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피할 수 없는 맞대결 (4)
고지훈이 던진 패스트볼은 살짝 휘어져 떨어지며 타자의 바깥쪽 낮은 코스로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펑!
-스트라이크!
재규어즈 타자는 공이 지나가는 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고지훈 선수가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정말 완벽한 코스였어요.”
중계방송에서 보여주는 공의 궤적을 다시 보니 자연스럽게 내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저렇게 초구부터 구석으로 꽉 차게 들어가는 공 하나 보고 나면요,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 설정하기가 아주 어려워져요.”
오석훈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곧바로 고지훈의 피칭이 이어졌다.
-볼!
두 번째 공을 골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틱!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공이었기 때문에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았다.
1 볼 2 스트라이크.
심호흡을 고른 고지훈은 신중하게 네 번째 공을 던졌다.
고지훈의 손을 떠난 공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날아갔다.
타자가 어떻게든 배트에 맞춰보려고 했지만, 익숙하지 않을 궤적이라 쉬울 리 없었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첫 번째 타자를 깔끔하게 아웃시키고 난 후에,
틱!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는 공 하나만으로 뜬공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3번 타자와의 승부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감한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공을 던졌다.
틱!
빗맞은 타구는 3루수 박성주를 향해 힘없이 굴러갔다.
어렵지 않게 공을 잡아낸 박성주는 1루수를 향해 여유 있게 공을 던졌다.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가자 공수교대가 이루어졌다.
“고지훈 선수가 깔끔하게 1회 초 수비를 마무리했습니다.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은 데다 투구 수도 그리 많지 않았어요.”
“선발 투수한테 1회가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요. 고지훈 선배한테는 전혀 관련 없는 말인 것 같아요.”
장수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곧이어 재규어즈의 마이클 스콧이 마운드로 다가가고 있었다.
“스콧 선수가 포스트시즌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정규 시즌과 포스트시즌 경기의 무게감은 절대 같을 수 없었다.
단기전에 등판하는 건 처음이라 혹시라도 힘이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첫 타자부터 전력을 다해서 피칭을 시작했다.
펑!
154Km/h
-스트라이크!
펑!
155km/h
-스트라이크!
힘이 가득 느껴지는 패스트볼로 단숨에 두 스트라이크를 잡고 나서는,
후웅-
158km/h
-스트라이크 아웃!
이미 투 스트라이크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뒤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로 타자는 배트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어지는 2번 타자와의 승부도 마찬가지였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두 타자 연속으로 삼진 아웃을 잡아냈다.
그리고 오석훈을 대신에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3번 타자.
스콧은 포수가 보낸 사인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칭을 이어갔다.
펑!
펑!
투 스트라이크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는 드디어 그립을 바꿔 잡았다.
패스트볼처럼 날아가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는 처음으로 던진 스플리터도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떨어졌다.
후웅-
타자의 배트는 여지없이 헛돌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콧은 보란 듯이 1이닝을 순식간에 삭제해버렸다.
곧바로 2회 초 재규어즈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고지훈이 스콧의 피칭에 자극을 받았는지 공격적으로 승부했다.
꿈틀거리며 날아오는 패스트볼에 제대로 된 타격을 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틱!
-아웃!
아쉬움을 삼키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4번 타자 뒤로 대기 타석에 있던 도널드 왓슨이 타석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도널드 왓슨 선수를 만날 시간입니다.”
타이트한 상황이 아닌데도 내 손에 땀이 쥐어졌다.
-왓슨! 왓슨! 왓슨!
관중석에 있던 재규어즈 팬들은 기대로 가득 찬 함성을 질러댔다.
고지훈과 도널드 왓슨은 웃음기 없이 진지하게 승부를 준비했다.
그리고 첫 번째 공.
펑!
-볼.
“고지훈 선수도 왓슨을 의식하지 않기는 어렵나 봐요. 첫 번째 공이 크게 빠져나갔어요.”
“왓슨 선수가 홈런이랑 2루타를 칠 수 있는 장타력에다가 도루 능력까지 있는 타자다 보니까요. 투수 입장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일 거예요.”
장수영이 자기가 마운드에 있는 것처럼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펑!
“스트라이크!”
패스트볼을 몸쪽 깊숙하게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 번째 공을 던지는데,
이번에는 왓슨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다.
딱!
힘은 제대로 실렸는데, 타이밍이 조금 빨랐던 탓에 타구는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버팔로즈 입장에서는 아찔한 타구였어요. 타이밍만 맞았다면 충분히 홈런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왓슨의 스윙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출렁거렸다.
두 선수가 다시 준비를 하는 사이, 방송사의 중계 화면에서 리듬을 타며 응원하는 올리비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보니까 연예인 보는 것 같아요. 리듬 타는 것도 장난 아니시네요.”
소영준이 앉은 채로 함께 몸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 에이전시의 가장 뜨거운 셀럽이시죠.”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도 잠시,
승부가 다시 이어졌다.
1 볼 2 스트라이크.
고지훈이 또 하나의 공을 던지는데,
후웅-
결국 날카롭게 휘어져 나가는 변화구에 왓슨의 배트가 헛돌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첫 대결의 승자는 고지훈이었다.
2회 말로 넘어가며 스콧과 4번 타자 박성주의 승부로 이어졌다.
스콧은 앞선 타자들과는 달리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했다.
패스트볼 위주로 상대했던 1회와는 달리 타이밍을 뺏기 위한 커브를 선택했다.
펑!
-볼!
박성주는 살짝 움찔하기만 했을 뿐 스윙을 하지는 않았다.
재규어즈 배터리가 선택한 두 번째 공은 패스트볼이었다.
펑!
-볼!
“스콧 선수가 투 볼로 몰리는 상황이 됐어요.”
“성주가 언제든지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다 보니까요. 의식이 많이 되나 봐요.”
오석훈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무리해서 던지려다 보면 실투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볼넷을 내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승부를 할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스콧 선수라도 단기전에서 선취점을 내준다는 건 타격이 커요.”
2 볼 0 스트라이크.
스콧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타이밍을 맞추던 박성주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딱!
타구는 외야로 쭉쭉 뻗어나갔다.
“어, 타구가 멀리 뻗어나갈 것 같은데요?”
나와 선수들은 기대와 아쉬움이 반반씩 섞인 얼굴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성주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1루 베이스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와아아아-
버팔로즈 팬들은 홈런을 예감하고 함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스콧의 공에 힘이 있었기 때문에 담장을 넘어가기는 무리였다.
거의 펜스 가까이서 수비를 하고 있던 중견수 도널드 왓슨이 담장 바로 앞 워닝트랙에서 공을 잡아냈다.
-아아.
중요한 선취점을 기대했던 버팔로즈 팬들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전력으로 달리던 박성주의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닝에서 고지훈과 스콧의 호투가 이어진 것을 물론이고, 포스트시즌답게 투수의 뒤를 받쳐주는 야수들의 수비도 흠잡을 곳 없이 탄탄했다.
수준 높은 투수전이 이어지며 타순이 한 바퀴 도는 동안에는 두 팀 모두 홈 베이스를 밟지 못했다.
덕분에 초반 이닝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두 투수가 모두 정말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타석에 섰다면 어떻게 승부를 해갈 거 같아요?”
나는 오석훈과 소영준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먼저 오석훈이 입을 열었다.
“에이스 투수랑 상대할 때는 투 스트라이크로 몰리는 상황이 되면 정말 어려워지거든요. 특히 스콧의 스플리터는 구속도 빠른 데다 떨어지기 직전까지 패스트볼이랑 정말 구분하기가 어려워서요. 초반에 승부를 하는 게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거예요.”
“소영준 선수는 어때요?”
나의 물음에 소영준이 벌떡 일어나 스윙하는 자세를 취했다.
“만약에 스콧이랑 상대한다면 말이죠. 일단 집중을 제대로 해요, 그리고 공이 날아오는 타이밍을 맞춰서 몸의 중심을 이동하면서 배트를 돌리는 거죠. 그럼 안타가 될 거예요, 운 좋으면 홈런도 가능하죠.”
“에이, 제가 괜히 물어봤네요.”
나는 황급하게 고개를 모니터로 돌렸다.
5회까지도 스콧과 고지훈이 흔들림 없는 피칭을 이어가며 상대 타자들을 꽁꽁 묶는 데 성공했다.
출루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타자와의 승부를 잘 풀어가며 실점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스코어는 여전히 0:0으로 변하지 않고 있었다.
* * *
어느덧 6회 초를 앞두고, 클리닝 타임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드디어 에이전시에서 야심 차게 미리 준비한 영상 중 하나를 볼 차례였다.
다른 이닝보다 공수 교대에 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이기도 한데다, 계속 광고만 틀기에는 시청자들이 지루하다고 느낄 것 같아서 준비한 영상이었다.
광고 하나가 마무리될 때쯤 되자, 나는 프로듀서와 눈빛을 교환했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다시 스튜디오로 화면이 넘어온 것을 확인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이 보기에 이번 시즌에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순간이 언젠가요?”
내 물음에 오석훈이 가장 먼저 답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성민 선배 첫 홈런 쳤을 때요. 홈런이었는데도 1루로 전력질주하다가 슬라이딩하시는 모습 보니까 뭔가 뭉클해지더라고요.”
“크으 그렇죠. 그 순간도 정말 멋졌죠. 그리고 그날이 성민 선배 아들이 태어난 순간이기도 했어요.”
그날의 순간을 되돌아보니 소름이 살짝 느껴졌다.
곧이어, 소영준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스콧이랑 왓슨이 동시에 미쳤던 경기 있었잖아요. 스콧은 거의 퍼펙트게임하고, 왓슨은 사이클링 히트할 뻔했던 경기. 그것도 버팔로즈랑 붙어서 그렇게 했던 거 같은데.”
“아……. 그날은 버팔로즈 입장에서는 정말 쓰라린 경기였어요. 스콧 선수한테 완전히 눌려서 힘 한 번 못 써본 걸로 기억해요. 왓슨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보였고요.”
오석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석훈이가 안타 안 쳤으면 스콧이 퍼펙트게임도 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그럼 스콧 이름이 한국 야구 역사에 남았을 텐데.”
소영준이 오석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저도 좀 아쉽기는 한데…… 그래도 일부러 아웃될 수는 없으니까요.”
오석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꼬리를 흐렸다.
└왓슨이 빈볼 맞았을 때 스콧이 똑같이 빈볼 던진 것도 빼놓을 수 없지. 팀 플레이잖아.
└그날 시원하긴 했지.
└그러고 보니 왓슨이 벤치클리어링을 안 일으켰네.
└포스트시즌에서 한번 보여주면 안 되나.
└괜히 잘하고 있는 선수 흔들지 마라. 혹시 그러면 이번에도 스콧이 머리로 157km/h 짜리 패스트볼 던져줄 테니까.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요. 우리 제작진이 명장면 하나를 꼽아봤다고 해요.”
“제작진 선정 최고의 명장면인가요?”
소영준이 기대감을 드러내며 나에게 물었다.
“정확하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요.”
“비슷한 말 같은데?”
“거의 비슷한데 조금은 다를걸요? 일단 함께 보실까요?”
잠시 후, 화면이 바뀌더니 얼마 전에 있었던 장면이 재생됐다.
마운드에 선 스콧이 먼저 화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며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뭐야, 이거?”
깜짝 놀란 소영준이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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