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새로운 룸메이트 (1)
“형! 빨리 열어줘요.”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나가고 있어.”
나는 신발을 급하게 구겨 신으며 대문으로 달려갔다.
철컥.
문 너머에 서있던 사람은 오석훈이었다.
“이야.”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팀장님이 기대해도 된다고 하더니 진짜 집이 기가 막히네. 2층도 있네요?”
커진 눈으로 한참 동안 건물을 감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왈! 왈왈!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오석훈의 품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얘는 누구야?
“제 강아지예요. 여기 마당 있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혹시 형, 강아지 무서워해요?”
“무서워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오석훈이 조심스럽게 안고 있던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넓은 마당이 마음에 드는지, 강아지는 바닥에 내려주자마자 다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뛰어다녔다.
뛰어다니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신이 난 건지 느낄 수 있었다.
강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시선을 옮겨보니 오석훈 뒤로 캐리어를 포함해서 박스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이게 다 뭐야?”
“제 짐이에요. 그래도 많은 편은 아니지 않아요?”
“짐?”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오석훈이 박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럼 저는 어디 쓰면 돼요?”
“뭐야? 혹시 여기 들어오는 거야?”
내가 깜짝 놀라자 오히려 오석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형한테도 얘기한 거 아니었어요?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팀장님한테 얘기했죠. 저도 들어가고 싶다고.”
“정말?”
“팀장님이 바로 오늘부터 가도 된다고 하시던데. 아니에요?”
“완전 가능하지. 근데 지금 사는 집이 경기장하고 더 가깝지 않아?”
“그렇긴 한데요. 요즘에는 형도 바쁜 거 같아서요. 들어와서 같이 지내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편하잖아요. 그리고 여기에 훈련 장비도 다 갖춰져있다고 하고.”
그러고 보니 오석훈이 1군에 올라가고 난 뒤로는 관리를 거의 못 해줬다.
매일 경기 결과를 체크해서 메시지로 필요한 내용을 말해주는 정도였다.
다시 집중해서 신경 써줘야겠다.
오석훈의 짐을 옮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장비 가방 정도를 제외하고는 무거운 짐이 없어서 어려움은 없었다.
오석훈은 문이 열리자마자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우와. 안에도 깔끔하네. 지금은 여기 형 혼자 살고 있는 거예요?”
“응. 지금까지는 그랬지.”
“밖에서 보니까 2층도 있던데?”
“아래 지하도 있어. 실내 트레이닝실인데 운동 기구들도 다 들어왔더라고. 아직 비닐도 안 뜯었어.”
“정말요? 훈련하기도 좋을 거라고 하시던데, 진짜였네.”
오석훈이 거실 소파를 몇 번 눌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럼 저는 어느 방 쓰면 돼요?”
“둘러보고 편한 데 써. 저기 내가 쓰고 있는 방만 빼고.”
나는 1층 구석에 있는 내 방을 가리켰다.
“그럼 바로 건너편 써야겠다.”
오석훈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정리하는 거 도와줄까?”
“아니에요. 짐도 얼마 없고, 어차피 정리도 직접 보면서 해야 마음이 편해요.”
“밥 먹었어?”
“아직 안 먹었죠. 근데 여기 뭐 있어요? 주변에 가게가 하나도 안 보이던데?”
“맞아. 정말 아무것도 없어.”
자동차 없이는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다.
회사에서 보내주기로 한 조리사는 다음 주부터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럼 밥은 어떻게 먹어요?”
“배달시키거나 나가서 먹는데, 어떻게 할래? 같이 나가서 고기라도 먹고 올까?”
“그러죠. 어차피 내일 경기도 없는데.”
“빨리 가자 배고프다.”
나는 겉옷을 하나 더 걸치고 오석훈과 함께 집을 나섰다.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마당에서 뛰어놀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루피. 금방 올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오석훈이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도 옆으로 다가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봤다.
부들부들한 느낌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식구가 생기니 조금씩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드디어 길고 길었던 정규시즌이 모두 끝났다.
오석훈과 박성주가 마지막 경기까지 뜨거운 활약을 펼쳤지만, 버팔로즈가 6위를 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이 아쉽게도 좌절됐다.
똑. 똑. 똑.
나는 노크를 한 뒤 대표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임예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 씨. 어서 들어와요.”
회의 테이블로 다가온 임예지가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오석훈 선수 성적이 엄청나던데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내년에 풀타임 시즌을 소화한다면 더 좋은 결과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임예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개인적으로 현우 씨 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말보다는 결과로 증명해 내는 사람이요.”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보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현우 씨한테 새로운 일을 맡겨보려고 해서예요.”
새로운 일이라는 단어를 듣자 내 몸이 순간 들썩였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설렘에 가까웠다.
“나준호 선수가 우리 에이전시 소속이라는 거, 혹시 알고 있나요?”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끝나면 FA가 되기도 하고요.”
“맞아요. 그 FA 계약을 현우 씨가 준비해 보면 어떨까요?”
“제가 FA 계약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FA 계약은 일반적인 연봉 협상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게다가 에이전시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했다.
선수 시절에도 제대로 된 연봉 협상을 못 해봤는데,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부담은 가지지 않아도 돼요. 계약까지 혼자서 진행하라는 건 아니에요. 협상 때는 제가 같이 움직일 겁니다.”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현우 씨가 맡아줄 핵심 업무는 나준호 선수의 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도록 기획하는 거예요. 협상에서 최대한 좋은 조건을 얻어낼 수 있도록 말이죠.”
“알겠습니다.”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서 포인트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준호 선수 정도라면 아마 국내 모든 팀이 영입하려고 달려들 거예요. 사실 이번 계약은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선수에게 어느 정도로 좋은 계약을 안겨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죠?”
정확한 지적이었다.
드래곤즈의 나준호는 이미 국내 최고로 꼽히는 외야수였다.
언제라도 장타를 터뜨릴 수 있는 타격 능력과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투수를 했던 선수라 어깨도 강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소속팀인 드래곤즈를 포함한 국내 구단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팀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선수였다.
“협상은 포스트시즌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진행될 거예요. 잘할 수 있겠죠?”
“그럼 한국시리즈 끝나기 전까지 준비해두면 될까요?”
“중간중간 진행 상황도 보고해 주세요.”
나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시즌 경기가 끝난 팀은 연봉 협상이 진행될 거예요. 대부분 김 팀장님이 맡아서 진행하실 텐데, 옆에서 워밍업 한다고 생각하고 같이 손 맞춰서 한번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신 있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임예지가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대표실을 나오자마자 김민환에게로 다가갔다.
“저…… 팀장님.”
“어. 그래 이번에 FA 진행한다는 건 들었어.”
이미 알고 있었네.
“방금 대표님하고 이야기 나누고 왔는데, 팀장님하고 다른 선수들 연봉 협상을 진행해 보라고 하시던데요.”
“그렇지. 연봉 협상 준비해야지. 할 일이 참 많아.”
그러면서 김민환이 옆에 쌓여있던 서류 더미를 들고 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현우 씨는 아날로그를 더 편해하는 것 같아서 이번 협상에 필요할 만한 자료는 다 뽑아놨어. 어후, 힘들어 죽을 뻔했네.”
“아……. 감사합니다.”
자료를 뒤적여보니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의 올해 정규 시즌 경기 데이터였다.
언뜻 봐도 책 3, 4권은 될 만한 분량이었다.
“필요한 데이터는 빠짐없이 다 있을 거야. 협상 들어갈 때 활용할 자료 한번 만들어와봐.”
나를 생각해 주는 걸까, 골탕 먹이려는 걸까.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김민환이 혼자서 힘들게 어깨를 주무르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오케이. 이거다.
나는 김민환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갑자기 왜 이래.”
“보니까 어깨가 너무 뭉치신 거 같아서요.”
“오! 오오. 시원하게 잘하네. 어디서 배워온 거야?”
“부모님 자주 주물러 드렸어요.”
얼마나 뭉쳐있는지, 몇 번 주물렀을 뿐인데 손에 힘이 빠질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업데이트된 김민환의 정보창을 살폈다.
-연말 실적 발표를 앞두고 고민이 깊다.
YJ 에이전시에서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부서는 야구팀이었다.
야구가 국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이기도 했고, 국내 대기업이 진출해있기 때문에 시장 규모도 컸다.
따라서 다른 스포츠 팀과 비교해서 더 나은 실적을 내는 게 당연했다.
관건은 작년에 비해, 그리고 다른 부서와 비교해서 얼마나 더 나은 실적을 보여주는가에 달려있었다.
그런 걸 감안해 볼 때, 올해 실적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인 게 분명했다.
얼마 전에 나한테 새로운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지 물어본 것도 이것 때문이려나?
그렇다면 지금 타이밍에 무언가 도와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편하게 협상에 집중할 수 있겠지.
“팀장님 지난번에 에이전시에 영입할 만한 선수 있냐고 물으셨죠?”
“혹시 데려올 만한 선수가 있어? 연말까지 계약이 가능하면 좋겠는데.”
내 한마디에 김민환의 표정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