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다시 찾은 그곳 (4)
마이클 스콧이 준비를 마치자 두 선수의 대결이 시작됐다.
한교진의 사인을 확인하는 스콧의 표정만 보면 정규 시즌 경기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스콧과 호흡을 맞추게 된 한교진도 진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인을 확인한 스콧은 심호흡을 내쉬고 힘껏 공을 던졌다.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갔다.
소영준의 배트도 기다렸다는 듯 힘껏 돌았다.
틱!
“아……. 아깝다.”
충분히 안타를 칠 수 있는 공이라고 판단했는지 소영준의 얼굴에는 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곧이어 스콧의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펑!
“볼!”
높은 코스로 날아온 패스트볼에는 소영준의 배트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1 볼 1 스트라이크.
스콧과 한교진은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했다.
한교진이 보낸 사인에 스콧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피칭을 준비했다.
스콧의 손을 떠난 공은 살짝 떠오르다가 바닥을 향해 급격하게 떨어졌다.
턱!
한교진의 미트에 들어가기 전에 바닥에 바운드될 정도로 낙차가 컸다.
소영준은 움찔했을 뿐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볼!”
헛스윙이 나오지 않자 아쉬움을 드러내던 스콧이 소영준과 눈을 마주치고는 미소를 지었다.
2 볼 1 스트라이크.
심호흡을 고른 스콧이 한교진의 사인대로 또 하나의 공을 던졌다.
펑!
공은 스트라이크처럼 들어가다가 날카롭게 꺾이며 존을 빠져나갔다.
소영준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볼!”
이번 공에도 소영준의 배트가 움직이지 않자 스콧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느껴졌다.
3 볼 1 스트라이크.
실전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볼넷을 내주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스콧은 그마저도 용납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펑!
“스트라이크!”
오늘 던진 공 중에서 가장 빨라 보이는 패스트볼이었다.
어느새 3 볼 2 스트라이크 풀 카운트였다.
이제 소영준의 표정에서도 진지함이 가득 느껴졌다.
곧바로 이번 대결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공이 날아왔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날카롭게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소영준의 배트가 헛돌았다.
“와우, 원더풀!”
마운드의 스콧은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드러냈고,
“아, 예상했는데. 떨어지는 각이 크네.”
소영준의 표정에서는 아쉬움이 짙게 내려앉았다.
이어서 다른 타자들과도 승부를 펼쳤다.
정규 시즌이 아닌데도 스콧의 공은 위력적이었다.
아직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아서인지 타자들이 제대로 된 스윙을 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미니 게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 * *
선수들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늘어나다 보니 각자의 스타일과 상황을 잘 알게 되면서, 정보창 없이도 그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선수들이 한곳에 모여서 훈련을 하고 있는 사이에서도 각자 상황과 스타일에 따라서 트레이닝 방식은 달랐다.
이미 경험이 많은 정상급 베테랑 선수인 나준호, 고지훈, 도널드 왓슨은 굳이 나와 정인규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하며 훈련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훈련 프로그램을 세팅하고 관리해 주는 정도였다.
마이클 스콧, 소영준, 서성민, 박성주, 장수영, 최정환에게도 기술적인 부분에서 조언해 줄 부분은 없었다.
다만 아직 혼자서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게 완벽하지는 않다 보니 필요할 때에만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최우진에게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평소에도 에이전시 훈련장에서 개인 지도를 많이 받는 편이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고지훈을 비롯해서 국내 최고 투수 선배들에게 직접 코칭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최우진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구속을 늘리기 위해서 체계적이고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도 빠트리지 않았다.
또한 부상 회복이 가장 중요한 오석훈 또한 집중 관리 대상이었다.
전지훈련 내내 다른 선수들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도 필요한 훈련을 소화할 수 있게 해줬다.
덕분에 전지훈련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스프링캠프를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몸 상태를 만들 수 있었다.
어느덧 3주 동안 진행된 우리 에이전시의 두 번째 전지훈련도 마무리되었다.
소영준은 이번에도 감상에 빠지며, 괌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했다.
다음 시즌에도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고 여유로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나서야 힘겹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에이전시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구단 스프링캠프 준비를 위한 선수들의 훈련은 멈추지 않았다.
전지훈련에서 열심히 몸을 만들어온 효과가 있기는 한지, 다들 표정이 밝아 보였다.
특히 오석훈은 근력을 키우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장타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전보다 확실히 근육량이 늘어나면서 타구가 뻗어나가는 힘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혹시라도 근력 운동을 과하게 하다 보면 햄스트링에 무리가 올 수도 있어서 정인규의 집중 관리를 받으며 진행했다.
그리고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직전에 잠잠하던 야구 뉴스를 뜨겁게 달군 하나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못 본다는 게 많이 아쉽지만 미국에서 잘해라.
└강현우한테 매니지먼트 받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그건 못 보게 됐네.
└드림에이전시에서 영입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왜 안 한 거지?
└그러게. 강현우가 안범석 등판 경기도 여러 번 보러 왔었잖아. 영입할 생각이 없었으면 가지도 않았을 텐데. 경기력이 부족해서 계약 못 하겠다고 생각했을 리는 절대 없을 테고.
└본인이 메이저리그로 직행한다고 결정했으니까 그랬겠지. 만약에 한국 잔류할 생각이면 안 했을 리가 없잖아.
└이렇게 된 거 내년에 최우진이나 봐야겠네. 드림에이전시 들어가고 나서 확실히 잘해지긴 했던데.
└냉정하게 아직 드래프트 원 탑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1라운드에는 뽑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잠재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는데, 강현우가 선택했다고 하니까 잘하겠지.
└나중에 안범석하고 최우진 중에서 누가 더 잘하는가도 재밌는 포인트겠네 ㅋㅋ
└과연 미래의 국가 대표팀 1선발은 누가 맡게 될 것인가?
* * *
달력이 1월에서 2월로 넘어가자 선수들은 각 구단의 스프링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에이전시 숙소를 떠났다.
평소에 북적북적하던 숙소와 훈련장에 고요함이 느껴졌다.
유일하게 이곳에서 훈련하는 선수는 최우진이었다.
전지훈련에 이어 정인규의 집중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한 번 더.”
“으아아악!”
“딱 한 번만 더!”
최우진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정인규와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정인규가 끈질기게 하나 더를 외치는 만큼 최우진의 비명은 점점 커져 갔다.
“오케이, 잠깐 휴식하자.”
“헉. 헉. 헉.”
정인규의 한마디에 온 힘을 다 쏟아부은 최우진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제 훈련 끝난 거야?”
“조금 쉬었다가 피칭 몇 개만 하고 마무리하면 돼.”
말할 여유가 없어 보이는 최우진 대신 정인규가 답했다.
“헉. 헉. 대표님, 저 진짜 쓰러질 것 같아요. 헉. 헉.”
최우진이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했다.
“정 코치님이 우진이를 강하게 키우시네.”
“지금 이렇게 해둔 걸 후회할 일은 없을 거야.”
정인규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는 최우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최우진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흐르고 있던 땀이 멈추기도 전에 피칭 연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우진은 정인규와 함께 가볍게 몸을 풀면서 피칭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피칭에 돌입했다.
펑!
140km/h.
펑!
141km/h.
펑!
143km/h.
이제 패스트볼 구속이 140km/h 초반까지 높아졌다.
물론 최우진의 완벽한 제구력이 흔들리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펑!
“와우!”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를 보자마자 나는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145km/h!
비공식이긴 해도 최우진의 최고 구속이었다.
“와, 이번에 던질 때 느낌 진짜 좋았어요.”
최우진 스스로도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는지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스피드는 145km/h!”
“이야, 대박이네.”
옆에서 듣고 있던 정인규가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제가 진짜 145km/h를 던졌다고요?”
최우진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그리고 오늘 패스트볼 중에서는 140km/h 밑으로 떨어지는 공이 없었어.”
나는 방금 찍은 스피드건을 보여주며 답했다.
“우와. 내가 진짜 140km/h를 던질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이 정도 기세면 머지않아서 150km/h도 넘겠는데?”
“제가 150km/h를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최우진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못할 이유도 없잖아. 150km/h를 던지는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스콧 형이나 정환 선배 정도 돼야 던지는 거 아니에요? 그 형들은 거의 160km/h 가까이 던지잖아요. 그냥 괴물인 것 같은데.”
“스콧이랑 정환이도 야구 처음 할 때부터 150km/h 던진 건 아닐 거잖아. 우진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우와. 진짜 150km/h 던질 수 있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거 같아요.”
최우진이 설렘을 가득 드러내며 말했다.
“150km/h 던지면서 제구력까지 좋은 왼손 투수면 에이스 투수가 안 될 수가 없겠네.”
나는 최우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음번에 스콧 형이나 정환 선배 만나면 어떻게 했는지 물어봐야겠다.”
“우진이 한번 상대해 보고 싶은데?”
문득 타석에 서서 보는 공의 위력은 어느 정도 일지 궁금했다.
“오, 재밌겠다. 코치님, 한번 해봐도 돼요?”
최우진이 정인규를 보며 물었다.
“물론이지.”
정인규의 한마디에 나와 최우진은 타석과 마운드로 향했다.
헬멧을 쓴 나는 보호장비까지 갖춘 채로 배트를 들고 타석으로 다가갔다.
최우진이 왼손 투수이기도 한 데다 제구력도 좋은 편이라, 내 몸을 맞추는 공이 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후우-”
그럼에도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 박동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제 던지겠습니다!”
“오케이.”
나는 최우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최우진은 주저함 없이 첫 번째 공을 던졌다.
펑!
“오우!”
나는 절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
타석 뒤에서 볼을 지켜보던 정인규가 콜을 외쳤다.
너무 멀어 보여서 당연히 볼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트라이크라니.
일단 이어지는 공에 집중했다.
틱!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공이라 배트에 제대로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후우-”
고민해야 할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몸쪽은 포기하고 바깥쪽만 노려봐야지.
또 하나의 공이 최우진의 손을 떠났다.
이번 공은 한가운데로 날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실투인 줄 알았는데, 급격하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후웅-
패스트볼을 의식하다 보니 체인지업에는 도저히 대처할 수가 없었다.
“우와!”
나는 탄성을 내지르며 최우진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삼구삼진.
말 그대로 완벽한 나의 패배였다.
최우진이 이번 시즌에 보여줄 모습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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