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살얼음판 승부 (4)
3루 베이스를 밟고 나서부터 오석훈의 달리는 모습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는 거의 끌고 가는 것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어? 무슨 일이죠? 오석훈 선수가 달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은데요.
-아……. 설마 부상일까요? 달리는 모습만 봐서는 예감이 좋지 않은데요.
-일단 마지막까지 달리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석훈의 스피드는 홈 베이스에 가까워질수록 느려졌다.
“홈! 홈! 홈!”
나준호의 송구가 빠르고 정확하게 포수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오석훈의 손과 나준호가 던진 공이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홈 베이스에 도착했다.
“세이프!”
주심은 우렁찬 콜과 함께 두 팔을 벌렸다.
오석훈은 홈 베이스를 손으로 터치하자마자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부상이라는 것을 직감한 심판은 버팔로즈 더그아웃을 향해 빨리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버팔로즈 트레이너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옆에 있던 박성주는 물론이고 버팔로즈 감독과 타격코치까지 급하게 다가왔다.
오석훈은 표정에서 고통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한 점을 얻었음에도 버팔로즈 코칭스태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오석훈 선수의 부상이 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아까 달리는 모습을 보니까요. 햄스트링 부상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3루를 지나가면서 갑자기 힘이 들어간 탓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분간 경기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요?
-부상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다만, 단순히 근육이 놀란 정도는 아닐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좋은 상황은 아닐 것 같습니다.
-부상이 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오석훈의 몸 상태를 확인한 트레이너는 더그아웃을 향해 두 손으로 크게 X를 그려 보였다.
“아…….”
버팔로즈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경기장에는 앰뷸런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트레이너의 액션을 보니 오석훈 선수가 더 이상 경기를 뛰기가 어려울 것 같아 보이네요.
-이렇게 되면 버팔로즈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큰 타격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다면 포스트시즌 경기를 뛰지 못할 가능성도 있겠네요. 시즌이 끝나려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오석훈 선수의 몸 상태에 큰 문제가 없기를 바랍니다.
오석훈은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탑승했다.
“오석훈! 오석훈! 오석훈!”
버팔로즈 팬들은 물론 드래곤즈 팬들도 오석훈을 향해 응원을 보냈다.
전광판의 스코어는 0:1로 바뀌었지만, 버팔로즈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침통했다.
오석훈이 탄 앰뷸런스가 그라운드를 빠져나가자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라이브로 경기를 보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차 키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 * *
내가 병원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오석훈은 병원으로 이동해 검진을 받고 있었다.
나는 병원 로비에서 그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후에 오석훈을 만날 수 있었다.
“석훈아, 지금 몸 상태는 어때?”
“형, 저 경기 못 뛰어요?”
오석훈이 나를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처럼 물었다.
나는 오석훈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며 답했다.
“아직 결과가 나온 건 아니니까 기다려보자.”
거의 99% 햄스트링 부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잠시 후, 나와 오석훈은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 에이전시의 주치의인 박정준 교수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박정준 교수는 촬영한 진료 자료를 넘겨보고 있었다.
제발, 제발…….
혹시 모를 1%를 기대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박정준 교수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힘이 들어가다 보니까 순간적으로 근육에 과한 무리가 간 거야. 야구 선수들한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좋은 소식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거야. 수술은 필요 없을 것 같아.”
“후우-”
나와 오석훈은 거의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박정준의 한마디에 다시 몸이 긴장 상태가 되었다.
“최소한 3개월 정도는 충분히 재활 훈련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 그럼 포스트시즌은……?”
오석훈이 절박한 표정으로 박정준을 바라봤다.
“그게 안 좋은 소식이야.”
“하…….”
오석훈이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오석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석훈이 고개를 들더니 박정준을 애절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포스트시즌에만 어떻게 할 수 없을까요? 저 정말 한국시리즈 우승해 보고 싶거든요.”
“지금 상황에서는 뛰고 싶어도 통증이 심해서 뛸 수가 없겠지만, 절대 뛰어서도 안 돼. 무조건 휴식하면서 재활에 전념해야 해.”
박정준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아니면 진통제라도…….”
“석훈아. 교수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오석훈을 말려야 했다.
진통제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트라우마에 가까운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후…….”
오석훈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당장 경기를 못 뛰는 게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앞으로 선수 생활할 날이 더 많잖아. 확실하게 회복해서 내후년에는 메이저리그도 가야지.”
박정준이 어린아이 달래듯이 오석훈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오석훈이 답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한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게 다 같이 노력해 보자고. 내년 시즌에는 충분히 좋은 몸 상태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박정준 교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와 오석훈은 진료실을 나왔다.
나는 오석훈과 함께 병원을 나서 차를 타러 향했다.
오석훈이 목발을 짚은 채로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목발을 처음 사용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힘겨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혹시나 오석훈이 넘어질까 옆에서 부축해 줬다.
오석훈을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태우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에이전시 숙소로 이동했다.
어느새 정인규와 이주혁이 대문까지 나와 우리를 맞았다.
내가 메시지로 전달을 해준 덕분에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석훈아, 고생 많았다.”
정인규가 오석훈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네…….”
오석훈이 힘없이 답했다.
“석훈아, 일단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
우리는 오석훈을 방 안까지 데려다주었다.
옷을 갈아입은 오석훈이 힘없이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정인규, 이주혁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전달해드렸던 대로 오석훈 선수는 이번 시즌 아웃이기도 하고, 포스트시즌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 너무 아깝네요. 이번 시즌에 버팔로즈 분위기 진짜 좋았는데.”
정인규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 스프링캠프는 완전한 몸 상태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이주혁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마도 스프링캠프 전에는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에이전시 전지훈련을 갈 때쯤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내년 겨울에도 괌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었다.
“이번 포스트시즌이야 어쩔 수 없긴 한데, 내년 시즌 끝나면 FA라는 게 영 걸리네요.”
정인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래도 FA 요건을 채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예요.”
“내년에 메이저리그 구단하고 협상할 때, 이번 부상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몇 년 전에 나준호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려고 할 때도 거의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무릎 부상 전력을 들면서 불안함을 드러냈으니까.
“잘 회복해서 내년 시즌에 좋은 모습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죠.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에만 집중합시다. 다 잘될 거예요.”
그 고민은 나중에 하고 싶었다.
당장 어찌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 * *
오석훈이 빠진 이후로 진행된 경기는 버팔로즈의 0:1 승리로 마무리됐다.
핵심 선수가 부상까지 당하며 만든 리드를 내줄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선수단에 전달됐는지, 버팔로즈 선수들은 조금의 실수도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고지훈이 또 하나의 승리를 추가한 것은 물론이고, 버팔로즈는 드래곤즈를 0.5게임 차로 앞서게 되며 2위에 올랐다.
경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석훈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버팔로즈 팬들은 오석훈이 큰 부상을 당한 게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랐겠지만, 아쉽게도 원하지 않았던 소식이었다.
└시즌이야 거의 끝났다고 하지만, 포스트시즌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게 뭔 일이냐 ㅠㅠ
└햄스트링이면 포스트시즌 경기는 사실상 뛰기 어렵지.
└중심 타자 없이 포스트시즌 치르는 건 진짜 최악이다.
└이렇게 되면 박성주가 엄청 견제받을 텐데 큰일이네.
└원래도 포스트시즌에서 4번 타자 견제하는 건 엄청 날 텐데 오석훈까지 없으니 그냥 독박이네.
└고지훈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 우승도 한번 노려볼 만했는데, 이건 너무 치명타다 ㅠㅠ
└이렇게 된 거면 드래곤즈랑 2위 싸움을 떠나서 재규어즈한테 3위 안 뺏기기만 해도 다행인 것 같다.
└그러네. 큰 욕심 버리고 이번 시즌에도 포스트시즌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겠다.
오석훈이 없는 버팔로즈는 경기력이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갑작스럽게 생긴 3번 타자의 공백을 단숨에 메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4번 타자 박성주에 대한 견제가 훨씬 심해졌다.
버팔로즈의 공격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으며 이후 드래곤즈와의 두 경기를 모두 패배했다.
이번 시즌 후반의 가장 빅 매치였던 두 팀의 맞대결은 드래곤즈의 위닝 시리즈로 마무리됐다.
두 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이 끝나고 버팔로즈의 순위가 3위로 다시 밀려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1.5게임 차로 승차가 더 벌어지게 됐다.
이제 단 1경기 차이로 뒤쫓아오고 있는 4위 재규어즈와의 차이가 더욱 가까워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버팔로즈와 순위 경쟁을 해야 하는 팀은 물론이고 승리가 필요한 팀에서도 박성주를 집중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모든 투수들의 집중 견제에 박성주의 타격도 확실히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중심 타선의 타격 성적이 이전보다 약해지자, 버팔로즈의 공격력도 크게 떨어졌다.
치열하게 순위 싸움 중인 버팔로즈 입장에서는 오석훈의 갑작스러운 부상이 너무도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