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은밀한 유혹 (4)
빠아앙-
“헉!”
클랙슨 소리에 급이 운전대를 돌렸다.
내 차가 옆 차선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깜빡이를 켜서 상대편 차에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후-“
등 뒤로 식은땀이 쫙 흘러내렸다.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아까 상황을 돌이켜 볼 때마다 답답하고 억울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급했던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다면 완벽하게 준비했을 텐데…….
괜히 죄 없는 핸들을 한 번 쾅 내리쳤다.
억울함이 사라지기는커녕 내 손만 아팠다.
집까지 어떻게 운전했는지도 모르게 겨우 도착했다.
아직은 새로운 집이 익숙하지 않았다.
한밤중이라 주변이 온통 어두컴컴한 데다, 나오면서 불도 다 끄고 나온 터라 암흑이나 다름없었다.
스마트폰 손전등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방을 찾아 들어갔다.
아침부터 이사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몸이 피곤했는데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펼쳐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탭을 눌렀다.
오늘 경기는 연장전에 접어든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이미 끝나있었다.
우리 선수들의 오늘 경기가 어땠는지 내용을 확인해보려고 하는데, 방금 전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근거도 없이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확실한 전환점을 만들어내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래.
이주호를 직접 만나보자.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최정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선배님.
“정환아. 지금 혹시 통화 가능해?”
-네. 오늘 훈련은 다 끝나서 괜찮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지난번에 뵀던 사업하시는 분 있잖아? 그분하고 자리 한 번 만들어줄 수 있을까?”
-민석이 형이요?
“민석이 형? 아니. 그분 말고 얼마 전에 나랑 마주쳐서 인사했던 분.”
-그분이 민석이 형이에요. 성함이 강민석이에요.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이주호가 아니라 강민석이라고?
“그때 그분이 강. 민. 석. 이라고?”
-네. 맞아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람의 정보창에는 분명히 이주호라고 되어있었는데.
도대체 어떤 게 맞는 거지?
아!
그럼 경찰이 이주호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한 이유가, 그 사람이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걸까?
일단 이주호가 본명으로 활동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힌트가 됐다.
“정환아, 내가 너랑 먼저 만나야 할 것 같다. 지금 바로 만나자.”
나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차로 달려갔다.
* * *
밤 늦은 시간이라 도로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출발한 지 30분 만에 최정환의 집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최정환이 알려준 주소는 더블즈 홈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빌라였다.
주소에 호수까지 보내준 덕분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최정환에게 올라간다는 메시지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띵동.
-누구세요?
인터폰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나는 메시지에 적힌 호수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맞게 찾아왔는데?
“안녕하세요. 저 강현우라고 합니다. 혹시 정환이 집 맞나요?”
-아! 잠시만요.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어준 사람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저기 혹시. 최정환 선수 집에 있나요?”
“네, 방금 들어왔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 오셨어요?”
잠깐 씻고 있었는지 최정환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누나. 내 방에서 얘기할 거야.”
문을 열어준 그 여자분은 최정환의 누나였나보다.
이제 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선배 이쪽으로 오세요.”
“어, 그래.”
나는 최정환이 가리키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올게요.”
혼자 방으로 들어간 나는 최정환의 방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야구 선수답게 책장에 글러브와 사인이 적힌 야구공이 놓여 있었다.
책상 구석에는 네 명이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최정환이 두 손에 컵을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선배, 이거 드세요.”
“고맙다.”
그가 건네준 컵에는 야채를 갈아서 만든 주스가 담겨 있었다.
이것만 봐도 평소에도 식단 관리는 잘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을 건네받으며 손이 맞닿자 최정환 머리 위에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이주호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주호가 지난번보다 두 배 많은 돈을 제안하자 마음이 조금 흔들리고 있다.
아무래도 친분 있는 사람이 돈까지 두 배로 주겠다고 하니 쉽게 뿌리치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 행위에 가담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멈추게 만들어야 했다.
“밤늦게 미안하다. 쉬어야 할 텐데.”
“아니에요. 평소에도 자는 시간은 아니라서요.”
“다른 게 아니라. 뭐 물어볼 것도 있고 해줄 말도 있고 해서 말이야.”
“네. 뭔데요?”
나는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정환아. 너 강민석 씨라는 사람이 무슨 사업하는지 모른다고 했지?”
“네…… 정확하게는 모르는데요.”
최정환의 시선이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분명히 지금은 유인구가 아니라 정면승부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너, 그 사람한테 부탁받은 거 있지?”
한가운데로 던진 빠른 공이었다.
“그런 거 없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최정환의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피해 보려고 했지만 피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듯했다.
“얼마 준다고 했어?”
“그게…… 일억이요.”
헉.
최정환이 올해 받는 연봉의 두 배가 넘는 액수였다.
흔들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돈이었다.
“조건은?”
“……1회 몸에 맞는 볼이요.”
만약 실행했다고 해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간단한 조건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최정환의 제구력에 대한 평가가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실행했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하고 완전 범죄로 끝날 가능성도 높았다.
다만 몸에 맞는 볼을 던지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는 그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조건이었다.
“둘만 알고 있는 거라서 전혀 티 안 날 거라고……”
“그래서 정말 할 생각이야?”
“사실…… 거절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최정환이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그 일에 가담하고 싶은 건 설마 아니지?”
“그럼요! 그런 걸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화들짝 놀란 최정환이 두 손을 세차게 저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하면 지금 연봉의 두 배를 받을 수 있는데도?”
나는 마음 깊은 곳에 있을 그의 진심이 궁금해졌다.
“솔직히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1회에 몸에 맞는 볼 하나 내준다고 우리 팀에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이면 우리 세 식구가 조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기도 해요. 그런데…….”
말하는 내내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 아까 본 가족사진에는 분명 네 명이었는데 세 식구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이건 제가 원하는 게 절대 아니에요.”
일단 진심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요?”
고개를 든 최정환의 눈빛에는 기대와 의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대신 지금부터 나한테는 솔직하게 얘기해줘야 해.”
최정환이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사람한테 돈 받은 거 있어?”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선금이라고 하면서 천만 원 줬어요. 근데 그거 쓰지는 않았어요.”
“그게 다야?”
“음……. 예전에도 용품 사서 쓰라고 일, 이백만 원씩 주기는 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저 고마운 형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조금씩 빚을 져온 셈이었다.
“얼마 전에 줬다는 돈, 아직 가지고 있지?”
“네.”
“그 사람하고 약속 잡을 수 있어? 최대한 빠르게.”
“안 그래도 내일 밤에 경기 끝나고 만나기로 했어요.”
아마 내일 만나서 승부 조작에 가담하겠다는 확답을 받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좋아. 내일 나랑 같이 나가자. 경찰에도 협조 요청을 해둘게.”
“경찰이요?”
최정환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그 사람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면 이번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참작될 수 있다고 했어.”
최정환은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은 푹 쉬어. 나도 이제 가봐야겠다.”
나는 최정환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며 일어났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최정환이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다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자.”
“네.”
최정환이 문을 열어줬다.
문밖 거실에는 아까 만난 최정환의 누나 옆에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함께 계셨다.
“얘기 다 나누셨어요?”
“아…… 처음 인사드립니다. 강현우라고 합니다.”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에 나는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소식 자주 듣고 있어요. 몸은 괜찮아요?”
“이제 다 나았습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미안합니다. 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갑자기 어머니가 나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시는 바람에 나도 다시 황급히 허리를 90도에 가깝게 숙였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한번 오세요. 부족한 솜씨지만 음식 대접이라도 하고 싶어서.”
“네. 편하신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현관에서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형. 내일 뵐게요.”
“그래. 전화할게.”
최정환과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눈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후-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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