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약속 그리고 믿음 (4)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김민환이었다.
“김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어, 현우 씨. 아니 이제 강 대표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냥 현우 씨라고 해주시죠.”
-그래도 되려나 모르겠네. 이제 큰 에이전시 대표님이셔서 말이야.
“편하게 해주세요. 그게 더 좋으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노력해 볼게.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다름이 아니고 말이야. 임예지 대표님이 잠깐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임예지 대표님이요?”
-최대한 빠르게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혹시 시간 괜찮겠어?
“최대한 빠르게라면 언제쯤일까요?”
-현우 씨가 편한 시간이라면 언제든지 좋아. 혹시 괜찮으면 오늘 당장도 가능하고.
“굳이 미룰 이유는 없죠. 바로 갈게요.”
-오, 그래? 그럼 나도 바로 전달해둘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뵐게요.”
내가 전화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인규가 나에게 물었다.
“임예지 대표가 뭐래요?”
“만나고 싶다고 하네요.”
“지금 만나고 싶다고요? 무슨 속셈이지?”
정인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굴렸다.
“임예지 대표님이 먼저 부르셨다는 건, YJ에이전시에서 한 게 아니라는 의미이지 않을까요?”
이주혁이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더했다.
“에이, 그건 모르는 거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지 몰라서 미안하다고 하는 걸지 어떻게 알아.”
정인규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일단 가서 만나보면 알겠죠. 다녀올게요.”
나는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 차에 올라탔다.
* * *
YJ에이전시를 찾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차장은 물론이고 외관까지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 봤던 그대로인데도 왠지 모르게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YJ에이전시의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가자 어떤 곳보다 익숙한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얼굴들이 분주하게 일하느라 바빠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내가 앉았던 자리를 보니, 새로운 직원이 앉아 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 추억에 젖어 있는데,
“현우 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니 김민환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김 팀장님, 잘 지내셨죠.”
“오랜만이야.”
나는 김민환과 악수를 나눴다.
-그사이 입지가 많이 바뀐 강현우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당황스럽다.
정보창을 보다 피식 웃음이 터질 뻔했는데, 이어지는 문장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은 YJ에이전시와 관계가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아니, 남은 경우의 수가 하나 있긴 하지.
임예지가 단독으로 일을 진행했다면 김민환은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우리 회의실로 가서 이야기할까?”
“그러죠.”
나는 김민환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내가 먼저 회의실로 들어가서 앉아 있는 동안,
곧이어 김민환이 두 손에 커피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나에게 건넸다.
“현우 씨가 좋아하는 커피야. 마셔봐.”
“잘 마시겠습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김민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하네요. 정말 맛있어요.”
“다행이야. 요즘에 나도 현우 씨 덕분에 커피에 맛 들렸거든. 근데 우리 회사에는 커피 마실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심심해.”
“아쉽네요. 제가 있었으면 같이 즐길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러게 말이야. 현우 씨 있었을 때 내가 커피 맛을 느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고는 김민환이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현우 씨,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이미 잘 알고 계실 거 같은데요.”
“그렇지? 후우- 이게 무슨 일이야.”
김민환이 한숨을 푹 내쉬며 커피를 내려놓았다.
“오늘 만나자고 하신 게 이것 때문이죠?”
“어……. 아마 그럴 거야. 지금 상황이 우리 내부에서도 당황스럽긴 했거든.”
“잘 해결되겠죠.”
내 말을 끝으로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불편한 적막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는 않아서 화제를 돌렸다.
“우리 선수들 경기는 자주 보세요?”
“당연하지. 그나저나 요즘에 영준이 정말 잘하더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등학생 때도 천재 소리 들었던 선수니까요.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그대로 발휘한 거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커리어 하이를 찍고 나서 또 커리어 하이를 찍을 수 있지?”
김민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노력하니까 제가 더 해줄 게 없더라고요.”
“같이 일할 때도 여러 번 느끼기는 했지만, 현우 씨는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영준이 그 자식 말 안 들어서 정말 고생했는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사람을 그렇게까지 바꿔놓을 수 있지?”
나는 김민환의 말에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한 직원이 문을 열더니 김민환에게 손짓을 보냈다.
“대표님 준비되셨나 보다. 어서 들어가 봐.”
“네.”
나는 김민환과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발자국 움직여 임예지가 기다리고 있을 대표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후우-”
떨리는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멈출 수가 없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고는 대표실 문을 열었다.
* * *
한 발자국을 내딛기도 전에 임예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임예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나를 맞았다.
“현우 씨, 어서 와요.”
“대표님, 오랜만에 뵙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임예지는 나에게 건너편 자리에 앉으라고 가리켰다.
이곳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건, 회사를 떠나기 직전이 마지막이었다.
“에이전시 운영하는 건 어때요?”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항상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렇죠. 외부의 변수라는 게 항상 우리를 괴롭히니까요.”
임예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은 잘 지내셨죠?”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현우 씨가 하는 걸 멀리서 지켜보면 볼수록 놀랍기도 하면서 질투도 나던데요.”
“질투요?”
“에이전시를 그런 방향으로 운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잘 끌어가서요.”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여전하네요.”
임예지가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근데 오늘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뭔가요?”
“현우 씨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하고, 보답도 하고 싶어서요.”
“어떤 건데요?”
“이번 사건. 선수들이 이적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냥 사실대로 얘기했으면 쉽게 끝났을 것 같은데, 왜 안 했어요?”
임예지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답했다.
“그건 대표님하고 한 약속이었으니까요. 이 자리에서 제 입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지켜야죠.”
“하지만 드림 에이전시에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회사도 그렇고 선수들에게도 지장을 많이 줄 것 같은데요. 대표라면 회사와 선수들을 위한 결정을 하는 게 더 옳은 선택이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한 약속을 스스로 어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믿고 싶었습니다.”
“……?”
“제가 아는 임예지 대표님은 그런 행동을 하실 분이 아니라고요.”
“고맙다고 해야 맞는 거겠죠?”
“그리고…… 정말 대표님이 그러신 건 아닌 거죠?”
이번처럼 입을 떼는 것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말을 들은 임예지가 잠시 고민에 잠기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우 씨.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
그녀를 믿었지만, 혹시나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저 그리고 YJ에이전시에서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정확하게 확인까지 했어요. 그리고 기사 내용이 틀린 말이기도 하고요.”
휴…….
“정말 다행이네요.”
“현우 씨가 저를 믿어줬으니, 그럼 이제 저도 현우 씨에게 보답을 해야겠죠?”
“보답이라는 게?”
“당장 내일 우리 에이전시에서 공식 보도자료를 뿌릴 거예요. ‘YJ에이전시와 드림에이전시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지금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루머일 뿐이다.’ 우리가 이 정도로 발표를 한다면 이번 사건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지금 상황에서 이것보다 더 강력하고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제가 현우 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제가 뭘 해드리면 될까요?”
“말 그대로 선물이에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건 전혀 아니니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선수들은 잘 지내고 있죠?”
“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석훈 선수랑 성주 선수는 미국 진출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들었는데, 잘 진행되고 있나요?”
“미국에 진출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텐데, 대신에 계약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요.”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내 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임예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훈 선수도 잘 지내죠?”
“물론이죠. 경기하는 모습 보셨다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몸 상태나 컨디션은 최고입니다.”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그럼 이제 일어나 봐도 될까요?”
“그래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임예지도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손잡이를 잡았는데,
“현우 씨.”
임예지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더 남으셨나요?”
“…….”
임예지는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고요한 적막이 흐르더니,
“고마워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네? 저한테요……?”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 줘서요.”
“…….”
나는 임예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정말 큰 실수를 했더라고요. 그때는 왜 그런 생각까지 갔는지 모르겠어요.”
“…….”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지훈 선수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그리고…… 미안했다는 말도요.”
임예지의 한마디에 잠시 그 자리에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알겠습니다. 꼭 전해드릴게요.”
나는 임예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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