언제까지 저럴 거라니?”
고지훈이 질린다는 듯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켜보는 팬 입장에서는 정말 재밌어요. 최고의 창과 최고의 방패가 붙으면 누가 이길지 궁금하잖아요.”
“그 형이 참 대단한 게. FA 계약하고 나면 사람이니까 긴장이 풀릴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게 없어 보여. 그것도 2년째잖아.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근데…… 그거는 선배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FA 계약해서 팀을 옮기자마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뭐…… 그렇게 보니 애매하긴 하네.”
고지훈이 민망했는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박성주가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고지훈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준호 선배가 아무리 잘한다고는 해도, 지금 선배 컨디션이면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거예요. 준호 선배라고 모든 게 완벽한 건 아니잖아요.”
“준호 형 약점이 몸쪽 떨어지는 변화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선배라면 던질 수 있잖아요. 코너로 계속 던지다가 마지막에 기가 막히게 뚝 떨어트리면, 나준호 선배라고 해도 그냥 꼼짝없이 헛스윙 나오는 거죠.”
박성주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제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오늘 경기에서 한 번은 보고 싶네요.”
나준호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나도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우리가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띡. 띡. 띡. 띡.
갑자기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올 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어, 아직 안 가셨네요! 다행이다!”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건 바로 최우진이었다.
“어, 우진아!”
오석훈이 가장 먼저 반갑게 맞았다.
“우진아, 네가 이 시간에 여기 무슨 일이야? 학교 훈련 가야 하지 않아?”
분명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코치님한테 오늘만 늦게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이야, 이제 우진이가 그런 얘기도 할 수 있게 된 거야?”
“대표님, 저 이제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선수예요. 그 정도는 얘기해도 충분히 이해해 주시죠.”
최우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는 모습을 보자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근데 그건 그렇고, 훈련은 이따 오후에 할 텐데 왜 벌써 왔어?”
“아 참, 이거 드리려고요.”
최우진이 가방을 열더니 주섬주섬 무언가 꺼냈다.
“뭐가 있어?”
“선배님들 드세요. 대표님도요.”
최우진이 직접 돌며 홍삼을 꺼내 하나씩 나눠줬다.
“홍삼이네?”
“오늘 중요한 경기잖아요. 드래곤즈보다는 버팔로즈가 잘해야죠. 대신에 나준호 선배님한테는 비밀이에요.”
최우진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고등학생이 돈이 얼마나 있다고 이런 걸 사 왔어?”
“아빠한테 사달라고 했죠. 우리 에이전시 선배들 줄 거라고 하니까 엄청 사주셨어요.”
최우진의 가방에서 홍삼 박스만 3개가 나왔다.
“우진이 덕분에라도 잘 던져야겠는데.”
고지훈이 건네받은 홍삼 한 포를 단숨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선배, 요즘에 진짜 멋있어요. 대표님하고 선배 경기만 수십 번씩 돌려보는데요. 저도 진짜 그렇게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우진이 고지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 경기 봐준다니까 기분 좋긴 한데, 우진이는 왼손 투수들 경기 봐야 하는 거 아냐?”
“제가 아직 경기 운영하는 게 약하거든요. 근데 대표님이 마운드에서 경기 운영하는 건 선배가 최고라고 하시던데요.”
최우진이 나와 고지훈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우진이가 2년 뒤에 버팔로즈로 입단하면 내가 매일 붙어서 알려줘야겠는데?”
“허억! 그게 진짜 제 꿈이에요. 선배랑 같이 선발 로테이션 돌 수 있는 선수만 될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
최우진의 표정에서 황홀함이 느껴졌다.
“나랑은 안 뛰고 싶어?”
박성주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물었다.
“당연히 뛰고 싶죠. 성주 선배가 없으면 누가 점수 내주겠어요.”
“그렇지? 내가 있긴 해야지.”
이제야 박성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덧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손뼉을 한 번 치며 가운데로 손을 뻗었다.
“자! 그럼 다 같이 파이팅 한번 하고 나갑시다!”
내 손 위로 오석훈, 박성주, 고지훈 그리고 최우진까지 손을 올렸다.
“오늘 경기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깁시다.”
“오늘 정말 몸이 부서져라 뛰겠습니다.”
오석훈이 전쟁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성주야, 한번 크게 파이팅 해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자아자 이기자!”
박성주의 외침을 끝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일어났다.
미리 챙겨준 짐을 챙기고 오석훈, 박성주, 고지훈은 최우진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나는 대문까지 나가 그들을 배웅했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려면 6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의 맞대결인 것도 있지만, 야구 팬 중 한 사람으로서도 오늘 밤에 펼쳐질 경기가 기다려졌다.
* * *
-2위 드래곤즈와 3위 버팔로즈의 맞대결이 펼쳐질 예정인데요. 두 팀의 승차는 겨우 0.5경기 차! 오늘 한 경기의 승패만으로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렇습니다. 드래곤즈와 버팔로즈의 2, 3위 싸움도 중요한데요. 그것 말고도 4위 재규어즈의 추격이 무섭습니다. 만약에 이번 맞대결에서 루징 시리즈를 거둔 팀은 곧바로 재규어즈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주목할 점은 오늘 버팔로즈의 선발 투수가 고지훈 선수라는 점일 것 같은데요.
-15승으로 마이클 스콧 선수와 다승왕 경쟁도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요, 오늘 경기는 팀 성적은 물론이고 개인 기록으로도 아주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치열한 2, 3위 경쟁에 호시탐탐 뒤를 쫓고 있는 4위 재규어즈까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번 시리즈의 승자는 과연 어느 팀이 될까요?
중요한 경기답게 오늘 경기에는 관중석의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버팔로즈의 홈경기였기 때문에 고지훈이 먼저 피칭을 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했다.
“와아아아-”
“고지훈! 고지훈! 고지훈!”
버팔로즈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지훈이 연습 투구를 하는 동안 버팔로즈 수비수들도 각자 포지션으로 이동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다승 공동 1위 선수인 고지훈 선수가 마운드에 섰습니다.
-이미 지난 경기까지 152이닝을 던졌거든요. 못해도 세 경기 정도 더 등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충분히 개인 최다 이닝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2.97의 평균자책점은 물론이고 WAR은 5.93입니다. 이것 말고도 고지훈 선수의 세부지표들 하나하나가 거의 최상위 지표를 보여주고 있어요.
-보통 FA 계약을 맺고 난 첫해에는 부진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고지훈 선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경기의 승자는 누가 될 것으로 보시나요?
-두 팀 모두 워낙 탄탄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오늘 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모르지 않을 거거든요. 실책을 하지 않는 팀이 리드를 하게 될 것 같은데요. 특히 버팔로즈는 고지훈 선수가 등판을 하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건 분명합니다. 따라서 오늘 경기만큼은 반드시 이기고 가야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습 투구를 마친 고지훈은 심호흡을 한 번 고르고 천천히 마운드에 올랐다.
“고지훈 파이팅!”
3루에 있던 박성주의 응원을 듣자 더 여유가 생겼는지 고지훈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걸렸다.
“플레이 볼!”
드디어 심판의 콜이 들리며 경기가 시작했다.
고지훈이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는 드디어 피칭을 시작했다.
펑!
“볼!”
펑!
“볼!”
두 개 연속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자 고지훈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한번 힘껏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3 볼로 밀리기 전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조금 여유가 생기자 조심스럽게 다음 피칭을 이어가는데,
펑!
“볼!”
펑!
“볼!”
결국 볼넷으로 주자의 출루를 허용했다.
-첫 타자에게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하네요. 고지훈 선수도 긴장이 됐을까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아직 1회니까요, 천천히 경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만 놓고 보면 경기가 시작하고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게 오늘이 처음입니다.
곧바로 2번 타자와의 승부가 이어졌다.
펑!
“스트라이크!”
다행히 이번에는 스트라이크로 시작할 수 있었다.
펑!
“볼!”
스트라이크 존을 빠져나가는 유인구에는 타자가 속지 않았다.
세 번째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틱!
빗맞은 타구는 하늘 높이 떠올랐다.
발사각이 높게 떠올랐기 때문에 우익수 오석훈이 낙하지점에 여유 있게 가 있을 수 있었다.
“아웃!”
2루로 가려던 1루 주자는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며 고지훈에게도 조금은 여유가 생길 수 있었다.
3번 타자와의 승부로 이어졌다.
틱!
틱!
타자가 적극적으로 승부를 해오자, 고지훈은 크게 꺾여나가는 변화구를 던지려고 하는데.
“아…….”
생각했던 것만큼 날카로운 각도를 만들지 못했다.
딱!
“와아아아-”
공이 배트에 맞자마자 드래곤즈 팬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깔끔하게 맞은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1루 주자와 타자 주자는 여유 있게 다음 베이스에 도착했다.
-결국 원 아웃 주자 1, 2루 상황에서 드래곤즈 4번 타자 나준호와 만나게 됐습니다.
-왼손 타자와 오른손 언더핸드 투수의 만남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역대 상대 전적은 물론이고 이번 시즌에도 나준호 선수가 좋았거든요. 1회부터 버팔로즈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나준호 날려버려!”
“나준호 홈런!”
드래곤즈 팬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기 시작했다.
“삼진! 삼진! 삼진!”
반대편의 버팔로즈의 관중석에서는 다른 응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준호가 타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