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피할 수 없는 맞대결 (5)
화면에는 얼마 전 펠리컨즈의 경기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타석에 서 있는 선수는 소영준이었다.
-소영준! 가지 마! 소영준! 가지 마!
카드 섹션으로 만들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펠리컨즈의 영원한 에이스, 소영준’이라는 글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뭐예요!”
눈이 동그랗게 커진 소영준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
“저희 에이전시에서 꼽은 명장면 중 하나인데요.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었는데요. 함께 보시죠.”
나는 손뼉을 치며 고개를 돌려 엄지를 치켜세웠다.
“펠리컨즈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일 거 같아요. 저도 저런 선수가 되면 좋겠는데요.”
오석훈이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 숨을 곳 없나.”
소영준이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팬들의 응원 장면이 끝나자 인터뷰 영상으로 넘어갔다.
“아악! 그만! 여기까지만 하라고!”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 예정인지 깨달은 소영준이 소리를 지르며 카메라 밖에 있는 제작진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물론 오석훈, 최정환, 장수영이 모두 웃음이 빵 터지며 자지러졌다.
“이거 어떻게 멈추는 거야? 담당자 누구세요?”
소영준의 애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재생되고 있었다.
-요즘 야구 커뮤니티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식인데요. 재규어즈로 트레이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나요?
-가지 마요!
-제발 남아 주세요!
-소영준 선수 때문에 펠리컨즈 응원하고 있다고요!
화면에는 펠리컨즈 팬들의 애절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펠리컨즈 팬들께서 정말 간절하게 응원해 주고 계시죠? 소영준 선수도 생각이 많아지는 표정이에요.”
나는 소영준의 찰나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전달했다.
-저 펠리컨즈에 남겠습니다.
-네? 정말 이적하실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네. 저 안 가고 싶습니다.
“키야. 우리의 주인공이 드디어 결심을 했어요. 중요한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나는 책상을 탕 한 번 내리쳤다.
-하지만 이미 협상이 진행 중인 걸로 아는데요? 혹시라도 체결이 되면 선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트레이드는 진행될 텐데요.
-지금 강현우 대표님 보고 계시죠? 저 안 가고 싶습니다. 트레이드 아직 체결 안 됐으면 멈추게 해주세요. 진심이에요!
“소영준 선수의 표정 보세요. 정말 단호함과 절실함이 느껴지죠. 감정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에요.”
“으아악!”
구석에서 들려오는 소영준의 애절한 외침은 아까보다 더욱 크게 들려왔다.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마 오늘 경기 보셨으면 다들 아실 것 같은데요…….
“자, 이제 가장 결정적인 한마디가 나옵니다. 다들 집중해 주세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귀를 쫑긋하며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저 같은 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시는데. 그냥 이렇게 떠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요.
“으아아악!”
이번 영상의 클라이맥스였던 한마디가 나오자 우리는 책상을 내리치며 박장대소했다.
“제발 그마아아아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구석으로 숨은 소영준이 절규했다.
우리 제작진은 이런 소영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비추었다.
└ ㅋㅋㅋㅋ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기세네.
└그날은 분명히 되게 멋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까 엄청 오글거리네 ㅋㅋㅋ
└너무 웃겨서 눈물 난다 ㅋㅋㅋ 소영준이 저러니까 더 웃기네
└펠리컨즈 팬인데. 나는 감동적이어서 눈물 난다.
-저 같은 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시는데. 그냥 이렇게 떠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요.
제작진은 마지막 한마디를 다시 재생하는 센스도 보여줬다.
“중요한 장면이라 다시 한번 나오네요.”
마지막에 한 방을 더 맞은 소영준은 결국 탈진이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웃음을 터트린 최정환과 장수영이 다가가 소영준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다시 경기에 집중해 볼까요? 소영준 선수도 어서 오세요.”
나는 소영준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소영준은 너덜너덜해진 표정으로 터벅터벅 돌아왔다.
“물 하나 갖다주세요.”
소영준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스태프 한 명이 급히 달려가 물을 건네줬다.
생수 한 병을 건네받은 소영준은 풀린 눈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우리가 떠들고 즐기는 사이 6회 초가 시작됐다.
고지훈과 스콧은 경쟁을 펼치듯 6회에도 여전히 타선을 잠재웠다.
끝까지 팽팽할 것만 같던 승부의 균열은 7회에 벌어졌다.
7회 초, 재규어즈의 공격 이닝.
고지훈의 제구가 살짝 흔들리며, 재규어즈 3번 타자가 볼넷으로 출루를 하게 됐다.
0 아웃 주자 1루 상황.
“오늘 같은 경기에서는 희생번트 전략이 나올 타이밍인데요. 하지만 다음 타순이 4번 타자라서요. 과연 재규어즈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타석에 선 4번 타자는 코치에게서 사인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지훈이 공을 던지려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
타자는 배트를 짧게 쥐며 갖다 댔다.
톡.
겨우 맞추기는 했지만, 번트에 익숙하지 않은 4번 타자가 고지훈의 꿈틀거리는 볼에 번트를 성공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파울!
“4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네요. 재규어즈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것 같은데요.”
“한 점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바로 다음 타자가 도널드 왓슨 선수니까요. 일단 주자를 득점권에 보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두 번째로 날아오는 공에도 타자는 배트를 짧게 쥐고 번트를 시도했다.
톡.
하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며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이렇게 되면 투 스트라이크까지 몰리는 상황이 되었는데요. 4번 타자다 보니까 쓰리번트까지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0 볼 2 스트라이크.
번트를 시도하다가 파울이 되면 아웃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상대로 타자는 평소처럼 배트를 길게 쥐며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고지훈이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처럼 들어오다가 먼 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작전의 실패로 마음이 급해졌을 4번 타자가 참아내기는 쉽지 않은 공이었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헛스윙으로 삼진 아웃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재규어즈 벤치에서 4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강수를 두었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들어오는 도널드 왓슨 선수에게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
-왓슨 안타! 왓슨 날려버려!
도널드 왓슨이 재규어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으며 타석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고지훈과 왓슨은 타석에서 마주 보고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드디어 승부가 시작됐다.
펑!
-스트라이크!
“역시 고지훈 선수는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아요.”
0 볼 1 스트라이크.
고지훈은 오랜 시간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는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체인지업이 생각처럼 떨어지지 않으며 애매한 높이로 날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실투를 왓슨이 놓칠 리가 없었다.
딱!
타구는 외야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어어! 타구가 쭉쭉 뻗어갑니다!
그사이 1루에 있던 주자는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넘어가는 듯했던 타구는 가장 먼 펜스를 맞고 튕겨 나왔다.
이를 확인한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 그리고 홈까지 곧장 내달렸다.
버팔로즈 중견수가 공을 집어 들고 커트맨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홈으로 달리고 있는 주자를 아웃시키기는 무리였다.
그리고 여유 있게 2루에 도착한 왓슨은 손으로 가슴을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와아아아-
-왓슨! 왓슨! 왓슨!
“세이프! 세이프! 도널드 왓슨 선수의 시원한 장타로 재규어즈가 중요한 한 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선 타자가 희생번트에 실패해서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왓슨 선수가 확실하게 해결을 해줬습니다.”
고지훈은 얼굴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실투의 아쉬움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웠다.
스코어는 1:0으로 바뀌었다.
서성민이 타석으로 다가가려는데, 버팔로즈 투수 코치가 주심에게 공을 받아들고 마운드에 올랐다.
고지훈이 투수 코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고지훈 선수가 아쉽게 한 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정말 좋은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고지훈 멋지다!”
우리는 함께 손뼉을 치며 고지훈을 응원했다.
그리고 이어진 서성민이 날카로운 타구를 날려 보냈는데, 3루수 박성주의 그림 같은 수비가 나오며 안타가 되지 못했다.
1:0 스코어는 9회까지 이어졌다.
버팔로즈에서 마지막까지 절박하게 점수를 내보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규어즈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결국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승리팀은 재규어즈였다.
* * *
다음 날 펼쳐진 2차전.
재규어즈는 2차전까지 승리하며 시리즈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버팔로즈가 모든 선수를 쏟아부으며 승리하며 3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재규어즈가 2승 1패로 리드한 상태로 맞은 4차전.
집중 견제를 받은 박성주가 힘을 쓰지 못하자 타선이 터지지 못했다.
결국 3승 1패로 재규어즈가 업셋에 성공하며 준플레이오프의 승자가 되었다.
이제 재규어즈는 드래곤즈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드래곤즈의 나준호와 재규어즈의 도널드 왓슨의 타격 대결이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1차전에서는 충분히 체력을 비축하고 기다렸던 드래곤즈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등판이 이어지며 자신감이 붙은 마이클 스콧의 호투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3차전, 4차전도 어느 한 팀이 확실하게 리드하지 못하며 치열하게 펼쳐졌다.
2승 2패.
승부는 마지막 5차전까지 이어졌다.
두 팀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다해 승부를 펼쳤다.
재규어즈가 선취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재규어즈는 활용 가능한 모든 투수진을 동원해서 리드를 지키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최고의 장면은 9회 말 드래곤즈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재규어즈는 리드를 지키기 위해 이미 모든 불펜 투수를 투입한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마이클 스콧이었다.
선발 등판을 하고 나서 3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 상황이라서 걱정스러웠는데, 1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5차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재규어즈가 드래곤즈까지 꺾으며 4위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에 복귀한 것도 모자라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자, 재규어즈 팬들은 말 그대로 광분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의 티켓은 딱 2분 만에 모두 팔려 나가며 뜨거운 열기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리고 펼쳐진 대망의 한국시리즈.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울프스와 기적과도 같은 업셋을 노리는 재규어즈.
체력적으로는 울프스가 훨씬 유리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상대팀을 격파하고 올라온 재규어즈의 기세는 무시하기 어려웠다.
재규어즈는 공격적인 전술과 투수와 타자들의 분전으로 울프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이클 스콧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운드 위에 선 순간을 즐겼다.
하지만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울프스가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4승을 거두기는 어려웠다.
결국 4승 2패를 거둔 울프스가 또 한 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의 시즌이 이렇게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