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약속 그리고 믿음 (3)
나는 조용히 숙소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 강현우 대표님!”
나를 알아본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러고는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시에 나에게 달려왔다.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 녹음기를 들이미는 걸 보니, 그들이 기자들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괜히 말을 해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강현우 대표님, 최근 사태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시죠.”
“정말 YJ에이전시를 협박해서 지금 선수들과 계약하신 건가요?”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하실 생각이신가요?”
기자들 수가 워낙 많았던 탓에 그들을 뚫고 지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뭐라도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기자들을 바라보고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선수들과의 계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건 모두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기자들은 나를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실이 아니라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 주실 수 있나요?”
“…….”
“그렇다면 YJ에이전시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요?”
“…….”
“해당 매체 기자를 만나서 협박을 하셨다던데, 정말입니까?”
웬만하면 무시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 질문만큼은 넘어갈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금 질문을 던진 기자를 바라보며 답했다.
“저는 단 한 번도 협박한 적 없습니다.”
“해당 매체를 당장 문 닫게 하겠다고 하셨다던데요. 영상도 있고요.”
“그렇게 얘기한 적 없습니다. 자신들이 한 말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하든지, 아니면 근거 없이 한 이야기에 대해서 정식으로 사과 보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협박이죠?”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건 확실한 건가요?”
“기자님, 지금 그걸 저한테 물으시는 게 맞나요?”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네?”
“그 매체에서 한 이야기에 출처가 있던가요? 근거는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 제시해야죠.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근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요?”
다른 기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나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 그 매체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씀이신 거죠?”
“혹시 기자님, 그 기사를 보도한 기자가 누구인지, 회사는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네?”
“취재를 하시려면 정확하게 팩트 확인을 하시는 게 먼저 아닐까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기사의 내용을 가지고 저한테 와서 물으시면 안 되죠.”
덜컥.
끼이익.
숙소 안에까지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는지 정인규과 이주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정인규와 이주혁이 나를 둘러싼 기자들을 밀어내며 다가왔다.
“나중에 따로 기자 회견하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길을 만들어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힘겹게 기자들 틈을 벗어날 수 있었다.
“후-”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
이주혁이 따뜻한 물 한 잔을 나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나는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진정해 보려고 했다.
어느새 다가온 정인규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피싱 TV? 거기는 어때요? 제대로 된 곳은 아니죠?”
“전형적으로 뇌피셜 쏟아내는 애들인 거 같아요. 그냥 이야기될만한 거 이것저것 엮어서 만드는 애들 있잖아요. 그냥 책상에 앉아서 기사 만들어내는 곳이더라고요.”
“하……. 아니, 어이가 없네. 왜 그런 신뢰도도 없는 애들이 하는 말이 이렇게 퍼지는 거죠?”
정인규가 힘겹게 분을 삭이며 말했다.
“그냥 들어봐도 그럴듯하잖아요. 그리고 처음에 두 분도 혹해서 저를 의심하지 않았어요?”
“아, 그게…….”
당황스러워하는 정인규와 이주혁을 보니 옅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선수들은 괜찮나요?”
“아직까지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요. 이제부터는 조금 난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경호 업체에 지금 바로 연락해 주세요. 경기장 들어가고 나갈 때 문제 생기는 일 없도록 만들어줘야 할 것 같네요.”
내가 힘든 거야 큰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불똥이 튀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 * *
예상했던 대로 기자들의 관심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선수들에게도 이어졌다.
관련 영상은 끊임없이 SNS에 올라오고 있었다.
SNS에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에 우리 선수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는 버팔로즈의 오석훈과 박성주였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려는 오석훈과 박성주를 향해 기자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바로 옆에 경호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체 접촉은 피할 수 있었지만, 계속되는 질문 세례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오석훈 선수! 최근 드림 에이전시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
-YJ에이전시에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
-그냥 가시지 말고 한 말씀만 해주세요. 정말 진실이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기자의 마지막 한마디에 오석훈이 깊은숨을 내쉬며 멈춰 섰다.
-저는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돼요. 누가 이런 헛소문을 퍼트렸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헛소문이라는 건가요?
-진짜라니까요. 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오석훈이 답하자 이제는 박성주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박성주 선수도 한 말씀해주세요!
-저희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제발 믿어주세요. 진짜 아니라고요!
당연히 버팔로즈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에이전시를 옮기기 직전부터 경기력이 극적으로 좋아진 소영준도 주요 타깃이었다.
-소영준 선수! YJ에이전시랑 계약을 어떻게 해지하신 건가요? 정말 강현우 대표님하고 힘 합쳐서 YJ에이전시를 협박하신 건가요?
-갑자기 뭔 개소리야. 누가 누굴 협박해요. 그딴 얘기 믿지 마세요.
-소영준 선수는 아예 모르는 일이라는 건가요?
-아, 진짜! 그런 일 없었다니까요!
-YJ에이전시에 한 말씀해주세요.
-내가 왜 갑자기 거기에 한 말씀을 해요! 저 경기 준비하러 가봐야 해요. 비키세요.
경호원들이 소영준에게 끈질기게 들러붙는 기자들을 밀어내 준 덕분에 상황은 종료될 수 있었다.
└쟤네들도 결국 같은 놈들 아닌가? 자기들 고생할 때 매니지먼트 해준 에이전시 대표 뒤통수치고 나온 거 아냐?
└특히 오석훈, 박성주, 소영준 좋게 봤는데 완전히 나쁜 놈들이네. 1군 주전 선수 되자마자 2군에서 헤매고 있을 때 도와준 에이전시 버린 놈들.
└타이밍도 기가 막혀. FA 앞두고 버리는 거 봐라. 에이전시에서는 FA 계약을 맺어야 제대로 된 수익을 얻을 텐데.
└선수들이 다 억울하다는 거 보면 진짜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럼 카메라 앞에 대고 자기가 뒤통수쳤다고 말하겠냐. 당연히 아니다, 모르는 거라고 하겠지.
이외에도 나준호, 고지훈, 장수영까지.
한때 YJ에이전시와 계약 관계에 있었던 선수들은 모두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관련 영상과 기사들은 시시각각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 * *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기사들이 추가로 쏟아져 나왔다.
에이전시 SNS는 물론이고 선수들의 개인 계정에도 수많은 악플들이 끊임없이 달리고 있었다.
나는 정인규, 이주혁과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말은 안 해도 지금 엄청 힘들 거예요.”
“후- 그렇겠죠. 근데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은 있습니다.”
정인규가 펜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뭐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이야기하는 거죠. 우리가 선수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 코치님, 말씀드렸지만 YJ에이전시와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YJ에이전시에서 했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어요.”
“대표님,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데요. 지금 우리 상황이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분위기에서 우리가 그런 얘기를 한다고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갑자기 죄 없는 YJ에이전시를 걸고넘어지는 거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
“…….”
“대표님, 우리만 이렇게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거잖습니까. 뭐라도 해야죠.”
정인규가 답답함을 드러내며 나에게 말했다.
“근데 정말 YJ에이전시에서 그런 걸까요?”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겠어요.”
“그냥 이름 없는 찌라시 회사에서 조회수 올리고 싶어서 지어낸 거겠죠.”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이야기를 하려면 소스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이런 기사를 발표한다고요?”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YJ에이전시가 그런 삼류 매체에 제보를 했을까요?”
“……?”
정인규가 잠시 멈칫하며 나를 바라봤다.
“임예지 대표라면 국내 주요 스포츠 매체하고 언제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요. 굳이 그런 이상한 매체에 갈 이유가 없겠죠.”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는 임예지 대표도 공개적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테니까요. 회사 내부 불화로 생긴 일이니까 그런 이야기는 숨어서 하고 싶겠죠.”
언뜻 생각하면 이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든 기사를 화제의 중심으로 만들어 트래픽을 올린 덕분에 기분이 매우 좋다.
-주목받을 수 있을 만한 기삿거리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아까 만난 기자, 아니 기자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는 그 사람의 정보창에서 확인했듯이 제보에 의한 게 아니라 분명히 만들어낸 기사였다.
“YJ에이전시에서 한 게 아닙니다. 그건 분명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뭔데요?”
마음 같아서는 내 눈에 보이는 정보창을 보여주고 싶었다.
“……. 제가 아는 임예지 대표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내 대답을 들은 정인규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당장 어떻게 할까요? 우리 선수들이 계속 저렇게 기자들한테 시달리면 경기력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텐데요.”
“…….”
“혹시나 YJ에이전시에서 한 게 아니라고 해도 얘기는 해야죠. 이게 진실이잖아요.”
“후…….”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잠시 후, 스마트폰 화면이 켜졌다.
쓸데없는 전화들 때문에 진동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 무음으로 바꿔두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또 쓸데없는 전화가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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